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핸드메이드 취미
- 해외 명품 브랜드에 납품되는 가죽 사용…‘경험과 소유’ 두 마리 토끼 잡아
(사진) 합정역에 위치한 가죽 공방 '마니에고' 내부 / 마니에고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취미가 변하고 있다. 몇 년째 한국인 취미 활동 1위를 지키고 있는 등산에서 요가, 서핑, 도자기 공예, 프랑스 자수까지….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취미를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인기를 끌며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체험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핸드메이드(수공예) 취미가 각광받고 있다.
핸드메이드 공방을 찾은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하는 작은 창작을 통해 심리 치유와 힐링을 얻는다. 핸드메이드 취미 중 가장 뜨겁게 떠오른 것은 바로 가죽공예다.
소위 말해 ‘힙’하다는 서교동·신사동 골목골목마다 가죽 공방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취미, 데이트 코스, 창업을 위한 준비 등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모두 비슷한 느낌을 받고 간다. 바로 따뜻함이다.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 가죽을 만지고 바느질하다 보면 사람들은 위안을 얻기도 하며 소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사진) 가죽을 재단하는 과정. 안감과 겉감을 모두 재단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자르기가 힘들었다.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된 듯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소규모 가죽 공방만 200개가 넘는다. 가죽공예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을까. 합정역 한 골목길에 자리한 가죽 공방 ‘마니에고’를 찾아 직접 체험해 봤다.
마니에고는 ‘공방’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일본 드라마에서 본 듯한 아늑한 느낌을 내는 공방에 들어서자 3.3㎡(10평)쯤 돼 보이는 공간에 커다란 작업 책상과 갖가지 가죽공예 도구가 나열돼 있었다.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첫 도전이지만 과감하게 ‘클러치백’에 도전했다.
가장 먼저 어떤 가죽을 쓸지 골랐다. 소가죽이라고 다 같은 소가죽이 아니다. 소고기를 먹을 때 부위가 다양하듯이 가공법에 따라 가죽의 특징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기자가 고른 가죽은 ‘부테로(buttero)다. “부테로는 식물성 타닌 성분을 활용해 가공한 ‘베지터블’ 가죽 종류로, 내구성이 좋고 100% 프랑스 원피만 사용한 제품이에요.” 전용민 마니에고 대표가 친절하게 가죽에 대해 설명해 줬지만 그래서 좋다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보테가베네타’, ‘에트로’, ‘마르니’에 납품되는 이탈리아 발피에르 태너리 가죽이라는 설명을 듣고 망설임 없이 부테로를 선택했다.
다음은 크기와 디자인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직접 눈금종이에 자를 대고 원하는 크기를 쓱쓱 그어 나갔다.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을 골랐지만 다 완성하려면 4시간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도면대로 가죽을 자를 차례가 다가왔다. 안감과 겉감을 모두 재단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자르기가 힘들었다.
숨을 참고 가죽칼을 이용해 과감하게 죽 잘랐지만 결국 공방 대표가 나서 비뚤어진 부분을 살짝 다듬어 줬다. 이후 토코놀이라는 마감재를 잘라낸 부분에 발라 평평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줬다. 인두로 끝부분 마감 선을 긋고 본드 칠을 해 겉감과 안감을 붙였다.
(사진) 구멍을 뚫은 가죽이 움직이지 않도록 '포니'라는 기구에 끼우고 바느질을 하는 모습.
지퍼까지 직접 달고 나니 이제 가죽공예의 꽃이랄 수 있는 ‘바느질’이 남아 있다. 커다란 포크처럼 생긴 ‘목타’를 망치로 쳐 가죽에 직접 바느질 구멍을 냈다.
구멍을 뚫은 가죽이 움직이지 않도록 ‘포니’라는 기구에 끼우고 어울리는 색의 실을 골라 바느질을 하면 거의 완성이다. 구멍까지 있으니 바느질은 금방 끝낼 수 있을 듯했다.
“양손을 동시에 바느질해야 하는 데 괜찮으시죠?” 바느질도 처음 해보는데 양손 바느질이라니. 걱정과 달리 같은 바느질 기법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40분에 걸쳐 한 면 바느질을 다 마쳤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네 면을 모두 바느질해야 해 두 시간이 넘게 바느질 작업만 했다.
가죽공예는 지금까지 현대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정반대의 작업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 들여 인내심을 갖고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마냥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손을 바삐 움직이다 보니 마음속 소란이 없어지고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가죽에 뚫린 구멍으로 두꺼운 실을 통과시키는 일은 꽤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마치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된 것같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혼을 싣는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전용민 대표에 따르면 정기 수강생이나 취미반 대부분은 직장인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은 명품만 찾기보다 많은 이들이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며 “전국에 약 1600개의 가죽 공방이 있는데, 정규 수강생들 중 창업반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남자 친구에게 줄 카드 지갑을 만들던 직장인 A 씨는 “가죽 공방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성취감”이라고 말했다. 결과물보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자존감까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사진) '부테로(buttero)' 가죽을 이용해 만든 클러치백. 이름을 새길 수 있어 특별함이 느껴진다.
◆내가 가진 것이 곧 나
클러치백이 다 완성되자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길 수 있었다. 브랜드명 대신 이름을 새기고 나니 명품 브랜드 한정판 가방보다 더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명품에 쓰이는 가죽으로 훨씬 저렴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니. 밀레니얼 세대가 가죽 공방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 소유보다 경험으로 소비 트렌드가 옮겨 가고 있지만 가죽공예는 경험과 소유를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이 깃든 물건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가진 것이 나다”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표출하는 도구이기에,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kye0218@hankyung.com
- 해외 명품 브랜드에 납품되는 가죽 사용…‘경험과 소유’ 두 마리 토끼 잡아
(사진) 합정역에 위치한 가죽 공방 '마니에고' 내부 / 마니에고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취미가 변하고 있다. 몇 년째 한국인 취미 활동 1위를 지키고 있는 등산에서 요가, 서핑, 도자기 공예, 프랑스 자수까지….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취미를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인기를 끌며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체험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핸드메이드(수공예) 취미가 각광받고 있다.
핸드메이드 공방을 찾은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하는 작은 창작을 통해 심리 치유와 힐링을 얻는다. 핸드메이드 취미 중 가장 뜨겁게 떠오른 것은 바로 가죽공예다.
소위 말해 ‘힙’하다는 서교동·신사동 골목골목마다 가죽 공방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취미, 데이트 코스, 창업을 위한 준비 등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모두 비슷한 느낌을 받고 간다. 바로 따뜻함이다.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 가죽을 만지고 바느질하다 보면 사람들은 위안을 얻기도 하며 소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사진) 가죽을 재단하는 과정. 안감과 겉감을 모두 재단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자르기가 힘들었다.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된 듯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소규모 가죽 공방만 200개가 넘는다. 가죽공예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을까. 합정역 한 골목길에 자리한 가죽 공방 ‘마니에고’를 찾아 직접 체험해 봤다.
마니에고는 ‘공방’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일본 드라마에서 본 듯한 아늑한 느낌을 내는 공방에 들어서자 3.3㎡(10평)쯤 돼 보이는 공간에 커다란 작업 책상과 갖가지 가죽공예 도구가 나열돼 있었다.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첫 도전이지만 과감하게 ‘클러치백’에 도전했다.
가장 먼저 어떤 가죽을 쓸지 골랐다. 소가죽이라고 다 같은 소가죽이 아니다. 소고기를 먹을 때 부위가 다양하듯이 가공법에 따라 가죽의 특징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기자가 고른 가죽은 ‘부테로(buttero)다. “부테로는 식물성 타닌 성분을 활용해 가공한 ‘베지터블’ 가죽 종류로, 내구성이 좋고 100% 프랑스 원피만 사용한 제품이에요.” 전용민 마니에고 대표가 친절하게 가죽에 대해 설명해 줬지만 그래서 좋다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보테가베네타’, ‘에트로’, ‘마르니’에 납품되는 이탈리아 발피에르 태너리 가죽이라는 설명을 듣고 망설임 없이 부테로를 선택했다.
다음은 크기와 디자인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직접 눈금종이에 자를 대고 원하는 크기를 쓱쓱 그어 나갔다.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을 골랐지만 다 완성하려면 4시간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도면대로 가죽을 자를 차례가 다가왔다. 안감과 겉감을 모두 재단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자르기가 힘들었다.
숨을 참고 가죽칼을 이용해 과감하게 죽 잘랐지만 결국 공방 대표가 나서 비뚤어진 부분을 살짝 다듬어 줬다. 이후 토코놀이라는 마감재를 잘라낸 부분에 발라 평평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줬다. 인두로 끝부분 마감 선을 긋고 본드 칠을 해 겉감과 안감을 붙였다.
(사진) 구멍을 뚫은 가죽이 움직이지 않도록 '포니'라는 기구에 끼우고 바느질을 하는 모습.
지퍼까지 직접 달고 나니 이제 가죽공예의 꽃이랄 수 있는 ‘바느질’이 남아 있다. 커다란 포크처럼 생긴 ‘목타’를 망치로 쳐 가죽에 직접 바느질 구멍을 냈다.
구멍을 뚫은 가죽이 움직이지 않도록 ‘포니’라는 기구에 끼우고 어울리는 색의 실을 골라 바느질을 하면 거의 완성이다. 구멍까지 있으니 바느질은 금방 끝낼 수 있을 듯했다.
“양손을 동시에 바느질해야 하는 데 괜찮으시죠?” 바느질도 처음 해보는데 양손 바느질이라니. 걱정과 달리 같은 바느질 기법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40분에 걸쳐 한 면 바느질을 다 마쳤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네 면을 모두 바느질해야 해 두 시간이 넘게 바느질 작업만 했다.
가죽공예는 지금까지 현대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정반대의 작업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 들여 인내심을 갖고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마냥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손을 바삐 움직이다 보니 마음속 소란이 없어지고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가죽에 뚫린 구멍으로 두꺼운 실을 통과시키는 일은 꽤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마치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된 것같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혼을 싣는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전용민 대표에 따르면 정기 수강생이나 취미반 대부분은 직장인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은 명품만 찾기보다 많은 이들이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며 “전국에 약 1600개의 가죽 공방이 있는데, 정규 수강생들 중 창업반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남자 친구에게 줄 카드 지갑을 만들던 직장인 A 씨는 “가죽 공방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성취감”이라고 말했다. 결과물보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자존감까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사진) '부테로(buttero)' 가죽을 이용해 만든 클러치백. 이름을 새길 수 있어 특별함이 느껴진다.
◆내가 가진 것이 곧 나
클러치백이 다 완성되자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길 수 있었다. 브랜드명 대신 이름을 새기고 나니 명품 브랜드 한정판 가방보다 더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명품에 쓰이는 가죽으로 훨씬 저렴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니. 밀레니얼 세대가 가죽 공방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 소유보다 경험으로 소비 트렌드가 옮겨 가고 있지만 가죽공예는 경험과 소유를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이 깃든 물건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가진 것이 나다”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표출하는 도구이기에,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