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경쟁에 밀린 우리은행, 4년 만에 지주사 체제 ‘유턴’

[스페셜리포트]
-지주사 전환 시 출자여력 10배 늘어…증권사 등 M&A설 ‘솔솔’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종합 금융그룹의 경쟁력을 조속히 확보하기 위해 내년 초 출범을 목표로 지주회사 설립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우리은행이 5월 말 지주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종합 금융그룹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경영진이 지주사 전환 계획을 내비친 적은 있지만 회사 차원에서 이를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월 14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선 지주사 전환, 후 정부 잔여 지분 매각’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주사 전환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최초’의 금융지주

2000년 이전만 해도 한국의 금융 산업은 업종별 분업주의에 기초해 이종 금융업 간 겸업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가 국내 금융 산업 발전의 장애물로 인식되면서 2000년 12월 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으로 금융지주 체제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1990년 말 한반도를 강타한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국유화된 한빛은행·평화은행·광주은행·경남은행 등 4개 은행과 하나로종합금융회사 등 5개 금융사를 통합해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를 탄생시켰다.

바로 2001년 4월 출범한 ‘우리금융지주’다. 한빛은행은 평화은행을 합병하고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설립이었지만 우리금융지주의 탄생은 국내 금융권 구조 재편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국내 은행 간 인수·합병(M&A)이 가속화되고 개별 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유도하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은행의 대형화’를 알리는 시작이기도 했다.

실제 2001년 우리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신한은행(2001년 9월), 하나은행(2005년 12월), 국민은행(2008년 10월)이 차례대로 금융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대형 시중은행(빅4)의 지주사 체제가 완성됐다.

이어 SC제일은행·산업은행·씨티은행 그리고 지방은행인 부산은행과 대구은행 등도 지주사 체제 전환을 완료하면서 은행권 전반으로 번졌다.

하지만 정작 우리금융지주는 2014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민영화 과정에서 증권·보험·자산운용사·저축은행을 차례로 매각하고 지주사인 우리금융지주가 2014년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되면서 13년의 지주사 체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를 탄생시킨 우리은행은 다시 시중은행 중 유일한 비금융지주사로 돌아갔다.

우리은행이 4년 만에 다시 ‘지주사 전환’을 내건 이유는 갈수록 첨예해지는 시장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다. 지주사 체제와 달리 은행 체제에서는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법상 은행은 자기자본의 20%를 넘겨 출자할 수 없어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기 힘들다. 반면 지주회사법은 은행법상의 출자 한도 규제가 없고 지주사에 대한 평가 등급에 따라 자기자본을 초과하는 금액도 출자할 수 있게 허용한다.

우리은행은 현재 7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수익을 내는 자회사는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 등 2개사뿐이다. 지주사 체제인 다른 금융그룹들이 은행·증권·보험·카드·캐피털·자산운용 등 다양한 업종에서 자회사를 소유하고 비은행 부문의 수익을 확대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자회사와의 시너지도 지주 체제에서 더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은행과 자회사 간에는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없지만 지주회사 체제 내에선 계열사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메가 뱅크’ 생존경쟁의 필수 조건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확대하고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 체제 전환 시 출자 한도 증가로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의 확대가 가능해진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원스톱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 제공, 통합 고객 관리, 계열사 연계 서비스와 다양한 복합 비즈니스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금융그룹과의 진검 승부를 펼치기 위해서도 지주사 체제 전환이 필수적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간 시중은행 중 유일한 비금융지주 체제로 비은행 부문과 글로벌 사업 확대 제약 등 시장 경쟁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NH농협 등 지주사 4강 체제에서 ‘5강 체제’로 재편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이 지주사 전환을 선언함에 따라 ‘우리은행발 M&A’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최대 6조~7조원의 출자 여력이 생긴다.

현재 우리은행은 은행법상 자기자본의 20%까지만 출자가 가능해 4조원의 출자 한도가 있지만 기존 출자금을 제외하면 출자 여력이 7000억원에 불과하다. 지주사 전환 시 7000억원에서 최대 7조원으로 출자 여력이 10배 정도 급증하는 것이다.



◆과점주주와의 이해관계 ‘숙제’

내년 초 출범할 우리금융지주사는 충분한 실탄을 바탕으로 비은행 부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이미 증권·자산운용·부동산신탁 등을 진출 업종으로 거론했다. 유승창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지주회사로 전환 시 출자 한도가 대폭 증가해 증권·자산운용 등 다양한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리은행이 내건 지주사 출범 시기는 내년 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예비 인가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본인가로 직행할 계획이다. 당초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예비 인가 심사 30일, 본인가 심사 30일 등 최소 3개월의 승인 기간이 걸리지만 예비 인가 없이 본인가 신청을 하면서 이르면 3분기 중 지주사 인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사회는 6월 19일 열린다.

우리은행은 당국의 승인을 얻으면 즉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지주사 설립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문제는 과점주주와의 이해관계다. 우리은행은 2016년 11월 과점 주주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를 이룬 상황이다.

한화생명·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IMM PE·동양생명 등으로 구성된 과점주주가 최대 주주다. 이들이 지분 27.22%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지주사 체제 변경 이후 증권·자산운용·보험 등을 자회사로 두면 보험과 증권 업종에 기반한 과점주주들과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지주사 전환 이후에는 정부(예금보험공사)의 잔여 지분 18.43% 역시 매각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사 전환 후 정부 지분 매각 방침을 밝히며 “지주사 전환을 완료하고 일정 기간 후 매각 가치를 최대화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조속하게 (매각)하겠다”고 말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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