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걸·최양하 ‘하모니’로 초고속 성장

[커버스토리 : 한샘은 어떤 회사인가]
오너·전문경영인 역할 분담…‘차기’ 강승수 부회장 중국사업 진두지휘


[한경비즈니스=이홍표 기자] 한샘은 한국의 기업사(史)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각자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기업의 고속 성장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한샘의 최대 주주는 조창걸 명예회장이다. 서울대 건축과 출신인 조 명예회장은 1970년 한국 부엌의 아궁이를 바꿔 주부들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목표로 한샘을 설립했다.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부엌을 설계하는 것이 생소했는데 조 명예회장은 부엌에 ‘가구’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1970년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며 한샘의 주방 가구는 큰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 중동 등지에 가구들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한샘은 1979년 수출이 100만 달러를 넘어섰고 4년 뒤 5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한샘은 종합 가구 회사로 변신해 사업 영역을 주방에서 거실로 확장했다. 조 명예회장은 한샘이 종합 가구 회사로 자리 잡으면서 전무였던 최양하 현 회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문경영인 최양하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한샘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1998년 한샘의 실적은 매출액 1737억원, 영업이익 142억원, 당기순이익 26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만인 2009년 처음으로 연매출 5000억원대를 넘어섰다. 그해 12월 최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회장으로 경영을 맡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20%가 넘는 기록적인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조 명예회장은 최 회장에게 경영을 맡긴 이후 기업과 사회에서 자신의 철학을 꽃피우는 데 집중했다. 기업 측면에서는 ‘디자인 강화’다. 조 명예회장은 가구업의 핵심 가치는 ‘디자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매년 매출의 5% 정도를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투자했다. 특히 디자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 한샘DBEW디자인센터를 설립한 후 매일 이곳에 출근했다.

조 명예회장의 큰 그림은 또 있다. 조 명예회장은 한샘 창업 때부터 한국의 미래를 그려내는 ‘한국의 대표 싱크탱크’ 설립을 꿈꿨다.

그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2015년 3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 260만 주를 한샘DBEW연구재단에 출연해 국가 정책 개발을 위한 연구 재단 ‘여시재’를 설립했다. 여시재는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를 표방한다.


한샘의 ‘역할 분담’은 미래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조 명예회장은 1남 3녀를 뒀지만 2012년 조 명예회장의 외아들 원찬 씨가 사망하면서 지금은 세 딸만 남았다. 조 명예회장은 세 딸에게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고루 나눠 주며 한 명에게 지배구조가 쏠리지 않도록 했다.

‘포스트 최양하 시대’를 이끌 전문경영인도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이면 최 회장이 경영을 맡은 지 25년째가 되는 데다 우리 나이로 70세가 되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중국 매장 준비를 진두지휘한 강승수 부회장이다. 강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최 회장 다음으로 직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맡고 있는 사업 분야도 회사의 미래 먹거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 부회장은 인테리어 부문, 직영점, 해외시장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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