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김동연식 성장론', 대한민국 혁신성장 이끈다

[스페셜리포트 Ⅰ= 대한민국 신인맥 22 - 기획재정부]
김동연 경제부총리 “소득주도 성장의 성공을 위해서는 구조개혁 필요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제공=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혁신 성장’이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끌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11월 28일 정부 부처 장관과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혁신 성장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혁신 성장 또한 ‘사람 중심 경제의 한 축’으로, 소득 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사령탑으로 혁신의 주역인 민간 부문을 잘 뒷받침 해 달라”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구체적 수립과 운용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 사령탑을 맡은 김 부총리는 오랫동안 ‘혁신 성장’을 외쳐 온 인물이다. 최근 문 대통령이 거듭 성장론에 힘을 실어주며 대한민국 경제의 ‘키’를 쥐고 있는 김 부총리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청계천 판잣집 소년 가장에서 대한민국 경제대통령으로

“청계천 판잣집 소년 가장에서 출발해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다.”

문 대통령은 5월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로 김 부총리를 지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부총리에 대해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어는 다름 아닌 ‘흙수저 출신의 성공 신화’다.

김 부총리는 ‘있는 자리 흩뜨리기’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를 소개한 바 있다. 11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년 가장이 된 그는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을 전전하며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고 한다.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인문계 대신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학교인 국제대 법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책을 본 뒤 인생이 달라졌다.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의 생활을 지속한 끝에 1982년 행정고시 26회와 입법고시 6회에 동시에 합격했다.

이후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당시 늘 자신의 출신 학교에 대해 “그런 대학도 있나요”라는 말을 들으며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회상한다. 서울대 행정학 석사를 취득한 뒤 미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시간대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온 가장 큰 원동력을 ‘결핍의 힘’이라고 소개한 김 부총리는 공직 생활 또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차곡차곡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만큼 ‘지독한 일벌레’다. 아들의 장례식 날에도 발인을 마친 뒤 출근해 업무를 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 부총리는 과감한 추진력과 철두철미한 업무 스타일로 보수와 진보 정권을 넘나들며 두루 중용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근무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아 경제·재정·통화·금융 분야를 총괄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지냈는데, 금융비서관과 예산실장을 모두 역임한 이는 김 부총리가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무조정실장에 발탁되기도 했다. 2014년 돌연 사의를 표명한 뒤 경기도 양평에 내려가 약 7개월 정도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했다. 이후 아주대 총장직을 맡아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총장 북클럽’ 등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호평 받았다. 총장 재직 시절 2년 동안 급여의 40%에 가까운 1억4000여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혁신 성장 사령탑…규제 개혁 속도 낸다

김 부총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는 ‘삼두마차’로도 불린다. 하지만 역시 중심은 김 부총리다. 서울 정부청사 10층 경제부총리 집무실 내 접견실에서 6월 22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경제 현안 간담회가 열렸다. 김 부총리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장 실장이 왼쪽, 김 위원장이 오른쪽에 앉았다. ‘부총리가 경제정책의 중심을 잡는다’는 의미를 강조한 자리 배치다.

소득 불평등, 경제 양극화, 극심한 청년 취업난까지 ‘대한민국 경제 수장’을 맡은 김 부총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야말로 산적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분야 공약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려 일자리와 성장 동력 확충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는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공약과 발을 맞추면서도 나라 살림을 운용하기 위한 현실성 또한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된 이후 10년 만에 배출된 첫 ‘예산통’ 출신의 경제 수장이다.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재정정책기획관 등 예산 관련 업무를 주로 했고 2011년에는 예산안 편성 책임자인 기재부 예산실장을, 2012년에는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 2차관을 역임했다. 그만큼 예산 관련 업무를 훤히 꿰뚫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 적자가 확대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예산 당국자들은 정치권에서 예산 편성을 요구할 때마다 견제하는 역할도 컸다. 김 부총리 역시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내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무리한 복지 공약을 앞다퉈 쏟아내자 “재정 마련에 대한 고려가 없는 복지 공약은 재앙”이라고 쓴소리를 서슴지 않아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김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정책 의지를 예산에 반영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균형추’를 잡아 줄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 받는 이유다.

이와 함께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혁신 성장의 사령탑으로서 김 부총리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고 있다. 김 부총리가 노무현 정부 시절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수립하기 위한 ‘국가 비전 2030’의 작성을 맡았다는 것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혁신 주도형 균형 성장, 시장 주도, 인적자원 고도화 등이 주요 성장 전략으로 거론됐고 제도 혁신에 대한 내용 또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장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서도 “소득 주도 성장의 성공을 위해서는 구조 개혁 등 공급 측면 성장도 필요하다”며 성장론을 강조한 바 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역시 규제 개혁 부분이다. 김 부총리는 11월 28일 열린 혁신 성장 전략 회의에서 “한국은 규제가 많아 ‘안 돼 공화국’이다”며 “혁신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데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규제 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날 혁신 성장의 방향과 주요 과제를 설명하며 ‘캥거루 출발법’에 빗댔다. 김 부총리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육상 100m 결승에서 미국 선수 토머스 버크가 기존 출발법과 달리 웅크려 출발하는 캥거루 출발법(크라우치 스타트)으로 금메달을 딴 것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1978년 국제대(서경대 전신) 법학.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정책학 석사, 박사
1982년 제6회 입법고시, 제26회 행정고시 합격
1983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2002~2003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2002~2005년 세계은행 선임정책관
2005년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2008년 대통령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
2009년 대통령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
2012년 기획재정부 제2차관
2013년 국무조정실장(장관급)
2015년 제15대 아주대 총장
2017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현)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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