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국내 기업 분석은 ISS가 못 따라오죠”

[스페셜 리포트 Ⅰ]
-비재무적 요소까지 종합적인 판단이 중요…“더 민감해진 시장 반응 실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과 함께 증권업계에서 자주 들려오는 이름 중 하나는 ‘서스틴베스트’다. 2006년 국내 첫 사회책임투자 전문 리서치 회사로 출발했다. 2007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를 분석해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수준 평가를 시작했다. 2013년 민간 기업 가운데서는 국내 처음으로 의안 분석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수많은 ‘국내 첫’ 사례를 만들어 온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를 만났다. 류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와 기업이 소통을 통해 친화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할 또한 어느 한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주와 기업의 가치를 모두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총에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시나요.

“시장에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먼저 우리에게 문의하는 곳이 대폭 증가했거든요. 의안 분석을 요청하는 기업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의결권 자문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의결권 자문사마다 다른 의견을 지나치게 ‘표 대결’ 양상으로 몰고 가는 데는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현재 보고서 하나를 10만~15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 또한 경쟁사의 가격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레드오션’이 된 것 같아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서스틴베스트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나요.

“서스틴베스트는 법률학자·회계사·금융전문가 등이 모여 오랜 시간에 깊이 있는 리서치를 바탕으로 각 사안별 가인드라인을 제정해 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차임기제(이사들의 임기를 분산해 순차적으로 선임하도록 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성공하더라도 이사를 일시에 바꾸지 못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식입니다.”

-‘가이드라인’만으로 모든 사안에 적용이 가능한가요.

“논쟁적인 몇몇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형식 논리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하나금융지주의 김정태 회장 3연임 문제만 하더라도 법적인 절차 등에서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셀프 연임’과 관련한 문제라든지 국내 정서를 고려했을 때 ‘정성적인 판단’의 중요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이 때에는 서스틴베스트 내부에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6명의 판단’을 한 번 더 거치게 됩니다. 전문위원들에게는 사안과 관련해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담은 보고서가 전달되고요. 이 보고서를 참고해 회의 없이 각자 독립적으로 투표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의안 분석 결과에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평가가 얼마나 ‘일관성’ 있게 적용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재판에서의 ‘판례’처럼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안 또한 각 사안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겠죠. ISS와 비교하면 오히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국내 기업들에 대해서는 비재무적인 요소 등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전문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비재무적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서스틴베스트는 2007년부터 국내 기업들의 ESG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SG 평가는 비재무적인 요소이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활발한 논의를 거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나 ‘원칙’ 등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가이드라인 등을 매뉴얼화해 자체적인 평가 프레임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습니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일종의 ‘권력 기관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훼손하며 단기적인 투자를 목적으로 한 헤지펀드들의 ‘주주행동주의’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주주권 강화’는 다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말하는 주주권 강화는 ‘주주 행동주의(activism)’라는 용어 대신 ‘주주 관여(engagement)’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의결권 자문사들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의안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문사들의 의안 분석에서 ‘이해상충’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의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주주의결권 강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을까요.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할은 주총의 주요 안건과 관련해 일종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답을 말해 주는 게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기관투자가들과 소액주주들이 모든 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자문사들이 ‘부족한 정보’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의결권 자문사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이끌어 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도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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