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이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유

-LVMH·무인양품·LF...호텔 비즈니스 뛰어드는 패션업계 “호텔은 제품과 철학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사진) 중국 선전에 있는 무지호텔(MUJI HOTEL)/ 무지호텔 홈페이지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중국 선전에 있는 무지(MUJI)호텔. 올해 1월 문을 연 무인양품의 첫 호텔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로 모든 인테리어를 완성한 로비가 나온다. 객실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무인양품 호텔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슬리퍼·침구·옷걸이 등 생활용품과 가구는 모두 무인양품 제품이다.

재생 목재와 친환경 벽지를 사용해 사소한 부분까지 무인양품의 철학을 담았다. 호텔과 이어지는 공간에는 중국 최대 규모의 무지 매장과 도서관이 나온다. 24시간 운영하는 무지도서관에 가서 무지가 큐레이션하고 발행한 책들을 본다. 무인양품 소파에 앉아 쉬고 무인양품 식기에 가정식을 담아 먹고 무인양품 침구를 덮은 채 잠든다.

무지호텔은 부담스러운 서비스 대신 자연스러운 휴식과 간결함의 미학을 제공한다.
객실에도 미니바나 룸서비스는 없다. 그 대신 침구를 덮고 소파에 앉고 식당에서 식기에 친환경 먹거리를 담을 때에도 무인양품 제품을 사용한다. 무지호텔을 찾은 고객들은 24시간 무인양품의 철학과 제품을 경험한다.


(사진) 중국 선전에 있는 무지호텔(MUJI HOTEL)/무지호텔 홈페이지

◆브랜드 철학 경험하는 쇼룸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은 무지호텔 오픈을 앞두고 “무인양품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있고 우리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점포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선전 무지호텔은 무지 브랜드의 종합 전시장이자 브랜드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무지호텔은 올해 1월 중국 선전에 이어 올여름 베이징에도 들어선다. 일본에는 2019년 봄 도쿄 긴자에 오픈할 예정이다. 무지호텔 긴자점은 총 10층 규모 빌딩에 1~6층은 플래그십 스토어로. 7~10층은 무지호텔로 운영할 예정이다.

일본 SPA 기업 ‘크로스컴퍼니’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에’도 올해 2월 도쿄에 호텔을 열었다. 무지호텔과 마찬가지로 레스토랑과 코에 매장, 호텔을 함께 운영한다.
이처럼 호텔 비즈니스로 외연을 확장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 호텔·레스토랑·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일본 코에호텔/ 코에호텔 홈페이지

호텔이 숙박을 넘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텔은 진정한 휴식을 제공하면서 기업 정체성과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쇼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이 가구·소품·식음료·문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패션업계는 호텔 비즈니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호텔 사업은 유명 럭셔리 브랜드와 패션 기업들이 차세대 비즈니스 영역으로 주목한 지 오래다. 불황과 경기 침체 속에서 의류 사업이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패션 관련 지출 비율은 2013년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주요 패션 채널인 백화점 패션부문 매출 비율도 전년 대비(올해 1월 기준) 여성 캐주얼(-15.0%), 남성 의류(-9.1%), 잡화(-15.4%)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럭셔리와 호텔의 상관관계



패션 브랜드가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럭셔리 브랜드 중 호텔 산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이탈리아 브랜드 ‘베르사체’다. 베르사체의 창업자 지아니 베르사체는 1997년 사망하기 직전 호주의 부동산 개발 업체 선랜드그룹과 손잡고 호텔·리조트 사업에 나섰다. 베르사체 첫 호텔은 2000년 호주 골드코스트에 문을 연 ‘팔라조 베르사체’다.

‘베르사체 궁전’이라는 뜻의 이 호텔은 200여 개의 객실과 90척의 요트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팔라조 베르사체는 시트·식기·세면도구 등 호텔 내에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 모두 베르사체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모든 제품은 단순히 경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호텔 내에 있는 베르사체 부티크에서 구매할 수 있다.

베르사체는 이후 두바이와 마카오에도 아트 디렉터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직접 디자인한 호텔을 오픈하며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베르사체를 시작으로 아르마니·모스키노·페라가모·디올·미소니 등이 뒤를 이어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루이비통·지방시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의 모회사인 LVMH는 2013년 생바르텔르미 프랑스 호텔을 인수한 데 이어 프랑스와 몰디브에 ‘슈발 블랑’ 리조트를 오픈했다. LVMH는 2011년 명품 회사 불가리를 인수하면서 불가리호텔까지 소유하게 됐다.

이탈리아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0년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에 ‘아르마니호텔’을 오픈했다. 아르마니호텔은 부르즈 할리파 건설사인 에마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탄생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장이 직접 총괄했다.

아르마니 회장은 모든 벽을 마모리노 실크로 장식하는 등 고급스러운 자재들을 직접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객실 가구도 ‘아르마니 카사’ 제품들로 채웠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아르마니호텔이 문을 열었다.

(사진) 호주 팔라조 베르사체 호텔 / 팔라조 베르사체 홈페이지

이처럼 럭셔리 브랜드가 호텔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고급 의류·잡화 등 상품을 취급하는 퍼스널(personal) 럭셔리 마켓 규모는 4223억 달러인데 비해 여행·호텔·요트 등을 경험하는 럭셔리 익스피리언스(experience) 마켓은 1조 달러가 넘어 2배 이상이나 큰 시장이다.

이미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한 럭셔리 브랜드는 이름 자체만으로 기존 호텔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쇼룸 등 한정된 전시 공간을 넘어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다.

한국패션협회 관계자는 “호텔은 패션 브랜드에 가장 최선의 브랜딩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특히 호텔은 모든 영역에서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패션 기업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소비 트렌드도 과시보다 만족과 가치를, 소비보다 체험을 중시하는 행태로 변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올해도 패션 시장이 저성장인 상황 속에서 상품 그 자체보다 경험과 참여를 중시하는 ‘상품 이탈 시대’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에 패션 브랜드는 일제히 영역을 뛰어넘는 전략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 중에서는 LF가 가장 다각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LF는 2014년 LG패션이던 사명을 LF로 변경하면서 기업 체질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LF는 주류회사 인덜지의 지분을 인수하고 LF푸드의 가공식품사업부를 넘겨받아 시푸드 뷔페 마키노차야와 일식 생라멘 전문점 하코야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 8월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불리1803을 론칭해 화장품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2018년 주주총회에서도 LF는 패션 기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미래 생활문화 기업이라고 선언했다. 구본걸 LF 회장은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패션 사업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푸드·리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듯 LF는 지난해부터 여성복과 남성복 패션 사업을 축소했고 정기 인사에서도 패션사업부문의 부사장을 선임하지 않고 있다.

LF의 다음 비즈니스 역시 호텔이다. LF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일대에 부티크호텔과 프리미엄 아울렛인 LF스퀘어몰을 오픈할 계획이다.

총 8만2000㎡(2만4805평) 규모에 관광·부티크 호텔 등 120실의 숙박시설과 패션·F&B 관련 150개 매장이 들어설 종합 쇼핑몰이 들어선다. 노천 스파, 실내외 스포츠 시설 등도 계획돼 있다. 1000억원을 투자해 2020년 개장이 목표다.

‘소다’, ‘보그너’ 등 브랜드를 가진 DFD그룹은 2016년 5월 경기도 가평에 어반힐링파크 ‘더스테이 힐링파크’를 오픈했다. ‘더스테이 힐링파크’는 83만㎡(25만 평) 규모에 펜션 부티크, 나인블럭 커피&식당, 내추럴 가든이 믹스된 문화·스포츠·휴식이 있는 공간이다. 앞으로 테마 빌리지와 럭셔리 하우스를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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