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도에서 스마트 시티로’ 베를린은 ‘지금 변신 중’

[특별 기획 :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 ‘스마트 시티’를 가다 ④베를린] -신재생에너지·스마트모빌리티·기업 연계로 ‘최첨단 도시’ 만든다







[독일 베를린= 한경비즈니스 이명지 기자,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독일은 한국에 많은 영감을 주는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가해진 무차별적인 학살을 반성하는 태도는 한때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1990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룬 독일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계 정치의 주무대였던 베를린이 최근 들어 경제 중심지로 재탄생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창의적 기업가들은 베를린을 데뷔 무대로 선택하고 있다. 기존 기업들 또한 본사를 베를린으로 이전해 새로운 자극제를 찾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기업들이 집합해 뿜어내는 에너지가 베를린을 스마트 시티로 탈바꿈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베를린은 ‘친환경 에너지’와 ‘기업 간 네트워크’,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세 가지 축을 토대로 스마트 시티를 차근차근 이뤄 나가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8km 떨어진 테겔공항(TXL). 이곳은 베를린 도심에서 버스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최적의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국제공항으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테겔공항의 협소한 시설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베를린을 연결하는 직항 노선이 없는 것도 테겔공항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따라 독일은 2006년부터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신국제공항(BER)의 개장을 준비 중이다. 당초 2011년 개항될 예정이었지만 2020년으로 개장 시기가 조정됐다.


주목할 점은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테겔공항이 향후 ‘스마트 시티’의 테스트베드로 탄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테겔공항의 A111 출입구에 자리한 490㎡의 공간에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한 기술연구·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과학 기관과 신생 기업들이 들어섬으로써 에너지, 건설 기술, 모빌리티, 재활용 등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의 ‘집약체’로 거듭나게 된다.






◆재생에너지의 무대, ‘오이레프 캠퍼스’


베를린이 점찍은 스마트 시티의 테스트베드는 테겔공항뿐만이 아니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업단지인 ‘클린테크 비즈니스 파크’, 2008년 폐쇄된 구 템펠호프공항 부지, 향후 기술 공원으로 거듭날 ‘오이레프 캠퍼스(EUREF Campus)’ 등 네 곳이 있다.


독일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계기로 2050년까지 전체 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80%까지 늘리겠다는 ‘신기후체제 전략’을 설계했다. 이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기지가 오이레프 캠퍼스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풍력·광력·지열로부터 생산된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스마트 그리드와 스마트 미터링 등이 실험 중이다. 동시에 오이레프 캠퍼스는 독일에서 가장 큰 에너지 충전 단지가 될 예정이다.


6월 6일 찾은 오이레프 캠퍼스는 한창 공사로 시끌벅적했다. 오이레프 캠퍼스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전기 충전과 가스 저장소 역할을 담당할 ‘메타 빌딩’ 또한 공사에 한창이었다.


2016년 기준 오이레프 캠퍼스에는 100여 개의 회사와 연구 기관 2000여 명의 직원들이 입주해 있다. 또 독일 베를린공대를 포함해 베를린 내부의 주요 대학들이 이곳에서 일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멘 독일 학생들은 물론 기업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특별한 이동 수단이 있다. 바로 대중교통 자율주행차 ‘올리(Olli)’다. 미국의 3D 프린팅 스타트업 로컬모터스가 IBM의 인공지능(AI) 플랫폼 ‘왓슨’을 결합해 제작했다.




(사진)오이레프 캠퍼스에는 자율주행 미니버스 '올리'가 입주 기업인들을 실어 나른다.


이 이동수단은 운전자 없이 무인으로 운행되며 각종 데이터를 시시각각으로 수집해 자율주행을 할 수 있다. 최대 12명까지 태울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출시부터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지금은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하루에 100여 명을 실어 나르고 있다.


미래형 자동차 올리뿐만이 아니다. 오이레프 캠퍼스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대부분은 친환경 전기자동차다. 전기자동차가 언제든지 오갈 수 있도록 충전소도 구비돼 있다. 캠퍼스 내부에 자리한 충전소에는 에너지 관리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충전 시스템인 ‘EV 링크(link)’를 도입했다.


오이레프 캠퍼스의 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대적으로 줄인 에너지를 생성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미 바이오 가스로 연료를 공급받는 난방 시스템과 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캠퍼스 내 모든 건물에 탄소 중립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독일 에너지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오이레프 캠퍼스는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80%를 재생에너지에서 확보하자는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 오이레프 캠퍼스의 카렌 테히만 매니저는 “현재 오이레프 캠퍼스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80~95%는 이미 재생에너지로 대체됐다”고 설명했다.


독일 가스 기업인 가사그(GASAG)의 자회사 가사그콘트랙팅 유한책임회사는 캠퍼스 내 25개 건물에 최첨단 중앙난방과 냉방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 또 태양전지 패널과 풍력 터빈에 의해 현장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전기자동차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충전 에너지로 재탄생하게 된다.




(사진) 오이레프 캠퍼스 내 전경.


◆‘컨트롤타워’로 기업 간 네트워크 강화


총면적 891.85㎢의 베를린은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눠져 있었고 통일 직후에는 유휴 공간이 많았다. 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자 여유 공간이 사라져 갔다. 따라서 베를린 내부에서는 스마트 시티 조성을 통해 도시화 현상을 극복해 가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2015년 4월 베를린 상원은 이른바 ‘스마트 시티 베를린 전략’을 결의했다. 이 전략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를 아우르는 대도시의 국제 경쟁력을 확대하고 2050년까지 베를린의 자원 효율성과 기후 중립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동시에 이 전략을 이끌 본부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베를린의 투자 유치와 경제 지원 담당 기관 ‘베를린파트너’가 하고 있다. 베를린파트너의 주요 업무는 기타 연방주와 해외 기업의 베를린 내 성공적 투자 진출과 정착을 돕고 비즈니스 확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정식 명칭은 ‘베를린주 경제진흥기관’으로 베를린 투자은행이 31.5%의 지분을 갖고 있고 베를린기술재단(30%)·베를린파트너(28%)가 대주주로 참여해 있다. 이 밖에 베를린수공업협회·베를린상공회의소·베를린·브란덴부르크기업협회가 각각 3.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베를린파트너가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컨트롤 타워’가 된 것은 베를린파트너를 통해 여러 기업과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를린파트너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포괄적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베를린파트너는 100여 개의 기업들이 참여한 ‘스마트 시티 베를린 네트워크’를 가동했다. 이 네트워크에는 비즈니스·기술 분야의 기업과 베를린의 과학·연구 기관이 결성한 TSB(Technology Foundation Berlin)가 참여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베를린파트너는 스마트 시티 관련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 측과 대화를 나누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 또 ‘베를린 스마트 시티 헌장’을 발전시키는 역할도 한다.


유럽에서는 차로와 인도를 오가는 자전거를 흔히 볼 수 있다. 베를린도 마찬가지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자전거들이 눈에 띈다. 베를린은 공유 자전거 업체들이 가장 활발히 진출해 있는 도시다. 베를린에서 운영 중인 자전거 공유 서비스 대수만 약 1만8000대다. 길거리 곳곳에서 미국 자전거 공유 업체 ‘라임(Lime)’과 중국의 ‘오포오(ofo)’ 로고가 박힌 자전거를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전기 충전과 가스 충전이 가능한 빌딩. 현재 공사 중이다.


◆벤츠의 도시, ‘스마트 모빌리티’로 탈바꿈


공유 자전거 업체들이 베를린 진출을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베를린에서 스마트 시티의 핵심인 ‘스마트 모빌리티’가 꽃피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자율주행차·공유서비스 등 스마트 모빌리티 관련 다양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현재 베를린에서 진행 중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관은 베를린 시정부 산하 공공기관 ‘베를린 에이전시 포 일렉트로 모빌리티 eMO(이하 eMO-베를린)’다. eMO-베를린은 독일 전역의 전기차 시범 사업 4곳 중 하나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 지역 사업을 주관한다.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과 연구소는 혁신적 기술을 현실에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 베를린 시민들은 발전된 교통수단을 소개받고 두려움과 편견을 없앨 수 있다.
이들이 그리는 ‘새로운 모빌리티 베를린(The New Mobility Berlin)’은 특정 지역에 사는 거주자들에게 모빌리티 테스트 장소를 제공한다. 자가용 사용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거주자들은 카셰어링이나 도어투도어 서비스를 추천받는다. 당연히 주차장에 여유 공간이 생기고 텃밭이나 각종 편의 시설, 놀이 시설로 활용된다. 또 공동 사용 전기차, 전기 오토바이, 자전거의 배치도 가능해진다.


또 eMO는 2017년부터 ‘UBB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비즈니스연합’을 시작했는데 여기에서도 의미 있는 이야깃거리가 오갔다. 이 연합에 참석한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BMW는 과연 미래에 여전히 자동차가 개인의 ‘소유’ 개념일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또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지역 대중교통 계획의 토대를 마련한 대중교통연합회 BVG와 VBB도 참석해 있다. 향후 이 포럼들은 베를린의 스마트 모빌리티 전략 추진을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스마트 시티를 만드는 또 다른 원동력, ‘스타트업’


KOTRA에 따르면 베를린은 2017년 세계 스타트업 생태 시스템 평가에서 7위를 기록했다. 유럽 내에서는 런던에 이어 2위다. 일부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최대 수혜자로 베를린을 꼽기도 한다.


2017년 기준으로 베를린에는 2400여 개의 테크 스타트업이 존재한다. 여기에 2016년 기준으로 독일 내 주요 펀딩의 63%가 베를린에서 이뤄져 독보적인 스타트업 허브로서의 위치를 다져 나가고 있다. 성공한 베를린의 스타트업으로는 크레디테크·N26(핀테크), 아우토(Auto)1·잘란도(이커머스), 트리바고·사운드클라우드(레저) 등이 있다.


기존 기업들도 자체 액셀러레이터나 스타트업 보육 기관을 운영함으로써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 생명과학 기업 바이엘그룹의 액셀러레이터 ‘그랜츠포앱스’는 전 세계 스타트업과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함으로써 유명세를 타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창업 환경이 탁월한 도시로 여겨지면서 베를린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의 기업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비즈니스를 실현시킴으로써 스마트 시티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 지원과 대기업과의 비즈니스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는 베를린파트너의 슈테판 프란츠케 최고경영자(CEO)는 “벤츠와 지멘스도 한때는 ‘스타트업’이었다”며 “기존 회사들이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면 그들의 비즈니스 형태를 바꿀 수 있어 새로운 사업 모델 창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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