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고령화로 늘어나는 '부부 사별'…다양해지는 사별 인구 겨냥 상품들
(사진)사별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홀로 떠나는 여행 상품이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다.(/전영수 교수)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고령 인구가 많아질수록 사별(死別) 인구는 증가한다. ‘사별이 사는 법’에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새로운 수요층의 등장이다.
일본에선 이를 ‘바쓰이치(곱표 하나)’라고 부른다. 이혼하면 호적에 ×표가 표시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혼 돌싱’과 구별된 ‘사별 독신’이다.
◆사별 상처, 냉정하게 치유하자
바쓰이치는 사별 경제학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스스로 사별을 밝혀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아직 낯설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라면 이를 거들어 주는 공급 체계도 필요하다.
여기엔 인식 변화가 있다. 사별을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는 불가피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넘어서려고 열심이다. ‘사별→고립’에서 벗어난다면 사회학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사별 독신은 대세다. 일본은 2017년부터 베이비부머(1947~1949년생)가 70대에 진입했다. 초(超)고령사회답게 사별 사례는 증가한다. 부부 관계는 기혼과 이혼·사별을 묶은 ‘이사별(離死別)’로 구분된다. 이 중 이혼 커플은 25%뿐이고 나머지는 사별 독신이다.
부부 한 명은 언젠가 사별 인구가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혼과 달리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태반이다.
실제로 사별 독신은 충격이 적지 않다. 결혼 기간이 길수록 정신적인 충격이 심해진다. 1년은 지나야 괴로운 상황이 바닥을 치고 3년은 돼야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까지 동반되면 회복 기간은 더 길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자살 사례까지 있다.
바쓰이치는 이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용하고 냉정하게 사별 상처를 대하고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기 위한 공간·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바쓰이치는 급증세다.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만 1990년 560만 명에서 2015년 864만 명으로 1.5배 늘었다. 성별 평균수명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6배 이상이다. 연령을 높여 70세부터의 바쓰이치는 상당 비율을 차지한다.
사별 이후 남녀 생활은 엇갈린다. 남성은 외출 시간이 줄고 대화 상대가 없는 게 보통이다. 릿쿄대 조사에 따르면 사별 이후 행복은 10점 만점 중 여성이 8점으로, 남성의 5점보다 높다. 아무래도 부인은 남편의 뒤치다꺼리가 없어지는 반면 남편은 아내를 먼저 보낼 상황을 잘 가정하지 않아 준비 부족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해법은 사별 이후에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사회와의 연결 고리다. 그 준비 여부가 바쓰이치의 생활수준을 결정한다. 가령 남자라면 정년 은퇴 후의 지역·봉사활동 등 고립 방지책이 중요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립암센터 명예총장이 부인을 잃고 재생 과정을 기록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사별의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이 늘었다.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수요로 연결된다. 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1인 고객 전문 여행’부터 ‘노인 전문 결혼 상담’ 등 사업의 기회는 많다. 여행 업계는 사별 독신 인구의 증가로 혼자만의 여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용 상품까지 내놓았다.
◆재혼부터 사후 이혼까지, ‘사별 이후의 삶’
유통도 거든다. 홀몸 노후를 지원해 줄 최강의 시설은 편의점이다. 홀로된 남성이라면 가사 능력 없이도 식생활을 유지해 줄 공급 체계를 선호한다.
노후를 살아내는 전략답게 재교육도 이뤄진다. 중·고령 대상의 재도전 기회를 평생교육으로 제공하려는 두 번째 교육체계가 그렇다. 사별 독신의 적용 범위를 볼 때 시장성은 긍정적이다.
모임도 많아졌다. 이른바 ‘바쓰이치회’다. 릿쿄대에서 사생학(死生學)을 가르치는 모 교수가 결성해 유명해졌다. 정기 모임에서는 안부 확인부터 정보 공유까지 새로운 생활 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화제가 오간다. 같은 처지여서 말하기 힘든 심적인 화두까지 숨김없이 나눈다.
효과는 생각 이상이다. 바쓰이치의 보편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된 후 집 안에만 머무르며 고립과 질환의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탈출하면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비용 절감과 고통 감쇠에 좋다.
집합 장소 확인 투어라는 당일치기 여행 상품도 주목받고 있다. 처음 홀로 여행하는 참가자를 배려한 일종의 여행 예습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인 집합 장소에 미리 가 봄으로써 본격적인 여행 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가령 클럽투어리즘의 숨겨진 인기 상품 중 하나는 ‘하네다공항에서 점심 후 주요 집합 장소 둘러보기(4900엔)’다. 여행 상품에 참가할 때 집합 장소를 미리 봐두자는 취지인데 매회 만원의 대성황을 이룬다.
보통 사람에겐 이상한 기획인데도 독신 고객에겐 인기다. 나이가 들어 헷갈릴 수 있는 터미널 구분법 혹은 문제 발생 때 대처 정보 등을 세세히 알려줘 호평을 얻고 있다. 가족 여행을 따라만 다녔던 이라면 꽤 유용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개별 여행 전용 투어는 이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다. 버스 좌석이든 호텔이든 1인 전용이고 자유시간도 충분히 제공된다. 원할 때만 옆 사람과 대화하면 끝이다. 고객의 70%는 여성이고 자연스러운 대화 기회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
배우자를 잃은 상처는 갈수록 치유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짝을 찾을 환경이 무르익는다. 이를 반영해 대형 결혼 상담소 중 일부는 바쓰이치 중·고령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신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 규모는 최근 2년 동안 2배 늘었다.
성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녀의 반대가 가장 큰 장벽이다. 부모의 재혼을 둘러싼 저항뿐만 아니라 상속재산의 배분도 문제다. 배우자와의 추억과 유품 등이 있는 공간에 동거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결혼 이후 유족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따라서 재혼해도 동거하지 않는 ‘파트너 관계’를 희망하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인생 경로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다.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창업하거나 도시 생활을 벗고 귀향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 대신 본연의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다.
극단적이면 사후 이혼(인족관계종료신청)을 택한다. 법적 개념은 아니지만 사별 가족과의 인척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신고 건수는 2005년 1770건에서 2015년 2780건으로 늘어났다.
인척 관계를 끝내도 죽은 배우자와의 법률관계는 남는다. 즉 상속·유족연금은 적용된다. 대개는 여성 신청이 많다. 남편 가족의 불합리한 재산 요구와 시부모의 간병 압박 등이 주원인이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부부 사별'…다양해지는 사별 인구 겨냥 상품들
(사진)사별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홀로 떠나는 여행 상품이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다.(/전영수 교수)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고령 인구가 많아질수록 사별(死別) 인구는 증가한다. ‘사별이 사는 법’에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새로운 수요층의 등장이다.
일본에선 이를 ‘바쓰이치(곱표 하나)’라고 부른다. 이혼하면 호적에 ×표가 표시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혼 돌싱’과 구별된 ‘사별 독신’이다.
◆사별 상처, 냉정하게 치유하자
바쓰이치는 사별 경제학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스스로 사별을 밝혀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아직 낯설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라면 이를 거들어 주는 공급 체계도 필요하다.
여기엔 인식 변화가 있다. 사별을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는 불가피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넘어서려고 열심이다. ‘사별→고립’에서 벗어난다면 사회학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사별 독신은 대세다. 일본은 2017년부터 베이비부머(1947~1949년생)가 70대에 진입했다. 초(超)고령사회답게 사별 사례는 증가한다. 부부 관계는 기혼과 이혼·사별을 묶은 ‘이사별(離死別)’로 구분된다. 이 중 이혼 커플은 25%뿐이고 나머지는 사별 독신이다.
부부 한 명은 언젠가 사별 인구가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혼과 달리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태반이다.
실제로 사별 독신은 충격이 적지 않다. 결혼 기간이 길수록 정신적인 충격이 심해진다. 1년은 지나야 괴로운 상황이 바닥을 치고 3년은 돼야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까지 동반되면 회복 기간은 더 길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자살 사례까지 있다.
바쓰이치는 이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용하고 냉정하게 사별 상처를 대하고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기 위한 공간·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바쓰이치는 급증세다.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만 1990년 560만 명에서 2015년 864만 명으로 1.5배 늘었다. 성별 평균수명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6배 이상이다. 연령을 높여 70세부터의 바쓰이치는 상당 비율을 차지한다.
사별 이후 남녀 생활은 엇갈린다. 남성은 외출 시간이 줄고 대화 상대가 없는 게 보통이다. 릿쿄대 조사에 따르면 사별 이후 행복은 10점 만점 중 여성이 8점으로, 남성의 5점보다 높다. 아무래도 부인은 남편의 뒤치다꺼리가 없어지는 반면 남편은 아내를 먼저 보낼 상황을 잘 가정하지 않아 준비 부족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해법은 사별 이후에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사회와의 연결 고리다. 그 준비 여부가 바쓰이치의 생활수준을 결정한다. 가령 남자라면 정년 은퇴 후의 지역·봉사활동 등 고립 방지책이 중요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립암센터 명예총장이 부인을 잃고 재생 과정을 기록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사별의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이 늘었다.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수요로 연결된다. 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1인 고객 전문 여행’부터 ‘노인 전문 결혼 상담’ 등 사업의 기회는 많다. 여행 업계는 사별 독신 인구의 증가로 혼자만의 여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용 상품까지 내놓았다.
◆재혼부터 사후 이혼까지, ‘사별 이후의 삶’
유통도 거든다. 홀몸 노후를 지원해 줄 최강의 시설은 편의점이다. 홀로된 남성이라면 가사 능력 없이도 식생활을 유지해 줄 공급 체계를 선호한다.
노후를 살아내는 전략답게 재교육도 이뤄진다. 중·고령 대상의 재도전 기회를 평생교육으로 제공하려는 두 번째 교육체계가 그렇다. 사별 독신의 적용 범위를 볼 때 시장성은 긍정적이다.
모임도 많아졌다. 이른바 ‘바쓰이치회’다. 릿쿄대에서 사생학(死生學)을 가르치는 모 교수가 결성해 유명해졌다. 정기 모임에서는 안부 확인부터 정보 공유까지 새로운 생활 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화제가 오간다. 같은 처지여서 말하기 힘든 심적인 화두까지 숨김없이 나눈다.
효과는 생각 이상이다. 바쓰이치의 보편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된 후 집 안에만 머무르며 고립과 질환의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탈출하면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비용 절감과 고통 감쇠에 좋다.
집합 장소 확인 투어라는 당일치기 여행 상품도 주목받고 있다. 처음 홀로 여행하는 참가자를 배려한 일종의 여행 예습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인 집합 장소에 미리 가 봄으로써 본격적인 여행 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가령 클럽투어리즘의 숨겨진 인기 상품 중 하나는 ‘하네다공항에서 점심 후 주요 집합 장소 둘러보기(4900엔)’다. 여행 상품에 참가할 때 집합 장소를 미리 봐두자는 취지인데 매회 만원의 대성황을 이룬다.
보통 사람에겐 이상한 기획인데도 독신 고객에겐 인기다. 나이가 들어 헷갈릴 수 있는 터미널 구분법 혹은 문제 발생 때 대처 정보 등을 세세히 알려줘 호평을 얻고 있다. 가족 여행을 따라만 다녔던 이라면 꽤 유용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개별 여행 전용 투어는 이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다. 버스 좌석이든 호텔이든 1인 전용이고 자유시간도 충분히 제공된다. 원할 때만 옆 사람과 대화하면 끝이다. 고객의 70%는 여성이고 자연스러운 대화 기회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
배우자를 잃은 상처는 갈수록 치유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짝을 찾을 환경이 무르익는다. 이를 반영해 대형 결혼 상담소 중 일부는 바쓰이치 중·고령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신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 규모는 최근 2년 동안 2배 늘었다.
성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녀의 반대가 가장 큰 장벽이다. 부모의 재혼을 둘러싼 저항뿐만 아니라 상속재산의 배분도 문제다. 배우자와의 추억과 유품 등이 있는 공간에 동거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결혼 이후 유족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따라서 재혼해도 동거하지 않는 ‘파트너 관계’를 희망하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인생 경로에 뛰어드는 사례도 있다.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창업하거나 도시 생활을 벗고 귀향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 대신 본연의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다.
극단적이면 사후 이혼(인족관계종료신청)을 택한다. 법적 개념은 아니지만 사별 가족과의 인척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신고 건수는 2005년 1770건에서 2015년 2780건으로 늘어났다.
인척 관계를 끝내도 죽은 배우자와의 법률관계는 남는다. 즉 상속·유족연금은 적용된다. 대개는 여성 신청이 많다. 남편 가족의 불합리한 재산 요구와 시부모의 간병 압박 등이 주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