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분양대행 금지’에 면허 브로커’까지 등장

- 건설업 자격증 없는 분양대행사 대부분…분양 성수기에 ‘혼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건설업 등록증이 없는 분양대행사들의 분양대행이 본격적으로 금지되면서 분양 사업장들이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분양대행사들이 마케팅과 홍보는 물론 계약자 서류 접수 등의 업무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건설업 등록증을 갖고 있는 분양대행사는 소수에 그치고 건설업 등록증을 구비할 여건이 되는 곳 역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즉 소수 대형 분양대행사만이 앞으로 시행사로부터 분양대행 업무를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장은 크다. 일부 지역에서는 분양 일정이 미뤄지고 건설업 면허를 중개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혼탁한 분양 시장을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볼멘소리가 건설·부동산 시장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 분양대행 업체는 건설업 등록해야

국토교통부는 4월 26일 ‘무등록 분양대행 업체의 분양대행 업무 금지’ 공문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주택협회 등에 보냈다.

국토부는 ‘건설업 등록 사업자’가 아니면 분양대행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최대 6개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주택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분양 사업 주체는 주택을 분양할 때 청약자 서류 검토 등의 업무를 분양대행 업체에 맡길 수 있다. 분양대행 업체는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정한 건설업자여야 한다.

통상 분양대행 업체는 △청약 서류 접수 △청약자 자격 확인 △당첨자 선정 △분양상담사 관리 등 분양과 관련한 거의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대부분이 청약 접수나 서류 검토 등 단순 업무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외부 분양대행사에 용역을 맡긴다.

하지만 최근 분양대행사가 임의로 당첨자를 변경하거나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고 임의 폐기하는 등 문제가 잇따르자 국토부가 조사에 나섰고 현장에서 건설업 자격이 없는 업체 상당수가 분양대행 업무를 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국토부는 3월부터 행정지도를 하고 관련 규정에 따라 책임 있는 업체가 분양대행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자체 등 관계 기관에 지도 감독을 요청했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주택공급규칙’ 제50조 제4항을 근거로 한다. 이에 따르면 주택 공급 신청자가 제출한 서류 확인 등의 업무는 건설업자가 대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명시된 건설업자는 ‘건설산업기본법’ 제9조에 따라 건설업 등록을 한 자로 규정돼 있다. 이는 2007년 8월부터 적용된 규정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이 규정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분양대행 업무를 업무 효율화를 위해 대행사가 맡아 왔기 때문이다.

사실 국토부도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지난 11여 년간 용인해 왔다. 심지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기업조차 분양대행 업체를 선정할 때 건설업 면허를 요구하지 않았다.



◆ 건설업 면허 중개 브로커 등장

당장 분양대행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 같은 규정이 있는지도 모른 채 분양대행업을 영위해 왔는데 당장 사업을 수주할 수 없게 됐다.

분양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분양대행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분야를 책임지는 업무인데 건설업 면허를 보유하라는 것은 마치 차를 파는 영업 사원에게 자동차 정비자격증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국내 분양대행사 중 관련 면허를 보유한 곳은 신영과 MDM 등으로 알려졌고 월 1~2건 이상의 분양대행 업무를 하는 대부분의 분양대행사는 건설업 등록사업자가 없는 상태다.

분양대행사가 건설업 면허를 직접 따려면 ‘건설산업기본관리법’에 따라 건축공사업 혹은 토목건축공사업 등으로 등록해야 한다.

건축공사업은 자본금 5억원을 마련하고 건축 분야 기술자 5명을 채용해야 하며 토목건축공사업은 자본금 12억원에 건축 분야 기술자를 11명 넘게 채용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장 건설업 등록에 나선다고 해도 승인까지는 일반적으로 20일 정도 걸린다.

건축 분야 기술자 채용 문제도 분양대행사들의 한숨을 깊게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건축기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려고 해도 나중에 경력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분양대행사에 누가 오려고 하겠느냐”며 “분양대행사에서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나중에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할 텐데 누가 이곳에 취업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업 면허를 중개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면허 가격은 공사 실적에 따라 적게는 8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건설기술자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최근 건설기술자를 고용해 건설업 면허 등록을 마친 한 분양대행사는 해당 기술자의 중복 취업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허가 관청으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분양대행업계는 이번 정부의 조치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양대행사 업무와 상관없는 건설업 면허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규제이며 투명성을 높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분양대행사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투명해지기를 바란다면 다른 합리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양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2008년 시행사의 난립으로 분양 시장이 혼탁해지자 부동산개발업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에 대해 의무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면서 이 같은 문제가 없어졌다”며 “정부가 분양대행업에 대해 규제하려고 한다면 이 같은 방법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교부(당시 국토해양부)는 2008년 5월 19일 부동산개발업의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5조, 같은 법 시행령 제10조 등에 의한 ‘부동산 개발 전문 인력의 교육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법인은 일정 수의 전문 인력을 두도록 하고 이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은 지정 교육기관에서 ‘부동산개발업과 직업윤리’ 등 공통 5개 과목을 포함해 총 60시간의 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했다.


◆ 건설사들 대거 ‘분양 연기’

문제는 분양대행사만이 아니다. 건설사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5월 초·중순 분양 예정을 잡았던 건설사들은 대거 분양을 연기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4월 기준 5월 전국 분양 예정 가구 수는 4만7072가구였다. 서울에서만 7591가구가 분양 대기 중이었다. 강남권 재건축사업장으로 시장의 기대가 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우성1 래미안(서초우성1차 재건축)과 양천구 신정동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신정2재정비촉진구역 1지구 재개발)를 포함한 집계였다.

하지만 이 두 단지의 분양이 6월로 연기됐다. 서초우성1 래미안은 연초 큰 관심을 받았던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 개포(개포주공 8단지 재건축)를 잇는 재건축 사업지로 시장의 이목이 쏠린 단지다.

특히 7월과 10월 분양을 앞둔 ‘삼호가든3차’와 ‘서초무지개’ 분양가 산정의 기준점이 될 단지라는 점에서도 주목도가 높다. 서초우성1 래미안은 지하 3층~지상 35층에 12개 동, 전용면적 59~235㎡ 총 1317가구 규모다. 이 중 232가구를 일반 분양한다.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도 분양 예정일이 6월로 연기된 상태다.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는 5월 8일 HUG로부터 3.3㎡당 평균 분양가 2398만원을 승인 받았다.

하지만 5월 25일로 예정된 조합 총회 등 일정을 소화한 뒤 6월 초 일반 분양 공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단지는 지하 3층~지상 27층에 23개 동, 전용면적 39~115㎡ 총 1497가구 규모다. 이 가운데 647가구를 일반 분양한다.

이 밖에 5월 분양이 기대됐던 서울 서초동 서초우성1단지를 재건축하는 ‘서초우성1차래미안’과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파크자이’, 경기도 분당 ‘분당더샵파크리버’,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역효성해링턴플레스’ 등도 분양 일정이 연기됐다.

아직 분양대행사를 선정하지 않은 삼성물산은 정부 지침에 맞는 건설업 면허를 갖춘 분양대행업자를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고 GS건설은 자체적으로 분양대행 업무를 맡기로 했다.

포스코건설은 건설업 등록 면허가 없는 분양대행 업체와 계약한 상태지만 기존 분양대행 업체에 건설업 등록을 유도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분양이 연기된 이들 단지들은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시작되는 6월 중순 이전에 분양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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