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여걸’이 아프리카로 향한 이유

[비트코인 A to Z]
-저신뢰·저발전의 굴레에 묶인 아프라카…블록체인 통해 ‘금융 혁신’ 주역될 것


(사진) 엘리자베스 로시엘로 비트페사 CEO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신뢰혁명' 저자] 엘리자베스 로시엘로 비트페사 최고경영자(CEO)는 남성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3대 여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트코이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국제금융 석사를 마친 그는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근무할 때 사하라 이남 지역의 금융망을 담당했다. 금융 인프라와 우수한 인력이 없어 은행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송금의 75%가 현금을 배낭에 넣고 버스로 운반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반면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아프리카는 금융 산업의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변하는 중이기도 했다. 2009년부터 케냐와 세네갈에 거주하면서 아프리카 금융 산업의 가능성을 엿보던 그에게 누군가 비트코인을 활용해 낙후된 금융 시스템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는 조건으로 시드머니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B2B 송금 업체 비트페사(BitPesa)를 설립한다. 케냐의 나이로비에 본사를 두고 설립 5년 만에 나이지리아·케냐·우간다·탄자니아·세네갈·콩고민주공화국에 걸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영국의 런던, 룩셈부르크와 세네갈의 다카에는 지사도 뒀다. 비트페사는 최근 1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의 주요 투자자는 미국 정계에서도 유명한 투자가 알란 패트리코프다.

비트페사는 2018년 2월 세계 200여 개국에 걸쳐 50개의 통화를 대상으로 송금 서비스를 하는 스페인의 트랜스퍼제로를 합병했다. 트랜스퍼제로는 스페인 중앙은행으로부터 면허를 받은 스페인의 핀테크 기업이다. 이 합병으로 그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송금 플랫폼 실현에 한발 더 다가섰다.

저렴한 송금 수수료는 삶과 직결돼

비트코인을 활용한 송금 사업의 장점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은행이 송금 서비스를 하려면 최소 100만 달러 정도를 투자해 시스템을 깔아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그 자체가 변경 불가능한 장부이자 지구적 금융망이기 때문에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인프라와 자본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최적화됐다고 볼 수 있다.

로시엘로 CEO는 비트코인이 아프리카의 달러화를 피하는 수단이지 개별 국가의 화폐에 대한 위협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정치적 불안정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같은 저신뢰 문제 때문에 저축이나 대부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 관행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이다. 물론 짐바브웨 같이 초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국가에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아예 달러를 제도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달러화는 개별 국가의 통화정책을 제약한다는 거시경제적인 문제 말고도 시민 생활에 불편을 준다. 보통 동전까지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를 사용하면 거스름돈을 돌려받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귀한 달러를 모아 놓으려고만 하니 더욱 귀해져 거래가 위축되는 경향도 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짐바브웨 정부가 달러를 대신하는 정부 채권을 유통하려고 하자 인플레이션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남아프리카 국경의 상점 주인들이 짐바브웨 채권의 수령을 거부하자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했다. 짐바브웨는 2017년 가장 먼저 1비트코인의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었다. 짐바브웨가 기폭제가 돼 2017년 겨울의 세계적인 비트코인 광풍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비트코인은 수많은 국경으로 막혀 있는 아프리카에서 달러가 하던 일을 대신하면서도 달러보다 실생활에 더 깊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비트코인을 보내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정경대(LSE)에서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송금 수수료가 가장 비싼 지역이다. 210파운드를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송금할 때 수수료는 9.4%에 달한다. 세계 평균은 7.5%다. 가족들이 외국에 나가 번 돈을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해 주는 금액은 아프리카 원조 금액보다 많다.

송금 수수료의 해결은 아프리카 주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유엔은 2030년까지 송금 수수료 3%를 지속 가능한 성장 목표로 제시했다. 아프리카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럽 수준의 금융 인프라를 깔거나 모바일 송금을 확산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은 청산 기관이 필요 없는 결제의 최종 수단이다. 전자화된 화폐를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기면서 청산 기관의 인증을 추가로 받지 않는 비트코인이라면 송금 수수료 3%는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비트코인은 아프리카의 저신뢰·저발전의 굴레를 끊을 수 있다. 개별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아프리카 주민들을 글로벌 공급 사슬망에 이어 준다. 개인이 생산자나 소비자로 세계경제에 참여하면서 금융 지원까지 받는다면 시간과 공간의 시야가 넓어진다. 내일을 위해 공부와 저축 그리고 투자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저신뢰의 덫에 갇혀 있던 거대한 인구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세계경제에 진입하는 광경을 시각화한다면 거대한 쓰나미와 같을 것이다. 로시엘로 CEO와 같은 엘리트가 유럽의 안락하고 안정적인 전문직을 포기하고 ‘인투 아프리카(into-Africa)’를 단행한 계기도 이 쓰나미를 미리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돋보기] 아프리카의 부패를 해결하는 블록체인 솔루션

아프리카 케냐에서 가장 부패한 곳 중 하나는 등기소라고 한다. 소유 관계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고 자료 보관 시스템이 허술하기 때문에 뇌물을 받고 서류를 고쳐 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누군가 땅문서를 들고 찾아와 멀쩡한 땅을 내놓으라고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뇌물이나 폭력에 의지해야 한다.

나이로비에 있는 부동산 회사 랜드레이바이그룹(Land LayBy Group)은 정직하게 부동산 등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람비 토큰을 보상으로 주는 방식으로 등기소 업무를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공무원을 믿을 수 없으니 민간인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셈이다. 케냐 정부는 민간이 주도한 블록체인 등기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패한 등기 제도를 개선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나는 독립 이후 60년이 지나도록 등기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다. 80%의 토지가 등록되지 않았다. 소유권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두로 확인되고 관습적인 방법으로 매매돼 왔다. 당연히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비트랜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믿을 수 있는 토지 소유권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토지 소유권이 명확하면 할수록 분쟁 비용이 적어져 개발이 촉진되는 것은 상식이다. 전 세계에게서 아프리카의 개인이나 중소상인, 농장에 투자하려고 해도 부동산을 담보로 신용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담보물의 재산 변경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소액을 투자할 수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계약)를 이용하면 차입과 관련해 묶인 토지에 대한 권리 행사를 제한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신기술이다. 이 때문에 저신뢰·저발전의 굴레에 있는 아프리카에서 신기술의 저력이 가장 먼저 가시화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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