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피스시장 '4대 권역' 부상한 판교

[커버 스토리=‘한국판 실리콘밸리’ 판교]
글로벌 자본도 ‘넥스트코어 도시’로 주목…“4차 산업혁명 성지 될 것”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1997년 외환위기(IMF) 직후 오피스 빌딩 수익률이 연 10%에 달하자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들이 앞다퉈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한국은 글로벌 자본이 들어와 수익을 내기 충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투자할 수 있는 매물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부동산 기업들은 국내에서 서울을 잇는 새로운 투자처로 ‘판교업무지구(PBD)’를 주목하고 있다. 주로 서울도심(CBD)·여의도(YBD)·강남(GBD) 위주로 분류됐던 오피스 시장에 ‘제4의 영역’이 탄생한 것이다.



◆‘공실률 0%’, 판교의 투자 매력

한경비즈니스는 판교 지역에 관심이 있는 부동산 투자자들을 위해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사 존스랑라살(JLL)·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BRE·세빌스 한국지사 대표 및 임원들에게 ‘판교’에 관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모두 판교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판교는 정보기술(IT) 기업 위주의 입주로 집적 이익을 창출하고 신분당선 개통으로 강남권과의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임차인을 그러모으고 있다. 이미 판교 오피스 시장은 2007년 테크노밸리 조성이 시작된 후 10년이 지나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오피스 빌딩 시장의 성장은 입주 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입주 기업 업종에 제한을 뒀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사들은 일반 기업들이 입지를 선정하는 최우선 기준으로 ‘비용 절감’을 고려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IT 기업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인적 요인을 우선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 수급이 용이하고 관련 대기업과 유사 업종이 주변에 분포된 곳에 터를 잡아야 한다.

판교는 이에 부합하는 국내 최적의 입지라는 평가다. 테크노밸리를 통해 신기술 기업들을 집약한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황점상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대표는 “현재 개발 연구 인력들의 판교 유입이 풍부하게 이뤄진 상태”라며 “게임 업체를 비롯한 IT 업체의 계속적인 유입에도 불구하고 연구 인력을 판교 내에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판교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판교의 지역총생산액(GDRP)은 77조원으로 웬만한 광역시에 버금가는 전국 7위권에 속한다. 공실률도 판교
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서울 3대 오피스 권역의 공실률이 10%인 반면 판교는 0% 수준이다.



홍지은 세빌스코리아 상무는 “판교는 실리콘밸리처럼 캠퍼스형 건물로 지어졌고 용적률이 낮아 쾌적한 느낌을 준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이기훈 존스랑라살코리아 상무는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할 수 있는 IT·생명공학·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업이나 이들에게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판교에 입주한다면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생 기업뿐만이 아니다. 경제 침체 여파로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사옥의 주요 권역 이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판교가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대런 크라코비악 CBRE코리아 대표는 한국 시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사옥 개발 비용 및 지자체의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신규 권역 내 사옥 개발과 본사 이전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넥슨·SK플래닛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공유 오피스라면 ‘판교 출점’ 검토해야

한편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들은 각자 특색 있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CBRE는 ‘공유 오피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공유 오피스는 사무 공간을 찾고 있는 초창기 기업이 많아지고 커뮤니티형 노동환경을 선호하는 문화가 생겨나며 각광받고 있는데 판교에도 활발한 수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크라코비악 대표는 “공유 오피스의 공급이 추후 판교 임차인 수요의 새로운 발생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판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유럽형 스트리트 쇼핑몰 아브뉴프랑,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판교점 등 대규모 유통 시설의 입점으로 오피스 인구와 주거민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고층 빌딩에 자리한 저층부의 소규모 상업 공간이 활성화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피스 수요가 안정되더라도 저층부 리테일 수요까지 활발해지는 데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점상 대표는 “저층 상업 공간에 대한 중·장기적인 개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향후 제2, 제3 테크노밸리가 완공돼 기업 이전이 활발해진다면 공실률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이기훈 상무는 “제2, 제3 테크노밸리 완공 후 공실률 증가는 피할 수 없다”며 “하지만 판교는 입지적 강점으로 경쟁 지역을 찾기 어려워 ‘공실 충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지은 상무는 “제2 테크노밸리는 한꺼번에 공급을 풀기보다 지원 시설이 우선 개발되고 그 후 임대·사옥형 오피스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도 존재한다. 크라코비악 대표는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계획이 바뀌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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