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설계사가 늙어간다’…50세 이상 40.7%

-대형 보험사일수록 설계사 의존도 높아, 생산성 하락 등 ‘경고등’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교보생명 A지점. 이 지점 최고령 보험설계사는 칠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의 평균연령층은 50대다. 비교적 젊은 설계사라고 하면 30대지만 이마저도 소수에 그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온 20대 젊은이는 없다.

50대 보험설계사 이 모 씨는 “20대 설계사들이 와도 1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며 “지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속 설계사(FP)는 대부분이 20년 이상 경험 있는 이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사 1인당 생산성 하락 추세

보험설계사가 늙어가고 있다. 비대면 채널 확산으로 설계사 인력이 축소되는 가운데 청년층의 신규 진입마저 시들해지면서 설계사 조직의 연령대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생명보험 설계사(대리점 소속 제외) 수는 12만2190명이다. 1997년 이후 지난 20년간 연평균 4.3% 감소했다.

이 사이 조직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30세 미만 설계사 비율은 지난해 5.8%로 20년 전보다 16.0%포인트 감소했지만 50세 이상 설계사는 40.7%로 무려 30%포인트 증가했다. 5060 설계사가 전체 생보 설계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셈이다.

자연스레 조직의 평균연령도 높아졌다. 2016년 기준 생보 설계사 조직의 평균연령은 46.4세로 7년 전인 2009년 42.1세에서 수직 상승했다. 설계사를 제외한 금융업 종사자(39.0세)와 제조업(40.7세)은 물론 전체 산업(41.5세)의 평균연령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조직의 고령화 현상은 삼성·교보·한화 등 대형 생보사들이 주도했다. 대형사는 50세 이상 설계사 비율이 47%에 달할 정도로 높은 반면 ING생명·푸르덴셜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는 22.3%로 보험사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대형 보험사들이 경력 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영업 전략을 펼친 반면 외국 회사는 고학력 중심의 젊은 남성 설계사 중심의 영업 전략을 추진한 결과다.




문제는 보험설계사의 평균연령이 높아질수록 보험사의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젊은 설계사에 비해 고령의 설계사는 상대적으로 신규 고객을 만나는 활동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고객의 고령화로 나타나 보험사의 손익 구조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속 설계사들의 월평균 모집액(월납 초회 보험료)을 토대로 생산성을 조사한 결과 50세 이상 설계사 비율이 50%에 가까운 대형사의 생산성 평균은 1명당 51만3000원으로, 10년 전인 2007년 72만7000원에서 20만원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젊은 설계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외국 회사의 생산성은 68만6000원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서는 고령층 설계사의 생산성이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신계약에서는 생산성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 설계사 중심의 보험사 영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 인센티브론 젊은 설계사 못 잡는다”

장기 저성장에 빠진 보험업계에 설계사의 고령화에 따른 수익성 하락은 치명적이다. 방카슈랑스 채널 등으로 설계사 채널을 통한 전통적인 상품 판매 비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2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사들은 전속 설계사들의 의존도가 높은 상태다. 대형 3사의 설계사 판매 비율을 보면 2016년 기준 교보생명 53.6%, 한화생명 28.0%, 삼성생명 20.8%로 생보사 평균인 16.4%를 훌쩍 넘는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험사들이 젊은 신입 설계사의 지속적인 영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청년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있는 지금이 양질의 젊은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적기라는 지적이다.

대형사 역시 젊은 고학력 설계사를 모집하기 위해 20~30대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를 별도 채용 중이다. 젊은 설계사를 둘러싼 업계 간 경쟁도 치열하다. 보험사 관계자는 “20대 설계사가 워낙 많지 않아 물밑에서는 서로 뺏고 뺏으려는 경쟁이 심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착’이다. 신규 설계사가 등록 후 1년 이상 정상적 보험 모집 활동을 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인 ‘13월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을 보면 전체 생보사의 평균 정착률은 2016년 40.2%에서 2017년 38.6%로 1.6%포인트 낮아졌다.

10명 중 6명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업계를 떠났다는 얘기다. 대형 3사의 정착률 하락세는 더 가파르다. 삼성생명은 48%에서 40.2%로, 한화생명은 51.4%에서 47.6%로, 교보생명은 43.8%에서 41.1%로 정착률이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 대책만으로는 젊은 층을 붙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인 인센티브보다 근본적으로 생산성과 직업 안전성을 제고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둬야 장기적 관점에서 젊은 층을 신입 설계사로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성장 기조로 관계 영업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젊은 설계사들을 영입해 육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젊은 설계사들이 블루오션인 젊은 층에서 신규 가입자를 많이 이끌어 내야 하지만 지금은 친인척 등의 관계 영업과 같은 영업 확대에 한계가 있다”며 “설계사의 고령화로 신규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느낀 보험사들은 앞으로 수익 확대 측면에서 점점 더 불리한 구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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