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 “임팩트 금융이 새로운 시대의 '주류'될 것”
입력 2018-02-27 14:02:20
수정 2018-02-27 14:02:20
[커버스토리 = '임팩트 투자'의 프런티어들]
-커지는 불평등, 시장의 창의성으로 해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이헌재(74)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에게는 늘 ‘외환위기의 해결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 위원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초대 금융감독원장으로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총괄했다. 이후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누구보다 가까이 들여다본 셈이다.
그런 이 위원장이 최근 재무적 가치(수익)와 사회적 가치(공공 문제 해결)를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나섰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임팩트 금융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위원장이 직접 나서 국내 금융업계와 학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와 함께 2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직접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1944년생으로 올해 74세가 됐다. 대한민국 경제의 굴곡을 함께 지나온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것도 남들이 다 닦아 놓은 편안한 길이 아니라 ‘없던 길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개척자의 길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통인동 사무실에서 2월 21일 이 위원장을 만났다.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임팩트 투자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최근이지만 사실 관심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1998년 금융감독원장으로 외환위기 극복을 주도한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됐죠.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압축 성장을 하다 보니 사회적 불균형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저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어요. 기업 운영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배구조’의 문제입니다.
그중 투명성 문제는 분식회계나 부패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경제 관료를 지내면서 우리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고요. 그다음 문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데, 임팩트 금융은 바로 이러한 기업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한 밑거름인 거죠. 제가 맡은 역할은 ‘임팩트 금융’의 물꼬를 터주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후에는 저 없이도 시장이 알아서 진화해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는 ‘지배구조’ 문제 해결을 한 단계 더 고민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임팩트 투자는 지금도 생소한 분야입니다. 10년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면 연구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그 시장으로부터 수혜를 본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흙수저 출신이든 뭐든, 이 사회로부터 많은 수혜를 본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그 과정에서 많은 자산을 쌓기보다 우리 경제의 발전사를 함께하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죠.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저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는 이제 막 중산층이 생기는 단계였지만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당시 미국 출장을 가면 각 대학들마다 세미나를 개최하고 사례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래의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구체적인 해결책이 없었지만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언젠가는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어요. 2016년 국가 미래 전략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요. 현재는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지식들이 축적돼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팩트 금융이 현재 불거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안 경제가 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대량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한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끝났다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 상당수의 인력이 생산의 과정에서 자유로워질 겁니다. 다시 말해 많은 인력이 ‘지금과 같은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죠.
기존에는 이런 문제를 정부 주도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미소금융이 대표적인 예죠. 미소금융은 전통적인 금융의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보완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적인 위험이 그만큼 일상화되고 광범위해질 겁니다. 정부 주도의 복지 시스템, 사회적 안전망 등으로는 애초에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면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사회적 기업가’들입니다.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창의적으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러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생태계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금융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임팩트 금융은 앞으로의 자본주의를 이끌어 갈 전혀 다른 방식의 금융 시스템입니다. 머지않아 임팩트 금융이 전통 금융의 보완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류 금융’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임팩트 투자라는 화두를 던지는 시기로 ‘왜 지금’을 택하셨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입니다. 이는 ‘경제적 가치(수익)’와 ‘사회적 가치(공익)’ 간의 갭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장기 채권 등을 활용해 기존 방식의 금융 상품과 ‘비슷한 수익률’을 얻으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까지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금융시장의 여건이 바뀌어 가면서 ‘임팩트 금융’이라는 화두를 꺼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게 2년 전쯤입니다.
둘째로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사회적 자본’이 축적됐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워낙 압축 성장했기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 자본이 축적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 이와 관련한 인식이 커진 것은 물론 사회적 자본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도 구체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 임팩트 금융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 저변은 매우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임팩트 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특히 ‘민간 주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시장 안에서 그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도해야 ‘창의적’이고 ‘다양한’ 해결 방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을 예로 들어볼게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유치원을 직접 운영한다면 모든 서비스가 획일화될 겁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바우처를 주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죠.
개인적으로는 미소금융의 실패를 지켜본 게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소금융을 주도했습니다. 당시에도 저는 미소금융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소금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시장이 굉장히 경직됐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해 달라는 높은 압력을 받으며 출범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정부가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 하다가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제가 먼저 이 화두를 민간 차원에서 던져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러면 임팩트 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죠. 지금 정부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보다 관련 시장이 살아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기업가들이 잘 활동할 수 있는 규제나 법안과 같은 밑거름을 깔아주는 역할입니다.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발족과 함께 국회에 임팩트 금융 포럼을 출범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국회의원들과 관련 모임을 갖고 임팩트 금융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27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물론입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을 중심을 펀드 투자 자금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시장에서 돈이 나와야 이 돈이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더 경쟁력 있고 건강한 생태계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투자 자금 유치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40억원 정도를 유치했습니다. 이는 임팩트 금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확산되지 못한 이유도 있고 또 시기적으로 최순실 스캔들이 불거진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기업들이 참여하는 데 소극적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임팩트 금융에 재원이 유입되는 데 필요한 법적·제도적인 여건이 조성된다면 올해 안에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력
1944년 중국 상하이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졸업. 보스턴대 경제학 석사. 1968년 행정고시 수석합격. 19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단장. 1998년 초대 금융감독원장.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2016년 여시재 이사장(현). 2017년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현).
vivajh@hankyung.com
[커버스토리 "'임팩트 투자'의 프런티어들" 기사 인덱스]
-'임팩트 투자 원년'…올해 4000억원 투자 대기중
-이헌재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 "임팩트 금융이 새로운 시대의 '주류' 될 것"
-이철영 아크임팩트자산운용 회장 "뭄바이 도시재생 투자, 예상 수익률만 28%죠"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연탄 나르기 대신 임팩트 금융에 투자하세요"
-정경선 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표 "글로벌 사모펀드도 임팩트 투자에 눈독 들이죠"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양적 확대보다 '임팩트 생태계' 구축이 우선이죠"
-임팩트 투자 '큰손'으로 떠오른 대기업
-커지는 불평등, 시장의 창의성으로 해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이헌재(74)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에게는 늘 ‘외환위기의 해결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 위원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초대 금융감독원장으로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총괄했다. 이후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누구보다 가까이 들여다본 셈이다.
그런 이 위원장이 최근 재무적 가치(수익)와 사회적 가치(공공 문제 해결)를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나섰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임팩트 금융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위원장이 직접 나서 국내 금융업계와 학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와 함께 2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직접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1944년생으로 올해 74세가 됐다. 대한민국 경제의 굴곡을 함께 지나온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것도 남들이 다 닦아 놓은 편안한 길이 아니라 ‘없던 길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개척자의 길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통인동 사무실에서 2월 21일 이 위원장을 만났다.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임팩트 투자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최근이지만 사실 관심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1998년 금융감독원장으로 외환위기 극복을 주도한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됐죠.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압축 성장을 하다 보니 사회적 불균형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저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어요. 기업 운영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배구조’의 문제입니다.
그중 투명성 문제는 분식회계나 부패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경제 관료를 지내면서 우리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고요. 그다음 문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데, 임팩트 금융은 바로 이러한 기업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한 밑거름인 거죠. 제가 맡은 역할은 ‘임팩트 금융’의 물꼬를 터주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후에는 저 없이도 시장이 알아서 진화해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는 ‘지배구조’ 문제 해결을 한 단계 더 고민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임팩트 투자는 지금도 생소한 분야입니다. 10년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면 연구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그 시장으로부터 수혜를 본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흙수저 출신이든 뭐든, 이 사회로부터 많은 수혜를 본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그 과정에서 많은 자산을 쌓기보다 우리 경제의 발전사를 함께하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죠.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저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는 이제 막 중산층이 생기는 단계였지만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당시 미국 출장을 가면 각 대학들마다 세미나를 개최하고 사례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래의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구체적인 해결책이 없었지만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언젠가는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어요. 2016년 국가 미래 전략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요. 현재는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지식들이 축적돼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팩트 금융이 현재 불거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안 경제가 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대량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한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끝났다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 상당수의 인력이 생산의 과정에서 자유로워질 겁니다. 다시 말해 많은 인력이 ‘지금과 같은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죠.
기존에는 이런 문제를 정부 주도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미소금융이 대표적인 예죠. 미소금융은 전통적인 금융의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보완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적인 위험이 그만큼 일상화되고 광범위해질 겁니다. 정부 주도의 복지 시스템, 사회적 안전망 등으로는 애초에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면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사회적 기업가’들입니다.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창의적으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적어도 이러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생태계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금융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임팩트 금융은 앞으로의 자본주의를 이끌어 갈 전혀 다른 방식의 금융 시스템입니다. 머지않아 임팩트 금융이 전통 금융의 보완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류 금융’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임팩트 투자라는 화두를 던지는 시기로 ‘왜 지금’을 택하셨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입니다. 이는 ‘경제적 가치(수익)’와 ‘사회적 가치(공익)’ 간의 갭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장기 채권 등을 활용해 기존 방식의 금융 상품과 ‘비슷한 수익률’을 얻으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까지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금융시장의 여건이 바뀌어 가면서 ‘임팩트 금융’이라는 화두를 꺼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게 2년 전쯤입니다.
둘째로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사회적 자본’이 축적됐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워낙 압축 성장했기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 자본이 축적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회 전반에 이와 관련한 인식이 커진 것은 물론 사회적 자본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도 구체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 임팩트 금융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 저변은 매우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임팩트 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특히 ‘민간 주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시장 안에서 그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도해야 ‘창의적’이고 ‘다양한’ 해결 방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을 예로 들어볼게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유치원을 직접 운영한다면 모든 서비스가 획일화될 겁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바우처를 주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죠.
개인적으로는 미소금융의 실패를 지켜본 게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소금융을 주도했습니다. 당시에도 저는 미소금융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소금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시장이 굉장히 경직됐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해 달라는 높은 압력을 받으며 출범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정부가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 하다가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제가 먼저 이 화두를 민간 차원에서 던져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러면 임팩트 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죠. 지금 정부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보다 관련 시장이 살아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기업가들이 잘 활동할 수 있는 규제나 법안과 같은 밑거름을 깔아주는 역할입니다.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발족과 함께 국회에 임팩트 금융 포럼을 출범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국회의원들과 관련 모임을 갖고 임팩트 금융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27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물론입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을 중심을 펀드 투자 자금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시장에서 돈이 나와야 이 돈이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더 경쟁력 있고 건강한 생태계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투자 자금 유치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40억원 정도를 유치했습니다. 이는 임팩트 금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확산되지 못한 이유도 있고 또 시기적으로 최순실 스캔들이 불거진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기업들이 참여하는 데 소극적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임팩트 금융에 재원이 유입되는 데 필요한 법적·제도적인 여건이 조성된다면 올해 안에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력
1944년 중국 상하이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졸업. 보스턴대 경제학 석사. 1968년 행정고시 수석합격. 19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단장. 1998년 초대 금융감독원장.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2016년 여시재 이사장(현). 2017년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현).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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