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정책에도 잡히지 않는 집값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2005년 8·31 대책과 흡사한 ‘반짝 효과’…4개월 만에 1%대 상승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8·2 대책 후 9월과 10월만 주춤했을 뿐 11월에는 전달에 비해 0.62%, 12월에는 0.66%로 시장이 다시 살아났다.

참고로 한 달에 0.5%만 오르면 시장이 활기에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달에 0.5%씩만 꾸준히 올라도 1년에 6% 정도 오르는 셈인데, 서울 아파트 시장은 2006년을 마지막으로 연간 상승률이 6%를 넘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올 들어 1월 1.12%에 이어 2월 1.42%로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 시장만 보면 8·2 대책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8·2 대책은 실패한 것일까.

◆ 강남만 타깃으로 하는 규제의 오류

정부 정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13년 전인 2005년의 8·31 대책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8·31 대책은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규제였다. 8·31 대책이 주택 시장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면 2005년 9월의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0.17%였다. 7월의 1.93%나 8월의 0.45%에 비해서는 크게 낮아졌지만 집값은 더 올랐다.

하지만 이것은 기간의 착시 현상이다. KB국민은행의 통계에서 9월의 상승률은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의 상승률이다. 결국 8·31 조치가 나오기 전의 상승률이 상당히 반영된 셈이다.

이 때문에 8·31 조치의 영향을 온전히 받는 것은 2005년 10월의 상승률이다. 8·31 대책의 영향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서울 아파트 시세가 0.18% 하락했다. 11월에도 0.24% 상승에 그쳐 영향권 내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2월 0.55%, 2006년 1월 0.93%로 반등하더니 봄 이사철을 맞아 서울 아파트 시장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8·31 조치의 수명은 짧게는 3개월, 길게 봐도 6개월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12년이 흘러 8·31 조치와 비견되는 8·2 조치는 어떨까. 앞서 설명한 원리대로 8·2 조치의 영향을 온전히 받는 것은 2017년 9월 상승률부터다. 이를 반영하듯 8월 상승률이 1.05%였던 것이 9월 0.15%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8·2 조치의 약발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하지만 10월에 0.45%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시장이 11월 0.62%, 12월 0.66%를 거쳐 올 들어 1%대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짧게는 두 달, 길게 봐도 네 달밖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정부의 정책이 왜 이리 잘 먹히지 않는 것일까.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책 담당자들의 능력 부족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집값을 잡는다는 설정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5년 전에 10억원이었던 서울 강남의 A아파트 값이 20억원이 됐다고 가정하자. 같은 기간 중 서울 강북의 요지에 있는 B아파트는 5억원에서 10억원쯤으로 뛰었을 것이다.

상승률은 두 아파트 모두 100%다. 하지만 B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강남 입성의 꿈이 더 멀어진 것이다. 5년 전에는 5억원만 더 보태면 강남 입성을 도전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간극이 10억원이나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남 집값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B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집값을 잡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이런 장단에 맞춰 정부는 A아파트 값만 잡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B아파트 소유자의 바람대로 두 집값의 간극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 여론만 좇다 산으로 가는 정책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 강북의 입지가 조금 떨어지는 지역에 있는 C아파트는 지난 5년간 3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 사람에게는 같은 강북인데 B아파트로 갈아타기 하려면 예전에는 3억원만 있으면 됐는데 지금은 5억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투기꾼 A와 B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A, B, C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행복한 투정으로 들린다. 지방 소재 D아파트는 지난 5년간 한 푼도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모두 투기꾼으로 보이기 때문에 서울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여 지방은 놓아두고 서울 집값만 잡았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잘한 것일까. 아니다.

그 집이 싸지면 살까 했던 지방의 실수요자 E는 정부가 집 있는 사람만 우대해 주는 정책을 펴는 것으로 오해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무주택자인 E의 손만 들어줘야 할까.

그런데 유주택자 수가 무주택자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그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A만 적으로 돌린다고 해도 B아파트로 갈아타기가 목표인 C나 (C조차 부러워하는) D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투기가 없어져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어보라. “그렇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그러면 50m쯤 지나 다른 조사 요원이 “당신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어보라.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반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당신 집값만 떨어지는 것에 동의하나”라고 물어보라. 욕먹느라 조사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집이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되 내 집 값이 지속적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뀌어지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5000만 개의 다른 여론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중에서 몇몇 목소리 큰 여론을 좇다 보면 정책이 산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든 정책이라도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정부의 정책이 시장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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