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계약금’을 보는 세 가지 관점

- ‘증거금·위약금·해약금’의 성격 모두 가져…대부분의 경우 일방적 몰취는 불가능


[한경비즈니스=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A는 최근 갑자기 대전 지사로 발령 받게 됐다. 얼마 동안 수서고속철도(SRT)로 출퇴근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결국 대전에 새로 지은 조그만 연립주택을 매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준공이 나지 않았지만 투자 가치도 있어 보였다. 또 매도인 B가 제시한 매매 대금은 2억5000만원인데 가계약금으로 1000만원 정도만 먼저 지급하면 자신이 대금을 조금 더 깎아 보겠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다.

또 인근 비슷한 면적의 주택 시세가 3억원 이상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일단 가계약금 1000만원을 부동산 중개인이 알려준 B의 통장에 송금했다.

그런데 1주일 정도가 지난 후 아무리 생각해도 준공도 안 된 집을 매수하는 게 꺼림칙했다. 회사에서도 A를 3개월 후 판교 본사로 다시 발령 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A는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이런 사정을 B에게 이야기하면서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B는 A의 사정으로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이상 가계약금은 당연히 몰취된다고 하면서 반환을 거절했다. A는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가계약은 당사자 간 의사표시 도구

실무상 가계약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정식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 단계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있고 가계약이란 명칭이 사용됐지만 실제로 본계약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도 있다.

또 가계약이라고 하지만 실질은 조건부 계약인 것도 있다. 예컨대 토지에 대한 매매 가계약을 체결하면서 토지 거래 허가가 나지 않으면 매매계약의 효력이 없는 것으로 약정한 것이 그렇다. 가계약을 체결하면서 나중에 본계약을 체결할 때 수정 가능성을 유보하는 것도 있다.

예컨대 건축 도급 가계약을 체결하면서 추후 본계약 체결 때 당사자 일방이 지정하는 제3자를 건축 공사의 공동 계약자로 참여시킬 수 있다고 특약하거나 매매 가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계약상 매수인의 지위를 변경하기로 한 것 등이 바로 그렇다.

이와 같이 가계약의 목적과 유형이 매우 다양하므로 법적 성질과 효과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계약은 결국 ‘당사자들의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로 귀결된다. 일반적으로 당사자들이 앞으로 계속될 교섭의 기초로 삼았을 뿐 장래의 교섭에 의해 수정될 것을 예정하고 있었다면 최초의 가계약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 사안은 A와 B 사이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매매’ 가계약이 성립됐는지 여부가 우선 문제다.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을 것이 요구되고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당해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사항에 관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의사의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정도의 의사의 합치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17다242867 판결).

A는 부동산 중개인이 대금을 감액해 보겠다고 이야기했고 B와 직접 매매 대금에 관해 협의한 것도 아닌 점 등을 들어 매매계약의 본질을 이루는 매매 대금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없었으므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일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A가 B에게 송금한 가계약금 1000만원은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이 돼 B가 A에게 반환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세 가지로 나뉘는 가계약금의 성질

하지만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낙성, 불요식 계약이다(민법 제563조). A도 B가 제시한 매매 대금이 2억5000만원이라는 것을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또 인근 주택 시세 등을 고려한 다음 가계약금을 송금한 사정 등에 비춰 보면 매매 대금이 특정되지 않았다거나 의사의 합치가 없었다는 이유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계약의 성립 여부와 별도로 가계약금 자체의 성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또한 기본적으로 의사 해석의 문제로, 계약금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가계약금이 청약의 ‘증거금’일 때다. 이는 당사자들 사이에 수수된 가계약금은 ‘향후 본계약이 체결되면’ 계약금의 일부로 충당되기로 하고 지급된 금원이므로 당사자들 사이에 실제로 본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이상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위 가계약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둘째, 가계약금이 ‘위약금’일 때다. 당사자들 사이에 일방의 사정으로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이미 지급한 가지급금을 위약금(손해배상의 예정)으로 하기로 특약한 것이다(실무상 위약금 약정은 문서로 작성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위약금은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그 수액을 적절히 감액할 수 있다.

끝으로, 가계약금이 ‘해약금’일 때다. 당사자들 사이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가계약금의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가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565조 제1항).

한편 유상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금이 수수됐다면 계약금은 해약금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이를 위약금으로 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는 이상 계약이 당사자 일방의 귀책 사유로 인해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계약 불이행으로 입은 실제 손해만 배상받을 수 있을 뿐 계약금이 위약금으로서 상대방에게 당연히 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대법원 2007다24930 판결 등)의 태도다.

이 사건은 A와 B 사이에 다른 약정이 없는 이상 A가 B에게 지급한 가계약금 1000만원은 ‘해약금’으로 추정되므로 A는 B와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려면 가계약금을 포기하고 이를 해제할 수 있다.

다만 B도 A가 해약금 약정에 기한 해제권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가계약의 구속력을 벗어나려면 A의 채무 불이행 등 다른 사유로 이를 해제하면서 채무 불이행 등으로 인해 입은 실제 손해만을 배상받을 수 있을 뿐 가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당사자들이 앞으로 계속될 교섭의 기초로 삼았을 뿐 장래의 교섭에 의해 수정될 것을 예정하고 있었다면 최초의 가계약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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