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리터러시 키우는 'STEM 교육'

[커버스토리=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코딩, 기본 개념 정도는 알아야…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도 직업 경쟁력 좌우


(사진) 성균관대의 융합 교육 프로그램인 ‘창의적 설계 및 융합’ 강의를 듣는 학생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요즘 중국의 ‘타이거 맘(자녀를 혹독하게 교육하는 학부모)’들 사이에 코딩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자녀가 취업 등에서 좀 더 유리한 입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위해 연 3000달러(318만원)짜리 코딩 수업을 등록하는가 하면 350달러(37만원) 레고 로봇을 사주고 미국 로봇 경진대회 참가를 위해 7300달러(775만원)를 아낌없이 쓴다.

중국의 ‘타이거 맘’들뿐일까.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부터 젊은 직장인들까지 코딩 배우기 열풍이 한창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른바 ‘STEM 교육’이다.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수학(Mathematics) 능력이 앞으로의 ‘직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직업을 갖는데 이와 같은 STEM 교육은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것일까.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대해 알아봤다.

◆ ‘디지털 리터러시’로 업무 경쟁력 ‘업’

2016년 다보스포럼(WEF)은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를 발표하며 미래의 인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독해력)’와 ‘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을 제시한 바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우는 게 왜 중요한 것일까.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하는 ‘미래 직업 리포트’에 참여한 김한준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AI의 확산이 위기가 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 분야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데이터 수집과 분석, 플랫폼 구축·운영, 소프트웨어의 개발, 정보 보안, 지능형 로봇 분야 등에서 많은 기회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굳이 이런 분야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대부분의 직군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마케팅$법률을 다루는 분야 등에서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루는 데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나 경영진 등 ‘사람과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모든 직업인이 컴퓨터와 AI 그리고 빅데이터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AI 알고리즘, 빅데이터의 해석 등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하고 있어야 업무 중 부닥치는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직업을 찾고 있는 사람이나 직업 종사자는 IT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와 활용 등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이 매우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컴퓨터와 데이터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의료$교육$복지$건설$유통$금융$경영$환경$농업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발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8월에 재직자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AI를 활용하고 있는 직업인들은 16.6%,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 직업인은 14.1%에 달했다. 향후 4차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핵심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게 김 연구위원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데 STEM 교육이 과연 도움이 될까.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HRD 담당자 역할의 미래 변화 예측’ 논문을 쓴 김혁 연세대 교육대학원 연구원은 “STEM 교육의 일환으로 디지털이나 코딩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다면 더 많은 직업에 대한 기회가 열리는 것은 맞지만 모두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IT 전문가나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STEM 교육을 통해 디지털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면 실제 업무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코딩 실무를 가르치는 교육 방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코딩 교육 자체보다 그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교육이 더 유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코딩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되 그 기술 자체를 이해하기보다 ‘기본적인 원리’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질문의 힘’을 키우는 인문학도 중요

“기계는 답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위해 존재한다.” 세계적인 과학 기술 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창간자이자 기술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케빈 켈리의 말이다. 기계의 질문이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라면 인간의 질문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AI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매우 명료하게 보여준다. 다보스포럼이 ‘복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미래 인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꼽은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한준 연구위원은 “직업을 수행하면서 부딪치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은 AI나 자동화 로봇 등에 맡기고 사람은 AI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AI시대 직장인들에게 ‘사람이 잘하는 일을 찾아라’는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직업인들이 수행하는 업무 중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되는 업무도 있고 창의력이나 기획력이 필요한 일도 있다. 또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 속에서 감성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업무도 있다.

이런 업무 가운데 ‘사람이 잘하는 일’을 판단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단순한 암기보다 ‘비판적 사고’, ‘공감 능력’, ‘창의 능력’, ‘융합 능력’, ‘협업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특정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나 정해진 정답은 AI나 지식을 검색하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서비스는 정해진 답이 아닌 기발한 발상으로부터 탄생할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AI는 인간이 지시한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왜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열정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강조되는 것이 인문학 교육이다. 힘든 일을 AI가 대신 처리해 주고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미래에는 실제 회사 업무를 수행할 때도 ‘철학’이나 ‘윤리’적인 문제들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보기술(IT)을 전문으로 다루는 엔지니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아닌 AI가 판단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설계하는 사람이 더욱 근본적으로 ‘AI에게 어떤 결정’을 유도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푸는 것이 핵심 역량으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최근 자율주행차와 관련해 ‘트롤리 딜레마’ 등에 대한 고민이 실체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트롤리 딜레마는 윤리학의 유명한 사고 실험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김혁 연구원은 “아직은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머지않아 AI가 회사 업무에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된다면 인사팀의 직원 관리에 대한 무게중심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직원들의 업무 교육에 상당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앞으로는 AI로 인해 직원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 등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직원들에게 업무를 위한 ‘동기부여’와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같은 교육들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당장 업무 능력을 높이는 것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이런 교육들이 실제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가 올 것”이라며 “지금 철학을 전공했다면 기업에 취직하는 데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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