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주체로 등장…스트리트패션과 협업하고 편의점·카톡 판매도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한국에서 이른바 ‘명품’으로 군림했던 럭셔리 브랜드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화를 이끈 주역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다. 이들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최대 소비 주체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럭셔리 시장 고객의 45%는 밀레니얼 세대의 몫이다.
◆밀레니얼 세대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소비층이 바뀌면서 가치의 무게중심도 이동했다. ‘물질적인 소비’에서 여행과 문화생활 등 ‘경험’으로, 기성품보다는 비스포크(본래는 맞춤 정장을 의미했지만 영역이 넓어져 고객의 개별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으로 확장)로 무게가 옮겨갔다.
럭셔리 브랜드도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2017년 패션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루이비통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이비통은 2017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트리트 패션의 상징 ‘슈프림’과 협업했다.
루이비통은 브랜드 상징인 ‘LV 모노그램’ 대신 슈프림의 로고가 가득한 패션으로 런웨이를 장식했다. 루이비통은 베이스볼 셔츠, 드라이빙 장갑, 스타디움 재킷 등 스트리트 감성을 한껏 녹인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했다.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은 열광했다. 주류 문화로 통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와 유스컬처(청년문화·하위문화)계의 정상이 만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슈프림이 2000년 루이비통 로고를 무단 도용해 법정 소송까지 갔던 사이였다. 두 브랜드의 만남은 ‘역대급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평을 들으며 순식간에 전 세계 매장 앞 밤샘 줄과 품절 사태를 낳았다.
심지어 루이비통이 슈프림의 덕을 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루이비통은 브랜드가 고수하던 전통과 가치를 내려놓는 대신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슈프림과의 협업만으로 길거리 감성까지 포용할 수 있는 젊은 브랜드로 재정의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브랜드는 구찌였다.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가 시들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구찌는 다양화를 무기로 밀레니얼 세대를 파고들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촌스러운 브랜드 취급을 받으며 내리막을 걷던 구찌가 2015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반등했다.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미켈레 디렉터는 모두가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홀로 화려하고 파격적인 무늬를 수놓으며 맥시멀리즘(과장주의)을 내세웠다.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젊은 층에게 다시 어필하면서 현재 구찌 매출의 55%가 35세 이하 밀레니얼 세대에서 나오고 있다.
◆신입이 임원 가르친 구찌
구찌는 디자인 혁신과 함께 경영도 혁신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르코 비자리 구찌 최고경영자(CEO)는 그가 취임한 2015년부터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 활용했다. 리버스 멘토링은 신입 사원이나 후배가 선배의 멘토가 돼 이들을 가르치는 역멘토링이다.
비자리 CEO는 임원 회의가 끝난 직후 다시 30세 이하 직원들로 이뤄진 ‘그림자위원회’를 열어 임원 회의의 주제를 다시 토론한다. 그리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 또 35세 이하 직원들과의 정기적인 점심 모임을 통해 회사 문화나 복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구찌의 탈모피 선언과 2017년 9월 새롭게 론칭한 ‘구찌플레이스’다.
구찌는 2017년 10월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춰 모든 제품에 모피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구찌플레이스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구찌 브랜드에 영감을 준 전 세계 곳곳의 구찌플레이스를 소개한다.
그 결과 구찌는 도태되는 럭셔리 시장 속에서도 돋보이는 성장을 거뒀다. 구찌의 모회사인 케링은 사상 처음으로 주가수익률(PER)이 루이뷔통 모기업인 LVMH를 제쳤다.
2017년 2분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럭셔리 브랜드 1위도 구찌였다. 가장 많이 팔린 상위 제품 10개 중 4개가 구찌 브랜드였다. 3분기에도 구찌 매출은 전년보다 49.4% 급증했다.
2017년 상반기에도 전년 반기 대비 43% 매출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 변화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럭셔리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럭셔리가 더 이상 희소한 가치나 일부 계층만의 특권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보편적인 프리미엄’으로 새롭게 재편됐다.
◆카카오톡·편의점에도 등장한 프라다
박정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한양대 럭셔리연구소장)는 "개성과 의미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세대의 소비 방식으로 인해 럭셔리가 더 이상 기존의 가치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며 "럭셔리업계가 스스로 프리미엄을 버리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생존 전략을 짜고 있는 것"고이라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한때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데 이어 이제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편의점에까지 등장했다. 편의점 GS25는 설을 맞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판매했다. 약 30만원부터 170만원까지 하는 보테가베네타·프라다·펜디 등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통신사 할인까지 받으며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더 이상 프리미엄을 추구하지 못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도 앱을 출시하는 등 디지털 역량 강화에 나섰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샤넬은 럭셔리 의류 전문 전자 상거래 업체인 파페치와 손잡고 샤넬 매장과 신제품 소식을 전해 주는 앱을 출시할 계획이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몇 년 이상 뒤처진 계획이지만 이를 통해 샤넬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샤넬은 앱을 통해 고객들에게 매장 간접 체험을 제공하고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의 브랜드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하지만 앱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CEO는 “샤넬은 앱에서 상품을 팔거나 전자 상거래를 시작하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계약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하기 전이나 후에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되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마지막 고집은 지키겠다는 얘기다.
샤넬의 사례처럼 럭셔리업계는 온라인 강화 전략에 고민이 많았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판매를 통해 희소성과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보편화한 프리미엄 시장에서 럭셔리의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이제 브랜드의 영리한 전략이 될 수 없다.
에바 첸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총괄은 “럭셔리의 미래는 민주주의에 있다”며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 럭셔리 하우스들은 소셜 미디어를 멀리해 왔지만 현실은 이제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럭셔리업계는 앞다퉈 온라인 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희소성보다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과 잠재력이 높은 온라인 시장을 택한 것이다.
버버리는 온라인 시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2006년 기업 정체성도 패션 기업이 아닌 디지털 기업으로 재정의했다. 버버리는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키우기 위해 제품과 마케팅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확립해 나갔다.
◆희소성 버리고 디지털 강화만이 살길
(사진) 스스로 디지털 기업으로 정의한 버버리는 애플의 증강현실 개발 도구(AR Kit)를 활용해 버버리 앱에서 체험형 증강현실 기술을 선보였다.
2016년부터 온라인에서 쇼를 보고 바로 구매하는 ‘현장 직구(See Now Buy Now)’를 통해 전통적인 시즌제 방식의 패션쇼 룰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또 구글·애플·페이스북·스냅챗·카카오톡·라인 등 각종 소셜 미디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자신들의 패션쇼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LVMH그룹은 2016년 6월부터 럭셔리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24세브르닷컴(24Sevres.com)’을 개설했다. 24세브르닷컴은 LVMH그룹 소유의 백화점 르봉마르셰의 온라인 사이트 격으로 루이비통·디올·펜디 등 20여 개 자체 브랜드를 포함해 총 150개가 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디올은 2016년 8월 럭셔리업계 최초로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서 레이디 백 스몰을 한정판으로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2만8000위안(약 462만원)에 달하는 이 가방은 판매 하루 만에 동이 났다.
이처럼 온라인 럭셔리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까지 럭셔리 브랜드들의 온라인 매출 비율이 25%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의 ‘2017 럭셔리의 글로벌 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채널이 확연히 갈렸다. 베이비붐 세대의 72%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고 온라인은 22%, 모바일은 6%에 그쳤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58%가 매장에서, 23%는 온라인에서, 19%는 모바일에서 럭셔리 제품을 샀다.
반면 오프라인 시장은 매년 침체기를 맞고 있다. 미국 최대 백화점 업체 메이시스도 지난해 전체 점포의 15%에 해당하는 100여 개 매장의 문을 닫은 데 이어 매출 실적이 부진한 11개 매장을 추가 폐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백화점의 몰락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은 지방 매장 4곳을, 소고세이부백화점은 2곳을 폐쇄했다.
kye0218@hankyung.com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한국에서 이른바 ‘명품’으로 군림했던 럭셔리 브랜드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화를 이끈 주역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다. 이들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최대 소비 주체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럭셔리 시장 고객의 45%는 밀레니얼 세대의 몫이다.
◆밀레니얼 세대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소비층이 바뀌면서 가치의 무게중심도 이동했다. ‘물질적인 소비’에서 여행과 문화생활 등 ‘경험’으로, 기성품보다는 비스포크(본래는 맞춤 정장을 의미했지만 영역이 넓어져 고객의 개별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으로 확장)로 무게가 옮겨갔다.
럭셔리 브랜드도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2017년 패션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루이비통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이비통은 2017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트리트 패션의 상징 ‘슈프림’과 협업했다.
루이비통은 브랜드 상징인 ‘LV 모노그램’ 대신 슈프림의 로고가 가득한 패션으로 런웨이를 장식했다. 루이비통은 베이스볼 셔츠, 드라이빙 장갑, 스타디움 재킷 등 스트리트 감성을 한껏 녹인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했다.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은 열광했다. 주류 문화로 통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와 유스컬처(청년문화·하위문화)계의 정상이 만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슈프림이 2000년 루이비통 로고를 무단 도용해 법정 소송까지 갔던 사이였다. 두 브랜드의 만남은 ‘역대급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평을 들으며 순식간에 전 세계 매장 앞 밤샘 줄과 품절 사태를 낳았다.
심지어 루이비통이 슈프림의 덕을 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루이비통은 브랜드가 고수하던 전통과 가치를 내려놓는 대신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슈프림과의 협업만으로 길거리 감성까지 포용할 수 있는 젊은 브랜드로 재정의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브랜드는 구찌였다.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가 시들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구찌는 다양화를 무기로 밀레니얼 세대를 파고들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촌스러운 브랜드 취급을 받으며 내리막을 걷던 구찌가 2015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반등했다.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미켈레 디렉터는 모두가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홀로 화려하고 파격적인 무늬를 수놓으며 맥시멀리즘(과장주의)을 내세웠다.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젊은 층에게 다시 어필하면서 현재 구찌 매출의 55%가 35세 이하 밀레니얼 세대에서 나오고 있다.
◆신입이 임원 가르친 구찌
구찌는 디자인 혁신과 함께 경영도 혁신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르코 비자리 구찌 최고경영자(CEO)는 그가 취임한 2015년부터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 활용했다. 리버스 멘토링은 신입 사원이나 후배가 선배의 멘토가 돼 이들을 가르치는 역멘토링이다.
비자리 CEO는 임원 회의가 끝난 직후 다시 30세 이하 직원들로 이뤄진 ‘그림자위원회’를 열어 임원 회의의 주제를 다시 토론한다. 그리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 또 35세 이하 직원들과의 정기적인 점심 모임을 통해 회사 문화나 복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구찌의 탈모피 선언과 2017년 9월 새롭게 론칭한 ‘구찌플레이스’다.
구찌는 2017년 10월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춰 모든 제품에 모피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구찌플레이스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구찌 브랜드에 영감을 준 전 세계 곳곳의 구찌플레이스를 소개한다.
그 결과 구찌는 도태되는 럭셔리 시장 속에서도 돋보이는 성장을 거뒀다. 구찌의 모회사인 케링은 사상 처음으로 주가수익률(PER)이 루이뷔통 모기업인 LVMH를 제쳤다.
2017년 2분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럭셔리 브랜드 1위도 구찌였다. 가장 많이 팔린 상위 제품 10개 중 4개가 구찌 브랜드였다. 3분기에도 구찌 매출은 전년보다 49.4% 급증했다.
2017년 상반기에도 전년 반기 대비 43% 매출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 변화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럭셔리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럭셔리가 더 이상 희소한 가치나 일부 계층만의 특권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보편적인 프리미엄’으로 새롭게 재편됐다.
◆카카오톡·편의점에도 등장한 프라다
박정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한양대 럭셔리연구소장)는 "개성과 의미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세대의 소비 방식으로 인해 럭셔리가 더 이상 기존의 가치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며 "럭셔리업계가 스스로 프리미엄을 버리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생존 전략을 짜고 있는 것"고이라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한때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데 이어 이제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편의점에까지 등장했다. 편의점 GS25는 설을 맞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판매했다. 약 30만원부터 170만원까지 하는 보테가베네타·프라다·펜디 등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통신사 할인까지 받으며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더 이상 프리미엄을 추구하지 못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도 앱을 출시하는 등 디지털 역량 강화에 나섰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샤넬은 럭셔리 의류 전문 전자 상거래 업체인 파페치와 손잡고 샤넬 매장과 신제품 소식을 전해 주는 앱을 출시할 계획이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몇 년 이상 뒤처진 계획이지만 이를 통해 샤넬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샤넬은 앱을 통해 고객들에게 매장 간접 체험을 제공하고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의 브랜드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하지만 앱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CEO는 “샤넬은 앱에서 상품을 팔거나 전자 상거래를 시작하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계약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하기 전이나 후에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되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마지막 고집은 지키겠다는 얘기다.
샤넬의 사례처럼 럭셔리업계는 온라인 강화 전략에 고민이 많았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판매를 통해 희소성과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보편화한 프리미엄 시장에서 럭셔리의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이제 브랜드의 영리한 전략이 될 수 없다.
에바 첸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총괄은 “럭셔리의 미래는 민주주의에 있다”며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 럭셔리 하우스들은 소셜 미디어를 멀리해 왔지만 현실은 이제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럭셔리업계는 앞다퉈 온라인 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희소성보다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과 잠재력이 높은 온라인 시장을 택한 것이다.
버버리는 온라인 시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2006년 기업 정체성도 패션 기업이 아닌 디지털 기업으로 재정의했다. 버버리는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키우기 위해 제품과 마케팅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확립해 나갔다.
◆희소성 버리고 디지털 강화만이 살길
(사진) 스스로 디지털 기업으로 정의한 버버리는 애플의 증강현실 개발 도구(AR Kit)를 활용해 버버리 앱에서 체험형 증강현실 기술을 선보였다.
2016년부터 온라인에서 쇼를 보고 바로 구매하는 ‘현장 직구(See Now Buy Now)’를 통해 전통적인 시즌제 방식의 패션쇼 룰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또 구글·애플·페이스북·스냅챗·카카오톡·라인 등 각종 소셜 미디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자신들의 패션쇼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LVMH그룹은 2016년 6월부터 럭셔리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24세브르닷컴(24Sevres.com)’을 개설했다. 24세브르닷컴은 LVMH그룹 소유의 백화점 르봉마르셰의 온라인 사이트 격으로 루이비통·디올·펜디 등 20여 개 자체 브랜드를 포함해 총 150개가 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디올은 2016년 8월 럭셔리업계 최초로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서 레이디 백 스몰을 한정판으로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2만8000위안(약 462만원)에 달하는 이 가방은 판매 하루 만에 동이 났다.
이처럼 온라인 럭셔리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까지 럭셔리 브랜드들의 온라인 매출 비율이 25%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의 ‘2017 럭셔리의 글로벌 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채널이 확연히 갈렸다. 베이비붐 세대의 72%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고 온라인은 22%, 모바일은 6%에 그쳤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58%가 매장에서, 23%는 온라인에서, 19%는 모바일에서 럭셔리 제품을 샀다.
반면 오프라인 시장은 매년 침체기를 맞고 있다. 미국 최대 백화점 업체 메이시스도 지난해 전체 점포의 15%에 해당하는 100여 개 매장의 문을 닫은 데 이어 매출 실적이 부진한 11개 매장을 추가 폐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백화점의 몰락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은 지방 매장 4곳을, 소고세이부백화점은 2곳을 폐쇄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