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고객 감동과 자발적 동참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세상은 끝없이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부품과 소재가 바뀌고 제품과 서비스도 바뀐다. 경쟁의 양상이 바뀌고 고객의 수요가 바뀐다.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맞물린 사업 생태계 전반이 바뀌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에 더해 기업 내부의 사정도 바뀌고 관련된 사업적 관계도 바뀐다. 따라서 세상의 변화에 눈감고 사는 아둔한 회사나 늘 같은 방식으로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꽉 막힌 회사는 망한다.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혁신은 잘하려고 노력하는 좋은 일이다. 경영학 책은 혁신에 대한 다양한 내용(상당수 뻔하고 쓸모없는)을 담고 있다. 경영을 다루는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보다 앞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남들이 못하거나 안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현실의 경영자들은 원래 하던 일도 제대로 못하거나 언뜻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실속 없는 얼치기 혁신에 돈과 시간만 낭비한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
◆혁신을 위협하는 ‘선구자의 불행’
‘남다른 혁신, 한 발 앞선 경영.’ 좋은 얘기다. 하지만 불행히도 경쟁의 현실은 만만치 않아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도 있다.
1970년대 수출 진흥 확대 회의 관련 기사에는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지시봉으로 종이 차트를 짚어가면서 브리핑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의 원형이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종이 차트를 대체하는 혁신적 빔 프로젝터를 개발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까.
우선 프로젝터를 만들기 위한 부품과 소재를 찾아야 한다. 제품 사양에 맞는 것이 없다면 직접 개발하거나 협력업체를 설득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시제품이 나오면 적절한 사용자를 찾아 시연해야 한다. 애써 사용자를 발굴하더라도 깨지기 쉬운 프로젝터를 포장·배송할 업체가 마땅하지 않다.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도 없다.
회의장들의 전원 시설도 부족하다. 높은 사람이 떠들면 열심히 받아 적다가 끝나는 회의가 대부분이라면 프로젝터를 알리고 보급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품·소재·배송·유지·보수 등의 체제를 갖추는 등 천신만고 끝에 빔 프로젝터를 세상에 알렸다고 하더라도 어려움은 따른다. 경쟁자가 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적은 사업 개발 자원으로도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최초 개발자가 형성한 인력 기반 등을 활용할 수 있으니 더 낮은 가격이나 더 좋은 서비스를 바탕으로 공세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애써 ‘한 발 앞선 혁신’을 해도 남 좋은 일이 된다. 이를 ‘선구자의 불행(pioneering cost)’이라고 칭한다.
선구자의 불행이 아닌 ‘선두주자의 이득(first mover’s advantage)’이 되려면 먼저 갖춘 사업 기반을 후발 경쟁자의 도전에서 방어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필요하다. 기술이나 사업 모델에 대한 특허·부품·소재·판로에 대한 배타적 계약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동의 연구·개발(R&D)이나 사업적 협력 체제를 통해 안정적 사업 환경을 확보하는 사례도 있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제약회사들은 공동 R&D를 통해 특허를 공유하고 기술의 방향을 조율한다.
통신사업자·장비업자·연구자 등이 공동으로 차세대 표준을 조율하는 통신업계도 비슷하다. 하지만 특허는 다른 기술적 접근에 대해서는 방어력이 제한된다. 세상의 모든 사업자를 협력의 틀로 묶을 수도 없다. 가뜩이나 온갖 트집 가득한 공세에 맞서야 하는 경영자에게 선구자의 불행까지 있다면 혁신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된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기존의 사업 기반을 망가뜨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는 투수가 새로운 변화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공을 쥐는 감각이 달라져 기존의 변화구가 약해질 때도 있다.
한정된 자원을 새로운 제품과 기술에 투입하면 기존 사업에 쓸 자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쟁자는 이 틈을 파고들어 기존 사업을 잠식해 들어온다. 미래를 위한 혁신이 성과를 내기도 전에 기존 사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만다.
중저가 의류를 만들던 회사가 큰맘 먹고 고급형 신제품을 개발하는 사이 기존 중저가 제품의 생산과 유통 기반이 흔들리는 사례도 많다. 회사 특유의 ‘싸게 만드는’ 실력이 줄어든 데다 기존 유통망은 이제 저 회사는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겨 자기 살길을 찾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이 틈을 파고들어 중저가 의류의 사업 기반을 빼앗기 시작한다.
고급형 신제품의 ‘브랜드 상승효과’가 중저가 의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기존의 중저가 제품을 더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들지는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현실의 사업은 매우 다양한 관련자들의 속사정이 촘촘하게 얽혀 진행된다. 따라서 통찰력 있는 경영자가 아니라면 작은 변화도 혼선과 부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자신과의 싸움(cannibalization)’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잠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혁신을 통한 변화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풀어낼 때 가능하다.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기업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 고객이 감동하고 협력업체들도 혁신에 동참해 함께 성장한다는 순진한 스토리는 모범 답안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손해 보는 사람을 낳기 마련이다. 이순신 장군이 함포 전술을 도입하면 창검을 활용한 근접 전투에서 무용을 자랑하던 전투원들은 ‘최고 전사’의 지위를 잃게 된다.
새로이 화약과 함포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다. 멀리서 포를 쏘아대는 전투는 몸을 던져 적진을 돌파하던 기존 ‘참 군인’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다. 변화에 따라가기 위한 부담과 이해 갈등, 문화와 상징 가치의 충돌은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조직 차원의 관성이 형성된다.
자동차 회사가 전기자동차 생산을 본격화하면 내연기관 기반의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 앞에서 예전과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게 된다. 관련 조직과 예산이 줄어들 것이고 기존 협력업체들도 떠오르는 ‘전기자동차 전문가’에게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찾아보면 전기자동차에 반대할 건수는 얼마든지 있다. 에너지 표준이 수소연료가 될지, 수소전지가 될지, 리튬이온전지가 될지 불투명하니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기회를 엿보는 신중함인지 이해관계에 얽혀 일단 버티는 짓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만큼 다양한 논란 속에 실제 사업은 제자리에 있게 된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단기적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 미덕은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는 봉사나 자아실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다니는 사람보다 자리 지키고 돈을 벌러 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촘촘하게 얽힌 조직적 이해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양보조차 쉽지 않다.
◆‘더럽고 치사한’ 혁신의 길
혁신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는 조직 내부에도 숨어 있다. ‘혁신적 기술과 사업 모델로 미래에 도전하는 경영자와 창의적 인재들’은 동화 같은 얘기다.
잘 모르는 사업을 물려받아 어떻게 지켜갈지도 막막한 대주주에게 세계에 도전하는 혁신적 경영자는 골칫거리일 수 있다. 만만한 일을 벌이면서 적당히 이권을 챙겨주는 경영자가 훨씬 반가울 것이다. 인수·합병(M&A) 과정의 부담 때문에 현금 확보가 더 절실한 대주주에게는 언제 돈이 될지 모르는 사업에 힘을 쏟는 경영자는 몽상가로 보일 수도 있다.
혁신적 기술과 사업 모델을 제안하는 사업부장은 어렵게 얻은 임원 자리를 마음 편히 누리고 싶은 경쟁자들에게 아주 꼴 보기 싫은 사람이다. 사업을 잘 아는 대주주나 관리 담당자라면 그 혁신이 과연 회사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일단 해보고 잘못되면 회사 탓, 잘되면 자기 업적이 되는 ‘안 되면 말고’ 식의 시도인지도 의심해 볼 수 있다.
혁신에는 돈과 시간이 들뿐만 아니라 위험도 따른다. 경제학의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은 사업 프로젝트에 따른 위험을 주주와 경영자, 이해관계인이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위험을 부담하려는 투자자는 투자 펀드를 구성해 위험 회피적 투자자(주식과 채권을 조합한)의 출자를 받고 모험적 경영자에게는 손해를 분담하는 보상 체계(스톡옵션을 이용해)를 부여한다. 혁신의 동력을 잃은 기업은 억지로 안정된 사업 기반에 혁신 기업을 합병시켜 새로운 동력을 더해준다.
정말로 혁신을 하겠다면 경영자는 이런 냉정한 현실을 풀어가야 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쭈그러들다가 망한 회사에서 연명하는 처지와 미래의 성과를 공유하는 이득을 비교해 설득해야 하며 구체적 방법을 약속해야 한다.
일본군의 근접 전투 역량 때문에 조선군이 함 포 전술을 더 쉽게 받아들였듯이 혁신과 변화의 동력은 냉혹한 현실을 직접 느낄 때 만들어진다. 세상 곳곳에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와 연결을 읽는 일보다 당장 눈앞의 일에만 몰입해 충성과 눈치 보기가 생존의 필살기가 된다면 회사는 꽉 짜인 이해관계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말로만 혁신을 떠드는 경영자는 망하고 혁신의 더럽고 치사한 현실에서 답을 찾아내는 경영자는 세상을 바꾼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고객 감동과 자발적 동참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세상은 끝없이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부품과 소재가 바뀌고 제품과 서비스도 바뀐다. 경쟁의 양상이 바뀌고 고객의 수요가 바뀐다.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맞물린 사업 생태계 전반이 바뀌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에 더해 기업 내부의 사정도 바뀌고 관련된 사업적 관계도 바뀐다. 따라서 세상의 변화에 눈감고 사는 아둔한 회사나 늘 같은 방식으로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꽉 막힌 회사는 망한다.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혁신은 잘하려고 노력하는 좋은 일이다. 경영학 책은 혁신에 대한 다양한 내용(상당수 뻔하고 쓸모없는)을 담고 있다. 경영을 다루는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보다 앞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남들이 못하거나 안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현실의 경영자들은 원래 하던 일도 제대로 못하거나 언뜻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실속 없는 얼치기 혁신에 돈과 시간만 낭비한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
◆혁신을 위협하는 ‘선구자의 불행’
‘남다른 혁신, 한 발 앞선 경영.’ 좋은 얘기다. 하지만 불행히도 경쟁의 현실은 만만치 않아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도 있다.
1970년대 수출 진흥 확대 회의 관련 기사에는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지시봉으로 종이 차트를 짚어가면서 브리핑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의 원형이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종이 차트를 대체하는 혁신적 빔 프로젝터를 개발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까.
우선 프로젝터를 만들기 위한 부품과 소재를 찾아야 한다. 제품 사양에 맞는 것이 없다면 직접 개발하거나 협력업체를 설득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시제품이 나오면 적절한 사용자를 찾아 시연해야 한다. 애써 사용자를 발굴하더라도 깨지기 쉬운 프로젝터를 포장·배송할 업체가 마땅하지 않다.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도 없다.
회의장들의 전원 시설도 부족하다. 높은 사람이 떠들면 열심히 받아 적다가 끝나는 회의가 대부분이라면 프로젝터를 알리고 보급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품·소재·배송·유지·보수 등의 체제를 갖추는 등 천신만고 끝에 빔 프로젝터를 세상에 알렸다고 하더라도 어려움은 따른다. 경쟁자가 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적은 사업 개발 자원으로도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최초 개발자가 형성한 인력 기반 등을 활용할 수 있으니 더 낮은 가격이나 더 좋은 서비스를 바탕으로 공세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애써 ‘한 발 앞선 혁신’을 해도 남 좋은 일이 된다. 이를 ‘선구자의 불행(pioneering cost)’이라고 칭한다.
선구자의 불행이 아닌 ‘선두주자의 이득(first mover’s advantage)’이 되려면 먼저 갖춘 사업 기반을 후발 경쟁자의 도전에서 방어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필요하다. 기술이나 사업 모델에 대한 특허·부품·소재·판로에 대한 배타적 계약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동의 연구·개발(R&D)이나 사업적 협력 체제를 통해 안정적 사업 환경을 확보하는 사례도 있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제약회사들은 공동 R&D를 통해 특허를 공유하고 기술의 방향을 조율한다.
통신사업자·장비업자·연구자 등이 공동으로 차세대 표준을 조율하는 통신업계도 비슷하다. 하지만 특허는 다른 기술적 접근에 대해서는 방어력이 제한된다. 세상의 모든 사업자를 협력의 틀로 묶을 수도 없다. 가뜩이나 온갖 트집 가득한 공세에 맞서야 하는 경영자에게 선구자의 불행까지 있다면 혁신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된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기존의 사업 기반을 망가뜨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는 투수가 새로운 변화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공을 쥐는 감각이 달라져 기존의 변화구가 약해질 때도 있다.
한정된 자원을 새로운 제품과 기술에 투입하면 기존 사업에 쓸 자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쟁자는 이 틈을 파고들어 기존 사업을 잠식해 들어온다. 미래를 위한 혁신이 성과를 내기도 전에 기존 사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만다.
중저가 의류를 만들던 회사가 큰맘 먹고 고급형 신제품을 개발하는 사이 기존 중저가 제품의 생산과 유통 기반이 흔들리는 사례도 많다. 회사 특유의 ‘싸게 만드는’ 실력이 줄어든 데다 기존 유통망은 이제 저 회사는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겨 자기 살길을 찾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이 틈을 파고들어 중저가 의류의 사업 기반을 빼앗기 시작한다.
고급형 신제품의 ‘브랜드 상승효과’가 중저가 의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기존의 중저가 제품을 더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들지는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현실의 사업은 매우 다양한 관련자들의 속사정이 촘촘하게 얽혀 진행된다. 따라서 통찰력 있는 경영자가 아니라면 작은 변화도 혼선과 부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자신과의 싸움(cannibalization)’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잠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혁신을 통한 변화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풀어낼 때 가능하다.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기업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 고객이 감동하고 협력업체들도 혁신에 동참해 함께 성장한다는 순진한 스토리는 모범 답안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손해 보는 사람을 낳기 마련이다. 이순신 장군이 함포 전술을 도입하면 창검을 활용한 근접 전투에서 무용을 자랑하던 전투원들은 ‘최고 전사’의 지위를 잃게 된다.
새로이 화약과 함포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다. 멀리서 포를 쏘아대는 전투는 몸을 던져 적진을 돌파하던 기존 ‘참 군인’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다. 변화에 따라가기 위한 부담과 이해 갈등, 문화와 상징 가치의 충돌은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조직 차원의 관성이 형성된다.
자동차 회사가 전기자동차 생산을 본격화하면 내연기관 기반의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 앞에서 예전과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게 된다. 관련 조직과 예산이 줄어들 것이고 기존 협력업체들도 떠오르는 ‘전기자동차 전문가’에게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찾아보면 전기자동차에 반대할 건수는 얼마든지 있다. 에너지 표준이 수소연료가 될지, 수소전지가 될지, 리튬이온전지가 될지 불투명하니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기회를 엿보는 신중함인지 이해관계에 얽혀 일단 버티는 짓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만큼 다양한 논란 속에 실제 사업은 제자리에 있게 된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단기적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 미덕은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는 봉사나 자아실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다니는 사람보다 자리 지키고 돈을 벌러 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촘촘하게 얽힌 조직적 이해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양보조차 쉽지 않다.
◆‘더럽고 치사한’ 혁신의 길
혁신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는 조직 내부에도 숨어 있다. ‘혁신적 기술과 사업 모델로 미래에 도전하는 경영자와 창의적 인재들’은 동화 같은 얘기다.
잘 모르는 사업을 물려받아 어떻게 지켜갈지도 막막한 대주주에게 세계에 도전하는 혁신적 경영자는 골칫거리일 수 있다. 만만한 일을 벌이면서 적당히 이권을 챙겨주는 경영자가 훨씬 반가울 것이다. 인수·합병(M&A) 과정의 부담 때문에 현금 확보가 더 절실한 대주주에게는 언제 돈이 될지 모르는 사업에 힘을 쏟는 경영자는 몽상가로 보일 수도 있다.
혁신적 기술과 사업 모델을 제안하는 사업부장은 어렵게 얻은 임원 자리를 마음 편히 누리고 싶은 경쟁자들에게 아주 꼴 보기 싫은 사람이다. 사업을 잘 아는 대주주나 관리 담당자라면 그 혁신이 과연 회사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일단 해보고 잘못되면 회사 탓, 잘되면 자기 업적이 되는 ‘안 되면 말고’ 식의 시도인지도 의심해 볼 수 있다.
혁신에는 돈과 시간이 들뿐만 아니라 위험도 따른다. 경제학의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은 사업 프로젝트에 따른 위험을 주주와 경영자, 이해관계인이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위험을 부담하려는 투자자는 투자 펀드를 구성해 위험 회피적 투자자(주식과 채권을 조합한)의 출자를 받고 모험적 경영자에게는 손해를 분담하는 보상 체계(스톡옵션을 이용해)를 부여한다. 혁신의 동력을 잃은 기업은 억지로 안정된 사업 기반에 혁신 기업을 합병시켜 새로운 동력을 더해준다.
정말로 혁신을 하겠다면 경영자는 이런 냉정한 현실을 풀어가야 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쭈그러들다가 망한 회사에서 연명하는 처지와 미래의 성과를 공유하는 이득을 비교해 설득해야 하며 구체적 방법을 약속해야 한다.
일본군의 근접 전투 역량 때문에 조선군이 함 포 전술을 더 쉽게 받아들였듯이 혁신과 변화의 동력은 냉혹한 현실을 직접 느낄 때 만들어진다. 세상 곳곳에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와 연결을 읽는 일보다 당장 눈앞의 일에만 몰입해 충성과 눈치 보기가 생존의 필살기가 된다면 회사는 꽉 짜인 이해관계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말로만 혁신을 떠드는 경영자는 망하고 혁신의 더럽고 치사한 현실에서 답을 찾아내는 경영자는 세상을 바꾼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