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댓글 주의보’

[빅데이터]
-‘확증편향’에 따른 여론 동조화 현상 뚜렷…‘베스트 댓글’조작도 눈에 띄어

[한경비즈니스=최재원 다음소프트 이사] ‘댓글’은 열린 소통의 공간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해당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소통의 공간이 논쟁의 공간이 돼버린 요즘 첨예한 사회문제나 정치 문제는 초반에 형성된 여론의 찬반 비율이 대부분 그대로 유지된다. 그 모티브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댓글이다. 결국 댓글을 장악하면 여론을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초반 댓글 따른 여론 동조화 현상

2월 폐막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단적인 사례다. 당시 남북 단일팀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비판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4년 동안 땀 흘린 선수의 꿈을 짓밟는 행위다”, “스포츠맨십을 해치는 정치 개입”이라며 반대 여론이 높게 형성됐다.

논란 초반 여론조사 결과와 빅데이터상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분석 결과를 보면 약 7 대 3의 비율로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시일이 흘러 찬성 비율도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높았고 올림픽 개막 후에도 이 비율은 그대로 유지됐다.

SNS를 뒤집은 ‘240번 버스 운전사’ 논란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비판해도 늦지 않는다는 소수의 목소리는 버스 운전사를 몰아세우는 다수의 댓글에 묻혔다.

이렇듯 많은 사회문제나 정치 여론들은 초반에 형성된 찬반 비율이 대부분 끝까지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댓글이다.

대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문제나 남북 단일팀 문제처럼 관심이 아주 높은 주제는 하루 십만여 건 이상의 댓글이 달린다. 일반적인 관심 주제는 하루 평균 5만여 건 정도의 댓글이 등록된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똑같은 기사가 어느 포털, 어느 미디어 게시판에 있느냐에 따라 댓글 반응이 완전히 상반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매체 성향이 많은 부분을 작용하겠지만 이 얘기는, 사람들이 기사 내용보다 댓글로 해당 사안에 동조할지 비난할지를 결정하고 그 결정은 초반 댓글 여론에 좌우된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어떤 콘텐츠를 읽기 전에 댓글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동조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 평균 의견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댓글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 밖에 베스트 댓글과 재치 있는 댓글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해당 기사와 관련한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도 댓글을 확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세대별 특징도 있다. 젊은 층은 댓글에서 재미를 찾는 경향이 강했지만 중·장년층은 댓글을 통해 기사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태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론 주도하는 ‘댓글부대’

이러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댓글을 상위에 올려 인터넷 여론을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댓글부대’다. 과거의 댓글부대는 양으로 승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양보다 ‘초반 댓글’을 선점해 여론을 조성한다.

포털 회사마다 댓글 정렬 순서 알고리즘이 다르지만 주요 포털 특정 댓글에 집중적으로 ‘공감’과 ‘비공감’을 누르는 방식으로 베스트 댓글을 갈아치울 수 있다.

예컨대 댓글에 대한 총 공감 수가 적더라도 상대적으로 비공감 비율이 낮으면 얼마든지 베스트 댓글을 차지할 수 있는 네이버의 댓글 선정 방식을 십분 활용한 ‘베스트 댓글 획일화’ 작업이다.

일부 세력이 주도하는 이러한 작업은 여론을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베스트 댓글 몇 개가 마치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온라인상에서는 이렇게 댓글을 직접 달지 않고 특정 댓글의 순위를 올리는 주도 세력을 ‘댓글 양념 부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털 측에서는 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막지만 아이디(ID)와 아이피(IP)를 자동으로 바꾸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같은 시간에 수천 개의 댓글을 달 수 있다고 댓글부대들은 귀띔한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댓글을 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정부는 악성 댓글과 댓글 조작을 인터넷 시대의 ‘디지털 테러’라고 규정하고 본격적인 조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뉴스의 소비도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가 아닌 포털에서 제공하는 뉴스 편성에 의존하게 되면서 기사 재배치를 통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포털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가짜 뉴스나 댓글에 대한 포털의 정화 기능 강화를 요청하고 있다.

포털의 이용 약관에 ‘허위 사실 유포 금지, 욕설 금지’ 등의 조항이 있지만 포털이 약관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고 가짜 뉴스와 악성 댓글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에 대한 개념적·법적 정의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포털에서 가짜 뉴스를 임의로 규정·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포털 측은 억울해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소통의 확산을 측정하는 방법은 관심도·관여도·참여도 등 세 가지다. △게시 글의 조회 수로 표현되는 관심도는 이슈성을 △댓글을 달거나 리트윗 혹은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행위의 관여도는 공감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 글을 올리는 참여도가 있다.

◆확증 편향 이용해 사적 이익 정당화

이 중 관여도가 높은 이슈일수록 확산성이 높게 형성되고 오래 지속되는 특징을 가진다. 문제는 관여도가 댓글부대나 가짜 뉴스 등 조직적 차원의 선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을 거치면서 대중에게 ‘확증 편향’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객관성과 관계없이 자신이 한 번 보고 들은, 이를 통해 믿은 정보에 대해 바꾸려고 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불순한 의도를 품은 이들은 이 확증 편향을 이용해 여론 조작에 사용함으로써 사적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인터넷으로부터 무한한 정보들을 공급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전문 지식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져 주관적으로 정보를 해석해 버리는 ‘확증 편향’은 일반인들에게 점점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비전문 분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 결정에서 시민참여단이 보여 준 공론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4차례 조사에서 처음 형성된 찬반 비율이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에게 확증 편향이란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다.

그나마 몇 번의 토론 과정을 거쳐 처음 생각을 바꾼 연령대는 20대였다. 이들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공사 중단 쪽보다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공사 재개 쪽에 설득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의 댓글은 글자 수의 제한 때문에 논리보다 감성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비논리적 정서에 매몰된 가운데 지극히 경계해야 할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2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관계자들이 네이버 댓글의 문제점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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