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새로운 기술’로부터 나온 혼란은 ‘새로운 질서’ 만들며 마무리될 것
(사진)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중앙은행 총재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중앙은행(Fed) 총재는 “민간과 정부의 화폐가 경합했던 것이 미국 역사에서 처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5월 열린 ‘코인데스크 컨센서스 2018’에서 “183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던 통화의 90%를 민간이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이런 경합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만이 유일하게 통화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블라드 총재는 “기술의 급속한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세기의 정답이 반드시 이번 세기에도 통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독점 통화관리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코인과 토큰이 범람하는 상황을 미국의 언론들은 ‘와일드 웨스트(wild west)’라고 표현한다. 와일드 웨스트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의미한다. 서부 개척 시대는 무법자이자 개척자가 만들었다.
서부 개척 시대 당시 국가 공유지나 인디언 원주민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한 이들은 ‘무단 침입자’였다. 이들은 100년이 넘는 투쟁 끝에 무법자에서 개척자가 됐다.
당시 국가와 대토지 소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내 무단 침입자들의 오두막을 철거하고 옥수수 밭을 갈아엎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개척자들은 기존의 법이나 행정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재산권을 창출했다.
‘토마호크 권리(tomahawk rights)’가 대표적이다. 소유권이 없는 토지의 나무껍질을 벗기고 도끼로 이름을 새기면 새긴 자의 소유가 된다는 황당한 논리다.
이치에 맞지 않지만 이 관행은 개척자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됐다. 유럽의 구체제(앙시앙 레짐)로부터 벗어난 미국의 개척자들은 국가 질서의 기원이 원래는 ‘사회계약’이었다는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험했던 셈이다. 이 같은 인간의 역사적 전통에 비춰 보면 어떤 혼란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그 혼란을 자생적인 사회계약의 출발점으로 재조명해 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ICO 진영이 주장하는 SAFT
암호화폐 공개(ICO)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모델은 어쩌면 와일드웨스트와 토마호크 권리일지도 모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어떤 형태의 토큰 발행도 유가증권에 해당하므로 허가 받지 않은 토큰 발행은 미국 연방법 위반이라고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ICO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국가다. 정부의 금지 선언 이후 단 한 건도 진행되지 않은 한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국민과 기업들이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법률로 금지한 것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미국인들의 법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라는 해석이 더 타당하다. 금지하는 정부도 금지를 피하려는 개인과 기업도 각론을 놓고 게임을 한다.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거나 무조건 선이라고 주장하는 추상적인 논쟁의 사회적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
SEC가 ICO를 문제 삼는 근거는 토큰을 유가증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자 ICO를 하는 사람들은 “채무나 지분 관계를 내포하지 않는 유틸리티 토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SEC의 논리에 대응했다.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은 “유틸리티 토큰이라고 해도 ICO는 토큰의 사전 판매 때문에 투자 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리에 대응하는 ICO 진영의 고안물은 바로 SAFT다. SAFT(Simple Agreement for Future Tokens)는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ies)에서 따온 개념이다. 투자가 이뤄지는 시점과 투자자에게 토큰이 인도되는 시점을 분리하는 장치로 규제 당국의 법리를 우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CO는 토큰이 화폐처럼 통용되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을 제안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토큰의 판매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뤄진다. 그래서 토큰은 실제로 사용하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없다. 따라서 유틸리티 토큰이 채무나 지분에 관한 권리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사용처가 없는 권리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SAFT로 ICO를 진행하면 플랫폼이 완성된 이후 토큰이 투자자에게 전달된다. 즉 커뮤니티와 플랫폼이 미리 완성돼 있기 때문에 이때부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이 된다. 이때부터 토큰의 가격은 토큰 발행자의 노력보다 커뮤니티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제삼자의 경영적 노력에 따라 가치가 변동된다’는 호위 테스트를 비켜 갈 수 있다.
하지만 SAFT는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투자 시점과 토큰의 양도 시점을 분리하는 행위만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법률 전문가들이 더 많다. 더구나 SEC가 SAFT 기반의 ICO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FT를 이용한 ICO는 늘어나고 있다. 물론 SEC를 비롯한 미국 규제 당국은 SAFT를 토마호크 권리 같은 황당한 관행으로 치부하고 바로 단속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도를 막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이 서부의 광활한 미개척지와 같은 미지의 세계이므로 명시적인 규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법 모두를 규제 당국이 모두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당한 논리라도 만들어 규제를 피하려는 시도가 그나마 정부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안하는 사회적 타협점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로부터 시작된 혼란은 결국 새로운 질서를 창안하는 형태로 안정기에 들어설 것이다. 암호화폐 관점에서 볼 때 구체제를 대표하는 블라드 총재지만 그의 발언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정도 담겨 있다. 혁신에 대한 주류 사회의 관대함 때문에라도 미국은 인터넷 혁신에 이어 블록체인 혁신에서도 주도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돋보기] ‘이미지 거래의 혁신’ 내건 코닥원
전통의 카메라 필름 제조업체 코닥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코닥원(KODAKOne)은 블록체인 기반의 이미지 저작권 관리 플랫폼이다. 코닥원을 개발한 웬디지털이 코닥코인 암호화폐 공개(ICO)를 5월 21일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모금된 1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5000만 달러가 목표다. 파일코인(Filecoin)이 올 초 SAFT(Simple Agreement For Tokens)를 활용해 2000만 달러 규모의 ICO를 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SAFT 방식 ICO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더구나 코닥원의 ICO는 스타트업이 아닌 기존 기업이 프로젝트 자금을 모으는 이른바 리버스 ICO로 올 초에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당초 1월 31일 진행하기로 했던 코닥원의 ICO는 무기한 연기됐는데 규제 당국의 개입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연기됐던 ICO를 진행하기 때문에 규제 당국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코닥원 플랫폼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을 내걸었다. 인터넷에서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은 간단하게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코닥원 플랫폼에서는 이미지들의 사용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사용 계약이 가능하며 사람의 개입 없이도 권리를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로부터 나온 혼란은 ‘새로운 질서’ 만들며 마무리될 것
(사진)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중앙은행 총재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중앙은행(Fed) 총재는 “민간과 정부의 화폐가 경합했던 것이 미국 역사에서 처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5월 열린 ‘코인데스크 컨센서스 2018’에서 “183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던 통화의 90%를 민간이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이런 경합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만이 유일하게 통화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블라드 총재는 “기술의 급속한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세기의 정답이 반드시 이번 세기에도 통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독점 통화관리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코인과 토큰이 범람하는 상황을 미국의 언론들은 ‘와일드 웨스트(wild west)’라고 표현한다. 와일드 웨스트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의미한다. 서부 개척 시대는 무법자이자 개척자가 만들었다.
서부 개척 시대 당시 국가 공유지나 인디언 원주민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한 이들은 ‘무단 침입자’였다. 이들은 100년이 넘는 투쟁 끝에 무법자에서 개척자가 됐다.
당시 국가와 대토지 소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내 무단 침입자들의 오두막을 철거하고 옥수수 밭을 갈아엎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개척자들은 기존의 법이나 행정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재산권을 창출했다.
‘토마호크 권리(tomahawk rights)’가 대표적이다. 소유권이 없는 토지의 나무껍질을 벗기고 도끼로 이름을 새기면 새긴 자의 소유가 된다는 황당한 논리다.
이치에 맞지 않지만 이 관행은 개척자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됐다. 유럽의 구체제(앙시앙 레짐)로부터 벗어난 미국의 개척자들은 국가 질서의 기원이 원래는 ‘사회계약’이었다는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험했던 셈이다. 이 같은 인간의 역사적 전통에 비춰 보면 어떤 혼란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그 혼란을 자생적인 사회계약의 출발점으로 재조명해 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ICO 진영이 주장하는 SAFT
암호화폐 공개(ICO)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모델은 어쩌면 와일드웨스트와 토마호크 권리일지도 모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어떤 형태의 토큰 발행도 유가증권에 해당하므로 허가 받지 않은 토큰 발행은 미국 연방법 위반이라고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ICO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국가다. 정부의 금지 선언 이후 단 한 건도 진행되지 않은 한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국민과 기업들이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법률로 금지한 것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미국인들의 법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라는 해석이 더 타당하다. 금지하는 정부도 금지를 피하려는 개인과 기업도 각론을 놓고 게임을 한다.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거나 무조건 선이라고 주장하는 추상적인 논쟁의 사회적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
SEC가 ICO를 문제 삼는 근거는 토큰을 유가증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자 ICO를 하는 사람들은 “채무나 지분 관계를 내포하지 않는 유틸리티 토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SEC의 논리에 대응했다.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은 “유틸리티 토큰이라고 해도 ICO는 토큰의 사전 판매 때문에 투자 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리에 대응하는 ICO 진영의 고안물은 바로 SAFT다. SAFT(Simple Agreement for Future Tokens)는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ies)에서 따온 개념이다. 투자가 이뤄지는 시점과 투자자에게 토큰이 인도되는 시점을 분리하는 장치로 규제 당국의 법리를 우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CO는 토큰이 화폐처럼 통용되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을 제안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토큰의 판매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뤄진다. 그래서 토큰은 실제로 사용하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없다. 따라서 유틸리티 토큰이 채무나 지분에 관한 권리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사용처가 없는 권리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SAFT로 ICO를 진행하면 플랫폼이 완성된 이후 토큰이 투자자에게 전달된다. 즉 커뮤니티와 플랫폼이 미리 완성돼 있기 때문에 이때부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이 된다. 이때부터 토큰의 가격은 토큰 발행자의 노력보다 커뮤니티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제삼자의 경영적 노력에 따라 가치가 변동된다’는 호위 테스트를 비켜 갈 수 있다.
하지만 SAFT는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투자 시점과 토큰의 양도 시점을 분리하는 행위만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법률 전문가들이 더 많다. 더구나 SEC가 SAFT 기반의 ICO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FT를 이용한 ICO는 늘어나고 있다. 물론 SEC를 비롯한 미국 규제 당국은 SAFT를 토마호크 권리 같은 황당한 관행으로 치부하고 바로 단속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도를 막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이 서부의 광활한 미개척지와 같은 미지의 세계이므로 명시적인 규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법 모두를 규제 당국이 모두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당한 논리라도 만들어 규제를 피하려는 시도가 그나마 정부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안하는 사회적 타협점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로부터 시작된 혼란은 결국 새로운 질서를 창안하는 형태로 안정기에 들어설 것이다. 암호화폐 관점에서 볼 때 구체제를 대표하는 블라드 총재지만 그의 발언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정도 담겨 있다. 혁신에 대한 주류 사회의 관대함 때문에라도 미국은 인터넷 혁신에 이어 블록체인 혁신에서도 주도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돋보기] ‘이미지 거래의 혁신’ 내건 코닥원
전통의 카메라 필름 제조업체 코닥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코닥원(KODAKOne)은 블록체인 기반의 이미지 저작권 관리 플랫폼이다. 코닥원을 개발한 웬디지털이 코닥코인 암호화폐 공개(ICO)를 5월 21일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모금된 1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5000만 달러가 목표다. 파일코인(Filecoin)이 올 초 SAFT(Simple Agreement For Tokens)를 활용해 2000만 달러 규모의 ICO를 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SAFT 방식 ICO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더구나 코닥원의 ICO는 스타트업이 아닌 기존 기업이 프로젝트 자금을 모으는 이른바 리버스 ICO로 올 초에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당초 1월 31일 진행하기로 했던 코닥원의 ICO는 무기한 연기됐는데 규제 당국의 개입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연기됐던 ICO를 진행하기 때문에 규제 당국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코닥원 플랫폼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을 내걸었다. 인터넷에서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은 간단하게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코닥원 플랫폼에서는 이미지들의 사용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사용 계약이 가능하며 사람의 개입 없이도 권리를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