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야드 프로젝트’  뉴욕 맨해튼의 지형을 바꾸다

-KKR·블랙록 등 속속 입주… 월스트리트 제치고 금융 중심지로 급부상할 것


[한경비즈니스=김현석 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서쪽 허드슨 강 유역을 가면 수많은 크레인이 하늘을 향해 팔을 내뻗고 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마천루 대여섯 동이 한꺼번에 올라가고 있다.
‘허드슨야드(맨해튼 8번 애비뉴의 서쪽, 30~34번 스트리트 사이의 6개 블록)’로 불리는 이곳에선 맨해튼의 지형을 뒤흔들 새 역사가 써지고 있다. 금융가가 자리 잡은 월스트리트나 중심 상업지구인 미드타운을 제치고 이곳이 올해 말부터 뉴욕의 새로운 중심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8에이커(11만3300㎡, 3만4200평)에 달하는 이곳엔 2024년까지 250억 달러가 투입돼 167만2200㎡ 규모의 초고층 건물 수십 동이 들어선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9월 허드슨야드 개발을 ‘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라고 보도했다.
◆2024년까지 250억 달러 투입
허드슨야드는 맨해튼의 기차역 펜스테이션을 오가는 철도차량 기지다. 공식 명칭은 ‘웨스트사이드 레일야드’다. 맨해튼 한쪽을 덩그러니 차지하던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은 1950년대부터 추진돼 왔다. 하지만 수없이 좌초됐다.
2005년 시작된 허드슨야드 개발 계획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양적 완화에 힘입어 금융 위기가 수습되자 2010년 뉴욕시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부동산 개발 회사 릴레이티드와 손잡았다. 캐나다 온타리오시공무원퇴직연금(OMERS) 계열 부동산 투자사 옥스퍼드프로퍼티스도 합류했고 2012년 12월 착공에 들어갔다.
이른바 ‘허드슨야드 프로젝트’로 불리는 미국 민간 부동산 개발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다. 철도차량 기지 위로 두께 1.8m의 콘크리트 플랫폼을 쌓고 그 위에 오피스 빌딩, 고급 레지던스, 특급 호텔, 쇼핑몰 등 16개 빌딩으로 이뤄진 복합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4000여 개의 최고급 콘도와 ‘더 셰드’라는 이름의 아트센터, 750명을 수용하는 공립학교, 200여 개 객실 규모의 럭셔리 호텔 등도 들어선다. 공원 등 공용 공간이 14에이커(5만6656㎡)에 달한다.
유명 백화점 니먼마커스가 뉴욕 최초로 입점하며 토마스 켈러와 호세 안드레스, 데이비드 창 등 세계적인 요리사들의 레스토랑을 포함해 100여 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상점도 입점한다. 허드슨야드 주변 부지까지 더하면 총 64개의 건물이 지어지는 거대한 역사다. 중국공상은행·도이치뱅크·쿠웨이트투자청·미쓰이부동산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허드슨야드가 월스트리트와 미드타운을 대체할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 것은 미국의 3대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본사를 옮기기로 한 게 시발점이 됐다.
KKR의 헨리 크래비스 회장은 허드슨야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즉각 90층짜리 ‘30허드슨야드’의 최상위 10개 층을 사들이기로 했다. 부동산 투자에도 밝은 크래비스 회장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미드타운 57번가의 본사 빌딩 대신 허드슨야드를 선택했다는 소식에 투자가와 기업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이 맨해튼의 최고급 요지인 파크 애비뉴를 떠나 허드슨야드로 옮기기로 했다. 헤지펀드업계의 거물인 스티브 코언 SAC캐피털어드바이저스 회장과 댄 로브 헤지펀드 매니저도 각각 포인트72애셋과 서드포인트 본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맨해튼 내 빌딩의 연령은 평균 73년에 달한다. 400여 개 중 300개 이상이 1961년 이전에 지어졌다. 반면 허드슨야드에는 최첨단 스마트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선다. 교통도 맨해튼에서 최고 수준으로 편리하다.
MTA는 이미 24억 달러를 투입, 지하철 7호선을 연장해 허드슨야드역을 만들었다. 워싱턴D.C.와 보스턴 등을 잇는 미국 최대의 기차역인 펜스테이션이 코앞에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인 포트 오소리티가 인접하며 뉴저지를 잇는 링컨터널도 목전이다. 스티븐 로스 릴레이티드 창업자는 ‘도시 안의 새로운 도시’라고 허드슨야드를 설명했다.
◆세입자 지키기 나선 건물주들
허드슨야드 입주는 올해 말부터 본격화된다. KKR·블랙록·블랙스톤·실버레이크·서드포인트 등 내로라하는 금융사가 이전한다.
컨설팅 펌인 보스턴컨설팅과 언스트&영의 본사, 미국 3위 은행인 웰스파고의 뉴욕 본사, 제약회사인 화이자 본사,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의 미주 본사, 미디어 회사인 타임워너 본사와 워너브러더스·CNN·HBO·터너 등도 허드슨야드 입주를 예약했다.
1단계로 공사가 진행 중인 30~34가 사이의 ‘이스턴야즈’에는 5개 동의 초고층 타워와 거대한 쇼핑몰이 웅장한 모습을 보였다. 5개 타워 중 ‘10허드슨야드’는 이미 입주를 마쳤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과 패션 회사 코치, 보스턴컨설팅과 SAP 등이 쓰고 있다.
70층 규모의 주거용 건물 ‘15허드슨야드’는 올해 말 완공된다. 1~4개 방을 가진 콘도 300여 개가 들어선다. 1베드룸 유닛(약 79㎡)이 195만 달러부터 팔리고 있다. 임대하려면 최소 월 5000달러부터 시작한다.
51층 규모의 사무용 건물 ‘55허드슨야드’도 올해 말 입주를 시작한다. 헤지펀드인 서드포인트와 실버레이크 등이 입주를 확정지었다.
1, 2단계 개발 외에도 주변 지역 재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허드슨야드의 핵심 지구인 1, 2단계는 6개 블록이지만 42번가에 이르는 허드슨야드 디스트릭트는 모두 45개 블록에 달한다.
부동산 개발 회사 브룩필드가 개발 중인 ‘맨해튼 웨스트’에서는 5개 동의 건물과 1.5에이커(6070㎡) 크기의 공원 등이 지어지고 있다. 실버스타인프로터피스는 41번 스트리트 블록에 57층짜리 주거용 콘도를 건축하고 있다.
34번 스트리트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더 스파이럴’ 빌딩은 26만129㎡ 규모의 초대형 빌딩이다. 화이자는 이 중 7만4322㎡를 임차하기로 확정했다. 체트릿그룹은 37번 스트리트 블록에 46층 규모의 호텔 및 주거용 건물을 개발하고 있다.
맨해튼에서 빌딩 가격이나 임대료가 가장 높은 곳은 미드타운 이스트 지역이다. 센트럴파크 남쪽의 파크 애비뉴~6번 애비뉴 지역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주요 기업들이 속속 허드슨야드 이전을 확정짓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맨해튼의 부동산 값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중개 업체 쿠시먼&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맨해튼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료는 평당피트당 연 72.13달러로 1년 전의 73.37달러보다 내려갔다.
경기 확장세가 계속되면서 공실률은 1년 전의 9.4%에서 8.8%로 낮아졌지만 올해 연말부터 쏟아질 허드슨야드 물량이 많아 압박을 받은 것이다. 쿠시먼&웨이크필드는 향후 2년간 124만4901㎡ 규모의 새로운 최고급 임대 면적이 새로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드타운 건물주들은 최근 빌딩 리노베이션에 거액을 투자하며 세입자 지키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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