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에 ‘전기요금 인상’ 수면 위로

-5년여 만에 2분기 연속 영업손실 기록…재무구조 개선 요원해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실적은 향후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다. 한전의 실적이 나빠지고 부채가 쌓이면 그 부담은 국가와 국민이 짊어지기 마련이다.


한전의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이면서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전기요금 인상 카드다. 최근 들어 또다시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전의 실적이 자리한다.


◆국제 유가 상승 등 악재 겹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한전이 최근 공개한 올해 1분기 실적은 참담했다. 127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돼 지난해 4분기 1294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2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기록했다.


한전이 2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2013년 2분기 이후 약 5년 만이다. 올해 1분기 당기순손실도 2505억원 발생해 지난해 4분기(1조3468억원 손실)에 이어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한전의 실적 악화의 이유로 크게 두 가지가 지목된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연료 구입비 인상과 정부 정책에 따른 원전 가동률 하락이다.


한전의 실적은 국제 유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2015년과 2016년 영업이익 10조원대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은당시 급락했던 국제 유가 때문이었다.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 유가(서부텍사스산원유 기준)가 2014년 하반기부터 연일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2015년과 2016년엔 평균 40달러 선까지 떨어졌고 유가에 연동되는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싸졌다. 싼값에 발전 원료를 들여와 제값에 팔 수 있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업이익이 급증한 것이다.


한전은 국내 전기 판매가가 고정돼 있다. 즉, 한전이 발전 원료를 사오는 가격은 계속 국제 정세 등에 따라 변동되지만 한전이 이를 국내에 파는 가격은 시세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싼값에 발전 원료를 들여온 덕분에 당시 한전의 전력 구입 실적 역시 2년 연속 40조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력 구입 실적은 한전이 발전 회사로부터 전기를 사올 때 지불하는 전기의 도매가격이다. 이 가격이 상승하면 한전으로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 유가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국제 유가가 50달러 이상으로 오르자 지난해 한전의 전력 구입 실적은 43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조8000억원 늘어 영업이익을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인상에 신중 기울여야” 지적도


또한 한전의 전력 구입 실적이 늘어난 데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역시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원전에 대한 여론 악화와 안전 점검 강화 등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 중인 24기 원전 가운데 8기가 계획 예방 정비에 들어간 상태다. 이에 따라 올해 원전 가동률은 50%대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 부분 역시 한전의 전력 구입 실적을 늘리는 원인이 됐다. 왜냐하면 한전의 발전 원료 가운데 가장 가격이 싼 것이 원자력이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으로 kWh당 발전 단가는 원자력이 64.15원이다. 유연탄은 88.33원, LNG는 122.82원, 신재생에너지는 94.59원으로 조사됐다.


예방 정비 중인 원전의 공백을 값비싼 다른 발전 원료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전의 실적을 갉아먹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의 이란 제재와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 상승,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 감축 등으로 인해 국제 유가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 돌파가 시간문제라는 견해까지 나온다.


여기에 집권 2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정책이 보다 가속화되는 추세다.


한전 측은 영업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해 비상 경영을 선포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비상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한전이 자구 노력으로 절감 가능한 경영비용 자체가 실적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결정은 정부 손에 달려 있다. 지난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2022년까지 5년간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3월부터 70여 명 규모의 워킹그룹을 구성해 제3차 에너지 기본 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태인데 최근 내부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때만 해도 국제 정세가 괜찮았지만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LNG 가격도 오르는 등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결국 정부가 한전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또다시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나온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전정책실장은 “전기요금 인상은 민생뿐만 아니라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래서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만약 전기요금을 올렸는데 이후 국제 유가 등이 하락 전환되면 다시 이를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국제 정세 등을 모니터링하는 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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