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시장 설득 못한 변신은 반드시 실패…빌 게이츠의 실패에서 배워라
(사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여자의 변신은 무죄.’ 제법 오래된 광고 카피다. 남자 버전도 있지만 아무튼 새롭게 바꿔 꾸미는 노력이 소중하니 화장품을 사라는 얘기다. 경영학 책에서는 ‘기업의 변신은 무죄’라고 한다.
자기 혁신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기업, 변화를 주도하는 경영자. 경영학 책의 단골 내용이고 성공사례도 반드시 등장한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여기저기 돈을 퍼붓다 망한 회사도 너무나 많다. 언제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고 떠들더니 같은 입으로 끝없는 자기 변신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지적 허영에 기댄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장의 우려 이해하고 설득해야
‘기업은 영속적 존재(going concern)로서 끝없는 혁신으로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경영학 원론 책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기업이 영속적이라는 전제는 회계를 위한 가정일 뿐이고 망할 회사는 당연히 망해야 경제가 잘된다.
기업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원가 배분이나 가치 평가가 심란해 두는 가정이 난데없이 경영의 사명(使命)이 된 셈인데, 생각 없이 외우다 보니 당연한 말이 돼 버렸다.
기업이 변신해 더 잘되자는 일인데 무엇이 잘못됐냐고? 경영자는 자신의 지위를 계속 이어 갈 수 있어 좋지만 투자자는 다르다. 짜장면 가게를 한다고 해서 투자했더니 커피 가게로 바꾸겠다는 데 좋아할 투자자는 없다.
커피 장사를 잘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짜장면 가게 주인에게 돈을 맡기기 싫다면 우선 주주의 권한으로 반대할 것이고 투자금 반환을 요구한다.
짜장면 가게가 잘 안 돼 바꾸겠다면 더욱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상장 기업이라면 주식을 처분할 것이고 집단적 투매로 이어져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자 교체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구글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ISP) 기업으로 변신시키겠다고 발표하자 투자자들은 바로 주식을 투매해 순식간에 기업 가치가 10조원 넘게 사라져 버린 일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SP여서 투자한 것이 아닌 만큼 해당 분야를 더 잘하는 구글에 투자할 테니 투자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짜장면 가게 사장이 독학으로 커피의 대가가 될 수도 있지만 세상은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투자자는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제한적 정보만 갖고 있고 변신에 필요한 구체적 기술이나 사업 전략을 함부로 공개하기 어렵다.
경영자 개인의 능력이나 경영 방식을 바꾸기도 쉽지 않거니와 시간을 두고 형성된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로 형성되면 변신은 더욱 어려워진다.
짜장면 가게가 커피 가게로 변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영자를 커피 전문가로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경영자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해관계, 이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밑천이 경영자의 상징적 가치가 확실할수록 더 도움이 된다. 경영자의 몸값은 이러한 상징 자본에 대한 배당인 측면이 있다.
기존의 짜장면 가게 경영자가 변신을 주도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사업의 관행과 사업 관계가 새로운 사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 요인이 아니라 시너지 요인이 된다는 것을 보이면 되겠지만 불행히도 커피 사업의 투자자나 전문가들은 짜장면 사업을 잘 모른다.
생태계 자체가 많이 달라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사장 자리를 더 유지하려고 자꾸 새 사업으로 바꾸는 것 아니냐. 동생이 커피 원두 수입이라도 하느냐”는 비판적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만약 두 사업을 같이 한다면 몸집만 마구 불려 경영자의 권세를 키운다는 싸늘한 시선에도 답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전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성공한 이도 많다. 접착 메모지로 유명한 3M은 원래 탄광 장비 제조회사였다. 삼성전자는 정미소에서 시작했다. 투자자가 사업을 잘 몰라 엄청난 기회를 놓친 사례도 많다. 과거 런던 금융시장의 거물들은 자동차를 비싼 기름을 퍼 부어야 가는 ‘노새만도 못한 탈것’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기업의 변신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시장을 설득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업 내용과 기술을 다 공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더더욱 어렵다. 투자자들도 누군가의 돈을 끌어다 쓰고 있고 그 전주(錢主)들은 연기금처럼 더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니 그들의 ‘무지와 까다로움’만 탓할 수도 없다.
되는 사업에는 돈과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되는 사업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자기 돈을 갖고 소신껏 사업한다면 모르겠지만 투자금이든, 차입금이든 남의 돈을 써야 한다면 그 사업성과 경영 역량을 납득시켜야 한다. ‘다른 사업’으로의 변신 혹은 확장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
기업의 변신 가능성에 대해 경제학과 재무 분야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 전략 경영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애써 잠재 역량과 시너지를 강조하지만 시장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잘 안 되는 회사는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유동적 경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문가 집단이나 언론은 ‘끝없는 혁신을 통한 변신’에 늘 우호적이다. 적어도 ‘무분별한 문어발식 다각화’가 아니라면 관대한 편이다. 여기에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힘을 합해 키워낸 몇 개 안되는 주요 기업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담겨 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한국GM에서 보듯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화의 시대에 키워낸 기업들은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크고 어쩌다 잘못되면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게 되니 죽든 살든 시장에 맡기고 돈과 사람이 새로운 사업으로 가도록 둘 여유가 없다. 재벌 일가의 탐욕과 무능, 노조의 집단 이익을 비난하면서도 새롭게 변신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를 비교하면 비슷한 고민이 발견된다. 한국에는 프로야구의 기반을 이루는 고교 야구 팀이 50여 개밖에 없다.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있는 선수를 폼 바꾸며 변신시켜 꾸려간다. 전 세계에서 선수가 모여드는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자기가 잘하는 식으로 살아남으면 성공하고 잘 안 되면 다른 길을 간다. 몇 개 대표 기업의 운명을 걱정하며 변신을 기대하는 한국 경제와 망할 회사는 망하게 두고 시장에서 돈과 사람이 새로 배분되도록 하는 미국 경제의 차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앞으로는 어떨까. 연기금이 급속히 커지면서 자본시장의 규모가 실물경제에 비해 부쩍 커지고 있고 산업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변신은 고사하고 빨리 사업을 정리하려는 2~3세 경영자가 곳곳에서 나온다. 메이저리그와 같은 유동적 자원 배분을 적어도 지금보다 더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경영자 vs 시장의 속사정
혁신을 통한 변신을 외치는 경영자. 사실은 하던 사업이 싫으니까(투자자에 대한 설득은 고사하고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회사 자원을 동원해 자기가 좋아하는 사업을 벌이는 이도 있다.
물론 새 사업에 관련된 구매·임대 등의 이득은 고스란히 자기 몫이면서 막상 자기 개인 돈은 투자하지 않는 사례도 발견된다. 사업 다각화, 안정된 포트폴리오 구축, 미래 사업 개발, 갖다 붙일 명분은 경영학 책에 널려 있지만 사실은 투자자에 대한 배임이나 다름없다. 기업 재무 분야에서는 이를 ‘애완용 사업(pet project)’, ‘이익 기회 유용(tunneling)’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사업을 더해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경영자의 권력도 커진다. 회사가 작을 때는 힘들던 자가용 비행기나 전용 별장도 둘 수 있고 신사옥·연수원 등 재량으로 벌일 수 있는 일감도 커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재와 사업 기반을 키운다는데, 그 기간이 도대체 언제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영자에게 충성하는 직원과 관련 기업들이 늘어나면 봉건 영주와 다르지 않고 어지간한 잘못은 슬쩍 숨기기에도 편하다. 비판적 투자자들은 이를 ‘제국 만들기(empire-building)’라고 부른다.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은 무조건 옳을까. 망할 회사는 망하고 더 잘할 사람들이 경영권을 가져가는 유동적 자본시장의 이면에는 인수·합병(M&A)의 속사정이 숨어 있다. 제한된 시간에 투자 수익을 내고 돈을 회수하려면 당장 눈앞의 주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시세조작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자본시장에도 유행이 있어 좋은 사업이 묻히고 거품만 가득한 사업에는 돈이 몰리는 데다 돈 되는 이익 기회를 요구하는 짓은 투자펀드도 다르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투자자들에게 복잡한 설명은 먹히기 어렵다. 여러 개의 사업을 같이하면 한 사업부의 호재가 기업 전체에 주는 의미 등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장비 등을 같이 다루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외 유명 금융사나 투자 펀드, 명동 사채업자 등 심란한 속사정은 어디에나 있다.
빌 게이츠가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변신이 옳았는지, 아니면 당시 시장의 판단이 옳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빌 게이츠도 마이크로소프트를 구글로 만들 수 있다고 시장을 설득하지 못했고 투자자를 모아 새 사업을 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짜장면 가게 사장이 남의 돈으로 커피 가게를 열려면 경영자를 바꾸든, 커피 실력을 입증하든 노력이 필요하고 둘 다 같이하려면 ‘1+1이 3이 되는’ 시너지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이듯이 기업의 변신도 무죄다. 잘하면 덕목이 된다. 하지만 변신을 위해서는 투자자를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대기업의 변신을 무작정 기원하는 무지한 짝사랑은 자본시장을 모르는 엉터리 경영학이다. 경영자의 의지와 숨은 능력을 무시하는 시장만능주의도 혁신의 싹을 자르는 얼치기 경영학이다. 진정한 경영의 지혜는 이런 무지와 편견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시장 설득 못한 변신은 반드시 실패…빌 게이츠의 실패에서 배워라
(사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여자의 변신은 무죄.’ 제법 오래된 광고 카피다. 남자 버전도 있지만 아무튼 새롭게 바꿔 꾸미는 노력이 소중하니 화장품을 사라는 얘기다. 경영학 책에서는 ‘기업의 변신은 무죄’라고 한다.
자기 혁신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기업, 변화를 주도하는 경영자. 경영학 책의 단골 내용이고 성공사례도 반드시 등장한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여기저기 돈을 퍼붓다 망한 회사도 너무나 많다. 언제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고 떠들더니 같은 입으로 끝없는 자기 변신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지적 허영에 기댄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장의 우려 이해하고 설득해야
‘기업은 영속적 존재(going concern)로서 끝없는 혁신으로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경영학 원론 책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기업이 영속적이라는 전제는 회계를 위한 가정일 뿐이고 망할 회사는 당연히 망해야 경제가 잘된다.
기업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원가 배분이나 가치 평가가 심란해 두는 가정이 난데없이 경영의 사명(使命)이 된 셈인데, 생각 없이 외우다 보니 당연한 말이 돼 버렸다.
기업이 변신해 더 잘되자는 일인데 무엇이 잘못됐냐고? 경영자는 자신의 지위를 계속 이어 갈 수 있어 좋지만 투자자는 다르다. 짜장면 가게를 한다고 해서 투자했더니 커피 가게로 바꾸겠다는 데 좋아할 투자자는 없다.
커피 장사를 잘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짜장면 가게 주인에게 돈을 맡기기 싫다면 우선 주주의 권한으로 반대할 것이고 투자금 반환을 요구한다.
짜장면 가게가 잘 안 돼 바꾸겠다면 더욱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상장 기업이라면 주식을 처분할 것이고 집단적 투매로 이어져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자 교체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구글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ISP) 기업으로 변신시키겠다고 발표하자 투자자들은 바로 주식을 투매해 순식간에 기업 가치가 10조원 넘게 사라져 버린 일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SP여서 투자한 것이 아닌 만큼 해당 분야를 더 잘하는 구글에 투자할 테니 투자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짜장면 가게 사장이 독학으로 커피의 대가가 될 수도 있지만 세상은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투자자는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제한적 정보만 갖고 있고 변신에 필요한 구체적 기술이나 사업 전략을 함부로 공개하기 어렵다.
경영자 개인의 능력이나 경영 방식을 바꾸기도 쉽지 않거니와 시간을 두고 형성된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로 형성되면 변신은 더욱 어려워진다.
짜장면 가게가 커피 가게로 변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영자를 커피 전문가로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경영자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해관계, 이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밑천이 경영자의 상징적 가치가 확실할수록 더 도움이 된다. 경영자의 몸값은 이러한 상징 자본에 대한 배당인 측면이 있다.
기존의 짜장면 가게 경영자가 변신을 주도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사업의 관행과 사업 관계가 새로운 사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 요인이 아니라 시너지 요인이 된다는 것을 보이면 되겠지만 불행히도 커피 사업의 투자자나 전문가들은 짜장면 사업을 잘 모른다.
생태계 자체가 많이 달라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사장 자리를 더 유지하려고 자꾸 새 사업으로 바꾸는 것 아니냐. 동생이 커피 원두 수입이라도 하느냐”는 비판적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만약 두 사업을 같이 한다면 몸집만 마구 불려 경영자의 권세를 키운다는 싸늘한 시선에도 답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전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성공한 이도 많다. 접착 메모지로 유명한 3M은 원래 탄광 장비 제조회사였다. 삼성전자는 정미소에서 시작했다. 투자자가 사업을 잘 몰라 엄청난 기회를 놓친 사례도 많다. 과거 런던 금융시장의 거물들은 자동차를 비싼 기름을 퍼 부어야 가는 ‘노새만도 못한 탈것’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기업의 변신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시장을 설득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업 내용과 기술을 다 공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더더욱 어렵다. 투자자들도 누군가의 돈을 끌어다 쓰고 있고 그 전주(錢主)들은 연기금처럼 더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니 그들의 ‘무지와 까다로움’만 탓할 수도 없다.
되는 사업에는 돈과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되는 사업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자기 돈을 갖고 소신껏 사업한다면 모르겠지만 투자금이든, 차입금이든 남의 돈을 써야 한다면 그 사업성과 경영 역량을 납득시켜야 한다. ‘다른 사업’으로의 변신 혹은 확장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
기업의 변신 가능성에 대해 경제학과 재무 분야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 전략 경영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애써 잠재 역량과 시너지를 강조하지만 시장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잘 안 되는 회사는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유동적 경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문가 집단이나 언론은 ‘끝없는 혁신을 통한 변신’에 늘 우호적이다. 적어도 ‘무분별한 문어발식 다각화’가 아니라면 관대한 편이다. 여기에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힘을 합해 키워낸 몇 개 안되는 주요 기업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담겨 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한국GM에서 보듯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화의 시대에 키워낸 기업들은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크고 어쩌다 잘못되면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게 되니 죽든 살든 시장에 맡기고 돈과 사람이 새로운 사업으로 가도록 둘 여유가 없다. 재벌 일가의 탐욕과 무능, 노조의 집단 이익을 비난하면서도 새롭게 변신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를 비교하면 비슷한 고민이 발견된다. 한국에는 프로야구의 기반을 이루는 고교 야구 팀이 50여 개밖에 없다.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있는 선수를 폼 바꾸며 변신시켜 꾸려간다. 전 세계에서 선수가 모여드는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자기가 잘하는 식으로 살아남으면 성공하고 잘 안 되면 다른 길을 간다. 몇 개 대표 기업의 운명을 걱정하며 변신을 기대하는 한국 경제와 망할 회사는 망하게 두고 시장에서 돈과 사람이 새로 배분되도록 하는 미국 경제의 차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앞으로는 어떨까. 연기금이 급속히 커지면서 자본시장의 규모가 실물경제에 비해 부쩍 커지고 있고 산업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변신은 고사하고 빨리 사업을 정리하려는 2~3세 경영자가 곳곳에서 나온다. 메이저리그와 같은 유동적 자원 배분을 적어도 지금보다 더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경영자 vs 시장의 속사정
혁신을 통한 변신을 외치는 경영자. 사실은 하던 사업이 싫으니까(투자자에 대한 설득은 고사하고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회사 자원을 동원해 자기가 좋아하는 사업을 벌이는 이도 있다.
물론 새 사업에 관련된 구매·임대 등의 이득은 고스란히 자기 몫이면서 막상 자기 개인 돈은 투자하지 않는 사례도 발견된다. 사업 다각화, 안정된 포트폴리오 구축, 미래 사업 개발, 갖다 붙일 명분은 경영학 책에 널려 있지만 사실은 투자자에 대한 배임이나 다름없다. 기업 재무 분야에서는 이를 ‘애완용 사업(pet project)’, ‘이익 기회 유용(tunneling)’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사업을 더해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경영자의 권력도 커진다. 회사가 작을 때는 힘들던 자가용 비행기나 전용 별장도 둘 수 있고 신사옥·연수원 등 재량으로 벌일 수 있는 일감도 커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재와 사업 기반을 키운다는데, 그 기간이 도대체 언제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영자에게 충성하는 직원과 관련 기업들이 늘어나면 봉건 영주와 다르지 않고 어지간한 잘못은 슬쩍 숨기기에도 편하다. 비판적 투자자들은 이를 ‘제국 만들기(empire-building)’라고 부른다.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은 무조건 옳을까. 망할 회사는 망하고 더 잘할 사람들이 경영권을 가져가는 유동적 자본시장의 이면에는 인수·합병(M&A)의 속사정이 숨어 있다. 제한된 시간에 투자 수익을 내고 돈을 회수하려면 당장 눈앞의 주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시세조작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자본시장에도 유행이 있어 좋은 사업이 묻히고 거품만 가득한 사업에는 돈이 몰리는 데다 돈 되는 이익 기회를 요구하는 짓은 투자펀드도 다르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투자자들에게 복잡한 설명은 먹히기 어렵다. 여러 개의 사업을 같이하면 한 사업부의 호재가 기업 전체에 주는 의미 등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장비 등을 같이 다루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외 유명 금융사나 투자 펀드, 명동 사채업자 등 심란한 속사정은 어디에나 있다.
빌 게이츠가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변신이 옳았는지, 아니면 당시 시장의 판단이 옳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빌 게이츠도 마이크로소프트를 구글로 만들 수 있다고 시장을 설득하지 못했고 투자자를 모아 새 사업을 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짜장면 가게 사장이 남의 돈으로 커피 가게를 열려면 경영자를 바꾸든, 커피 실력을 입증하든 노력이 필요하고 둘 다 같이하려면 ‘1+1이 3이 되는’ 시너지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이듯이 기업의 변신도 무죄다. 잘하면 덕목이 된다. 하지만 변신을 위해서는 투자자를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대기업의 변신을 무작정 기원하는 무지한 짝사랑은 자본시장을 모르는 엉터리 경영학이다. 경영자의 의지와 숨은 능력을 무시하는 시장만능주의도 혁신의 싹을 자르는 얼치기 경영학이다. 진정한 경영의 지혜는 이런 무지와 편견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