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임플란트', 뇌의 잠재력을 실현하다

-기억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시대 다가온다…사생활 침해 등 윤리적 논란도 산적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1999년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는 인공지능(AI) 기계가 지배하는 상상 속 미래를 실감나게 묘사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주 무대는 AI 기계가 만든 매트릭스라고 불리는 가상현실(VR) 세계다.

등장인물은 뇌 안에 삽입한 칩을 컴퓨터와 연결해 매트릭스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이 무술이나 헬기 조정법 등 각종 기술을 컴퓨터에서 빠르게 내려 받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뇌에 칩을 삽입하는 ‘브레인 임플란트(brain implant)’는 공상과학영화의 단골 소재로 쓰였다.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뇌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대에는 뇌에 이식한 나노 로봇이 클라우드 컴퓨터와 연결돼 수많은 정보를 뇌에 입력하거나 반대로 뇌의 기억을 클라우드 컴퓨터에 저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여러 기업과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영화 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뉴럴링크(Neurallink)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뉴럴링크는 마이크로 전극을 대뇌 피질에 삽입해 인간의 생각을 기록하고 반대로 새로운 정보를 주입할 수 있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라고 불리는 기술을 연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풍부한 정보가 순식간에 뇌에 기록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외국어도 편리하게 익힐 수 있고 고난도 기술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뇌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주목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역시 브레인 임플란트의 잠재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DARPA는 브라운·UC버클리·컬럼비아대 등 미국 내 대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기술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DARPA는 사람의 생각을 컴퓨터에 기록하고 반대로 외부 정보를 뇌에 주입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의료·군사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뇌에 칩을 삽입하거나 혹은 특수 기구나 장치를 머리에 부착하는 것은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뇌파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특정 부위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분석할 수 있다면 팔이나 다리 등을 사용하거나 의사소통 없이도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970년대 자퀴스 비달 UCLA 교수는 뇌파를 측정해 생각을 읽고 활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안했다.

예컨대 신체가 불편한 환자들은 뇌파를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로봇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크고 무거운 착용형 로봇을 착용하는 미래의 군인들은 생각만으로 이를 손쉽게 조종할 수 있다. 뇌파를 해석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면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읽고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오늘날 브레인 임플란트의 발전은 이러한 상상을 조금씩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앤드루 슈워츠 피츠버그대 교수는 전신이 마비된 환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

환자의 뇌에 부착된 칩이 미세한 전파를 감지해 컴퓨터로 전송하면 이를 해석한 컴퓨터가 로봇 팔이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원리다. 슈워츠 교수는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거나 다른 사람들과 악수하는 등 다양한 실험에 성공해 뇌파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청년의 뇌에 ‘뉴로브리지 칩(Neurobridge chips)’이라는 마이크로 반도체를 심었다.

이 청년은 뉴로브리지 칩의 도움으로 생각에 따라 손을 들어 올리는 실험에 성공했다. 뉴로브리지 칩은 환자의 뇌파를 감지해 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청년의 손에 부착된 전극 장치로 전달한다. 신호를 받은 전극 장치는 근육을 자극해 손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

현재 뉴로브리지 칩 기술은 손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뇌파를 입력 받아 글자로 출력하는 기술 개발도 주된 관심 영역이다. 2012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뇌에 부착해 뇌파를 글자로 출력할 수 있는 아이브레인이라는 기술을 발표했다. 아이브레인은 이제는 고인이 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신체를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의사소통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만일 이런 기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될 수 있다면 이러한 한계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닉 램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 역시 루게릭병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뇌파를 측정해 모니터에 글자를 출력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상용화까지 난제도 산적

여러 실험 성과에도 불구하고 브레인 임플란트 연구는 아직까지 초기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본격적으로 브레인 임플란트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각종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수의 전문가들 역시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브레인 임플란트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뇌의 구조 이해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브레인 임플란트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다. 뇌의 어떤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각 부분은 다른 부분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여전히 요원하다.

현재는 뇌파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불완전한 브레인 임플란트 기술은 예기치 못한 반응과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브레인 임플란트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과학·공학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의학·뇌과학·신경과학은 물론 성능과 안전성을 갖춘 기기를 만들기 위해 기계·전자·생명공학·정보기술(IT) 등 매우 많은 분야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윤리적 문제 역시 브레인 임플란트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체 부위에 전자 기기를 삽입하는 것은 자칫 외부에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게 만든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만일 브레인 임플란트가 상용화된다면 사람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 각종 윤리적 논란을 가져올 소지가 높다. 특히 뇌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브레인 임플란트가 가시화될수록 부정적 인식 또한 확산될 수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도 빠르게 늘고 있다. 뇌의 신비를 풀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기술 확보에 엄청난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미국은 2013년부터 뇌의 특성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뇌과학을 연구하는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 역시 뇌과학과 공학 연구를 국가적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인간은 뇌에 대한 아주 작은 지식만 이해하고 있다. 뇌과학 연구가 언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이 매우 어렵고 이를 응용한 기술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뇌에 대한 풍부한 지식 축적은 인류의 오랜 난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뇌의 신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브레인 임플란트 역시 뇌과학의 핵심 기술로, 더욱 활발한 연구와 상용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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