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기업과 중기 사이, 중견기업의 활로는? : 해외 진출]
중견기업 지원 위한 ‘월드클래스300’에 중소기업이 더 많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 삼성전기는 2002년 미니 프린터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미니 프린터 사업부를 이끌고 있던 김장환 빅솔론 대표는 프린터 개발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직원 30여 명과 함께 창업을 결심하고 삼성에서 분사해 종업원지주제도 형태로 설립했다.
설립 초기부터 목표는 해외시장 개척이었다. 경영진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싸워 이기려면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2005년 유럽 법인과 미주 법인을 차례로 설립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빅솔론은 내수보다 수출이 훨씬 많은 글로벌 기업이 됐다. 전체 매출의 약 75%가 해외 수출에서 발생한다. 수출하는 국가만 전 세계 120개국에 달한다.
지역도 어느 한군데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분포돼 있어 오일쇼크나 환율 변동 등 세계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중견기업의 국내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대기업의 ‘입김’과 중소기업의 ‘눈물’ 사이에 끼여 ‘찬밥 신세’다.
물론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 지원과 장수 기업 육성을 위해 가업상속공제, 명문 장수 기업 등 중견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높은 세율과 사전·사후 요건이 엄격해 지원이 한정적이다.
그 결과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는 중견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야 할 기업들이 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월드클래스300’ 내 중견기업 46%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안으로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이 제시된다. 앞선 사례의 빅솔론처럼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선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도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며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해외 지원 정책에 비해 중견기업의 지원은 한참 뒤떨어지는 실정이다.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은 ‘월드클래스300’이다. 월드클래스300은 정부가 성장 의지와 잠재력을 가진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키우기 위해 2011년부터 시행한 대표적인 중견기업 지원 사업이다. 지원 예산만 1323억원(2017년 예상)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연구·개발(R&D) 1163억원, 해외 마케팅 14억원, 교육 및 컨설팅 20억원이다. 지원부터 수출까지 한 번에 지원 받을 수 있어 국내 중견기업들에 가장 인기 있는 사업이다. 월드클래스300 지원을 받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는 중견기업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지원 받는 중견기업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출범 초기 산업계의 허리인 중견기업을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 내보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초기 2년간은 중견기업 선정이 중소기업보다 더 많았지만 2013년 당시 중소기업청으로 사업이 이관된 이후부터 계속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7년 현재 265곳(누계)의 월드클래스300 기업 중 중견기업은 122개로 46%다. 나머지 54%는 중소기업이다. 이마저도 올해는 더욱 줄어들었다. 36개를 선정했던 올 상반기에도 중견기업은 4개뿐이다.
이 밖에 중기부는 고성장 기업 수출 역량 강화 지원 사업(예산 310억원)을 통해 중견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하지만 최근 4년간 상시노동자 수 또는 매출액이 연평균 20% 성장,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 진입 3년 이내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해 정작 필요한 기업들은 받을 수 없다.
현재 중기부의 중소기업 해외 진출 지원 정책은 별도로 마련돼 있다. 오히려 중견기업 지원보다 더 큰 예산이 책정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수출 도약 기반 강화라는 지원 사업명으로 수출 초보, 유망, 강소, 선도 기업 등으로 구분해 1920억원(2017년 예상)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돼 있는 한 중견기업의 한 대표는 “월드클래스300의 주된 대상은 당초 중견기업이었는데 중기부로 사업이 이관되면서 중견기업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중견기업 정책이 이관된 만큼 산업부로 월드클래스300 사업도 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든 챔피언 인증 불과 20곳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은 금융권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원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2019년까지 글로벌 중견기업 100곳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히든 챔피언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인증 받은 기업은 20곳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2009년부터 시행 중인 히든 챔피언 인증을 받은 기업은 20개, 인증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후보 기업은 22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2014년 이후 인증 기업 수(23→20)는 물론 후보 기업 수(300→223)도 감소하고 있어 2019년까지 100개의 히든 챔피언 기업을 발굴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중견기업 해외 진출과 관련된 지원 사업은 정부의 여러 산하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창구를 통해 정부가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KOTRA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수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무료 수출 상담 서비스다.
양질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실무 경험이 있는 해외 지역 담당 컨설턴트 조직을 별도로 구성하고 기업들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개념과 전략, 유의할 점 등을 자문해 준다.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중견기업들은 중견기업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정리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견기업들은 지금까지 중견기업 정책이 중소기업 지원의 연장선 정도에 그친 점을 지적하며 긴 호흡으로 ‘중견기업 육성’에 초점을 둔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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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지원 위한 ‘월드클래스300’에 중소기업이 더 많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 삼성전기는 2002년 미니 프린터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미니 프린터 사업부를 이끌고 있던 김장환 빅솔론 대표는 프린터 개발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직원 30여 명과 함께 창업을 결심하고 삼성에서 분사해 종업원지주제도 형태로 설립했다.
설립 초기부터 목표는 해외시장 개척이었다. 경영진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싸워 이기려면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2005년 유럽 법인과 미주 법인을 차례로 설립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빅솔론은 내수보다 수출이 훨씬 많은 글로벌 기업이 됐다. 전체 매출의 약 75%가 해외 수출에서 발생한다. 수출하는 국가만 전 세계 120개국에 달한다.
지역도 어느 한군데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분포돼 있어 오일쇼크나 환율 변동 등 세계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중견기업의 국내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대기업의 ‘입김’과 중소기업의 ‘눈물’ 사이에 끼여 ‘찬밥 신세’다.
물론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 지원과 장수 기업 육성을 위해 가업상속공제, 명문 장수 기업 등 중견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높은 세율과 사전·사후 요건이 엄격해 지원이 한정적이다.
그 결과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는 중견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야 할 기업들이 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월드클래스300’ 내 중견기업 46%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안으로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이 제시된다. 앞선 사례의 빅솔론처럼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선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도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며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해외 지원 정책에 비해 중견기업의 지원은 한참 뒤떨어지는 실정이다.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은 ‘월드클래스300’이다. 월드클래스300은 정부가 성장 의지와 잠재력을 가진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키우기 위해 2011년부터 시행한 대표적인 중견기업 지원 사업이다. 지원 예산만 1323억원(2017년 예상)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연구·개발(R&D) 1163억원, 해외 마케팅 14억원, 교육 및 컨설팅 20억원이다. 지원부터 수출까지 한 번에 지원 받을 수 있어 국내 중견기업들에 가장 인기 있는 사업이다. 월드클래스300 지원을 받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는 중견기업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지원 받는 중견기업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출범 초기 산업계의 허리인 중견기업을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 내보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초기 2년간은 중견기업 선정이 중소기업보다 더 많았지만 2013년 당시 중소기업청으로 사업이 이관된 이후부터 계속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7년 현재 265곳(누계)의 월드클래스300 기업 중 중견기업은 122개로 46%다. 나머지 54%는 중소기업이다. 이마저도 올해는 더욱 줄어들었다. 36개를 선정했던 올 상반기에도 중견기업은 4개뿐이다.
이 밖에 중기부는 고성장 기업 수출 역량 강화 지원 사업(예산 310억원)을 통해 중견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하지만 최근 4년간 상시노동자 수 또는 매출액이 연평균 20% 성장,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 진입 3년 이내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해 정작 필요한 기업들은 받을 수 없다.
현재 중기부의 중소기업 해외 진출 지원 정책은 별도로 마련돼 있다. 오히려 중견기업 지원보다 더 큰 예산이 책정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수출 도약 기반 강화라는 지원 사업명으로 수출 초보, 유망, 강소, 선도 기업 등으로 구분해 1920억원(2017년 예상)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돼 있는 한 중견기업의 한 대표는 “월드클래스300의 주된 대상은 당초 중견기업이었는데 중기부로 사업이 이관되면서 중견기업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중견기업 정책이 이관된 만큼 산업부로 월드클래스300 사업도 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든 챔피언 인증 불과 20곳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은 금융권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원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2019년까지 글로벌 중견기업 100곳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히든 챔피언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인증 받은 기업은 20곳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2009년부터 시행 중인 히든 챔피언 인증을 받은 기업은 20개, 인증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후보 기업은 22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2014년 이후 인증 기업 수(23→20)는 물론 후보 기업 수(300→223)도 감소하고 있어 2019년까지 100개의 히든 챔피언 기업을 발굴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중견기업 해외 진출과 관련된 지원 사업은 정부의 여러 산하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창구를 통해 정부가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KOTRA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수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무료 수출 상담 서비스다.
양질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실무 경험이 있는 해외 지역 담당 컨설턴트 조직을 별도로 구성하고 기업들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개념과 전략, 유의할 점 등을 자문해 준다.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중견기업들은 중견기업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정리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견기업들은 지금까지 중견기업 정책이 중소기업 지원의 연장선 정도에 그친 점을 지적하며 긴 호흡으로 ‘중견기업 육성’에 초점을 둔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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