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업, ‘에코십’에 희망을 건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지난 2년간 조선업계는 극심한 ‘수주 절벽’을 겪어 왔다. 수주 절벽은 곧 일감의 부족을 의미한다. 한국 조선사들은 자산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직원들은 휴업에 돌입하거나 정든 일터를 떠나야만 했다.

올해는 과연 반등의 시기가 될 수 있을까. 경기 산업이라는 조선업의 특성상 바닥을 찍은 수주량이 반등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여기에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환경 규제는 조선업계의 기대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엄격한 환경 규제로 ‘에코십(친환경 선박)’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장치 장착보다 경제적인 ‘신규 발주’

조선업의 부활 조짐은 미약하게나마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세계 신조선 누적 발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한 1951만CGT(가치환산톤수)다. 발주액은 54% 증가한 543억 달러다. 2016년 닥친 ‘수주 절벽 쇼크’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분위기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산업군의 패러다임이 변하듯이 조선업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이른바 ‘고부가가치’ 선박의 등장이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발주 가격이 높아 조선사들엔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에서 해양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에코십’에 시선이 쏠린다. 2010년대 들어 국제해사기구(IMO)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에코십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환경 규제는 이미 해운·조선업계에는 발등의 불이다. IMO는 2020년부터 선박 연료유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 이하로 규제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다. 해양 생태계의 교란을 막기 위해 시행 예정이던 선박평형수처리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안건도 2년 유예를 거쳐 2019년 9월부터 발효된다.

환경 규제는 해운사엔 부담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황 아래 기존 선박에 처리 장치를 설치하거나 혹은 에코십으로 교체하는 것은 큰 지출이 동반된다. 선박평형수처리장치 설치 규제가 2년 유예된 것 또한 이러한 시장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와 달리 조선업계에서는 규제가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선사들은 수익성 강화를 위해 고효율 선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와 함께 저유황유 가격도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 발효되는 IMO의 선박평형수 규제와 2020년부터 적용 예정인 황산화물 규제는 향후 대규모 선박 발주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선령 15년 이상 선박은 선박평형수처리장치와 황산화물 배출량 저감 장치를 추가로 장착하는 것보다 폐선 후 신규 발주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에코십 선박의 건조를 위한 기술 개발에 몰두해 왔다. 업계에서는 에코십 기술을 크게 연비 개선 효과에 중점을 둔 ‘고효율 선박 기술’과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비한 ‘친환경 선박 기술’로 나누고 있다.

◆韓 조선사 기술력, 단연 ‘세계 최고’

삼성중공업은 국내 대덕연구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상업용 예인 수조를 포함한 각종 시험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각종 고효율·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의 성지다. 길이 400m 규모의 수조에서 선박이 실제 바다 위에서 운항하는 것 같은 환경으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고 선박 운항 상태를 최첨단 설비 장비로 측정·연구·분석해 철저한 성능 평가를 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대표적 에너지 절감 장치(ESD)로는 세이버 핀(SAVER-Fin)을 꼽을 수 있다. 세이버 핀은 선박 외판에 장착해 선체 주변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다. 이 장치를 장착한 선박은 최대 5%의 연비 개선 효과가 있고 선체 진동도 50% 감소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연간 유류비용은 4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5%만 절감해도 선박 1척당 20억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 세이버 핀은 구조적 안정성과 적용이 뛰어나 다양한 종류의 선박에 부착할 수 있다. 대형 컨테이너선 뿐만 아니라 대형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모든 일반 상선에 장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세계 최초로 고압의 엔진 배기가스를 정화할 수 있는 친환경 장치를 제작해 세계 선주들의 관심을 받았다. 자체 개발한 고압용 질소산화물 저감 장치(HP SCR)를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한 2만600㎥급 액화석유가스(LPG)선에 설치했다.

현대중공업은 IMO의 친환경 규제를 만족시키는 원천 기술 확보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았다. 이 장치는 선박용 대형 엔진에서 고온(섭씨 영상 300~520도), 고압(1~5bar)으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암모니아 촉매로 분해해 최대 99%까지 저감할 수 있다.

또 선박용 경유(MGO)보다 가격이 절반가량 저렴한 일반 중유(HFO)를 연료로 사용해 2016년 1월 발효된 IMO의 대기 오염 방지 3차 규제(TierⅢ)를 충족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업계에서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천연가스 추진 선박’을 현실로 이뤘다. 2012년부터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온 결과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를 시작한 ‘천연가스 추진 선박(ME-GI LNG선)’은 연료 효율성을 높인 에코십의 대표적인 예다.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독일 엔진 메이커인 만디젤과 석유가 아닌 천연가스로 구동하는 선박 기술을 연구해 왔다. 선박 엔진은 만디젤이, 천연가스를 연료화하는 공급 시스템은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해 2013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2월 세계 최초로 ‘천연가스 추진 LNG 운반선’을 인도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36척의 천연가스 추진 선박을 수주해 이 중 13척을 성공적으로 인도하고 2018년 2월을 기준으로 23척을 건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조선사들은 수주 절벽에 돌입하기 직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덴마크 머스크라인으로부터 척당 1억6000만 달러의 1만9360TEU급 컨테이너선 11척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MOL로부터 2만100TEU급 컨테이너선을 척당 1억5500만 달러에 수주했다.

그 후 2년간 힘겨운 시기를 보냈지만 업계의 올해 전망은 긍정적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친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LNG 추진선을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선박과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미래 시장을 대비해 압축천연가스(CNG)선, 이산화탄소(CO2) 운반선, 수소 운반선 등 새로운 선종 개발을 추진한다.현대중공업 관계자는 “IMO의 환경 규제가 임박함에 따라 올해는 친환경 선박 시장의 성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조선사들을 웃음 짓게 하는 것은 한국 조선사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가 수주로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해외 조선사들을 상대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벌크선대를 중심으로 한 중국 조선사의 저가 수주는 심각한 상황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요소다.

해결책은 결국 ‘높은 기술력’이다. 대우조선해양은 ME-GI LNG선의 연료 효율성을 높이고 운항에 드는 비용을 개선했다. 자체 개발한 천연가스 연료 공급 장치와 재액화 장치(PRS)를 만디젤의 가스 분사식 엔진과 결합해 설치하면 연료 효율이 현재 LNG 운반선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기 추진 방식인 DFDE(Dual Fuel Diesel Electric) 엔진 대비 20% 이상 향상된다.

이에 따라 운항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LNG 연료 공급 시스템 관련 특허 200건을 국내외에 출원했다. 이 중 국내 40건, 해외 4건의 특허 등록을 완료했고 PRS 관련 특허 38건을 출원해 5건을 등록 완료했다.

삼성중공업은 황산화물 배출량 규제에 대비해 LNG의 경제성과 친환경성에 주목했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LNG 추진선’과 LNG 추진선에 LNG를 충전하는 ‘LNG 벙커링 선박’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LNG 추진 셔틀 탱커를 6척 수주하는 등 현재까지 8척의 LNG 추진선(셔틀 탱커·유조선)을 수주했다. 지난해 5월에는 대한해운으로부터 LNG 벙커링 겸용 소형 LNG선을 수주해 LNG 해상 급유가 가능한 LNG 벙커링선 건조 경험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수주 활발해질 환경 조성돼야

당장 눈에 띄게 발주가 늘지는 않겠지만 전문가들은 환경 규제 강화로 기존 선박의 폐선율이 높아지고 신조선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로이드선급은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2025년 한 해에만 650척의 천연가스 추진 선박이 발주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실장은 “표면적으로는 침체됐지만 친환경·고효율·스마트화 등 조선업계에서 변화의 패러다임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에코십 생산력은 향후 조선업계의 20년간을 담보할 수 있는 ‘신기술’인 셈이다.

문제는 해운업계의 시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선사들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해 선박 발주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상황은 좋지 않다. KMI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세계 은행권의 해양 신디케이트론 규모는 수주 절벽이었던 2016년 상반기에 비해 8.7% 감소했다. 황 실장은 “오랜 해운 침체로 전통적 선박금융 은행들마저 선박에 대한 신뢰를 버렸고 선사의 신용도 하락으로 선박금융의 위험 가중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MI는 조선소들이 소재한 아시아 국가의 은행들이 여신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은행보다 조선사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초 조선 ‘빅 3’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만나 금융회사가 조선업계에 적용하는 기준을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여신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장 하반기부터 에코십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신규 수주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에 대비해 자금력을 키워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7월에 출범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조선업과 해운업의 상생을 이끌지 주목된다. 공사는 해운 선사들의 선박·터미널 확보를 위해 투자·보증·유동성 지원을 위한 선박 매입 후 재용선(S&LB), 채권 매입 등 금융 지원에 나선다. 또 해운 거래 지원과 선사 경영 안정과 구조 개선 지원, 비상시 화물 운송 지원 등 다양한 정책 임무를 수행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운정책기금을 운영 중인 금융회사들을 하나로 통합한다면 해운업 지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며 “신조 선박 발주를 위해 금융 지원을 해준다면 이는 국내 조선업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전반적으로 해운업 지원에 맞춰져 있는 기관이어서 조선업계에는 직접적 이득이 없을 것이란 반대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의 친환경 폐선 보조금 정책으로 국내 노후 선박이 친환경 LNG 추진 선박으로 대체된다면 LNG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조선 업체의 수혜를 다소 기대할 수 있다”며 “하지만 국내 조선소의 건조비용이 비싸 국내 선사들이 국내 조선사를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단적인 예는 지난해 11월 국내 벌크선사 팬오션의 발주 사례다. 팬오션은 브라질의 발레사와 철광석 장기 운송 계약을 하고 총 6척의 초대형 벌크선(VLOC)을 발주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발주처로 국내 조선소가 아닌 중국 조선소를 선택했다.

당시 팬오션은 국내 조선소의 신조가가 중국 조선소 대비 10% 정도 비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조선업계는 최근 완화된 ‘수주 가이드라인’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15~2016년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겪은 정부는 무분별한 저가 수주가 부실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 적자 수주에 대해 선박 건조에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의 발급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조선사가 해외 조선사들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는 업계의 불만이 있어 왔다.

기존 수주 가이드라인은 생산원가 이하로 입찰가를 적어내는 적자 수주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지난해 12월 해양금융종합센터를 통해 마련된 새로운 수주 가이드라인은 조건부에 적자 수주를 허용하고 RG도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국내 대형 조선사가 공동으로 수주한 선박, 국내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국내 조선사가 수주하면 기존 국책은행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지 않는다.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다.

용어설명 : 에코십(eco-ship)은

기존 선박보다 연비가 좋고 대기 및 해양오염 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선박을 말한다.

에코십 관련 기술은 연비 개선 효과에 중점을 둔 ‘고효율 선박 기술’과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비한 ‘친환경 선박 기술’로 나눌 수 있다.

고효율 선박 기술은 물과 공기 흐름 제어 기술에 중점을 두고 개발되고 있다. 친환경 선박 기술은 선박으로 인한 글로벌 환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기준을 따르고 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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