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승차 공유' 해법 찾기]
-현금결제 등 특화된 현지화 전략과 저렴한 가격으로 ‘골리앗’ 우버에 완승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우버는 이미 한 번 졌다. 우리는 우버에 한 번 더 실패를 안겨주겠다.”
2016년 8월 우버 차이나가 승차 공유 호출 서비스 분야 중국 내 1위 업체인 디디추싱에 합병된 날, 앤서니 탄 그랩(Grab) 최고경영자(CEO)는 사내 임직원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보냈다. 중국에서 백기를 든 우버가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관심을 돌리겠지만 그랩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돼 그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3월 27일 그랩은 우버의 동남아 사업부문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시아 시장을 놓고 벌어진 우버와의 혈전에서 토종 기업이 기록한 둘째 승전보였다.
◆‘동남아의 우버’가 쓴 반전 드라마
그랩은 어떻게 동남아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창업자인 탄 CEO는 2011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중 그의 친구가 말레이시아 택시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들고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앱)을 구상했다.
탄 CEO의 증조부가 택시 운전사였고 또 훗날 대형 자동차 유통 업체까지 설립했는데 왜 손자인 탄 CEO는 여성들이 택시를 타며 겪을 안전 문제에 대해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콜택시 앱 ‘마이 택시(My Teksi)’로 2012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의 첫 발을 뗐다. 당시 가입된 택시 운전사 수는 40명 남짓. 낯선 사업 모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탄 CEO는 2017년 직원에게 보낸 5주년 기념 e메일에서 “2012년 사업을 시작할 때 선뜻 우리와 일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차량 회사와 운전사들에게 이 작은 스타트업이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인 이유를 설득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운전사들을 직접 찾아다녔고 스마트폰 제조사·통신사와 협의해 택시 운전사들이 스마트폰 구매 비용을 보조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승객의 안전과 운전사의 매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마이 택시’가 입소문을 타면서 탄 CEO는 2013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태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이때까지 말레이시아는 ‘마이 택시’로, 그 밖의 나라는 ‘그랩 택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2016년부터 지금의 ‘그랩’으로 통일했다.
2018년 8월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운송 네트워크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 그랩은 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8개국 225개 도시에서 승용차·오토바이·택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 앱 누적 다운로드 수가 1억 건을 돌파했고 등록된 운전사 수는 700만1000명에 달한다.
그랩에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도 여럿이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2억5000만 달러, 2016년 7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7년에는 디디추싱과 소프트뱅크가 25억 달러를, 2018년에는 도요타가 10억 달러를 그랩에 투자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이미 그랩에 투자했고 최근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지난 3월 우버의 동남아 사업부문 인수다. 우버와 그랩은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승차 공유 시장을 놓고 6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운전사들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수수료를 깎아주고 승객들에겐 수시로 할인 행사를 열면서 ‘혈전’을 펼쳤다. 결국 시장점유율과 매출 모두 밀린 우버가 백기를 들었다. 우버는 동남아 사업부문을 그랩에 넘겨준 대신 그랩의 지분 27.5%를 갖기로 했다. 또 우버의 CEO가 그랩의 이사회에 합류했다.
후발 주자인 그랩이 골리앗 경쟁사인 우버를 동남아 시장에서 제압하면서 그랩은 ‘동남아의 우버’란 별칭을 뗄 수 있게 됐다. 탄 CEO는 “이번 인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토바이 공유 ‘그랩바이크’ 도입
지난 3월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이 평가한 그랩의 기업 가치는 약 60억 달러다. 2016년 18억 달러 규모에서 2년 새 3배 이상 기업 가치가 뛰었다. 전문가들은 그랩의 성공 비결로 ‘철저한 현지화’를 꼽는다.
우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동안 그랩은 동남아 시장을 집중 공략하면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랩의 현지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 ‘토종 기업’이란 점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국가별로 천차만별인 고객들의 니즈와 시장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결제가 주효했다. 미리 등록된 신용카드로 요금이 자동 청구되는 우버와 달리 그랩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동남아의 특성을 고려해 카드와 현금결제가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추후 우버 역시 현금결제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이미 그랩이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악명 높은 교통 체증과 낮은 소득수준을 감안해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인 ‘그랩바이크’를 도입했다. 필리핀은 지역별로 수많은 방언이 쓰인다는 점에 주목해 방언을 쓰는 고객도 콜택시 예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운전사 수도 그랩이 우버를 훨씬 앞질렀다.
이지혁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앱의 완성도는 우버가 그랩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운전사 수에서 큰 차이가 나 고객에겐 그랩이 훨씬 편리하다”고 말했다.
각국의 규제 장벽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랩은 기존 택시업계와 공존을 모색하거나 현
지 국가의 법규와 제도에 최대한 순응하면서 우버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대중교통위원회의 지원을 받았고 정부 부처와도 협력해 도시 내 택시 운전자 이미지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가격 경쟁력도 우버에 앞섰다. 2015년 기준으로 그랩택시의 수수료는 싱가포르에서 건당 0.2달러(약 223원), 태국에서 건당 0.7달러(약 782원)에 불과했다. 후발 주자로 우버와 경쟁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한 것이다.
또한 그랩은 ‘제2의 우버’로 불리는 기업들과 손잡았다. 디디추싱(중국)·올라(인도)·리프트(미국) 등 대표적인 승차 공유 업체들과 2016년 초 ‘반우버연합’을 형성해 각 회사 고객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 해당 사업자의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실제 그랩은 우버가 중국에서 디디추싱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동남아 지역의 시장점유율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패인에 대해 “우버의 글로벌 전략이 지닌 잠재적 위험 중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매우 다양한 전선 및 경쟁자들과 맞서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동남아 넘버원 기술 플레이어 된다”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진 지금 그랩은 우버와 마찬가지로 승차 공유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오토바이 택시인 ‘그랩바이크’와 셔틀버스를 공유하는 ‘그랩셔틀’, 카풀처럼 한 차량을 공유하는 ‘그랩셰어(share)’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그랩의 인프라를 활용해 음식배달(그랩푸드)과 우편배달(그랩익스프레스)에도 나서고 있다.
그랩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그랩페이’를 출시해 핀테크 산업에도 발을 들였다. 그랩페이는 온·오프라인 일반 매장에서 현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올해 안에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탄 CEO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다음 성장 동력으로 핀테크에 주목하고 있다”며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 수백만 명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에서 사실상 독점 체제를 갖춘 그랩은 당분간 동남아 시장에 주력해 이 지역의 선도적인 기술 플레이어가 된다는 목표를 세웠다. 탄 CEO는 핀테크 진출을 발표하며 “동남아시아 시장이 가진 잠재력은 충분하다”며 “무리하게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돋보기-그랩의 창업자, 앤서니 탄은 누구?
그랩의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 창립자인 앤서니 탄(Anthony Tan)은 말레이시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열여섯째 부자로 알려져 있을 만큼 상당한 재력가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로 출발해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자동차 유통 업체인 탄청모터스를 설립한 경영자다.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탄청모터스를 운영하는 등 3대가 모두 자동차 업종에 종사했다.
탄 CEO는 자신의 뿌리가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나왔다고 공공연하게 밝힐 만큼 자부심이 상당하다.
탄 CEO는 미국 시카고대를 나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랩을 창업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회사인 탄청모터스에서 공급망과 마케팅 부문을 담당했다.
하지만 MBA 당시 그의 친구가 말레이시아 택시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MBA 동기인 탄 후이링(그랩 공동 창업자)과 함께 콜택시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구상했다.
이후 서른 살 젊은 나이에 201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모바일 콜택시 서비스인 ‘그랩택시’를 시작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출신이지만 2014년 그랩의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다.
poof34@hankyung.com
[커버스토리 : '승차 공유' 해법 찾기 기사 인덱스]
-동남아에 추월당한 한국…‘승차 공유’ 5년째 논란만
-‘그랩’은 어떻게 동남아 8개국을 제패했나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 “못 이룬 ‘버스 공유’ 모델, 언젠가 우회로 낼 수 있겠죠”
-국내 대기업들이 동남아 승차 공유 업체 ‘그랩’을 움켜쥔 이유
-필요한 서비스지만 불법?…승차 공유 규제 딜레마
-규제 틈새 찾아 ‘승차 공유’ 도전하는 스타트업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
-현금결제 등 특화된 현지화 전략과 저렴한 가격으로 ‘골리앗’ 우버에 완승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우버는 이미 한 번 졌다. 우리는 우버에 한 번 더 실패를 안겨주겠다.”
2016년 8월 우버 차이나가 승차 공유 호출 서비스 분야 중국 내 1위 업체인 디디추싱에 합병된 날, 앤서니 탄 그랩(Grab) 최고경영자(CEO)는 사내 임직원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보냈다. 중국에서 백기를 든 우버가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관심을 돌리겠지만 그랩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돼 그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3월 27일 그랩은 우버의 동남아 사업부문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시아 시장을 놓고 벌어진 우버와의 혈전에서 토종 기업이 기록한 둘째 승전보였다.
◆‘동남아의 우버’가 쓴 반전 드라마
그랩은 어떻게 동남아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창업자인 탄 CEO는 2011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중 그의 친구가 말레이시아 택시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들고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앱)을 구상했다.
탄 CEO의 증조부가 택시 운전사였고 또 훗날 대형 자동차 유통 업체까지 설립했는데 왜 손자인 탄 CEO는 여성들이 택시를 타며 겪을 안전 문제에 대해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콜택시 앱 ‘마이 택시(My Teksi)’로 2012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의 첫 발을 뗐다. 당시 가입된 택시 운전사 수는 40명 남짓. 낯선 사업 모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탄 CEO는 2017년 직원에게 보낸 5주년 기념 e메일에서 “2012년 사업을 시작할 때 선뜻 우리와 일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차량 회사와 운전사들에게 이 작은 스타트업이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인 이유를 설득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운전사들을 직접 찾아다녔고 스마트폰 제조사·통신사와 협의해 택시 운전사들이 스마트폰 구매 비용을 보조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승객의 안전과 운전사의 매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마이 택시’가 입소문을 타면서 탄 CEO는 2013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태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이때까지 말레이시아는 ‘마이 택시’로, 그 밖의 나라는 ‘그랩 택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2016년부터 지금의 ‘그랩’으로 통일했다.
2018년 8월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운송 네트워크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 그랩은 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8개국 225개 도시에서 승용차·오토바이·택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 앱 누적 다운로드 수가 1억 건을 돌파했고 등록된 운전사 수는 700만1000명에 달한다.
그랩에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도 여럿이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2억5000만 달러, 2016년 7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7년에는 디디추싱과 소프트뱅크가 25억 달러를, 2018년에는 도요타가 10억 달러를 그랩에 투자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이미 그랩에 투자했고 최근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지난 3월 우버의 동남아 사업부문 인수다. 우버와 그랩은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승차 공유 시장을 놓고 6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운전사들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수수료를 깎아주고 승객들에겐 수시로 할인 행사를 열면서 ‘혈전’을 펼쳤다. 결국 시장점유율과 매출 모두 밀린 우버가 백기를 들었다. 우버는 동남아 사업부문을 그랩에 넘겨준 대신 그랩의 지분 27.5%를 갖기로 했다. 또 우버의 CEO가 그랩의 이사회에 합류했다.
후발 주자인 그랩이 골리앗 경쟁사인 우버를 동남아 시장에서 제압하면서 그랩은 ‘동남아의 우버’란 별칭을 뗄 수 있게 됐다. 탄 CEO는 “이번 인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토바이 공유 ‘그랩바이크’ 도입
지난 3월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이 평가한 그랩의 기업 가치는 약 60억 달러다. 2016년 18억 달러 규모에서 2년 새 3배 이상 기업 가치가 뛰었다. 전문가들은 그랩의 성공 비결로 ‘철저한 현지화’를 꼽는다.
우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동안 그랩은 동남아 시장을 집중 공략하면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랩의 현지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 ‘토종 기업’이란 점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국가별로 천차만별인 고객들의 니즈와 시장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결제가 주효했다. 미리 등록된 신용카드로 요금이 자동 청구되는 우버와 달리 그랩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동남아의 특성을 고려해 카드와 현금결제가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추후 우버 역시 현금결제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이미 그랩이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악명 높은 교통 체증과 낮은 소득수준을 감안해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인 ‘그랩바이크’를 도입했다. 필리핀은 지역별로 수많은 방언이 쓰인다는 점에 주목해 방언을 쓰는 고객도 콜택시 예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운전사 수도 그랩이 우버를 훨씬 앞질렀다.
이지혁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앱의 완성도는 우버가 그랩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운전사 수에서 큰 차이가 나 고객에겐 그랩이 훨씬 편리하다”고 말했다.
각국의 규제 장벽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랩은 기존 택시업계와 공존을 모색하거나 현
지 국가의 법규와 제도에 최대한 순응하면서 우버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대중교통위원회의 지원을 받았고 정부 부처와도 협력해 도시 내 택시 운전자 이미지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가격 경쟁력도 우버에 앞섰다. 2015년 기준으로 그랩택시의 수수료는 싱가포르에서 건당 0.2달러(약 223원), 태국에서 건당 0.7달러(약 782원)에 불과했다. 후발 주자로 우버와 경쟁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한 것이다.
또한 그랩은 ‘제2의 우버’로 불리는 기업들과 손잡았다. 디디추싱(중국)·올라(인도)·리프트(미국) 등 대표적인 승차 공유 업체들과 2016년 초 ‘반우버연합’을 형성해 각 회사 고객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 해당 사업자의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실제 그랩은 우버가 중국에서 디디추싱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동남아 지역의 시장점유율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패인에 대해 “우버의 글로벌 전략이 지닌 잠재적 위험 중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매우 다양한 전선 및 경쟁자들과 맞서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동남아 넘버원 기술 플레이어 된다”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진 지금 그랩은 우버와 마찬가지로 승차 공유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오토바이 택시인 ‘그랩바이크’와 셔틀버스를 공유하는 ‘그랩셔틀’, 카풀처럼 한 차량을 공유하는 ‘그랩셰어(share)’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그랩의 인프라를 활용해 음식배달(그랩푸드)과 우편배달(그랩익스프레스)에도 나서고 있다.
그랩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그랩페이’를 출시해 핀테크 산업에도 발을 들였다. 그랩페이는 온·오프라인 일반 매장에서 현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올해 안에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탄 CEO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다음 성장 동력으로 핀테크에 주목하고 있다”며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 수백만 명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에서 사실상 독점 체제를 갖춘 그랩은 당분간 동남아 시장에 주력해 이 지역의 선도적인 기술 플레이어가 된다는 목표를 세웠다. 탄 CEO는 핀테크 진출을 발표하며 “동남아시아 시장이 가진 잠재력은 충분하다”며 “무리하게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돋보기-그랩의 창업자, 앤서니 탄은 누구?
그랩의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 창립자인 앤서니 탄(Anthony Tan)은 말레이시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열여섯째 부자로 알려져 있을 만큼 상당한 재력가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로 출발해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자동차 유통 업체인 탄청모터스를 설립한 경영자다.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탄청모터스를 운영하는 등 3대가 모두 자동차 업종에 종사했다.
탄 CEO는 자신의 뿌리가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나왔다고 공공연하게 밝힐 만큼 자부심이 상당하다.
탄 CEO는 미국 시카고대를 나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랩을 창업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회사인 탄청모터스에서 공급망과 마케팅 부문을 담당했다.
하지만 MBA 당시 그의 친구가 말레이시아 택시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MBA 동기인 탄 후이링(그랩 공동 창업자)과 함께 콜택시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구상했다.
이후 서른 살 젊은 나이에 201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모바일 콜택시 서비스인 ‘그랩택시’를 시작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출신이지만 2014년 그랩의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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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 추월당한 한국…‘승차 공유’ 5년째 논란만
-‘그랩’은 어떻게 동남아 8개국을 제패했나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 “못 이룬 ‘버스 공유’ 모델, 언젠가 우회로 낼 수 있겠죠”
-국내 대기업들이 동남아 승차 공유 업체 ‘그랩’을 움켜쥔 이유
-필요한 서비스지만 불법?…승차 공유 규제 딜레마
-규제 틈새 찾아 ‘승차 공유’ 도전하는 스타트업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