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를 찾아라③] 매력도시 '양양'...서퍼들이 만든 건강한 지역공동체

[커버스토리 : 지방 소도시 부활 프로젝트 : 양양·군산·안동…‘매력 도시’를 찾아라]
-양양군 학생 위해 무료 서핑 강습, 공부방 제공...양양 주민들과 상생하려는 서퍼들
-영화 '시월애', '미장센 단편영화제' 지휘한 이현승 감독, 양양에 '그랑블루 페스티벌' 개최



양양이 한국 서핑 성지가 되기 전, 인구 3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서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커뮤니티는 양양에 활력을 되찾아 줬다. 서퍼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인 양양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양양의 자연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양양이 처음부터 이들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양양 원주민들에게 서퍼들이 불러온 도시의 활력은 원하지 않는 소음이기도 했다.

지역에 새로운 이주민이 들어서게 되면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대립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임대료 같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양양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움을 지향하며 사는 서퍼들의 문화가 양양 원주민에게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주거지가 관광지화되면서 거주민들이 받을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심했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자 서퍼들은 스스로 원주민과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을 이어 가고 있다.


(사진) 이승대 강원서핑연합회 회장 / 서범세 기자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간격을 많이 좁히긴 했지만 여전히 대립 관계가 있어요. 양양은 50년 산 아줌마한테도 이주민이라고 하는 곳이에요.(웃음)"

이승대 강원서핑연합회 회장은 2010년 양양에 정착한 1세대 서퍼다. 강원서핑연합회에서 군청과 서퍼와 마을 주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파출소에서 서퍼들을 감시했어요. 외형적으로 피부도 시커멓고 머리도 길고 타투도 해서 좋지 않게 봤지만 이제는 그런 선입견이 거의 없죠.” 그는 서퍼와 마을 주민들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지역 학생들과 소통했다.

양양 해변 마을 학생들은 바다 앞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정작 서핑 문화는 경험하지 못했었다. 이승대 회장은 5년 동안 무료로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쳤다. 강원서핑연합회에서 서핑을 배운 학생들은 500명 정도다.

양양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 수를 합쳐도 2371명인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학생들이 서핑 문화를 경험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서핑의 맥이 이어졌다. 학부모·할머니·할아버지들의 인식도 조금씩 변했다.

현남면에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서핑연합회 사무실을 공부방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찾아왔고 필요할 때는 서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스노보드 선수 출신이에요. 스노보드는 다음 세대가 더 이상 타지 않자 대가 끊겼죠. 서핑도 다음 세대가 지키지 못한다면 맥이 끊길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과의 간격도 좁히고 서핑의 명맥도 이어나갈 수 있게 됐죠.”

◆영화 '시월애' 이현승 감독이 양양에서 영화제 연 이유는



주민들과 문화 콘텐츠로 소통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지난해 여름 양양 죽도 해변에 대형 스크린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석양이 지는 모래사장에 앉아 영화를 보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 둘러앉았다. 어린아이·서퍼·노인 등 모두 어우러져 해변의 영화제를 즐겼다.

스크린에는 이들처럼 바다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서퍼는 물론이고 제주도 해녀, 신화 속 바다 이야기까지…. 바다와 물을 주제로 하는 독립 영화제 ‘그랑블루 페스티벌’의 모습이다.

그랑블루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은 이현승 감독이다. 그는 ‘시월애’, ‘그대 안의 블루’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이 감독은 5년 차 양양 서퍼이자 양양 주민이기도 하다. 2013년 양양 파도를 만나고 인생이 바뀐 그에게 양양은 제2의 고향이었다. 지난해에는 양양의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기사를 읽고 양양으로 주소를 옮겼다. 인생 2막을 파도와 함께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양양 주민으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서핑 말고도 양양의 문화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잘하던 일로 양양에 도움이 되고 싶었죠. 첫 시작은 ‘바닷가에 편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는 15년 전 미장센 단편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기획하고 총괄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랑블루 페스티벌을 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모든 인력과 장비를 서울에서 가지고 와야 했어요. 간단한 무대를 만들려고 해도 서울에서 인력 몇 명이 와서 설치하고 숙박하고 해야 했죠. 영화제 스태프도 다 서울에서 왔어요. 영화제를 대도시에서만 진행해 왔었는데 그제야 왜 ‘지방에 젊은이가 없다’고 하는지 체감했죠.” 올해도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지만 양양군 안에서 소화하고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젊은이들이 유입되고 머무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데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어요.” 작년에는 양양의 서퍼들이 발 벗고 나서준 덕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서퍼들은 토요일도 반납하고 다 같이 나서 지역 축제를 함께 만들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매력 도시 양양

양양의 서퍼들은 자신의 삶과 살고 있는 지역까지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며 사람을 그러모은다는 것. 이 세 가지는 매력 도시를 꿈꾸는 지방 소도시의 목표다.

매력의 씨앗을 품었던 도시들이 개발 과정에서 그 빛을 잃는 곳도 봐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서퍼들은 양양의 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을의 변화에 민감했고, 주민들과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군청에 직접 찾아가 관과 협력하고, 마을단위로 모여 토론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양양이 멋진 관광지일수도, 당장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상권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 양양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생활권이다. 그렇기에 양양을 지금처럼 좋은 마을로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머리를 맞대고 상생을 위해 힘을 합친다.

양양은 누군가의 개발이나 계획에 의해 발전하지 않았다. 양양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나간 도시다. 그들의 진정성과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 곧 양양의 문화와 산업이 됐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곧 도시의 매력이 되고 도시의 매력은 도시가 자생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한경비즈니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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