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를 알려면 버려야 할 2가지 착각

[경영전략]
반성 중심 일기쓰기는 역효과만…형식적인 피드백은 시간 낭비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지난해 연말, 방송사 연예 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2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와 MBC ‘나 혼자 산다’가 주인공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관찰 예능’이란 점이다.

기존에도 전원주택에서의 단란한 가족 모습이나 예쁘게 꾸며진 신혼부부의 생활상 등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많았다. 하지만 과거 프로그램은 ‘리얼함’ 측면에서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최근엔 리얼함을 더욱 강조한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매니저가 연예인의 행동에 대해 ‘당하는 입장’에서 코멘트를 한다. 패널들 또한 “저러면 안 된다”며 한마디씩 거든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예인이 참 부러웠다. 처음엔 그냥 ‘일상을 찍으면서 출연료를 받으니 좋겠다’는 정도였는데 회가 지날수록 ‘자기 모습을 저렇게 솔직하게 볼 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성인이 된 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를 ‘객관적’ 시각에서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일까. 최근 비즈니스 교육에서도 ‘자기 알기’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1주일간 조직을 떠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교육도 있고 리더 구성원들의 진단 결과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개선점을 찾는 프로그램도 있다. 핵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바꿀 수 있고 그게 조직 성과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자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기 통찰, 이 과정에 사람들이 갖는 대표적 오해가 있다. 2가지 오해를 바로잡아 보자.

◆자기반성의 함정



방학이 끝나갈 무렵 대부분의 아이는 바빠진다. 밀린 방학 숙제 때문이다. 그때 가장 어려운 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일기 쓰기다. 하루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뭘 반성해야 할지, 배울 점이 뭔지 생각해 보라는 의미를 가진 일기…. 하지만 아이들의 고민은 다른 데 있다. ‘어떤 내용을 쓸지’보다 ‘그날의 날씨’ 등 비본질적 문제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기획 의도가 뭐였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을 배워 왔다. 이를 통해 자신을 제대로 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 방식이 그다지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일기를 쓰는 동안 벌어지는 잦은 ‘자기반성’이 오히려 불행해지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게 연구의 요지다.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기 통찰’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생각해 보는 ‘자기반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반성은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다시 말해 과거 시간 프레임 속의 생각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왜 그랬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비슷한 실수를 또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기를 쓴다는 상황을 한 번 그려보면 그게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기는 주로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쓴다. 자기 자신과 단 둘만 있는 환경이란 뜻이다.

그 속에서 지난 잘못을 들춰냈을 때 ‘희망적 각오’로 생각을 이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억울한 생각에 이를 갈며 속으로 복수를 하거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자다 말고 ‘이불킥’을 하고 싶은 때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결국 반성 중심의 일기는 스스로를 계속 부정적 감정 상태로 몰아간다. 그렇기에 일기 쓰기를 통해 “난 스스로를 반성하며 되돌아보고 있으니 충분히 나를 알게 됐어”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기 통찰, 즉 자신을 알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 방법은 결국 일기 쓰기다. 하지만 다른 식의 일기가 필요하다. ‘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로 질문하는 것이다.

자기가 한 판단의 원인을 파고들어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다른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다툼이 있었다면 ‘왜 싸웠나’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다투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개선 방향을 아는 것, 그게 자신을 알아가는 자기 통찰의 시작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은 잘못한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한다. 뭘 잘못했는지 쓰라는 게 요지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만약 반성문을 ‘뭘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뭘 하겠는지’를 쓰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혼동하지 말자. 반성만 한다고 자신을 알게 되는 것도, 개선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적절한 피드백의 3가지 조건

피드백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이 시원하지 않다.

조직 구성원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상사 또는 내 옆 자리의 동료가 “자기가 일하는 방식이나 수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어떤 답을 해 줄 수 있을지를…. 아마도 십중팔구 “별문제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피드백을 수천 개 받는다고 자신을 알 수 있을까. 피드백은 양이 아닌 질이다. 두꺼운 종이로 된 똑같은 피드백 문구가 아니라 진짜 자기를 제대로 봐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 이런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적절한 사람’ 고르기다. 이게 첫 단계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대표적 존재는 바로 부모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부모라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조언자를 갖는다. 해선 안 될 일을 알려주고 잘못된 행동을 꾸짖어 준다. 작은 것이나마 성취했을 때 누구보다 더, 어떨 땐 자기 자신보다 더 기뻐해 준다. 이런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조언자다.

부모라는 존재에 대입해 보면 적절한 조언자(피드백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절대적으로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행동에 눈치를 보며 해야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조언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진짜 피드백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저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발전을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비난이 아닌 제안까지 해 주는 게 필요하다. 너무 어렵다고? 맞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진 말자. 피드백 받기를 포기한다면 자신을 아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숙제가 될 테니까.

만약 조직 내에 없다면 외부로 눈을 돌릴 필요도 있다. 예전 직장 동료 혹은 외부 전문가가 이런 역할을 해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줄 수 있는 거울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는 ‘좋은 질문’ 하기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그만큼 구체적 질문이 필요하다. ‘평소 제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와 같은 질문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이런 부분이 아쉽고 의사결정은 뭐가 좋다’는 식의 코멘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체적 피드백을 듣고자 한다면 자신이 뭘 바꾸는 게 필요할지에 대한 일종의 ‘가설’을 세워야 한다. ‘자신의 지시 방식에 대한 개선 포인트’나 ‘회의할 때의 태도’처럼 피드백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경험해 봤을 법한 행동 위주의 가설이라면 더 좋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자. 한 번에 하나면 충분하다. 피드백의 핵심은 양보다 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마지막 셋째는 ‘절차 공유하기’다. 조언자가 있고 개선을 위한 가설을 세웠더라도 무작정 ‘얘기해 주세요’라고 해선 답이 안 나온다. 상대에게도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본인의 가설을 알려주고 그걸 관찰할 수 있는, 그래서 조언할 내용을 준비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 준비가 제대로 돼야만 의미 있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정기적 피드백 세션을 만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에 한 번이든 분기에 한 번이든 빈도는 중요하지 않다. 본인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한 시간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

사람은 항상 생각한다. ‘뭐가 좋을까, 뭘 하지 말아야 할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어떤 사람일까. 여기서 많은 착각이 시작된다.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만큼 자기를 많이 안다는 착각이다.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 제대로 된 자신을 알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분하자.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이제 생각하기를 넘어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한 통찰의 첫걸음을 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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