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대가'들 한목소리 “따뜻한 봄바람 불면 '가치주 시대' 온다”
입력 2017-12-21 20:59:42
수정 2017-12-21 20:59:42
[증권 인사이드]
2018년 주식시장 ‘완만한 상승장’ 이어질 것…소액주주 권리 강화 등 가치 투자 호재
2018년을 앞둔 12월11일 가치투자포럼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전무),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용환석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 사진=이승재 기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2017년 주식시장에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봄바람’이 불었다. 지난 6년간 박스권에 갇혀 있던 코스피는 올 한 해 유례없는 상승세를 타며 10월 2500선을 넘어섰다. 잠잠하던 코스닥도 연말이 되면서 뜨거워졌다. 바이오주 상승을 발판 삼아 11월 800선을 돌파했다. 무려 10년 만이다.
훈훈한 주식시장 분위기와 달리 ‘가치주’는 시린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삼성전자와 셀트리온을 필두로 한 ‘대형주 장세’가 지속되면서 중소형 가치주들은 점점 더 소외됐다. 그러나 최근 반전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금리 상승기에 빛을 발하는 ‘가치주’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가치주의 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국내 ‘가치주 투자의 대가들’이 12월 11일 한자리에 모였다. 2008년부터 올해로 10년째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 가고 있는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이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전무), 용환석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다. 2018년 증시 전망과 가치 투자를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2017년, ‘비트코인’ 등 과열 우려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는 말로 2017년 주식시장을 정리했다. 올 한 해 코스피와 코스닥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 바이오·정보기술(IT)주를 중심으로 한 성장주의 활약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주식시장이 양극화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채원 사장은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비트코인’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실제로 반도체 종목에도 영향을 미치고 코스닥에 투자할 사람들이 다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비트코인 투자가 과열화되면서 주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허남권 대표도 이에 수긍했다. 그는 “올해의 투자 지표는 밸류에이션(가치)이 아니라 성장률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성장주였다”고 말했다. 올 한 해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끈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3분기 영업이익률은 50%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46.1%였다. 40%가 넘는 영업이익률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코스닥을 이끈 바이오주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바이오주의 주가수익률(PER)은 수백 배, 수천 배에 달하는 종목들도 상당수다. 그만큼 바이오주가 고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의 매출’이 아니라 ‘3년 뒤, 5년 뒤의 수출 대박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 상승세를 견인했다.
허 대표는 “가치주 투자는 ‘현재 가치’가 아닌 ‘미래의 가치’에 근거해 투자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비트코인을 가치주가 아니라 ‘대표적인 성장주’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비트코인 가격의 상승세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근거가 명확한 가치 때문이라기보다 검증이 어려운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버블’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용환석 대표는 “주식시장에는 늘 어느 정도의 쏠림 현상이 있어 왔고 그 때문에 가치 투자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닷컴 버블’ 때를 떠올려 보면 유동성이 넘치는 것도 우려되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트코인과 같은 주식시장의 경쟁 상품이 등장한 것도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는 수많은 버블이 있어 왔다. 첫 버블로 일컬어지는 17세기 튤립 파동부터 가장 최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꼽을 수 있다. 일본 또한 1989년 닛케이 평균 주가가 3만 포인트를 넘어설 만큼 치솟았지만 하루아침에 버블이 꺼지며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과거를 돌아보면 버블은 ‘유동성 파티’에 선제 대응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지금 주식시장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약 10년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양적 완화 정책으로 풀어놓은 유동성이 흘러넘친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면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다.
◆2018년, “코스피 2900~3000 기대”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은 2018년에도 올해와 같은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버블’에 대한 경고는 그만큼 ‘신중한 투자’가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조용준 센터장은 “지금 시장에서는 누구도 리스크를 얘기하지 않고 내년에도 코스피지수가 2900~300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볼 만큼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라며 “내년에는 과열된 시장이 점차 이성을 찾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면서 시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근거다.
허 대표는 “내년도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11%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며 “코스피가 10년 만에 올랐는데 그동안 코스피나 코스닥 상장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올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뛰어오른 만큼 내년에는 영업이익이 증가할 여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영업이익률이 60% 증가했다면 내년에는 10%만 유지되더라도 주가 상승 동력은 충분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투자 키워드는 ‘어닝(실적)’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닝 모멘텀의 측면에서 보면 반도체만한 것이 없다. 다만, 반도체와 같이 고정비(생산하는 수량의 증감에 관계없이 항상 필요한 일정 비용) 비율이 높은 산업은 ‘가격 변화’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강방천 회장은 “현재 반도체 산업의 고정비와 변동비(반도체 소재나 후공정 패키징처럼 생산량에 따라 변동하는 비용)의 비율이 8 대 2 정도 된다”며 “내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가격 인하 압력이 강해진다면 투자자들의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18년에는 ‘가치주 투자’가 다시 한 번 재조명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김민국 대표는 “금리는 물가가 올라가고 경기가 좋아진 다음 따라오는 후행 지표”라며 “지금은 금리 상승의 초반기인 만큼 상대적으로 성장주의 프리미엄에 가려져 있던 가치주들이 재평가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치주 투자는 금리 하락기보다 금리 상승기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현재 장을 이끌고 있는 주도주들의 가격이 충분히 오른 만큼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과 중소기업 육성 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동안 소외됐던 중소형 가치주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장은 “지나치게 멀티플(기대 수익률)이 높은 업종들이 약세로 접어들게 되면 그만큼 멀티플이 낮은 종목들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고 산출한 코스피지수는 10월 23일 1828.76에 불과하다. 다른 업종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는 얘기다. 시세 또한 그만큼 낮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가치주를 담을 수 있는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이후 바이오·IT주 외에 유통주 등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그동안 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오른 종목은 조정 받겠지만 그 사이 오르지 못한 종목들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주식시장은 제한된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다.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탄탄한 종목들이 제 가치를 평가받으면 ‘시장의 균형’이 맞춰지게 된다. 멤버들이 유통재와 내수 소비 업종을 유망 업종으로 꼽은 이유다.
◆스튜어드십 코드 기대감
박정구 대표는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패시브 투자(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가 급속도로 확대되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의 수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형주 중에서는 싸고 어닝 모멘텀이 좋은 종목이 많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IT 소재가 눈에 띄며 2016~2017년에 걸쳐 밸류에이션이 낮아져 있는 중소형 건설주들을 추천했다.
ETF나 인덱스 펀드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용 대표는 “인덱스 복제를 통해 상위 종목만 계속 사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자금이 ETF 등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되면서 국내 ETF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 등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 사상 초유의 돈이 풀렸는데,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오면 대형주를 살 수밖에 없다”며 “다만 ‘평균에 투자하는 게임’인 패시브 쪽으로 투자 자금이 지나치게 쏠리게 된다면 투자 환경이 더욱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양적 완화의 종말’을 이와 같은 투자 환경을 변화시킬 첫째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양적 완화를 지탱했던 중요한 힘은 고령화에 따른 ‘수요 증가’와 ‘저물가’다. 이 중 저물가는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가고 있다. 저물가의 원동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임금·이자율과 같은 비용 상승에 의해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며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평균에 투자하는 게임에서 액티브 투자(펀드매니저 등 전문가가 개별 종목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 선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로 돌아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금펀드인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등이 패시브 상품에 추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각국의 연기금 등을 필두로 패시브 펀드로 쏠렸던 자금이 액티브 펀드로 일정 부분 전환된다면 수급 문제가 개선되며 수익률 또한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배당 확대 정책, 올해 연말 폐지가 확정된 섀도보팅 제도 등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강화된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지침이다.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하며 향후 국내에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확산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가 배당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이어 가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점차 배당을 확대하는 추세다. 또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인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내년부터 상법상 발행 주식 총수의 25% 이상 주주들이 참석해야 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다.
허 대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소액주주의 권리가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소액주주의 권리가 재조정되면 장기 투자가 늘어날 것이고 투자시장에 돈이 더 많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주의 주주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투자자들에게는 가장 큰 호재다. 김민국 대표는 “한국 상장 기업들은 배당성향과 주가순자산배율(PBR)이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배당성향이 점진적으로 높아진다면 저평가돼 있는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주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등 정부의 뒷받침이 핵심적인 요소다. 기업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고 경영 의지를 불러일으킬 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투자할 만한 가치주 종목들이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가치투자포럼 멤버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최저임금 등 기업들의 경영비용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 증가와 내수 진작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당장은 어렵더라도 2018년 연말쯤에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vivajh@hankyung.com
2018년 주식시장 ‘완만한 상승장’ 이어질 것…소액주주 권리 강화 등 가치 투자 호재
2018년을 앞둔 12월11일 가치투자포럼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전무),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용환석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 사진=이승재 기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2017년 주식시장에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봄바람’이 불었다. 지난 6년간 박스권에 갇혀 있던 코스피는 올 한 해 유례없는 상승세를 타며 10월 2500선을 넘어섰다. 잠잠하던 코스닥도 연말이 되면서 뜨거워졌다. 바이오주 상승을 발판 삼아 11월 800선을 돌파했다. 무려 10년 만이다.
훈훈한 주식시장 분위기와 달리 ‘가치주’는 시린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삼성전자와 셀트리온을 필두로 한 ‘대형주 장세’가 지속되면서 중소형 가치주들은 점점 더 소외됐다. 그러나 최근 반전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금리 상승기에 빛을 발하는 ‘가치주’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가치주의 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국내 ‘가치주 투자의 대가들’이 12월 11일 한자리에 모였다. 2008년부터 올해로 10년째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 가고 있는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이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전무), 용환석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다. 2018년 증시 전망과 가치 투자를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2017년, ‘비트코인’ 등 과열 우려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는 말로 2017년 주식시장을 정리했다. 올 한 해 코스피와 코스닥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 바이오·정보기술(IT)주를 중심으로 한 성장주의 활약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주식시장이 양극화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채원 사장은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비트코인’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실제로 반도체 종목에도 영향을 미치고 코스닥에 투자할 사람들이 다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비트코인 투자가 과열화되면서 주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허남권 대표도 이에 수긍했다. 그는 “올해의 투자 지표는 밸류에이션(가치)이 아니라 성장률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성장주였다”고 말했다. 올 한 해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끈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3분기 영업이익률은 50%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46.1%였다. 40%가 넘는 영업이익률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코스닥을 이끈 바이오주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바이오주의 주가수익률(PER)은 수백 배, 수천 배에 달하는 종목들도 상당수다. 그만큼 바이오주가 고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의 매출’이 아니라 ‘3년 뒤, 5년 뒤의 수출 대박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 상승세를 견인했다.
허 대표는 “가치주 투자는 ‘현재 가치’가 아닌 ‘미래의 가치’에 근거해 투자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비트코인을 가치주가 아니라 ‘대표적인 성장주’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비트코인 가격의 상승세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근거가 명확한 가치 때문이라기보다 검증이 어려운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버블’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용환석 대표는 “주식시장에는 늘 어느 정도의 쏠림 현상이 있어 왔고 그 때문에 가치 투자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닷컴 버블’ 때를 떠올려 보면 유동성이 넘치는 것도 우려되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트코인과 같은 주식시장의 경쟁 상품이 등장한 것도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는 수많은 버블이 있어 왔다. 첫 버블로 일컬어지는 17세기 튤립 파동부터 가장 최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꼽을 수 있다. 일본 또한 1989년 닛케이 평균 주가가 3만 포인트를 넘어설 만큼 치솟았지만 하루아침에 버블이 꺼지며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과거를 돌아보면 버블은 ‘유동성 파티’에 선제 대응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지금 주식시장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약 10년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양적 완화 정책으로 풀어놓은 유동성이 흘러넘친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면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다.
◆2018년, “코스피 2900~3000 기대”
가치투자포럼의 멤버들은 2018년에도 올해와 같은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버블’에 대한 경고는 그만큼 ‘신중한 투자’가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조용준 센터장은 “지금 시장에서는 누구도 리스크를 얘기하지 않고 내년에도 코스피지수가 2900~300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볼 만큼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라며 “내년에는 과열된 시장이 점차 이성을 찾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면서 시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근거다.
허 대표는 “내년도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11%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며 “코스피가 10년 만에 올랐는데 그동안 코스피나 코스닥 상장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올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뛰어오른 만큼 내년에는 영업이익이 증가할 여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영업이익률이 60% 증가했다면 내년에는 10%만 유지되더라도 주가 상승 동력은 충분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투자 키워드는 ‘어닝(실적)’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닝 모멘텀의 측면에서 보면 반도체만한 것이 없다. 다만, 반도체와 같이 고정비(생산하는 수량의 증감에 관계없이 항상 필요한 일정 비용) 비율이 높은 산업은 ‘가격 변화’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강방천 회장은 “현재 반도체 산업의 고정비와 변동비(반도체 소재나 후공정 패키징처럼 생산량에 따라 변동하는 비용)의 비율이 8 대 2 정도 된다”며 “내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가격 인하 압력이 강해진다면 투자자들의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18년에는 ‘가치주 투자’가 다시 한 번 재조명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김민국 대표는 “금리는 물가가 올라가고 경기가 좋아진 다음 따라오는 후행 지표”라며 “지금은 금리 상승의 초반기인 만큼 상대적으로 성장주의 프리미엄에 가려져 있던 가치주들이 재평가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치주 투자는 금리 하락기보다 금리 상승기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현재 장을 이끌고 있는 주도주들의 가격이 충분히 오른 만큼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과 중소기업 육성 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동안 소외됐던 중소형 가치주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장은 “지나치게 멀티플(기대 수익률)이 높은 업종들이 약세로 접어들게 되면 그만큼 멀티플이 낮은 종목들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고 산출한 코스피지수는 10월 23일 1828.76에 불과하다. 다른 업종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는 얘기다. 시세 또한 그만큼 낮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가치주를 담을 수 있는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이후 바이오·IT주 외에 유통주 등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그동안 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오른 종목은 조정 받겠지만 그 사이 오르지 못한 종목들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주식시장은 제한된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다.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탄탄한 종목들이 제 가치를 평가받으면 ‘시장의 균형’이 맞춰지게 된다. 멤버들이 유통재와 내수 소비 업종을 유망 업종으로 꼽은 이유다.
◆스튜어드십 코드 기대감
박정구 대표는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패시브 투자(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가 급속도로 확대되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의 수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형주 중에서는 싸고 어닝 모멘텀이 좋은 종목이 많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IT 소재가 눈에 띄며 2016~2017년에 걸쳐 밸류에이션이 낮아져 있는 중소형 건설주들을 추천했다.
ETF나 인덱스 펀드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용 대표는 “인덱스 복제를 통해 상위 종목만 계속 사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자금이 ETF 등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되면서 국내 ETF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 등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 사상 초유의 돈이 풀렸는데,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오면 대형주를 살 수밖에 없다”며 “다만 ‘평균에 투자하는 게임’인 패시브 쪽으로 투자 자금이 지나치게 쏠리게 된다면 투자 환경이 더욱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양적 완화의 종말’을 이와 같은 투자 환경을 변화시킬 첫째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양적 완화를 지탱했던 중요한 힘은 고령화에 따른 ‘수요 증가’와 ‘저물가’다. 이 중 저물가는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가고 있다. 저물가의 원동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임금·이자율과 같은 비용 상승에 의해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며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평균에 투자하는 게임에서 액티브 투자(펀드매니저 등 전문가가 개별 종목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 선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로 돌아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금펀드인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등이 패시브 상품에 추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각국의 연기금 등을 필두로 패시브 펀드로 쏠렸던 자금이 액티브 펀드로 일정 부분 전환된다면 수급 문제가 개선되며 수익률 또한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배당 확대 정책, 올해 연말 폐지가 확정된 섀도보팅 제도 등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강화된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지침이다.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하며 향후 국내에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확산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가 배당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이어 가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점차 배당을 확대하는 추세다. 또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인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내년부터 상법상 발행 주식 총수의 25% 이상 주주들이 참석해야 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다.
허 대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소액주주의 권리가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소액주주의 권리가 재조정되면 장기 투자가 늘어날 것이고 투자시장에 돈이 더 많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주의 주주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투자자들에게는 가장 큰 호재다. 김민국 대표는 “한국 상장 기업들은 배당성향과 주가순자산배율(PBR)이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배당성향이 점진적으로 높아진다면 저평가돼 있는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주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등 정부의 뒷받침이 핵심적인 요소다. 기업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고 경영 의지를 불러일으킬 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투자할 만한 가치주 종목들이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가치투자포럼 멤버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최저임금 등 기업들의 경영비용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 증가와 내수 진작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당장은 어렵더라도 2018년 연말쯤에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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