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남의 새 중심지로 ‘우뚝’…영등포가 뜬다

[스페셜 리포트 : 영등포의 변화]
-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수만 69곳, 주거·상업·업무 모든 게 확 바뀌어



영등포 일대가 변하고 있다. 대로변은 물론 주택가 곳곳을 둘러싼 펜스 안에서는 ‘쿵쿵’, ‘쾅쾅’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들려온다. 사업 범위도 엄청나다. 영등포구 내 161만4000㎡가 대상이다. 서울의 3대 도심 중 한 곳이면서도 그동안 오래된 상권과 노후된 시설들로 저평가받았던 영등포역 일대가 새로운 ‘한강 이남 중심지’로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영등포 일대가 혼잡하다. 대규모의 뉴타운 사업과 도시정비사업이 잇달아 추진되면서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졌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펜스 내부에서 시끄러운 공사 소음이 들려오고 도로에서는 대형 트럭들이 건설자재를 쉼 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정비 중인 구역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스산한 정막이 흐르기도 하지만 머지않아 이곳에도 시끄러운 공사 소음이 울려 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공사가 끝나면 영등포는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 2만 가구 들어서는 영등포

영등포 일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공사 소음이 알려주듯이 영등포 일대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공사는 엄청나다. 서울시 도시정비사업 클린업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영등포구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69건이다.

서울시 25개 구 중 가장 많다. 오래된 아파트가 즐비해 재개발·재건축 호재가 끊이지 않는 서초구(58건)도 영등포를 쫓아가지 못한다.

영등포 일대에 부는 재개발·재건축 바람은 크게 주거·상업·업무지구 등 3가지로 나뉜다. 주거는 신길동 236 일대 146만9910㎡에 개발되는 ‘신길뉴타운(2003년)’이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터진 글로벌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부동산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잠시 중단됐던 이 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2020년까지 1만900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인데 이제 절반가량이 분양을 마쳤다. 2014년 1월 영등포동 7가에 들어선 ‘아크로타워스퀘어’ 1221가구를 시작으로 최근 분양된 대림동 ‘e편한세상 보라매 2차’ 859가구까지 총 12개 사업지에 9458가구가 새로 만들어졌다.

영등포에는 앞으로 9636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3401가구는 올해 분양이 예정돼 있다. 당초 3월 분양에 나설 예정이었던 ‘당산센트럴 아이파크’ 802가구, ‘신길파크 자이’ 641가구는 4월 분양에 나서고 ‘영등포 중흥 S-클래스’ 308가구는 상반기, ‘신풍역 신동아파밀리에’ 1650가구는 연말에 분양을 시작한다.

나머지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신길동 ‘남서울 아파트’ 등 13개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6235가구는 아직 일정이 미정이다. 조합이 이제 막 설립된 곳부터 철거에 들어간 곳까지 다양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큰 무리 없이 순차적으로 분양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등포에 들어서는 아파트들은 분양에 큰 걱정이 없는 모습이다. 영등포 일대가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시장의 반응이 워낙 좋다. 이 때문에 별도로 홍보하지 않아도 분양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실제로 가장 최근인 3월 7일 분양에 나선 ‘e편한세상 보라매 2차’는 1순위 청약에서 500가구(특별 공급 제외) 모집에 총 4750명이 청약 신청해 평균 9.5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4월 분양을 앞둔 GS건설 관계자는 “영등포에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며 “아직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등포 주택 매매가격 종합지수는 2015년 12월 주택 가격을 기준(100)으로 지난해 12월 109.5를 기록하며 강남(110.4) 다음으로 높았다.

뉴타운 일대 공급된 아파트들이 시세 상승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신길뉴타운 래미안에스티움은 전용 59㎡ 지난해 3월 5억7500만원에서 올해 2월 7억500만원으로 1년 만에 20% 이상 올랐다. ‘아크로타워스퀘어’ 전용 84㎡는 입주 시점인 지난해 8월 8억3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9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신길뉴타운·영등포뉴타운 개발로 주거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면서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영등포 역사 일대에 들어서는 ‘마천루’

영등포의 상업지역 역시 큰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영등포 역사 일대인 영등포 2가·5가·7가 등 14만4000㎡ 규모의 부지는 영등포뉴타운으로 지정돼 경인로~문래예술창작촌까지 이어지는 서남권 ‘경제 거점’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영등포 역사 주변과 경인로 대로변에는 고층 건물과 호텔 등이 대거 들어서게 된다.

현재 영등포의 대표 상권인 역사 주변은 두 가지 모습을 품고 있다. 일부 부지에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돼 영등포 타임스퀘어·대형마트·백화점 등 세련된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이 일대에는 아직 허름한 저층 건물이 많아 마치 1980~199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심지어 대로변을 사이에 두고 쪽방촌과 집창촌이 마주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대형 상가 주변에만 머무르는 실정이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역사 주변을 확 뜯어 바꿀 계획이다. 2021년까지 65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4개 동과 상업 시설 1개 동을 건립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영등포 집창촌 부지 규모가 1만5000㎡에 달하는 데다 부지 전체가 일반상업지역이어서 용적률을 최대 800%까지 적용받을 수 있어 분리 개발하더라도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경인로변 인근 노후 단독주택과 창고, 근린생활시설에도 변화가 일 예정이다. 역사에서 문래동 쪽으로 내려오면 조그만 철공소와 영세 제조업체가 줄을 잇는다.

철공소 밀집지로 들어가면 지하철 문래역 인근 아파트 단지의 담을 경계로 한쪽엔 주거지, 다른 한쪽엔 금속·철재 등을 다루는 철공소들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철공소 사이사이에 들어선 아담한 커피숍·파스타집에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 지역은 이른바 ‘문래예술창작촌’이라고 불리는 영등포구의 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열악한 도로 환경, 낡은 건물, 숨 쉴 때마다 매캐한 냄새가 느껴져 상업지구로서의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철공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역시 불편을 겪고 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일하는데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카메라를 찍어대는 통에 문래동 철공소 주변 곳곳에 ‘초상권을 존중해 달라’는 안내판까지 나붙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문례동 지역을 역사 주변과 이어지는 ‘경제 기반형’ 사업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개발 구상안에는 영등포역 전면부 경인로 대로변 일대에 39층 호텔과 22~29층 업무 시설 등을 지어 기업을 유치하고 문래예술창작촌 주변을 정비해 문화예술과 상권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철공소와 영세 제조업체들은 스마트 공장을 지어 이주를 유도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도록 할 계획이다.

영등포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기존 계획만 있고 추진되지 않은 일대 개발을 이번을 계기로 다시 진행하려고 한다”며 “길게는 10~20년 걸리는 장기 사업을 도시재생과 상충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2014년 들어선 아크로타워스퀘어 일대.


◆ 기업이 찾아오는 업무지역으로

영등포뉴타운 개발에는 업무지구 활성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인근 여의도보다 낮은 임대료, 편리한 교통 접근성 등을 알고 있는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입주를 희망하고 있어 업무 시설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사실 그동안 영등포구는 대표적 오피스 상권으로 꼽히는 인근의 여의도 권역에 밀려 기업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잇단 대규모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현재 영등포 역사 주변의 대형 건물인 타임스퀘어·이레빌딩·영시티 등에는 스타트업과 중소 IT 기업, 보험사·금융사 콜센터 등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영등포 상권의 오피스 임대료는 ㎡당 1만2400원이다. 서울 전체 평균(㎡당 1만7200원)보다 싸다. 임대료는 낮지만 도심으로 오가기 편한 지하철 1호선과 2호선·5호선·9호선이 지나고 이들 환승역도 세 군데나 있다.


(사진) 주변·타임스퀘어·백화점 등 대형 건물 주변에는 아직 허름한 저층 건물들이 많다.


오피스의 투자수익률 역시 영등포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오피스의 공실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감정원이 지난해 3분기 프라임급 오피스 시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영등포구의 투자수익률은 전 분기(1.43%) 대비 0.31% 올라 1.74%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 전체 평균 투자수익률 1.57%보다 높다. 프라임급 오피스는 건축 총면적 기준 3만3000㎡ 이상의 사무용 빌딩을 말한다.

영등포역 인근 오피스 전문 중개업자는 “도심과 강남권 업무지구에 있는 프라임급 오피스 빌딩에 들어가지 못하는 중소업체들이 가산·구로 등지에서 영등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며 “주변 여의도 업무지구에 비해 임대료가 싸지만 교통 여건은 떨어지지 않아 기업 이주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는 이번 영등포뉴타운 개발을 통해 용산역 일대처럼 변하길 원하고 있다.

용산역 인근 집창촌은 이미 재개발 사업을 통해 래미안용산·용산푸르지오써밋 등 고급 주상복합 단지들이 잇달아 들어섰고 아모레퍼시픽·현대산업개발 등 기존 대기업 사옥들에 더해 LG유플러스·CJ CGV 등 다른 대기업들도 잇달아 사옥을 옮겨오면서 서울의 새로운 업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밖에 영등포는 문래동 공공 공지 1만2947㎡에 대규모 공연장을 건립하고 서남권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거점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사진) 허름한 저층 건물이 많은 경인로변.


◆ 우범지역 이미지 벗어

영등포에서 일고 있는 또 다른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이미지다. 서울 속의 작은 중국으로 불리는 대림동을 품고 있는 영등포구는 그동안 각종 살인 사건, 경찰도 꺼리는 지역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죽하면 지난해 하반기 나란히 개봉해 도합 1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범죄도시’와 ‘청년경찰’의 주요 무대가 서울 내 대표적 중국인 거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이었을 정도다.

영화 속 대림동은 조선족 출신 폭력 조직원들이 서로 칼을 겨누고, 불법 인신매매와 난소 적출이 이뤄지는 어두운 곳으로 묘사됐다. 이 때문에 40여 개의 중국 동포 단체들이 집결해 이들 영화의 상영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대림동은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힘을 합친 결과다.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부터 중소벤처기업부와 영등포구가 18억원을 투입해 시설 현대화를 추진 중이고 중국 상인들은 자율 방범대를 운영하며 치안에 신경 쓰고 있다.

오히려 영화에 묘사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해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 ‘범죄도시’의 촬영 장소로 쓰였던 대림동 근처 한 호프집은 가게 앞에 배우 윤계상 씨의 사진과 함께 ‘아이 들어오늬?’라고 적힌 입간판을 세워두고 있다. 이 마케팅으로 이 가게는 화제를 모았고 자연스레 한국인 손님들을 그러모았다.

이제는 대림동 주변에서 적지 않게 한국말도 들려오고 있다. 중국말 없인 메뉴를 주문하기도 힘들고 한국인을 경계하는 대림동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한국 사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대림동 인근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중국의 투자 자본이 빠지면서 뜨내기 중국인이 줄어들고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이 대림동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들은 대림동을 돈 버는 거리가 아니라 내 아이가 자라는 곳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인근에는 영등포구 대동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에 다니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인 이민 2세다.

10년 전 대림동으로 이주했다는 중국 동포 최 모(36) 씨는 “중국인(중국계 한국인)이 많이 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은 세련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제 대림동도 연남동처럼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이 모여 사는 곳이 됐으니 편견을 극복한다면 ‘제2의 연남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wy@hankyung.com

[돋보기]
간략하게 돌아보는 영등포의 변화

과거 영등포 일대는 따로 개발된 여의도동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주거 선호도가 낮은 지역으로 꼽혔다.

경성방직·방림방적 등 섬유 공장과 대선제분·OB맥주·크라운맥주 등 대형 공장이 자리해 공장 밀집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영등포동·문래동 일대를 중심으로 노후 주택과 쪽방촌·집창촌·공업사가 많았다.

영등포 일대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영등포역 민자 사업이 시작되면서다. 그 중심에 롯데그룹이 있다. 롯데건설이 1990년 영등포역을 준공했다. 1991년 역사 안에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개점되면서 영등포 역사 주변은 상업지역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영등포 일대에 상징적인 아파트는 2001년 지어진 ‘문래 자이’를 꼽을 수 있다. 문래동 3가 일대 방림방적 부지에 1300여 가구 규모로 세워진 이 아파트는 지금까지도 문래동 일대의 시세를 리드하는 아파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영등포를 대표하는 대규모 복합 쇼핑몰로는 2009년 경성방직 부지에 지어진 타임스퀘어가 가장 상징적이다. 개발 초기 주변을 둘러싼 집창촌으로 인해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지금은 영등포 일대를 대표하는 쇼핑몰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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