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에서 난리난 ‘더러운 커피’의 정체

-커피에 초코·원두가루 뿌린 ‘더티커피’…시각적 효과로 달고 쓴 커피 맛 극대화


(사진) 카페 씨스루의 ‘스카치노’. / 이강빈 바리스타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커피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다. 한동안은 콜드브루가, 한동안은 플랫 화이트가 약속이라도 한 듯 소셜 미디어를 가득 채웠다.

최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장식하고 있는 주인공은 ‘더티커피(dirty coffee)’다. 더치커피가 아니다. 커피와 모순되는 단어 같지만 크림이나 우유가 넘쳐흐르고 그 위에 초코 가루나 원두 가루를 지저분하게 뿌려 놓은 형상이다.

중국 상하이의 한 카페에서도 ‘한국에서 유행’이라는 설명과 함께 더티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과연 더티커피는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메뉴일까. 더티커피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게 된 이유는 뭘까. 유명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패션 트렌드와 달리 커피 트렌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더티커피로 시작된 호기심이 커피 트렌드 전반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졌다.

◆자극적 별명이 ‘대히트’의 한 이유


(사진)이태원에서 씨스루를 운영하는 이강빈 바리스타가 ‘스카치노’를 만들고 있다.

“더티커피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얼마 안 됐지만 크림이나 우유가 넘쳐흐르는 플레이팅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있었어요. 아주 특별하거나 새로운 메뉴는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더티커피로 불리며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이태원에서 카페 씨스루(C-Through)를 운영하는 바리스타 이강빈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바리스타학과 겸임교수가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카푸치노 혹은 아인슈페너를 배리에이션하는 과정에서 내용물을 흘러넘치게 한 플레이팅에 더티커피라는 자극적인 별명이 붙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시각적으로 극대화된 음료는 사람들의 ‘인증 샷’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증 샷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누가 원조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티커피라는 용어를 한국에서 대중화한 카페는 용산구에 있는 ‘브랑쿠시’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현성 금속공예가가 만든 플레이트에 크림이 넘쳐흐르는 커피와 묵직하게 올라가 있는 다크 초콜릿이 어우러진 플레이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더티커피로 유명한 다른 카페도 카페마다 레시피가 다르기 때문에 메뉴 이름은 가지각색이다. ‘스카치노(카페 씨스루)’, ‘로쉐(카페 비브레이브)’, ‘더티 카푸치노(겟썸커피)’ 등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만 소비자 사이에서 모두 더티커피로 통용되며 커피의 종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커피의 유행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흐른다.


(사진) 용산구 ‘브랑쿠시’의 더티커피. /브랑쿠시 인스타그램

최근 몇 년간 카페 시장이 급성장했고 시장이 커진 만큼 소비자의 입맛은 더 까다로워졌다. 지난해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커피 입맛이 고급화됐다’는 응답이 44.3%로 2014년보다 4%포인트 늘었다. 커피 전문점을 선택할 때 가격(48.8%)보다 맛(65.2%)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커피 문화 고급화의 한 예로
자신만의 커피 취향을 가진 소비자가 많아졌고 취향에 맞는 원두를 선택하는 수준까지 됐다. 한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빛을 발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잔의 커피에 어떤 가치가 담겼는지’가 더 중요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카페는 추출 방식이나 원두 종류에 따른 맛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음료와 공간의 디자인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강빈 바리스타는 이제 카페도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가 트렌드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웨이팅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웨이팅을 해서라도 카페의 커피나 공간을 경험하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카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카페의 인테리어나 음악, 주인에 따라 내가 돈을 지불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보는 것이다.

커피 트렌드는 소셜 미디어에서 잘나가는 카페들이 이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흥행하는 카페의 레시피나 음료의 비주얼을 많은 카페가 인용하면서 하나의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에스프레소를 얼음처럼 얼려 우유를 부어 먹는 ‘큐브라떼’나 병에 넣은 밀크티가 확산된 사례도 비슷하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로 좌지우지되는 트렌드는 메뉴의 획일화나 도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바리스타는 “음료나 레시피는 저작권이 인정되거나 보호받기 힘들다”며 “도용이나 표절이 많이 발생하고 오히려 유명한 카페가 작은 카페에서 만든 메뉴를 빼앗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