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버려진 폐기물, 패션이 되다

과정 복잡하지만 ‘지속 가능한 패션’ 위해 해양 폐기물 재활용하는 기업 늘어나

스페인 의류 기업 에콜프는 버려진 해양 쓰레기를 재활용해 패션 아이템으로 제작한다. /에코알프

[한경비즈니스=김민주 객원기자] 빠르게 증가하는 해양 폐기물을 패션 아이템으로 재활용
하려는 유럽 기업들의 노력이 활발하다. 학계에 따르면 매년 최소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진다. 이에 따라 해양오염이 전 세계적 환경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의류업계에서도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실험이 한창이다. 유럽에서는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에서부터 영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스웨덴 패스트 패션 소매 업체 H&M 등 기성 기업들도 바다 쓰레기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적극적이다.

◆육지보다 4배 높은 해양 폐기물의 오염도

스타트업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브랜드 론칭 초기부터 꾸준히 해양 쓰레기 감축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 기반의 의류 기업 에콜프(Ecoalf)다.

에콜프의 창업자인 하비에르 고에네체 대표는 천연자원의 남용과 선진국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산업 폐기물에 큰 좌절감을 느낀 것을 계기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재활용 소재의 의류를 생산하게 됐다.

그는 특히 해변을 뒤덮고 있는 오래된 플라스틱과 버려진 그물망 때문에 사람과 해양 생물 모두 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현재 에콜프는 플라스틱 병, 낡은 어망, 폐타이어 등을 직물로 바꾼 후 재킷·셔츠·바지·패딩점퍼·운동화·가방 등 여러 종류의 패션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에콜프는 의류 생산에 필요한 원사를 만들기 위해 매일 심해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2~5kg 정도 수거한다. 이 작업에는 스페인 어부 2000명 정도가 투입된다. 이렇게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을 포함해 총 다섯 번의 과정을 거치면 실과 천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고에네체 대표는 이 기간이 매우 길고 쉽지 않다고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옷을 만들려면 지역의 어부들을 설득하고 함께 일할 사람을 모으는 작업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원사를 생산하는 것이 자연에 훨씬 이롭기 때문에 어려움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의류 제작 과정은 원재료를 직물로 만드는 데 대략 17번의 화학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물망은 7번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천연자원을 새롭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목화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2500리터의 물도 자연히 아낄 수 있게 되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폐기물의 양도 줄일 수 있어 이점이 많다는 것이다.

에콜프는 해양 폐기물이 수거하기가 어려워 긴 시간 동안 바다에 방치된다고 설명했다. 또 소금이나 물이 제품을 더 빠르게 손상시키기 때문에 육지에 있는 폐기물보다 입자당 오염 수준이 4배 정도 높아 이를 더 많이 재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에콜프는 7000만 개의 플라스틱 병과 60톤의 버려진 그물을 재활용했다. 에콜프는 특히 이 두 폐기물에 관심이 많다. 플라스틱은 50년 전에 비해 사용량이 20배나 증가했다. 덩달아 폐기물도 늘어났고 자연을 더 크게 훼손시키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버려진 그물망은 바다에 방치되면 사람들이 그물에 걸려 다치거나 물고기·포유류·새 등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재활용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에콜프는 의류 제작과 함께 일명 ‘바다 업사이클링’이라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에콜프재단은 지난해 스페인 레반트 해안의 어부들을 참여시킨 해양 정화 프로젝트에 나섰다.

레반트의 10군데 주요 항구에 160여 대의 보트를 두고 매일 보트별로 해저에 있는 쓰레기 4kg을 건져 올리며 이를 직물로 재활용하는 ‘지중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재단 측은 올해 태국 정부와 손잡고 향후 3년 동안 태국 동남부 해안 정화에 나서기로 했다.

이처럼 착한 운영 방침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럽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쌓고 있는 에콜프는 스페인 마드리드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독일 베를린에도 매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베르두라는 오래된 어망을 활용해 친환경 수제화를 만든다. /베르두라

◆어망이 샌들 되려면 ‘150단계’ 거쳐야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시작된 패션 브랜드 베르두라(Verdura)도 오래된 어망을 활용해 친환경 수제화를 만들고 있다. 2014년 시제품을 제작했고 2016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 활동을 전개한 후 같은 해 정식으로 온·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브랜드의 설립자는 신발 장인인 안드레아 베르두 대표다. 그는 자신의 고향 근처인 이탈리아 피옴비노 지역의 해안에서 그물 조각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회사 설립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유럽의 어선들이 사용하던 좁은 간격의 그물 때문에 작은 물고기가 지나치게 많이 잡히자 유럽연합(EU)에서 해당 그물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해안에 버려진 그물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됐던 것이다.

베르두 대표는 호기심에 그물 하나를 들어 올려 발에 대보고 폐기물을 샌들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실제 신발로 만들려면 어망을 좀 더 부드럽게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물을 자르고 씻는 과정을 반복한 후 천연 염료로 색을 입혀 코르크와 결합했다.

이 밖에 신발에 필요한 재료들은 다른 신발을 제작하다 남은 폐가죽과 재활용된 고무 밑창을 사용했다. 베르두라의 신발에는 재활용 소재나 친환경적인 재료만이 사용되고 있다. 베르두라의 운영 목표가 환경에 기여하는 혁신적인 신발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베르두라는 샌들, 부츠, 어린이용 샌들, 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고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시칠리아 등에서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브랜드는 바다나 해변 등에 쓰레기, 독소, 깨진 유리, 버려진 어망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비즈니스를 이어 간다.

베르두라가 어망을 신발로 만드는 데는 총 150번 이상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신발 제작에 필요한 제대로 된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베르두라는 국제적인 비영리 해양야생동물보호단체인 SSCS와의 협업을 통해 심해나 해변에 버려진 어망을 공급받고 있고 해양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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