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무역 규제 기준…“북핵 운전대 직접 잡은 대가일 수도”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한국과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태양광전지에 이어 철강에도 관세 폭탄을 예고하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보복관세 등을 예고했다.
북한은 한·미 동맹 균열 조짐에 표정 관리 중이다. 한·미 간, 남북 간 갈등 국면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난 후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 상황이 파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맹국 중 한국만 겨냥한 이유는
미국 상무부는 2월 16일 철강·알루미늄 수입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을 담은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철강과 알루미늄의 과도한 수입이 미국 관련 사업의 쇠퇴와 미국 경제 약화로 이어져 국가 안보를 손상할 위협이 있다며 철강 제품의 모든 제품에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모든 국가의 철강 수출량을 2017년 대비 63%로 제한하자는 방안이 담겨 있다.
또한 브라질·한국·러시아·중국 등 12개국 수입 제품에 53%의 관세를 매기고 나머지 국가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량을 제한하자는 안도 함께 내놓았다.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7.7%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미 상무부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미국 철강 업체 가동률을 현재 73%에서 80%로, 알루미늄 업체 가동률을 48%에서 역시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에 대해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 4월 19일까지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중국을 겨냥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 피해가 몰리는 보복 조치다. 1월 수입 세탁기·태양광전지에 대한 30~50% 관세 부과에 이어 둘째 한국 때리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같은 보복 조치가 반도체·자동차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번에 브라질·러시아·터키·인도·중국 등과 함께 철강 분야 12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보고서 공개 직후 미 무역 전문지 ‘인사이드US트레이드’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에 따라 규제 대상을 선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최근 몇 년간 생산능력 증가율과 환적 수출 문제 등의 수입품 성격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 수출 증가율”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이런 발언이 1962년 제정 후 사실상 사장돼 있던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낼 때의 궁색한 논리처럼 명분에 지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규제 대상에서 대미 철강 수출 1위인 캐나다는 빠지고 3위인 한국은 포함됐다. 대미 수출 증가율(2011~2017년 기준)도 한국은 42%에 불과해 규제 대상에서 빠진 대만(116%)·스페인(106%)·아랍에미리트(358%)보다 낮다.
환적 수출(transship)도 근거가 부족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로스 장관은 2월 13일 여야 의원들과의 통상 문제 간담회에서 중국 철강 제품을 수입해 미국에 가공 수출하는 국가를 악당(evildoer)이라고 부르며 이를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 제품을 가공해 미국에 수출하는 분량은 전체 대미 수출량의 2%에 불과하다.
워싱턴 외교가는 미국이 대미 수출 증가율이 높지 않고 중국산 환적 수출도 많지 않은 ‘동맹국’ 한국을 굳이 규제 대상에 포함한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대미 철강 수출국 중 동맹국인 캐나다·일본·독일 등은 모두 빠졌다. 동맹국 중 한국만 포함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과 중국산을 가공 수출하는 나라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결단에 달린 통상 규제
하지만 백악관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미국의 한국 때리기가 한국 정부와의 대북 정책에서의 엇박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들어 한국에 대해 두 번 폭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화 제의를 ‘일언반구’없이 받아들이며 뒤통수를 쳤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리셉션 때 북한 정권 지도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한자리에 앉히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유다.
미국으로선 코피 전략(Bloody Nose Strategy)을 흘리며 북한을 몰아붙인 노력도, 지성호 씨 등 탈북자를 내세워 ‘대북 인권 전쟁’을 시작한 노력도 깡그리 무시당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당신과 문 대통령을 이
간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지금 미국 대통령이고 우리는 한국에 연간 31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 이것은 꽤 강한 협상 칩(chip)”이라고 답했다. 무역 적자를 지렛대로 한국이 대북 공조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단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세탁기·태양광전지·철강뿐만 아니라 △호혜세(reciprocal tax) 부과 방침 △GM코리아의 군산공장 폐쇄 환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까지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의 철강 수입 규제 권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상무부는 고율 관세 등 수입 규제 방안을 제안하면서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이해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개별 국가에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하는 것을 봐서 규제 대상에서 뺄 수도, 계속 넣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 의회와 업계의 반발도 변수다. 2월 13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철강·알루미늄의 수입 규제가 관련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을 올려 관련 산업을 죽이고 교역국의 무역 보복만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언론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CNN머니는 2월 18일 “세계 최대 철강 수출국인 중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지만 그 밖의 철강 수출국들에도 영향이 미친다면 파장이 글로벌 무역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자 현재 시카고 카운슬 국제문제협의회(CCGA) 무역 전문가인 필 레비는 CNN 인터뷰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에 대해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 전쟁의 문을 연 셈”이라고 말했다.
psj@hankyung.com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한국과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태양광전지에 이어 철강에도 관세 폭탄을 예고하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보복관세 등을 예고했다.
북한은 한·미 동맹 균열 조짐에 표정 관리 중이다. 한·미 간, 남북 간 갈등 국면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난 후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 상황이 파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맹국 중 한국만 겨냥한 이유는
미국 상무부는 2월 16일 철강·알루미늄 수입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을 담은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철강과 알루미늄의 과도한 수입이 미국 관련 사업의 쇠퇴와 미국 경제 약화로 이어져 국가 안보를 손상할 위협이 있다며 철강 제품의 모든 제품에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모든 국가의 철강 수출량을 2017년 대비 63%로 제한하자는 방안이 담겨 있다.
또한 브라질·한국·러시아·중국 등 12개국 수입 제품에 53%의 관세를 매기고 나머지 국가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량을 제한하자는 안도 함께 내놓았다.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7.7%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미 상무부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미국 철강 업체 가동률을 현재 73%에서 80%로, 알루미늄 업체 가동률을 48%에서 역시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에 대해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 4월 19일까지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중국을 겨냥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 피해가 몰리는 보복 조치다. 1월 수입 세탁기·태양광전지에 대한 30~50% 관세 부과에 이어 둘째 한국 때리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같은 보복 조치가 반도체·자동차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번에 브라질·러시아·터키·인도·중국 등과 함께 철강 분야 12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보고서 공개 직후 미 무역 전문지 ‘인사이드US트레이드’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에 따라 규제 대상을 선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최근 몇 년간 생산능력 증가율과 환적 수출 문제 등의 수입품 성격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 수출 증가율”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이런 발언이 1962년 제정 후 사실상 사장돼 있던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낼 때의 궁색한 논리처럼 명분에 지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규제 대상에서 대미 철강 수출 1위인 캐나다는 빠지고 3위인 한국은 포함됐다. 대미 수출 증가율(2011~2017년 기준)도 한국은 42%에 불과해 규제 대상에서 빠진 대만(116%)·스페인(106%)·아랍에미리트(358%)보다 낮다.
환적 수출(transship)도 근거가 부족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로스 장관은 2월 13일 여야 의원들과의 통상 문제 간담회에서 중국 철강 제품을 수입해 미국에 가공 수출하는 국가를 악당(evildoer)이라고 부르며 이를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 제품을 가공해 미국에 수출하는 분량은 전체 대미 수출량의 2%에 불과하다.
워싱턴 외교가는 미국이 대미 수출 증가율이 높지 않고 중국산 환적 수출도 많지 않은 ‘동맹국’ 한국을 굳이 규제 대상에 포함한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대미 철강 수출국 중 동맹국인 캐나다·일본·독일 등은 모두 빠졌다. 동맹국 중 한국만 포함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과 중국산을 가공 수출하는 나라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결단에 달린 통상 규제
하지만 백악관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미국의 한국 때리기가 한국 정부와의 대북 정책에서의 엇박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들어 한국에 대해 두 번 폭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화 제의를 ‘일언반구’없이 받아들이며 뒤통수를 쳤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리셉션 때 북한 정권 지도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한자리에 앉히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유다.
미국으로선 코피 전략(Bloody Nose Strategy)을 흘리며 북한을 몰아붙인 노력도, 지성호 씨 등 탈북자를 내세워 ‘대북 인권 전쟁’을 시작한 노력도 깡그리 무시당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당신과 문 대통령을 이
간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지금 미국 대통령이고 우리는 한국에 연간 31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 이것은 꽤 강한 협상 칩(chip)”이라고 답했다. 무역 적자를 지렛대로 한국이 대북 공조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단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세탁기·태양광전지·철강뿐만 아니라 △호혜세(reciprocal tax) 부과 방침 △GM코리아의 군산공장 폐쇄 환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까지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의 철강 수입 규제 권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상무부는 고율 관세 등 수입 규제 방안을 제안하면서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이해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개별 국가에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하는 것을 봐서 규제 대상에서 뺄 수도, 계속 넣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 의회와 업계의 반발도 변수다. 2월 13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철강·알루미늄의 수입 규제가 관련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을 올려 관련 산업을 죽이고 교역국의 무역 보복만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언론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CNN머니는 2월 18일 “세계 최대 철강 수출국인 중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지만 그 밖의 철강 수출국들에도 영향이 미친다면 파장이 글로벌 무역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자 현재 시카고 카운슬 국제문제협의회(CCGA) 무역 전문가인 필 레비는 CNN 인터뷰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에 대해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 전쟁의 문을 연 셈”이라고 말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