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4050 마음 잡기 나선 일본 기업들

-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부(富)’ 가져…시니어 시장까지 선점 가능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 경제는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대부분이 힘들다고 하는데 실적은 의외로 좋다. 일부 주력 품목의 수출·대기업 성적표에 의존한 ‘평균의 함정’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의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니 균형적인 수출·내수, 제조·서비스의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지금처럼 50%를 웃도는 수출 비율에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주요 선진국 중 이처럼 높은 비율은 없다. 한때 수출 대국이었던 일본도 18%뿐이다. 결국 내수 확대가 시급하다.


문제는 대상과 방법이다. 과거와 달리 구매 여력을 갖춘 새로운 잠재 고객을 소비 현장으로 적극 발굴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래의 내수 시장은 여기에 달려 있다. 구체적으로 베이비부머가 1순위 후보다.


인구 비율과 경제(소득·자산) 규모, 소비 경험, 지출 의향을 감안할 때 1955~1963년생 연령 계층의 잠재적인 소비력은 탁월하다. 시니어 마켓의 주력 고객인 고령 인구와는 소비 환경이 천양지차다. 돈·건강·시간 등 삼박자를 완비한 전에 없던 소비층의 등장이다.


지금 중년은 덩치도 크고 자산도 많다. 절대 빈곤이었던 선배 세대와 다르다. 이들을 불러내야 내수도 늘고 기업도 산다. 발 빠른 기업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베이비부머를 놓치면 희망이 없다는 위기의식은 고객 장악법으로 연결된다. 고정관념을 깬 특별한 접근 전략의 탄생 배경이다.






◆돈·건강·시간까지 ‘3박자’


50대부터 우대하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통상의 경로우대를 확대해 50대까지 낮춰 선점하려는 시도다.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유럽도 50세 이후 할인 혜택이 많아진다. 대개 경로우대는 60대부터지만 갈수록 미들(middle) 인구인 중년 대상 맞춤 서비스로 특화·운영 중이다.


저성장과 맞물리는 고령사회의 소비 둔화를 해결할 카드로 떠오른 중년 대상 우대 서비스는 다양한 목적을 갖는다. 당장 고객층 확대는 물론 입도선매를 통한 미래의 충성 고객으로 묶으면 지속적인 소비가 가능해진다. 까다로운 고령 시장에서의 입소문은 공들여 포섭해 둔 덕이다. 처음엔 수익이 적겠지만 수명 연장을 감안하면 괜찮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호재가 더 있다. ‘일본 노인=평균 부자’의 이미지와 달리 한국은 그간 고령 인구의 빈곤이 문제였다. 가처분소득이 적어 소비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가계 자산의 절대 비중을 가진 베이비부머를 비롯한 예비 노인 4050세대가 고령 인구로 편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소비 여력을 갖춘 예비 노인이어서 향후 고객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일본철도를 책임지는 JR그룹 6개사 모두 시니어 할인 서비스를 장착했다. 국내 여행이 노후 취미의 1순위란 점에서 선점 효과를 노렸다. 말은 시니어지만 뜯어보면 중년까지 커버한다.


가령 ‘풀 문(Full Moon) 부부 그린패스’는 대상 연령이 가장 젊다. 부부 연령을 합해 88세를 넘기면 적용된다. 5일 8만2800엔, 7일 10만2750엔, 12일 12만7950엔 등 3가지 유형으로 일부 열차를 빼고 JR선의 그린열차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부부 중 한 명이 70세 이상이면 요금 할인이 추가된다. 명칭은 다르지만 6개사 모두 50세 이상부터 할인받는다.


JR동일본의 ‘어른휴일클럽’은 50대부터 입회되며(입회금 2575엔) JR동일본과 JR홋카이도를 왕복·편도·연속해 201km 이상 이용하면 요금을 5% 할인해 준다. 1만5000엔으로 4일간 무제한 탑승하는 ‘어른휴일클럽버스’ 등 회원 한정표도 판매한다. 회원 한정 여행 및 이벤트는 물론 여행 업체와 협업한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다.






◆‘3세대 동반 소비’ 결정권 쥔 중년


중년 할인은 유통 업체에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구두 전문점 ‘지요다’는 55세 이상부터 매월 14~17일 4일간 개당 1000엔 이상 구입하면 10%를 할인해 준다. 이른바 ‘해피55(고고)데이’ 서비스다. 영업 지역이 전국구여서 화제를 모았다.


예전 60세부터 적용된 ‘해피 시니어 데이’를 확대한 형태다. 소비에 적극적인 50대를 공략한 추가 전략이다. 회사는 50대의 달라진 고객 욕구를 감안해 시니어란 단어조차 없애버렸다.


관서 지역 중심의 음식점 ‘원다이닝’의 대표 브랜드 갈비점포(원갈비)는 50대의 연령 할인을 메인 서비스로 내걸었다. 요컨대 중년부터 연령 할인 서비스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50대에 무게중심을 둔 것은 그들의 소비 여력에 주목한 결과다. 여전히 현역일 확률이 높은데다 위로는 부모, 아래로는 자녀를 아우르기에 3세대 동반 소비의 결정권을 쥐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혹은 최근 늘어난 50대이면서 손주 동반 방문 가족도 감안했다.


실제로 내점 고객의 연령 구성을 보면 50대가 방문 빈도는 물론 지불 의향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점만 하면 지속 방문의 기대 효과가 높다. 혁신적인 식문화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 저가격·고품질의 스테이크 전문 체인 ‘이키나리 스테이크’도 50세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마일리지 카드를 도입했다.


이른바 시니어 특전으로 음료 무료 제공은 물론 할인 쿠폰 등을 부여한다. 특히 서서 먹는 점포인데도 불구하고 대기 인원이 많으면 우선 입장을 허용해 준다.


노래방 체인 ‘도아이산업’은 시니어 카드의 적용 연령을 55세로 낮췄다. 회사가 운영하는 노래방(점보가라오케광장)에 해당 카드를 제시하면 요금 할인을 받는다. 이용할 때마다 포인트도 쌓이는데 추후 1000엔짜리 우대권과 교환된다.


영화관(TOHO시네마·109시네마 등)도 중년 할인에 적극적이다. 부부 중 1명이라도 50세를 넘기면 2인 기준 2200엔을 받는다. 정상가격에 비해 1000엔 정도 저렴하다. 또 이온의 전자머니(G.G WAON)는 55세부터 매월 15일을 감사일로 정해 할인 특전을 부여한다.


원래 시니어 할인은 은퇴 세대가 대상이었다. 50대 현역 세대까지 우대 할인을 적용한다는 것은 인구 변화와 맞물린 고육지책의 결과물이다. 경영자로선 향후 인구구성을 본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거대한 잠재 고객군이 50대 전후의 중년 그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사전 단계에서 포섭하면 한결 손쉽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은 회원 카드 등 ‘단골손님’을 접객하는 장치를 기본으로 도입한다. 시니어가 돼도 자사 제품의 구매 경험, 자사 서비스의 이용 경험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지만 기업으로선 양보하기 힘든 마케팅 전쟁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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