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미국 세탁기 등 세이프가드 발동 움직임…중국·한국도 맞보복 ‘카드’ 만지작
[한경비즈니스=(워싱턴)박수진 특파원] 연초부터 미국발(發) 무역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 움직임과 중국·한국산 세탁기·태양광 패널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 발동 조치 등 발화성이 큰 폭발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강행한다면 유례없는 글로벌 무역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 결렬 ‘배제 못해’
당장 주목되는 것은 NAFTA의 운명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는 지난해 7월부터 재협상에 돌입해 다섯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자동차(부품 포함) 원산지 규정 강화와 자동 재협상 의무 규정 도입 등의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해소하지 못했다. 6차 협상은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열릴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1월 10일 캐나다 정부 관계자 두 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곧 NAFTA 탈퇴를 선언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여러 차례 “NAFTA는 최악의 협정”이라며 “재협상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탈퇴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협정 탈퇴 선언이 곧 협상 중단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협정 당사자가 탈퇴를 선언해도 협정이 공식 폐기되기까지는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캐나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탈퇴를 선언한 뒤에도 미국 정부 대표단으로 하여금 협상을 계속 진행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든지 탈퇴 선언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더라도 미 의회가 반발해 협정 탈퇴를 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나다 정부는 NAFTA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 각 주 정부와 해당 지역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모든 경로를 통해 막바지 설득을 진행하고 있다. 멕시코는 농산물 등의 수입처를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로 돌리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NAFTA에 이어 둘째로 큰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미 FTA도 기로에 섰다. 양국은 1월 5일 워싱턴에서 1월 5일 협정 개정을 위한 1차 협상을 개최했다. 2012년 3월 협정 발효 후 채 6년이 안 돼서다.
미국 측은 1차 협상에서 자동차와 농산물 시장 개방, 무역 적자 해소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은 1차 협상 후 기자들을 만나 “미국 측은 자동차 분야 이슈를 집중 제기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한국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자동차라도 미국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면 업체당 2만5000대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쿼터(할당)를 설정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이 쿼터를 없애거나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는 작년 말 국회에 한·미 FTA 개정 협상 추진 계획을 보고하며 “(자동차 분야) 비관세 장벽 해소 등 개선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시장 개방을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제는 농축산물 개방 문제다.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유 국장은 “구체적으로 개별 사항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우리가 농업 시장 개방은 논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간접적으로 강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농축산물 분야 개정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고 미국 측에 확실히 전달했다”며 “농업은 레드라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끝까지 요구하면 재협상 결렬도 불사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미국은 개별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1월 3일 수입 세탁기를 대상으로 세이프가드를 적용할지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공청회가 열렸다.
원고인 미 월풀 측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다시는 고율의 관세를 피해 국경을 넘어 다니는 편법을 쓰지 못하게 한국산까지 포함해 모든 수입 세탁기 제품에 3년간 50%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은 세이프가드 발동 시 미국도 교역국으로부터 ‘맞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반격했다. 또 삼성과 LG의 미국 공장 준공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 노동자에게 손해라며 ‘이성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세탁기·태양광패널 세이프가드 ‘주목’
개별 상품을 둘러싼 통상 분쟁 이슈는 세탁기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2월 초까지 수입 세탁기뿐만 아니라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도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세이프가드 조치는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수입 철강 제품을 대상으로 발동한 후 16년간 한 번도 써먹지 않은 ‘무딘 칼’이다.
한국도 맞보복에 나서고 있다. 산업부는 1월 14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물린 부당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세탁기에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같은 해 8월 WTO에 제소했고 2016년 9월 한국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
WTO 규정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2월 26일까지 판정을 이행해야 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분쟁 당사국에 주어진 권한을 활용해 보복관세 부과 허용을 신청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로 7억1100만 달러(76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산정하고 이 금액만큼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 간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은 ‘태풍의 눈’이다. 지난해 8월부터 중국의 지재권 침해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미국은 스페셜 301조 발동을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중국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중국은 항공기·콩(대두)·자동차 등 구체적인 품목을 거론하며 무역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세탁기 등 세이프가드 발동 움직임…중국·한국도 맞보복 ‘카드’ 만지작
[한경비즈니스=(워싱턴)박수진 특파원] 연초부터 미국발(發) 무역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 움직임과 중국·한국산 세탁기·태양광 패널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 발동 조치 등 발화성이 큰 폭발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강행한다면 유례없는 글로벌 무역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 결렬 ‘배제 못해’
당장 주목되는 것은 NAFTA의 운명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는 지난해 7월부터 재협상에 돌입해 다섯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자동차(부품 포함) 원산지 규정 강화와 자동 재협상 의무 규정 도입 등의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해소하지 못했다. 6차 협상은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열릴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1월 10일 캐나다 정부 관계자 두 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곧 NAFTA 탈퇴를 선언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여러 차례 “NAFTA는 최악의 협정”이라며 “재협상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탈퇴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협정 탈퇴 선언이 곧 협상 중단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협정 당사자가 탈퇴를 선언해도 협정이 공식 폐기되기까지는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캐나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탈퇴를 선언한 뒤에도 미국 정부 대표단으로 하여금 협상을 계속 진행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든지 탈퇴 선언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더라도 미 의회가 반발해 협정 탈퇴를 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나다 정부는 NAFTA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 각 주 정부와 해당 지역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모든 경로를 통해 막바지 설득을 진행하고 있다. 멕시코는 농산물 등의 수입처를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로 돌리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NAFTA에 이어 둘째로 큰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미 FTA도 기로에 섰다. 양국은 1월 5일 워싱턴에서 1월 5일 협정 개정을 위한 1차 협상을 개최했다. 2012년 3월 협정 발효 후 채 6년이 안 돼서다.
미국 측은 1차 협상에서 자동차와 농산물 시장 개방, 무역 적자 해소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은 1차 협상 후 기자들을 만나 “미국 측은 자동차 분야 이슈를 집중 제기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한국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자동차라도 미국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면 업체당 2만5000대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쿼터(할당)를 설정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이 쿼터를 없애거나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는 작년 말 국회에 한·미 FTA 개정 협상 추진 계획을 보고하며 “(자동차 분야) 비관세 장벽 해소 등 개선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시장 개방을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제는 농축산물 개방 문제다.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유 국장은 “구체적으로 개별 사항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우리가 농업 시장 개방은 논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간접적으로 강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농축산물 분야 개정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고 미국 측에 확실히 전달했다”며 “농업은 레드라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끝까지 요구하면 재협상 결렬도 불사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미국은 개별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1월 3일 수입 세탁기를 대상으로 세이프가드를 적용할지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공청회가 열렸다.
원고인 미 월풀 측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다시는 고율의 관세를 피해 국경을 넘어 다니는 편법을 쓰지 못하게 한국산까지 포함해 모든 수입 세탁기 제품에 3년간 50%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은 세이프가드 발동 시 미국도 교역국으로부터 ‘맞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반격했다. 또 삼성과 LG의 미국 공장 준공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 노동자에게 손해라며 ‘이성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세탁기·태양광패널 세이프가드 ‘주목’
개별 상품을 둘러싼 통상 분쟁 이슈는 세탁기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2월 초까지 수입 세탁기뿐만 아니라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도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세이프가드 조치는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수입 철강 제품을 대상으로 발동한 후 16년간 한 번도 써먹지 않은 ‘무딘 칼’이다.
한국도 맞보복에 나서고 있다. 산업부는 1월 14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물린 부당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세탁기에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같은 해 8월 WTO에 제소했고 2016년 9월 한국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
WTO 규정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2월 26일까지 판정을 이행해야 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분쟁 당사국에 주어진 권한을 활용해 보복관세 부과 허용을 신청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로 7억1100만 달러(76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산정하고 이 금액만큼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 간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은 ‘태풍의 눈’이다. 지난해 8월부터 중국의 지재권 침해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미국은 스페셜 301조 발동을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중국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중국은 항공기·콩(대두)·자동차 등 구체적인 품목을 거론하며 무역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