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 플랜]
-갑을관계 해소에 주력, 5대 그룹에 자발적 개혁 주문도
(편집자 주) 올해 대기업이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다.
경제학자로, 시민활동가로 오랫동안 다듬어 온 그의 ‘재벌 개혁’ 구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초 취임 후 첫 인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할 공정위의 새 진용도 모습을 보였다. 하반기에는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도 예정돼 있다. 김 위원장의 개혁 플랜과 ‘경제 검찰’ 공정위를 집중 분석했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발표된 장관급 인사의 주인공은 바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다. ‘재벌 저격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게 된 만큼 지난해 그의 입과 행보에 모든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 위원장의 지휘 아래 ‘경제 검찰’ 공정위가 대기업들에 어떤 방식으로 칼끝을 정조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예상했던 것만큼 사정 당국의 거센 칼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들과의 소통을 우선시하며 자발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평가는 반반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정부 기조에 맞춘 개선의 움직임이 감지되며 이른바 ‘김상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후 약 9개월 동안 만난 주요 재계 관계자들을 정리해 봤다. 김 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대기업 경영진과 두 차례 간담회
2017년 6월 14일 공정위 수장이 된 김 위원장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주요 대기업(4대 그룹 및 5대 그룹) 경영진과 두 번 만났다.
첫 만남은 당초 예상보다 이르게 성사됐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곧바로 4대 그룹과의 만남을 추진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6월 19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과의 만남을 제안했다고 밝혔고 6월 23일 마침내 4대 그룹 경영진과 마주했다. 취임 약 보름 만이다.
김 위원장이 처음 만남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재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오랜 기간 활동하며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공정위원장에 오른 만큼 재벌 개혁을 압박하는 강공 드라이브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재계 전반에 팽배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 간 정책 간담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당시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현재 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현 부회장) 등 4대 그룹 경영진과 함께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간담회 시작 전부터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본격적인 간담회가 열린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4대 그룹을 비롯한 대규모기업집단은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성공의 증거이며 미래에도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나타냈지만 “기업인들 스스로 선제적인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부정적인 뉘앙스의 ‘재벌’이란 단어 대신 ‘대규모기업집단’이란 표현을 쓰며 참석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시장경제 원리 속에서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그룹 경영자들은 새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담회가 끝난 후 김 위원장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대 그룹 경영자와 국무위원 18명이 한꺼번에 참석하는 모임보다 정말로 진솔한 말씀을 나눌 수 있었다”며 만족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기업 개혁 의지엔 여전히 의구심”
이후 김 위원장은 약 4개월 뒤인 2017년 11월 2일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 둘째 만남을 가졌다. 이번엔 롯데까지 포함한 5대 그룹 경영진이 대한상의에서 김 위원장과 마주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현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현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기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 사항도 제시했다.
그는 이날 자리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을 통한 재벌 개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 과제의 목표에 비춰 볼 때 5대 그룹의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아직까지 의구심이 남아 있다”며 분발을 당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공익 재단을 활용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실태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의 수익 구조를 문제 삼으며 공정위가 나서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해 줄 것을 제안했다.
공정위원장이 6개월 동안 두 차례나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 만난 것은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김 위원장의 대기업 개혁 의지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그간 꿈쩍하지 않던 대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노력을 이어 가는 추세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10개의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 정비와 순환 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을 제외한 4개 기업이, 6대 이하 그룹에서는 현대중공업·CJ·LS·대림·효성·태광 등 6개 기업이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여전히 아쉽다는 평가를 내린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기업의 모습이 완성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려운 만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4~5월 정도에 다시 한 번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의 만남을 추진한다. 향후 이뤄질 만남에서 김 위원장이 과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과제들을 안겨줄지 주목된다. 특히 아직까지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 삼성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 전까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도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의 그간 행보를 보면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만큼 ‘갑을관계’ 해소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취임 약 한 달 뒤인 2017년 7월 18일 세종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맹 거래 공정화를 통한 가맹점주 권익 보호와 건전한 가맹 시장 조성을 목표로 6대 과제와 23개 세부 과제를 포함한 ‘가맹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7월 28일 이와 관련한 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대책이 가혹하다’는 참석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해당 대책의 수립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업계의 자정안 마련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유통 마진이 아닌 매출액·이익 기반인 로열티로의 전환은 물론 물품 구매에서의 사회적 경제 실현 등 업계가 선진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회가 상생을 위한 모범 규준을 10월까지 마련해 준다면 사회적으로 이를 판단해 법령 심의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프랜차이즈협회는 이 같은 요구에 응했다. 지난해 10월 2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자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가맹점 사업자와의 소통 강화 △유통 폭리의 근절 △가맹점 사업자의 권익 보장 △건전한 산업 발전 등 4개의 핵심 주제와 그에 따른 11가지 추진 과제 및 세부 추진 일정 등을 자정안에 담아 공개했다.
올해 1월 18일에도 김 위원장은 서울 팔래스강남호텔에서 프랜차이즈협회 초청으로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다시 한 번 만났다. 김 위원장은 “가맹본부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고 그 근원은 가맹점과의 상생과 협력”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프랜차이즈협회 측은 자정안 이행을 통해 상생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화답했다.
◆유통업계 ‘갑질’에도 쓴소리
유통업계에 대해서도 프랜차이즈업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갑을관계 해소를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8월 13일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납품 업체 종업원 인건비 분담 의무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 분야 불공정 거래 근절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유통 사업자 단체 대표들과 직접 간담회를 개최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첫 만남은 2017년 9월 6일 열렸다. 김 위원장은 대한상의에서 유통업계 6개 사업자 단체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갑수 체인스토어협회 회장, 박동운 백화점협회 회장, 강남훈 TV홈쇼핑협회 회장, 김형준 온라인쇼핑협회 회장, 조윤성 편의점산업협회 대표, 김도열 면세점협회 이사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유통업계도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대형마트·백화점·TV홈쇼핑 등 압도적인 구매력을 가진 대형 유통 업체들이 납품 업체에 각종 비용과 위험을 전가하고 불이익을 줬던 행태들이 문제시돼 왔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현행 법제도와 집행 체계만으로는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책을 마련했다”며 유통 분야 불공정 거래 대책 수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유통업계의 자발적인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29일 유통업계 6개 사업자 단체 대표와 후속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때 유통업계에서도 프랜차이즈업계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유통 업체 자체 브랜드(PB) 상품 전환 시 납품 단가 인하 문제 개선 △입점 심사 납품 희망 업체에 경영 정보 요구 관행 전면 금지 △전통시장 청년상인 대상 영업 노하우 교육 및 상품 개발 지원 확대 △상생스토어 신설 및 확대 등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상생은 우리 유통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며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지배구조나 불공정 거래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 등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더 강력한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속 가능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 임기 3년을 꼭 채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개혁하되 그런 접근 방식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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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 해소에 주력, 5대 그룹에 자발적 개혁 주문도
(편집자 주) 올해 대기업이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다.
경제학자로, 시민활동가로 오랫동안 다듬어 온 그의 ‘재벌 개혁’ 구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초 취임 후 첫 인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할 공정위의 새 진용도 모습을 보였다. 하반기에는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도 예정돼 있다. 김 위원장의 개혁 플랜과 ‘경제 검찰’ 공정위를 집중 분석했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발표된 장관급 인사의 주인공은 바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다. ‘재벌 저격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게 된 만큼 지난해 그의 입과 행보에 모든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 위원장의 지휘 아래 ‘경제 검찰’ 공정위가 대기업들에 어떤 방식으로 칼끝을 정조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예상했던 것만큼 사정 당국의 거센 칼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들과의 소통을 우선시하며 자발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평가는 반반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정부 기조에 맞춘 개선의 움직임이 감지되며 이른바 ‘김상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후 약 9개월 동안 만난 주요 재계 관계자들을 정리해 봤다. 김 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대기업 경영진과 두 차례 간담회
2017년 6월 14일 공정위 수장이 된 김 위원장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주요 대기업(4대 그룹 및 5대 그룹) 경영진과 두 번 만났다.
첫 만남은 당초 예상보다 이르게 성사됐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곧바로 4대 그룹과의 만남을 추진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6월 19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과의 만남을 제안했다고 밝혔고 6월 23일 마침내 4대 그룹 경영진과 마주했다. 취임 약 보름 만이다.
김 위원장이 처음 만남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재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오랜 기간 활동하며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공정위원장에 오른 만큼 재벌 개혁을 압박하는 강공 드라이브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재계 전반에 팽배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 간 정책 간담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당시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현재 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현 부회장) 등 4대 그룹 경영진과 함께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간담회 시작 전부터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본격적인 간담회가 열린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4대 그룹을 비롯한 대규모기업집단은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성공의 증거이며 미래에도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나타냈지만 “기업인들 스스로 선제적인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부정적인 뉘앙스의 ‘재벌’이란 단어 대신 ‘대규모기업집단’이란 표현을 쓰며 참석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시장경제 원리 속에서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그룹 경영자들은 새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담회가 끝난 후 김 위원장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대 그룹 경영자와 국무위원 18명이 한꺼번에 참석하는 모임보다 정말로 진솔한 말씀을 나눌 수 있었다”며 만족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기업 개혁 의지엔 여전히 의구심”
이후 김 위원장은 약 4개월 뒤인 2017년 11월 2일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 둘째 만남을 가졌다. 이번엔 롯데까지 포함한 5대 그룹 경영진이 대한상의에서 김 위원장과 마주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현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현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기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 사항도 제시했다.
그는 이날 자리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을 통한 재벌 개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 과제의 목표에 비춰 볼 때 5대 그룹의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아직까지 의구심이 남아 있다”며 분발을 당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공익 재단을 활용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실태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의 수익 구조를 문제 삼으며 공정위가 나서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해 줄 것을 제안했다.
공정위원장이 6개월 동안 두 차례나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 만난 것은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김 위원장의 대기업 개혁 의지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그간 꿈쩍하지 않던 대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노력을 이어 가는 추세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10개의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 정비와 순환 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을 제외한 4개 기업이, 6대 이하 그룹에서는 현대중공업·CJ·LS·대림·효성·태광 등 6개 기업이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여전히 아쉽다는 평가를 내린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기업의 모습이 완성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려운 만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4~5월 정도에 다시 한 번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의 만남을 추진한다. 향후 이뤄질 만남에서 김 위원장이 과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과제들을 안겨줄지 주목된다. 특히 아직까지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 삼성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 전까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도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의 그간 행보를 보면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만큼 ‘갑을관계’ 해소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취임 약 한 달 뒤인 2017년 7월 18일 세종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맹 거래 공정화를 통한 가맹점주 권익 보호와 건전한 가맹 시장 조성을 목표로 6대 과제와 23개 세부 과제를 포함한 ‘가맹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7월 28일 이와 관련한 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대책이 가혹하다’는 참석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해당 대책의 수립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업계의 자정안 마련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유통 마진이 아닌 매출액·이익 기반인 로열티로의 전환은 물론 물품 구매에서의 사회적 경제 실현 등 업계가 선진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회가 상생을 위한 모범 규준을 10월까지 마련해 준다면 사회적으로 이를 판단해 법령 심의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프랜차이즈협회는 이 같은 요구에 응했다. 지난해 10월 2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자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가맹점 사업자와의 소통 강화 △유통 폭리의 근절 △가맹점 사업자의 권익 보장 △건전한 산업 발전 등 4개의 핵심 주제와 그에 따른 11가지 추진 과제 및 세부 추진 일정 등을 자정안에 담아 공개했다.
올해 1월 18일에도 김 위원장은 서울 팔래스강남호텔에서 프랜차이즈협회 초청으로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다시 한 번 만났다. 김 위원장은 “가맹본부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고 그 근원은 가맹점과의 상생과 협력”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프랜차이즈협회 측은 자정안 이행을 통해 상생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화답했다.
◆유통업계 ‘갑질’에도 쓴소리
유통업계에 대해서도 프랜차이즈업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갑을관계 해소를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8월 13일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납품 업체 종업원 인건비 분담 의무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 분야 불공정 거래 근절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유통 사업자 단체 대표들과 직접 간담회를 개최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첫 만남은 2017년 9월 6일 열렸다. 김 위원장은 대한상의에서 유통업계 6개 사업자 단체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갑수 체인스토어협회 회장, 박동운 백화점협회 회장, 강남훈 TV홈쇼핑협회 회장, 김형준 온라인쇼핑협회 회장, 조윤성 편의점산업협회 대표, 김도열 면세점협회 이사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유통업계도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대형마트·백화점·TV홈쇼핑 등 압도적인 구매력을 가진 대형 유통 업체들이 납품 업체에 각종 비용과 위험을 전가하고 불이익을 줬던 행태들이 문제시돼 왔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현행 법제도와 집행 체계만으로는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책을 마련했다”며 유통 분야 불공정 거래 대책 수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유통업계의 자발적인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29일 유통업계 6개 사업자 단체 대표와 후속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때 유통업계에서도 프랜차이즈업계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유통 업체 자체 브랜드(PB) 상품 전환 시 납품 단가 인하 문제 개선 △입점 심사 납품 희망 업체에 경영 정보 요구 관행 전면 금지 △전통시장 청년상인 대상 영업 노하우 교육 및 상품 개발 지원 확대 △상생스토어 신설 및 확대 등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상생은 우리 유통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며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지배구조나 불공정 거래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 등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더 강력한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속 가능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 임기 3년을 꼭 채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개혁하되 그런 접근 방식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 플랜 커버 스토리 기사 인덱스]
-‘숨 가쁜 9개월’…김상조가 만난 사람들
-김상조 인터뷰 “주요 그룹 경영진 한 차례 더 만난다”
-20여 년간 대기업과 맞서온 ‘진보 경제학자’
-전문가 6인이 본 ‘김상조 공정위’ 9개월 평가
-공정위의 핵심 인맥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김상조와 ‘닮은꼴’ 역대 공정위원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