[법으로 읽는 부동산]
변호사조차 방심하는 전세 계약…‘신분증’ 믿다 큰코다칠 수 있어
(사진)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 변호사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 변호사] 얼마 전 신혼집으로 사용할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앞으로 한 달 뒤 입주할 예정인 변호사 후배를 만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 전세금을 가로채 도망가는 사기 사건이 적지 않은데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말을 들은 그 변호사 후배는 “그런 사기 사건은 처음 들었고 별 의심 없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면서 매우 당황해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언론에도 꽤나 많이 알려진 범죄 유형인데도 이런 사건을 처음 들어봤다는 말에 의아했다. 그래서 “나머지 큰돈이 수수되는 잔금 지급 시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하게 살펴보라”고 그 후배에게 권유했다.
(사진)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세 매물.
◆거주 여부 확인도 막을 수 없는 사기
그러자 그 후배는 “임대인이 해당 임대차 목적물에 거주하고 있고 계약 당시 확인한 신분증 사진과 현장에 나온 본인 모습이 일치하는 데도 가짜일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아직도 이런 사기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사기의 거의 대부분은 보증금이 적은 월세 임대차로 계약 체결한 것을 계기로 사기꾼이 해당 임대차 목적물에 대한 점유를 확보한다. 그 후 계약 당시 입수한 임대인의 신분증 사본을 바탕으로 사기꾼의 사진을 첨부한 위조 신분증을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보증금이 많은 전세로 집을 내놓고 보증금을 들고 잠적하는 구조다. 따라서 해당 목적물 거주 여부와 신분증 사진 대조만으로는 가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물론 집주인 행세를 통해 전세 아닌 매매 방식으로도 사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세 사기가 대부분이다. 거래 당사자들이 전세 거래에 대해 주의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하고 이사한 다음 주민등록·확정일자만 해두면 전세 계약은 이상 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세입자가 대부분이고 중개업자들 역시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전세 품귀 현상이 더해져 집주인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그래서 신분증 이외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요청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까지 한다. 여러 가지로 전세 사기가 벌어지기 쉬운 환경인 셈이다.
특히 사기꾼은 매매 사기가 조금 더 번거로울 수 있다. 잠깐 거주하다가 다시 보증금을 돌려받아 나오는 전세와 달리 매매는 가격 하락에 따른 손해 발생의 우려가 있어 매수자의 자세가 전세보다 훨씬 신중하다.
가짜 소유자 문제를 일부러 의식하지 않더라도 신중하게 거래에 임하다 보면 이런저런 부분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가짜 주인이라는 것이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와 달리 잔금 수수 단계에서 이전등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기꾼으로서는 등기 서류를 위조하는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등기 과정에 관여하게 되는 법무사 사무실의 의심 어린 시선도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짜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 사건의 거의 대부분은 전세 사기에 집중된다.
◆당국의 적극적 개입 필요성 커져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배는 “계약 체결 이전에 해당 임대차 목적물을 방문했는데 집에 어린 자녀가 세 명이나 있고 아이들의 장난감과 학습지 자료가 집 안 곳곳에 있었는데 그래도 사기일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전문 변호사인 필자로부터 ‘사기 범행은 아닌 것 같다’는 확답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필자는 웃으면서 ‘월세 계약 후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은 사기 범행 후 바로 도망갈 의도로 최대한 세간을 단출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린 자녀가 세 명이나 되고 집 안에 아이들의 소지품까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기 행각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그 후배 변호사의 기대에 맞는 답을 해줬다.
변호사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사기 유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신분 확인을 당당하게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오랜 관행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 거래 당사자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계약 체결을 최대한 일찍 마무리하는 중개업계의 나쁜 관행도 있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 전부터 지겨울 정도로 이런 유형의 사기 사건을 봐 왔고 이에 대한 주의 사항을 알리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사기 범행이 줄어들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고 거래 당사자의 마음가짐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부동산 거래는 시장 원리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기 사건을 잘못된 관행에 얽매인 우리 거래 시장에만 맡겨 시정하기가 어렵다면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중개업자의 의무 작성 서류인 중개 물건 확인 설명서상에 계약 체결 때부터 권리 처분자인 매도인이나 임대인 본인의 신분 확인을 위한 추가 조치, 즉 등기권리증과 세금 납부 서류 등의 확인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밖에 당해 거래 계약서만으로 만들어지는 현행 등기권리증 대신 과거의 거래 역사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난 거래 계약서가 함께 첨부되는 등기권리증 제도를 통해 서류 위조를 훨씬 불편하게 하는 것도 진정한 소유자 확인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조차 방심하는 전세 계약…‘신분증’ 믿다 큰코다칠 수 있어
(사진)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 변호사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 변호사] 얼마 전 신혼집으로 사용할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앞으로 한 달 뒤 입주할 예정인 변호사 후배를 만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 전세금을 가로채 도망가는 사기 사건이 적지 않은데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말을 들은 그 변호사 후배는 “그런 사기 사건은 처음 들었고 별 의심 없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면서 매우 당황해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언론에도 꽤나 많이 알려진 범죄 유형인데도 이런 사건을 처음 들어봤다는 말에 의아했다. 그래서 “나머지 큰돈이 수수되는 잔금 지급 시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하게 살펴보라”고 그 후배에게 권유했다.
(사진)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세 매물.
◆거주 여부 확인도 막을 수 없는 사기
그러자 그 후배는 “임대인이 해당 임대차 목적물에 거주하고 있고 계약 당시 확인한 신분증 사진과 현장에 나온 본인 모습이 일치하는 데도 가짜일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아직도 이런 사기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사기의 거의 대부분은 보증금이 적은 월세 임대차로 계약 체결한 것을 계기로 사기꾼이 해당 임대차 목적물에 대한 점유를 확보한다. 그 후 계약 당시 입수한 임대인의 신분증 사본을 바탕으로 사기꾼의 사진을 첨부한 위조 신분증을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보증금이 많은 전세로 집을 내놓고 보증금을 들고 잠적하는 구조다. 따라서 해당 목적물 거주 여부와 신분증 사진 대조만으로는 가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물론 집주인 행세를 통해 전세 아닌 매매 방식으로도 사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세 사기가 대부분이다. 거래 당사자들이 전세 거래에 대해 주의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하고 이사한 다음 주민등록·확정일자만 해두면 전세 계약은 이상 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세입자가 대부분이고 중개업자들 역시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전세 품귀 현상이 더해져 집주인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그래서 신분증 이외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요청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까지 한다. 여러 가지로 전세 사기가 벌어지기 쉬운 환경인 셈이다.
특히 사기꾼은 매매 사기가 조금 더 번거로울 수 있다. 잠깐 거주하다가 다시 보증금을 돌려받아 나오는 전세와 달리 매매는 가격 하락에 따른 손해 발생의 우려가 있어 매수자의 자세가 전세보다 훨씬 신중하다.
가짜 소유자 문제를 일부러 의식하지 않더라도 신중하게 거래에 임하다 보면 이런저런 부분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가짜 주인이라는 것이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와 달리 잔금 수수 단계에서 이전등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기꾼으로서는 등기 서류를 위조하는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등기 과정에 관여하게 되는 법무사 사무실의 의심 어린 시선도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짜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 사건의 거의 대부분은 전세 사기에 집중된다.
◆당국의 적극적 개입 필요성 커져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배는 “계약 체결 이전에 해당 임대차 목적물을 방문했는데 집에 어린 자녀가 세 명이나 있고 아이들의 장난감과 학습지 자료가 집 안 곳곳에 있었는데 그래도 사기일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전문 변호사인 필자로부터 ‘사기 범행은 아닌 것 같다’는 확답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필자는 웃으면서 ‘월세 계약 후 집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은 사기 범행 후 바로 도망갈 의도로 최대한 세간을 단출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린 자녀가 세 명이나 되고 집 안에 아이들의 소지품까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기 행각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그 후배 변호사의 기대에 맞는 답을 해줬다.
변호사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사기 유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신분 확인을 당당하게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오랜 관행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 거래 당사자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계약 체결을 최대한 일찍 마무리하는 중개업계의 나쁜 관행도 있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 전부터 지겨울 정도로 이런 유형의 사기 사건을 봐 왔고 이에 대한 주의 사항을 알리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사기 범행이 줄어들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고 거래 당사자의 마음가짐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부동산 거래는 시장 원리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기 사건을 잘못된 관행에 얽매인 우리 거래 시장에만 맡겨 시정하기가 어렵다면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중개업자의 의무 작성 서류인 중개 물건 확인 설명서상에 계약 체결 때부터 권리 처분자인 매도인이나 임대인 본인의 신분 확인을 위한 추가 조치, 즉 등기권리증과 세금 납부 서류 등의 확인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밖에 당해 거래 계약서만으로 만들어지는 현행 등기권리증 대신 과거의 거래 역사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난 거래 계약서가 함께 첨부되는 등기권리증 제도를 통해 서류 위조를 훨씬 불편하게 하는 것도 진정한 소유자 확인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