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 광물공사, 광해공단이 떠안는다...통폐합 과정서 진통 예상

-해외 자원개발 업무는 민간으로…광해공단 “왜 우리에게 책임 떠넘기냐” 반발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무리한 해외 자원 개발로 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이른바 ‘자원 개발 공기업 3사’는 거액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투자한 대형 사업의 부실화로 향후 추가 손실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 기관 구조조정 방안이 모습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광물 분야 자원 개발과 관련한 체제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잇단 개발 사업 실패로 자본 잠식에 빠진 광물공사를 광해관리공단과 통합해 ‘한국광업공단’을 신규 설립하기로 했다. 또한 향후 광물 자원 개발의 중심을 공기업이 아닌 민간 기업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산업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구조조정 향방도 주목된다.

◆자원 개발 사업 사실상 실패

한국은 대표적인 자원 빈국에 속한다. 따라서 해외 자원 개발을 통한 국가 차원의 에너지와 광물자원 확보에 공을 들여 왔다. 급변하는 에너지 및 자원 가격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자는 목적에서였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2000년 이후부터 정부 주도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광물공사·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자원 공기업을 전면에 내세워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정부의 이 같은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사실상 실패했다. 산업부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광물공사·석유공사·가스공사 등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해외 자원 개발에 43조8000억원을 투자했지만 이득은커녕 13조7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중구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투자한 대규모 대형 사업의 부실화가 대규모 손실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해당 기간 동안 33조80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됐지만 13조3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투자 대비 수익률을 뜻하는 회수율도 2007년 이전 투자 사업은 92%로 집계됐지만 2008년 이후 추진된 사업의 회수율은 2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100만원을 투자해 21만원만 건진 셈이다.



자원 개발 공기업 3사 역시 실적이 좋을 리 없다. 2016년 기준으로 광물공사의 당기순손실은 9800억원으로 집계됐고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도 각각 1조1100억원, 67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이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광물공사다.

◆광해공단, 강원랜드의 최대 주주

산업부가 이번에 광물공사를 광해공단과 통폐합하기로 결정한 것도 광물공사가 더 이상 ‘독자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광물공사는 멕시코 볼레오 광산 등 해외 보유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대규모 투자 사업의 진행이 지연되면서 지속적으로 부채가 증가해 왔다.

2008년 부채 규모는 5000억원 정도였다. 이후 대규모 자원 개발이 잇따라 이뤄지면서 2010년 처음으로 부채가 1조원이 넘었고 2016년에는 5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광물공사의 자산은 4조3000억원으로 부채 규모가 자산을 능가하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당장 올해만 해도 74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해야 이를 마련할 여력이 없다. 현행법상 공공 기관의 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의 2배로 제한돼 있다. 광물공사의 자본금은 약 2조원, 발행할 수 있는 회사채는 4조원 정도인데 이미 국내 및 해외 사채 3조7100억원을 발행했다. 사채 발행 여력은 약 3000억원으로 차임금을 갚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정부의 추가 출자였다. 광물공사의 자본금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켜 추가로 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통과가 무산됐다.

당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 발언에 나서 “공기업도 잘못 경영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추가 출자에 강한 반대 기류가 형성된 결과다. 이에 따라 자체적인 자금 상환 출구가 모두 막혀 버린 상황에서 이번에 광해공단과의 통합이 결정됐다.

산업부 측은 “자본 잠식과 유동성 위험을 감안하면 광물공사를 존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해외 사업이 계속 운영되면 추가적인 손실 발생 가능성이 높아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광물공사 청산과 관련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공적 기능 유지와 고용 등의 문제로 통폐합으로 결론지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통합 기관인 한국광업공단이 신설되면 광물공사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광해공단은 강원랜드의 지분 36.27% 소유한 최대 주주이면서 여유 자금을 1조원 이상 비축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설명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윈-윈’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광물공사는 자원 개발 외에도 광물 탐사와 개발·생산, 비축 등의 역할을 해왔다. 광해공단은 광해 방지와 폐광 지역 복구 및 진흥 등을 수행해 온 기관이다. 이런 두 기관을 통합하면 전 주기에 걸친 광업 프로세스를 구축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광물 시장 민간 기업이 주도”

통합 기관은 두 기관의 모든 자산과 부채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며 별도 계정(가칭 해외 자산 계정)을 신설해 해외 자산과 부채를 관리한다. 정부는 통합 기관의 재무 및 재정 여건, 자산 매각 완료 이후 잔존 부채 등을 감안해 지원 방안 또한 마련할 예정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한국광업공단의 역할에서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제외한다는 산업부의 선택이다. 기존 광물공사의 해외 자원 개발 직접투자 기능을 폐지하고 나머지 기능만 광해공단과 합친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향후 해외 자원 개발의 중심을 공기업이 아닌 민간 기업으로 이전할 방침이다. 박기영 산업부 에너지자원정책관은 “실제로 세계 광물 시장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과 비교할 때) 비효율적인 공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감안하면 과거와 같은 해외 자원 개방 방식은 타당성이 낮다”고 말했다.

김명준 전남대 교수도 “공기업에는 투자 실패를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었으면 바로 고쳐졌을 부분도 수정되지 않는 것이 많다”며 “공기업이 하는 해외 자원 개발은 문제가 있고 앞으로도 확실하지 않으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이 또 다른 자원 개발 공기업인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TF에서는 두 기관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권고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간 진행한 논의를 보면 두 기관 역시 규모에 비해 효율성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진단한 상태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통폐합 쪽으로 구조조정 방향이 결정되고 향후 석유 및 가스 자원 개발 또한 민간 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한편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설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자원 개발 공기업 구조조정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했는데, 두 기관의 통합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당시 딜로이트 안진도 석유·가스 해외 자원 개발을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민간 기업에 자원 개발 기능 매각을 거론한 바 있다.


▶돋보기
*반발 거세 통폐합 과정에서 진통 예상

산업통상자원부의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 통폐합과 관련한 반발도 만만치 않아 향후 거센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광해공단과 폐광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번 산업부 방침과 관련해 광해공단은 국가의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광물공사와 합쳐져야 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는 정부가 광물공사의 부실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산업부가 통폐합을 논의하면서 광해공단 직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광해공단의 한 관계자는 “산업부와 내부 직원들의 공식 채널을 통한 자료 공유나 상황 공유가 전혀 없었다”며 “직원들을 대상으로 아무런 설득 없이 갑작스럽게 통폐합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폐광 지역 주민들도 걱정이 앞선다. 통폐합 이후 광물공사의 부실을 광해공단이 떠안는다면 재무적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자칫 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광물공사라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관계자는 “(광물공사가) 이렇게 된 원인은 과거 정부의 낙하산 인사나 관리 책임”이라며 “정부가 무조건 광물공사의 역량 부족만 탓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물 자원 개발 역량을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것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창우 동아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한 우물만 판 수많은 광물공사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이 통폐합을 통해 사장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부는 6월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그전에 이해관계인들의 의견 수렴 공청회를 열고 구체적인 공사의 역할과 기능 등에 대한 방향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산업부 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통합추진단도 구성해 세부적인 통합 방식과 절차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정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외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해외 자원 개발 부실의 객관적 실태 파악과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TF가 자원 개발 대책과 관련한 권고안을 제출하면 정부는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 이를 확정하는 구조다. 박중구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가 TF 위원장을 맡고 있고 정부와 학계, 회계 및 법률 전문가, 민간연구소 연구원 등이 구성원으로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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