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상 성묘 위해 남의 땅에 길 낼 수 있을까

[법으로 읽는 부동산]
주위토지통행권, 손해 가장 적은 장소·방법으로만 인정돼


(사진) 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한경비즈니스=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4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던 A.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동묘지가 있고 그 부근에 묏자리로 사용하기 적당한 야산(이하 ‘이 사건 토지’)이 매물로 나와 구입했다.

그런데 얼마 후 B로부터 ‘자신은 A가 매수한 야산 위에 있는 임야의 소유자이고 위 임야에 선대의 묘지가 설치돼 있는데 공로(公路)로부터 100m 이상 떨어져 있어 성묘를 하기에 너무 불편하고 이러한 경우 법적 권리도 있으니 선대의 묘지까지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 우편을 받았다.

그 후 별다른 말이 없어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B가 제기한 소장 부본이 송달됐다. 그 내용은 ‘B가 A 소유의 이 사건 토지 중 폭 3m의 통로를 자동차를 이용해 통행할 권리가 있음의 확인을 구한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는 어떨까.

민법 제219조 제1항에서는 ‘어느 토지와 공로 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 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규정,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하고 있다.


(사진)성묘객들이 성묘 후 절하고 있다. ‘주위토지통행권’은 성묘객과 토지 주인 간 갈등을 일으키는 단골손님이다. (/한국경제신문)

◆통로 있다면 ‘통행권’ 사용 불가

판례는 ‘주위토지통행권’은 공로와의 사이에 그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토지의 이용이라는 공익 목적을 위해 피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무릅쓰고 특별히 인정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따라서 통행로의 폭이나 위치, 통행 방법 등은 피통행지 소유자에게 손해가 가장 적게 가도록 해야 하고 이는 구체적 사안에서 쌍방 토지의 지형적·위치적 형상과 이용 관계, 부근의 지리 상황, 인접 토지 이용자의 이해관계 기타 관련 사정을 두루 살펴 사회 통념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6다39422 판결)고 해 그 허용 여부와 범위에 대해 일응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포위된 토지(대부분이 ‘맹지’다)의 소유자는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만 그 주위 토지를 통행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미 기존 통로가 있다면 단지 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건축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통로를 상시적으로 개방해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피통행지 소유자의 관리권이 배제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쌍방 토지의 용도 및 이용 상황, 통행로 이용의 목적 등에 비춰 그 토지의 용도에 적합한 범위에서 통행 시기나 횟수, 통행 방법 등을 제한해 인정할 수도 있다.

이 사안으로 돌아와 보면, 만일 B가 거리가 멀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A 소유의 이 사건 토지를 통행하지 않고서도 B 소유의 임야로 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있다면 B의 청구는 기각될 것이다.

또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더라도 B의 성묘를 위한 범위 내에서 그 통행 시기나 횟수, 통행 방법 등을 제한해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토지통행권자, 소유자에게 보상해야

문제는 B의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면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 개설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다. 특히 ‘내 집은 없어도 내 차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동차에 의한 통행이 일반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자동차에 의한 통행권 확인’을 청구하는 사례가 많다.

시대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면 포위된 토지의 용법 등 이용 상황에 따라서는 자동차의 통행을 위한 주위토지통행권의 성립을 요청하고 이를 인정할 필요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하는 취지가 ‘토지의 합리적인 이용이라는 공익 목적을 위해 피통행지(주위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에 최소한의 제한을 가하려는 것인데다가 자동차 통행권까지 인정된다면 피통행지 소유자의 주거의 평온과 경제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중요하게 참작돼야 한다.

하지만 ‘토지의 이용 방법에 따라서는 자동차 등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의 개설도 허용되지만 단지 토지 이용의 편의를 위해 다소 필요한 상태라고 여겨지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까지 자동차의 통행을 허용할 것은 아니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06. 6. 2. 선고 2005다70144 판결), 주위토지통행권의 범위에 자동차 통행권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주류적인 대법원 판례로 보인다.

이 사건도 성묘·벌초 등이 상시적으로 있는 것도 아닌 점, 공로로부터 B의 선대 묘지까지의 거리가 100m 정도에 불과한 점, 도보로 이동하기 어려운 지형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점들을 종합해 보면 ‘도보를 통해 B의 선대 묘지까지 출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여지가 있고 B가 주장하는 폭 3m의 통로를 자동차를 이용해 통행할 권리까지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주위토지통행권은 법정의 요건을 충족하면 당연히 성립하고 그 요건이 없어지게 되면 당연히 소멸한다. 따라서 B에게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더라도 그 후 B 소유 임야로 가는 다른 통로가 개설된다면 위 통행권은 당연히 소멸한다.

또 주위토지통행권자는 통행지(주위 토지)의 소유자에게 그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민법 제219조 제2항). 그러므로 B는 주위토지통행권자로서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인 A에게 손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고 그 보상액은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는 당시의 현실적 이용 상태에 따른 통행지의 임료 상당액’이 일응의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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