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의 남대문시장,‘QR결제 시대’ 열렸다

-수수료 없어 소상공인들에 인기…카카오페이, 2개월 만에 전국 8만 곳 가입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지난 8월 14일 찾은 남대문시장의 액세서리 전문점 LCW. 이 점포의 문 앞에 귀여운 라이언 스티커가 붙어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6년째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채원 사장은 한 달 전 카카오페이 결제 키트를 신청했다. 카카오페이에서 안내 스티커와 브로슈어 등이 포함된 ‘카카오페이 QR 결제 키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 QR 결제는 카카오페이가 지난해 9월 출시한 ‘QR 송금’ 서비스를 소상공인이 수수료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결제 프로그램이다. 고객이 사업자의 계좌와 연결된 QR코드(Quick Response Code)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빠르고 안전하게 현금 결제를 완료한다.
이 사장은 “요새 카카오페이로 ‘더치페이’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며 “손님들도 결제 키트를 보고 ‘여기 카카오페이 되는 가게네’라고 한마디씩 던지곤 한다”고 말했다.
◆수수료 없어 편하지만 낯선 ‘QR코드’
남대문시장에서는 500원이라도 더 깎으려는 손님과 상인의 흥정을 흔히 볼 수 있다. ‘제값 주면 손해’란 인식 때문인지 시장을 방문한 손님들은 카드보다 흥정이 수월한 현금을 내미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도 카드를 내미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종종 카드를 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환전한 현금이 떨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비단 남대문시장 상인뿐만이 아니라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한다. 카카오페이는 현금처럼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이 사장이 카카오페이 도입을 전혀 망설일 필요가 없었던 것도 바로 수수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카카오페이는 현재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QR코드 결제에 따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다만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진행되는 매장 결제에서는 수수료를 일부 받고 있다.
키트를 설치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QR코드 결제를 이용하는 손님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매장에 붙은 라이언 스티커나 결제 키트를 보고 ‘카카오페이 매장’이라며 반가워하는 젊은 손님들은 볼 수 있었다.
1만4000원어치의 액세서리를 카카오페이로 구매해 봤다. 카카오톡에서 ‘매장 결제’를 누른 후 매장에 마련된 QR코드를 인식하고 1만4000원을 직접 입력했다. QR코드 인식과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20여 초.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대문시장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 그중 다수는 역시 중국인 관광객이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들은 남대문시장에서도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당당히 내밀곤 한다. 이 사장은 “중국에 갈 일이 잦은데 갈 때마다 QR코드 결제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모바일 메신저로 익숙한 ‘카카오’가 플랫폼을 내놓았으니 빠르게 대중화되지 않을까 싶다”는 기대감을 보였다.
QR코드 결제는 수수료 면제 외에도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현금을 따로 은행에 입금할 필요가 없다. 장부를 작성하지 않아도 카카오톡을 통해 한눈에 수입을 확인할 수도 있다. 길거리 음식 등 요식업에서 음식을 조리했던 손으로 현금을 받지 않아도 돼 위생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득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누릴 수 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에 따르면 20대나 30대 자영업자들은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아도 결제 키트를 적극적으로 신청하는 추세다.
이들은 가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개인 계정에도 ‘#카카오페이 결제 매장’이라는 태그를 올림으로써 홍보에도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결제 키트를 신청한 소상공인 가맹점 수는 약 8만 개다.
50대 장년층 점주가 대부분인 남대문시장에서 QR 결제는 ‘신문물’이다. 이채원 LCW 사장에 따르면 주위 점포 주인들은 아직은 신규 결제 시스템 도입에 큰 관심이 없다. 이미 현금 결제가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간편 결제’나 ‘페이 결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인들이 대부분이다.
카카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카카오페이는 생업에 바쁜 소상공인들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이른바 ‘찾아가는 카카오페이’ 캠페인을 통해 전통 재래시장과 플리마켓 등에서 활발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또 남대문시장에서는 8월까지 팝업 스토어를 운영해 홍보와 동시에 QR코드 결제에 관심이 있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안내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선 QR 결제가 이미 ‘대세’
카카오페이 외에도 QR코드 결제 열풍에 불을 지핀 것은 서울시다. 서울시는 가칭 ‘서울페이’를 연내 출시한다. ‘서울페이’로 불리는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 서비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QR코드를 찍으면 모바일을 통해 결제가 되는 간편 결제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결제 앱을 열어 판매자의 QR코드를 찍고 결제 금액을 입력한 후 전송한다. 또는 판매자가 매장 내 결제 단말기(POS)에 있는 QR 리더기로 소비자 스마트폰 앱의 QR코드를 찍어 결제한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앱을 내려 받을 필요 없이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페이코 등 기존 결제 앱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핵심은 ‘수수료 제로’다. 민간 결제 플랫폼 사업자와 시중은행들과의 협업 방식을 통해 계좌 이체와 간편 결제 플랫폼 이용 수수료를 ‘제로화’한다. 결제 플랫폼 사업자들은 소상공인에 대해 오프라인 결제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시중은행들은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받았던 계좌 이체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여기에 ‘공동 QR’로 편의성을 더한다. 서울시는 결제 플랫폼 사업자·은행과 공동으로 기본 인프라에 해당하는 공동 QR을 개발해 ‘허브 시스템’을 구축한다. 현재는 가맹점별로 이용할 수 있는 결제 플랫폼이 제각각이고 플랫폼별마다 다른 QR을 쓰고 있다.
사실 간편 결제 방식은 QR코드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페이와 LG페이의 마그네틱 보안 전송 방식, 페이코의 바코드·근거리무선통신(NFC) 방식 등이 있다. 삼성페이와 LG페이는 ‘앱에서 단말기’ 형태로 결제된다.
소비자가 앱을 구동하고 단말기에 갖다 대면 등록된 신용카드 정보를 단말기가 인식해 결제가 이뤄진다. 반면 카카오페이와 서울페이는 사업자와 소비자의 앱을 연결해 주는 ‘앱에서 앱’ 형태다.
QR코드는 검은 점으로 된 사각 모양의 2차원 인식 코드다. 기존 바코드가 20자리 수준의 정보량을 담고 있다면 QR코드는 수십 배에서 수백 배의 정보량을 갖고 있다. 훼손에 강하고 위조가 어려우며 360도로 어느 방향에서나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앱에서 앱’ 방식의 결제에서는 QR코드가 보편화된 형태로 쓰이고 있다.
카카오페이가 QR코드 결제 방식을 택한 것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새로운 결제 방식을 도입할 때 단말기 구입이나 단말기를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는 반면 QR코드는 키트만 있으면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중국에서는 QR코드 플랫폼이 대세다. 신용카드 단말기 보급이 열악한 중국에선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크게 성장했다. 전 세계 QR코드 사용자의 90%를 중국인이 차지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각각 54.26%와 38.15%에 달한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거지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국내에서 차차 결제 가맹점을 늘려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칫하면 중국 기업들에 QR 결제망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권도 QR결제 ‘설계 중’
기존 은행권 또한 QR코드 결제 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고객의 은행 계좌 기반 ‘모바일 직불 서비스’를 2019년 중 도입할 예정이다. 소비자가 결제 금액을 입력한 후 가맹점의 QR코드를 스캔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되는 방식이다.
한은 관계자는 “모바일 직불 서비스의 도입으로 소비자와 가맹점이 어떤 은행이든 예금 계좌를 가지고 있으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스마트폰을 활용해 별도 단말기가 필요 없으며 수수료도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국내에서 최근 신용카드사가 제공 중인 모바일 신용카드 서비스는 단순히 카드 정보를 모바일 기기에 저장하는 수준으로, 외국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기존 은행권과 서울시가 내놓은 모바일 직불 서비스 모델을 살펴보면 카드사들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가맹점만의 QR코드를 인식한 후 소비자의 계좌에서 가맹점의 계좌로 바로 금액이 전달된다. 신용카드가 중간에 끼어들 틈이 없다.
이 때문에 각종 ‘○○페이’의 등장으로 신용카드사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QR 결제는 신용카드가 아닌 체크카드나 현금의 보완재 성격을 갖는다. QR코드 결제는 계좌에 돈이 있어야만 지불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의 최대 장점인 ‘후불 결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신용카드 넘어선 혜택 줘야
별도의 앱을 켜야 한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그네틱을 이용한 결제 방식을 택한 삼성페이는 스마트폰을 카드 단말기 가까이에 가져다만 놓으면 결제가 완료된다.
여기에 마그네틱 보안 전송과 NFC 방식을 함께 지원하기 때문에 어느 매장에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편의성’ 때문에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에서만 설치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도 출시 약 2년 반 만인 지난 3월 국내 가입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결제 금액은 18조원으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바일 금융 결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페이는 저장된 신용카드 정보를 활용한다. 이 점에서 삼성페이가 신용카드와 완전히 분리된 결제 형태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사용률은 57.9%로 압도적이다.
결국 QR코드 결제 시스템이 소비 패턴을 바꿔 놓으려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만큼 혹은 그 이상의 혜택을 줘야만 한다.
노용관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QR코드 활용 모바일 직불 서비스를 원활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선택권을 보유한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며 “소득공제율 향상을 통한 소득공제 혜택 확대, 전통시장 사용 금액처럼 별도의 소득공제 한도 부여 등 세제상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사용 금액에 대해 기존 결제 수단보다 높은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공제율은 약 40%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세법상 신용카드 사용 금액은 15%,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에는 30%의 소득공제율이 적용된다. 카카오페이 또한 소비자를 위한 소득공제 혜택 등을 검토 중이다.
동시에 피부에 와 닿는 혜택도 필요하다. 신용카드의 포인트 적립이나 멤버십 할인 등에 상응하는 혜택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6호(2018.08.20 ~ 2018.08.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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