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양적 확대보다 ‘임팩트 생태계’ 구축이 우선이죠”

[커버스토리 = '임팩트 투자'의 프런티어들]
-억대 연봉 컨설턴트에서 ‘체인지 메이커’로 변신, 성수동 넘어 세계로 '소셜벤처얼라이언스' 계획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성수동에 있는 소셜벤처입주센터에서 2017년 10월 18일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1000억원 규모의 소셜 벤처 전용 투자 펀드 조성을 알리며 임팩트 투자를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방문은 임팩트 금융시장의 확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이 상징의 공간이 된 곳이 헤이그라운드다.

헤이그라운드를 운영하는 비영리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소셜 벤처에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연결해 주기 위해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루트임팩트를 이끄는 허재형(36) 대표를 만나 임팩트 금융에서의 중간 지원 조직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허 대표는 2012년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현대가 3세인 정경선 루트임팩트 공동 창업자(현 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표)와 함께 뜻을 모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루트임팩트를 창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컨설턴트로 일할 때 교환학생의 개념처럼 해외 비영리재단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꼭 가고 싶었는데 비자 문제로 좌절됐고 그때 갈증이 매우 컸어요. 그러면 사내 동아리에서라도 비슷한 일을 해보자며 컨설턴트 직무를 활용해 봉사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그것도 결국 진행 단계에서 엎어졌어요. 두 번의 실패 과정에서 제가 그 일에 대한 아쉬움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정경선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다가 세 번째 만났을 때 서로 (함께 가기로) 결정했어요. 2012년 5월 정 대표를 만나 그해 6월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루트임팩트를 설립했습니다.”
-한 달 만에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했다는 건가요.

“어쩌면 단순한 성격이어서 이런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돈이 인생의 1순위는 아니란 생각을 했거든요. 성공에 대한 열망도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부자일 것이라고 오해하실 텐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 꿈이 신부님이었는데 늘 ‘언젠가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지’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저 역시 몰랐지만요(웃음).”

-그중에서도 임팩트 금융에 빠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공신닷컴이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강성태 공부의신 대표가 제 친구예요. 대학 시절 위시(WISH)란 교육 봉사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그때 공부의신을 소셜 벤처로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도왔습니다. 성태와 한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 무렵 매일 밤새워 토론했어요. 성태는 공학도였고 저는 경영학도였으니 학생 신분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을 서로 주고받았죠. 그때 어렴풋이 성태와 같은 사회적 기업가를 돕는 일이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사회적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보노보혁명’을 읽고 나서 실제 임팩트 금융의 사례들을 접하기도 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 대표도 그 책을 읽고 루트임팩트 모델을 구상했다고 하더라고요.”

-루트임팩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소셜 벤처에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죠. 루트임팩트는 임팩트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소셜 벤처에 필요한 인프라를 만들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죠. 중간 지원 조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요. 컴퍼니빌더처럼 특정한 소셜 벤처를 선정해 인큐베이팅할 수 있고 사회적 혁신가를 지원할 수도 있죠. 정부 기관과 대형 재단의 자금을 연결해 줄 수도 있어요. 한국은 아직 중간 지원 조직이 많이 세분화돼 있지 않지만 해외는 달라요. 미국에는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과 소셜 벤처 기업 간 주요 임원들을 연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중간 지원 기관도 있더라고요. 중간 지원 기관이 얼마나 세분화돼 있고 다양한 플레이어가 존재하느냐가 그 사회에 임팩트 투자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인 것 같아요.”

-헤이그라운드에는 어떤 소셜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나요.

“현재 1인 기업을 포함해 80여 개의 소셜 벤처가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해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을 돕는 마리몬드, 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을 돕는 빅이슈코리아, 농산물 생산자에게 합리적인 생산 시스템을 제공하는 소녀방앗간, 장애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IT 업체 에누마 등이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임팩트 금융 활성화 방안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임팩트 투자를 비롯해 임팩트 금융시장이 양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측면도 있어요. 정부 주도로 움직이기에는 아직 시장 생태계를 이끌어 갈 인재가 매우 부족합니다. 보다 빠르게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야만 양적 확대의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본 확충으로 임팩트 투자의 본질이 희석될 우려도 있습니다. 진정한 임팩트를 추구하는 사람과 조직에 자본이 공급될 수 있도록 생태계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루트임팩트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임팩트 경제의 가장 큰 매력은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한 법칙으로 작용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다양한 지원 기관과 소셜 벤처들이 건설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구심적 역할을 할 일종의 동맹 조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훨씬 더 큰 임팩트를 불러올 수 있다면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이를 위해 루트임팩트는 우선 성수동에 있는 몇몇 조직과 합쳐 소셜벤처얼라이언스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올해 중에 첫걸음을 떼게 될 것 같아요. 이후에는 성수동을 넘어 체인지 메이커를 위한 커뮤니티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약력
1982년생. 2009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2009년 배인앤컴퍼니 컨설턴트. 2012년 루트임팩트 사무국장. 2017년 8월 루트임팩트 대표(현).

poof34@hankyung.com

[커버스토리 "'임팩트 투자'의 프런티어들" 기사 인덱스]
-'임팩트 투자 원년'…올해 4000억원 투자 대기중
-이헌재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 위원장 "임팩트 금융이 새로운 시대의 '주류' 될 것"
-이철영 아크임팩트자산운용 회장 "뭄바이 도시재생 투자, 예상 수익률만 28%죠"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연탄 나르기 대신 임팩트 금융에 투자하세요"
-정경선 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표 "글로벌 사모펀드도 임팩트 투자에 눈독 들이죠"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양적 확대보다 '임팩트 생태계' 구축이 우선이죠"
-임팩트 투자 '큰손'으로 떠오른 대기업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