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 시행 추이 지켜보며 해지 여부 결정하는 것이 유리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환자 및 보호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 한국경제신문.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10년 넣은 실손보험을 깨야 할까요.”
최근 보험사에는 이러한 문의가 빗발친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이 발표된 지 4주째. 실손의료보험이나 민영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국가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을 강화해 준다는데 과연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장성 보험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8월 9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겠다는 취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건강보험 하나만 있으면 돈이 없어서 아플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메디푸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등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그동안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됐던 병실료와 핵자기공명장치(MRI) 등을 비롯한 3800개의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보장에 포함한다. 치료비 부담을 줄여 큰 병에 걸렸을 때 병원비로 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비싸게 지불하던 비급여 항목을 모두 국가가 보장해 준다니 정책만 보면 당장이라도 매달 꼬박꼬박 내던 실손보험을 깨는 게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서두르지 말고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해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 급여 변경 혜택 꼼꼼하게 확인해야
이번 정책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정책 시행이 결정됐다고 단번에 모든 지원이 이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비급여 항목은 앞으로 3~5년 동안 순차적으로 급여로 변경된다. 이와 함께 비급여 항목 대신 비급여와 급여의 중간 단계인 ‘예비 급여’가 생긴다. 예비 급여에는 30% 정도의 자기 부담금을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3800여 개의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실손보험을 해지하는 것보다 당분간 유지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어떤 항목이 급여로 전환되고 얼마만큼의 혜택이 있는지 확인한 뒤 기존의 보험을 해지해도 늦지 않다는 것.
또한 8월 27일 금융감독원이 민간 보험사의 실손보험 계약 중 41만 건이 보험료를 부당하게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료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험료 인하 시점도 함께 확인한 뒤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당분간 지켜보자는 의견은 보험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강보험의 보장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큰 질병에 걸렸을 때 국가의 지원만으로는 메디푸어로의 전락을 완전히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암 발병 시 부담이 되는 가장 큰 부분은 치료비 항목(67.5%)이다. 문재인 케어를 통하면 치료비 지원을 통해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환자 가족에게 부담되는 부분은 단지 치료비에 한정지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암 환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암 환자의 83.5%는 실직했고 16.5%만 일자리를 유지했다. 직업을 잃은 암 환자의 재취업률은 23%이고 나머지 77%는 무직자로 전락했다. 환자가 병을 치료했다고 하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일자리 유지 비율을 16.5% 수준으로 본다면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실직하게 된다는 얘기다. 재취업률 또한 23%에 그치기 때문에 병이 완치됐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완치자들의 대부분은 창업을 선택한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창업에는 평균 1억6000만원 정도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퇴직금 및 저축 자산으로 쉽게 시작하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민영보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보장 진단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과연 투병 중 직장에서 급여가 정상적으로 발생할지의 여부다. 병가 상황이 되면 치료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돼 병원비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보험은 의료비가 중심이 아닌 간병과 소득 상실에 대한 생활비 지원, 더 나아가 다음 소득 활동을 위한 기초 자금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 건강보험료 상승·재정 문제도 우려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안들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발표만 믿고 실손보험을 해지하면 발생할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단독형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20대부터 40대까지 남성은 1만5000원, 여성은 1만8000원이고 50대부터는 보험료가 상승해 남성 2만원, 여성 3만원 정도다.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면 대부분 5만원 이상의 종합보험으로 가입하게 되는데 이 중 실손보험료를 해지한다고 해도 매달 2만 정도의 비용이 줄어들 뿐이어서 실질적으로 크게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을 해지하게 됐을 때 관련 보장을 받을 수 없는 타격은 크다.
한 보헙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30~140%로 소비자들이 손해 보는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해지하고 추후 가입하려면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보험료도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현재 비급여인 질병 치료 항목이 언제 급여로 바뀌는지, 보장 혜택은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확인한 뒤 보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자 좋은 취지와 별개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우선 보장 혜택이 늘어나면 그만큼 건강보험료 자체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공개하며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국고 지원액을 늘리고 국고 누적 적립금을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당장 내년도 재원에서부터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8월 31일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국고 지원액은 7조3049억5800만원이다. 올해보다 6.2%가 늘었지만 애초 복지부가 요청한 금액보다 한참 모자란 금액이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의료 서비스 이용량이 급증해 재정 부담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파격적인 보험 급여 확대로 잠재적 환자들의 의료 수요가 증가하면 정부가 추산한 비용을 초과할 수 있다.
socool@hankyung.com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환자 및 보호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 한국경제신문.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10년 넣은 실손보험을 깨야 할까요.”
최근 보험사에는 이러한 문의가 빗발친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이 발표된 지 4주째. 실손의료보험이나 민영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국가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을 강화해 준다는데 과연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장성 보험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8월 9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겠다는 취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건강보험 하나만 있으면 돈이 없어서 아플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메디푸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등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그동안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됐던 병실료와 핵자기공명장치(MRI) 등을 비롯한 3800개의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보장에 포함한다. 치료비 부담을 줄여 큰 병에 걸렸을 때 병원비로 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비싸게 지불하던 비급여 항목을 모두 국가가 보장해 준다니 정책만 보면 당장이라도 매달 꼬박꼬박 내던 실손보험을 깨는 게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서두르지 말고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해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 급여 변경 혜택 꼼꼼하게 확인해야
이번 정책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정책 시행이 결정됐다고 단번에 모든 지원이 이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비급여 항목은 앞으로 3~5년 동안 순차적으로 급여로 변경된다. 이와 함께 비급여 항목 대신 비급여와 급여의 중간 단계인 ‘예비 급여’가 생긴다. 예비 급여에는 30% 정도의 자기 부담금을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3800여 개의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실손보험을 해지하는 것보다 당분간 유지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어떤 항목이 급여로 전환되고 얼마만큼의 혜택이 있는지 확인한 뒤 기존의 보험을 해지해도 늦지 않다는 것.
또한 8월 27일 금융감독원이 민간 보험사의 실손보험 계약 중 41만 건이 보험료를 부당하게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료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험료 인하 시점도 함께 확인한 뒤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당분간 지켜보자는 의견은 보험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강보험의 보장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큰 질병에 걸렸을 때 국가의 지원만으로는 메디푸어로의 전락을 완전히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암 발병 시 부담이 되는 가장 큰 부분은 치료비 항목(67.5%)이다. 문재인 케어를 통하면 치료비 지원을 통해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환자 가족에게 부담되는 부분은 단지 치료비에 한정지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암 환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암 환자의 83.5%는 실직했고 16.5%만 일자리를 유지했다. 직업을 잃은 암 환자의 재취업률은 23%이고 나머지 77%는 무직자로 전락했다. 환자가 병을 치료했다고 하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일자리 유지 비율을 16.5% 수준으로 본다면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실직하게 된다는 얘기다. 재취업률 또한 23%에 그치기 때문에 병이 완치됐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완치자들의 대부분은 창업을 선택한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창업에는 평균 1억6000만원 정도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퇴직금 및 저축 자산으로 쉽게 시작하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민영보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보장 진단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과연 투병 중 직장에서 급여가 정상적으로 발생할지의 여부다. 병가 상황이 되면 치료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돼 병원비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보험은 의료비가 중심이 아닌 간병과 소득 상실에 대한 생활비 지원, 더 나아가 다음 소득 활동을 위한 기초 자금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 건강보험료 상승·재정 문제도 우려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안들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발표만 믿고 실손보험을 해지하면 발생할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단독형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20대부터 40대까지 남성은 1만5000원, 여성은 1만8000원이고 50대부터는 보험료가 상승해 남성 2만원, 여성 3만원 정도다.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면 대부분 5만원 이상의 종합보험으로 가입하게 되는데 이 중 실손보험료를 해지한다고 해도 매달 2만 정도의 비용이 줄어들 뿐이어서 실질적으로 크게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을 해지하게 됐을 때 관련 보장을 받을 수 없는 타격은 크다.
한 보헙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30~140%로 소비자들이 손해 보는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해지하고 추후 가입하려면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보험료도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현재 비급여인 질병 치료 항목이 언제 급여로 바뀌는지, 보장 혜택은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확인한 뒤 보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자 좋은 취지와 별개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우선 보장 혜택이 늘어나면 그만큼 건강보험료 자체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공개하며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국고 지원액을 늘리고 국고 누적 적립금을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당장 내년도 재원에서부터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8월 31일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국고 지원액은 7조3049억5800만원이다. 올해보다 6.2%가 늘었지만 애초 복지부가 요청한 금액보다 한참 모자란 금액이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의료 서비스 이용량이 급증해 재정 부담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파격적인 보험 급여 확대로 잠재적 환자들의 의료 수요가 증가하면 정부가 추산한 비용을 초과할 수 있다.
s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