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인맥-기획재정부]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부) 거쳐 기획재정부로…2013년 부총리 부서 재승격
(사진)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둘째)이 10월 열린 가계 부채 종합 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때로는 ‘큰 정부’를 자임하며 강력하게 이끌기도 했고 때로는 ‘작은 정부’ 기조에 따라 시장의 자율성에 흐름을 맡기기도 했다.
자연히 기획재정부 또한 정권 기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핵심 역할만은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았다.
◆1960년대, 기획재정부의 ‘전성기’
기획재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탄생했다. 기획재정부의 모태는 재무부와 기획처다. 재무부는 세제·국고·금융·통화·외환 정책을 담당했다. 기획처는 1961년 경제기획원으로 확대되면서 예산과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맡았다.
박정희 정부 시대의 ‘경제기획원’은 막강한 힘을 갖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했다. 2013년 기획재정부가 펴낸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있어 경제기획 전담기구의 설립·운영’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경제 재건이라는 목표하에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은 수십 년 만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산업구조가 발전할 수 있었다.
경제기획원의 목표는 장기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매년 정부의 예산 편성을 주도하며 외자 도입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1961년 출범 당시 경제기획원은 종합기획국·예산국·물동계획국·통계국이 합쳐진 4국 19과 228명의 조직이었다.
1963년 부총리제 신설 이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함으로써 광범위한 경제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공식적으로 갖게 됐다.
이는 해외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경제개발 사례를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1997년 한국에 닥친 외환위기는 재정경제원에 또 한 번 변신을 주문했다. 한국의 경제정책을 이끄는 컨트롤타워인 만큼 재정경제원 조직 재편은 한국의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97년 김대중 정부는 통합됐던 재정경제원을 다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눠 재편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라는 명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탄생됐다. 이명박 정부는 △시대 요구에 충실한 경제정책 △이를 뒷받침하는 나라 살림 △합리적 세제 수립 △효율적 재정 전략을 함께 운용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기획재정부를 탄생시켰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들은 경제부총리를 겸하며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살폈다. 기획재정부 역사를 되짚어보면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직하도록 한 것이 최초의 ‘승격 사례’였다.
2013년 기획재정부는 부총리 부서로 승격됐고 현재 김동연 장관은 경제부총리직까지 수행하고 있다.
◆기재부, 금감원 예산권 쥐게 될까
2017년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컨트롤타워의 신속한 위기 대응능력이 요구되는 시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대내외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민생 안정 및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대별로 기획재정부의 권한은 확대 혹은 축소를 오갔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금융감독원의 주요 수입원인 ‘감독 분담금’을 준조세 성격인 ‘부담금’으로 전환하자는 법안이 상정돼 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금감원이 감독 분담금을 정할 때 기재부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기재부 측에 운용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당초 금융위원회 몫이었던 금감원 예산 통제권이 기재부로 넘어가는 것이다.
금융위 측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금감원 예산의 방만 집행을 감시하기 위해 ‘감독 분담금관리위원회’를 신설한다고 밝히며‘맞불’을 놓았다.
이 법안이 11월 21일 국회 중점 심사 대상에서 빠지며 잠시나마 양 부처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에 대해 김동연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기재부는 금감원의 영역이지만 영향력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고 그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다”며 금융 당국의 반발을 일축한 바 있다.
◆돋보기 : 역대 기획재정부 주요 장관
한국 경제 변곡점 선두에 선 ‘그때 그 장관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들은 때로는 신중하고 또 때로는 과감하게 경제정책을 이끌어 왔다.
장기영 경제기획원 8대 장관 겸 부총리(1964~1967년 재임)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으로 한국의 경제를 급속도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과감한 결단력과 때로는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며 타 부서 장관들까지 쥐락펴락했다. 장기영 장관은 경제부처 장관,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경제 현안을 두고 끝장 토론을 벌이는 ‘녹실 회의’를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남덕우 경제기획원 12대 장관 겸 경제부총리(1974~1978년 재임)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학파인 ‘서강학파’의 대부이기도 한 남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4년 3개월 동안 장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조순 경제기획원 23대 장관 겸 부총리(1988~1990년 재임)를 꼽을 수 있다. 그가 1974년에 쓴 ‘경제학원론’은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경제학계의 바이블’이다. 제자로는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있다.
1월 31일 별세한 강봉균 재정경제부 2대 장관(1999~2000년 재임)은 위기에 빠졌던 대한민국 경제를 구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기도 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가 침체됐던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재벌 개혁, 부실기업 및 금융회사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2대 장관(2009~2011년 재임)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동분서주했다. 윤 전 장관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면 어김없이 등판한 ‘소방수’로 불리고 있다.
mjlee@hankyung.com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부) 거쳐 기획재정부로…2013년 부총리 부서 재승격
(사진)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둘째)이 10월 열린 가계 부채 종합 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때로는 ‘큰 정부’를 자임하며 강력하게 이끌기도 했고 때로는 ‘작은 정부’ 기조에 따라 시장의 자율성에 흐름을 맡기기도 했다.
자연히 기획재정부 또한 정권 기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핵심 역할만은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았다.
◆1960년대, 기획재정부의 ‘전성기’
기획재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탄생했다. 기획재정부의 모태는 재무부와 기획처다. 재무부는 세제·국고·금융·통화·외환 정책을 담당했다. 기획처는 1961년 경제기획원으로 확대되면서 예산과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맡았다.
박정희 정부 시대의 ‘경제기획원’은 막강한 힘을 갖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했다. 2013년 기획재정부가 펴낸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있어 경제기획 전담기구의 설립·운영’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경제 재건이라는 목표하에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은 수십 년 만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산업구조가 발전할 수 있었다.
경제기획원의 목표는 장기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매년 정부의 예산 편성을 주도하며 외자 도입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1961년 출범 당시 경제기획원은 종합기획국·예산국·물동계획국·통계국이 합쳐진 4국 19과 228명의 조직이었다.
1963년 부총리제 신설 이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함으로써 광범위한 경제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공식적으로 갖게 됐다.
이는 해외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경제개발 사례를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1997년 한국에 닥친 외환위기는 재정경제원에 또 한 번 변신을 주문했다. 한국의 경제정책을 이끄는 컨트롤타워인 만큼 재정경제원 조직 재편은 한국의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97년 김대중 정부는 통합됐던 재정경제원을 다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눠 재편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라는 명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탄생됐다. 이명박 정부는 △시대 요구에 충실한 경제정책 △이를 뒷받침하는 나라 살림 △합리적 세제 수립 △효율적 재정 전략을 함께 운용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기획재정부를 탄생시켰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들은 경제부총리를 겸하며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살폈다. 기획재정부 역사를 되짚어보면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직하도록 한 것이 최초의 ‘승격 사례’였다.
2013년 기획재정부는 부총리 부서로 승격됐고 현재 김동연 장관은 경제부총리직까지 수행하고 있다.
◆기재부, 금감원 예산권 쥐게 될까
2017년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컨트롤타워의 신속한 위기 대응능력이 요구되는 시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대내외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민생 안정 및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대별로 기획재정부의 권한은 확대 혹은 축소를 오갔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금융감독원의 주요 수입원인 ‘감독 분담금’을 준조세 성격인 ‘부담금’으로 전환하자는 법안이 상정돼 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금감원이 감독 분담금을 정할 때 기재부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기재부 측에 운용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당초 금융위원회 몫이었던 금감원 예산 통제권이 기재부로 넘어가는 것이다.
금융위 측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금감원 예산의 방만 집행을 감시하기 위해 ‘감독 분담금관리위원회’를 신설한다고 밝히며‘맞불’을 놓았다.
이 법안이 11월 21일 국회 중점 심사 대상에서 빠지며 잠시나마 양 부처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에 대해 김동연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기재부는 금감원의 영역이지만 영향력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고 그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다”며 금융 당국의 반발을 일축한 바 있다.
◆돋보기 : 역대 기획재정부 주요 장관
한국 경제 변곡점 선두에 선 ‘그때 그 장관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들은 때로는 신중하고 또 때로는 과감하게 경제정책을 이끌어 왔다.
장기영 경제기획원 8대 장관 겸 부총리(1964~1967년 재임)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으로 한국의 경제를 급속도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과감한 결단력과 때로는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며 타 부서 장관들까지 쥐락펴락했다. 장기영 장관은 경제부처 장관,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경제 현안을 두고 끝장 토론을 벌이는 ‘녹실 회의’를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남덕우 경제기획원 12대 장관 겸 경제부총리(1974~1978년 재임)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학파인 ‘서강학파’의 대부이기도 한 남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4년 3개월 동안 장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조순 경제기획원 23대 장관 겸 부총리(1988~1990년 재임)를 꼽을 수 있다. 그가 1974년에 쓴 ‘경제학원론’은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경제학계의 바이블’이다. 제자로는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있다.
1월 31일 별세한 강봉균 재정경제부 2대 장관(1999~2000년 재임)은 위기에 빠졌던 대한민국 경제를 구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기도 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가 침체됐던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재벌 개혁, 부실기업 및 금융회사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2대 장관(2009~2011년 재임)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동분서주했다. 윤 전 장관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면 어김없이 등판한 ‘소방수’로 불리고 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