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개에 달하는 독일의 맥주 브랜드… 각각 개성 있는 병 사용이 핵심 원인
[한경비즈니스=박진영 객원기자] 독일은 맥주의 나라다. 독일에는 현재 550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가 있고 매주 새로운 맥주가 출시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체 맥주 생산량의 82% 이상이 내국에서 소비되는데 독일 내 맥주 판매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5월 독일 연방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독일의 맥주 판매량은 독일이 통일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5% 감소하면서 판매량이 총 93억5000만 리터에 머물렀다.
몇 년 전부터 맥주 소비량이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상반기 맥주 판매량이 이전 6개월 대비 0.6% 증가한 것에 이어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맥주 판매를 끌어올렸다.
◆“빈 병을 돌려주세요” 양조장들의 호소
맥주 소비 증가는 맥주병 부족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캔 맥주가 전체 맥주 시장의 7%에 불과할 정도로 병맥주 판매가 절대적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빈 병을 재활용한다는 이유도 병맥주 시장이 절대 우위인 이유 중 하나다.
재사용이 가능한 맥주병에는 8~15센트의 보증금이 들어 있지만 올여름 무더위 속에 맥주 소비량이 늘어나고 그만큼 빈 병들이 각 집에 쌓여 감에 따라 업계는 빈 병 품귀에 시달렸다.
일부 맥주 제조업자들은 빈 병을 돌려달라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시작은 독일 서부의 도시 보훔에 본사를 둔 모리츠 피게 맥주 양조장이었다.
모리츠 피게는 지난 7월 중순 회사 공식 페이스북에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빈 병을 새로 구입하지만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여름휴가를 가기 전 모리츠 피게 빈 병을 가져다 달라. 먼저 보증금을 챙기고 그다음 파티! 당신이 태양 아래 있는 동안 우리는 병을 가득 채워 놓겠다”고 썼다.
또한 모리츠 피게 측은 “모리츠 피게는 보통 하루에 10만 개에서 12만 개의 맥주병을 사들이는데 올여름엔 15만 개에서 16만 개 사이”라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독일 언론에 전하기도 했다.
이 게시물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고 900번 이상 ‘공유’되는가 하면 64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지지를 이끌어 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빈 병을 반납하러 가는 길”이라며 인증 사진을 올렸고 “다 마신 후 반드시 반납하겠다”는 서약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모리츠 피게 측은 지난 8월 초 다시 한 번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매우 감동적”이라며 “많은 빈 병들과 맥주 상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모리츠 피게 측의 사례는 굉장히 창의적인 ‘홍보 수단’이 되기는 했지만 모리츠 피게와 같은 독립적이고 지역적인 양조장들은 올여름 같은 문제에 시달렸다.
바이에른의 그리프 양조장 또한 “우리는 5월 중순부터 맥주병이 부족했다”며 “재사용 가능한 빈 병을 빨리 구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것을 주문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빈 병을 찾기 위해 배달원을 내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 공영방송에 호소하기도 했다.
◆캔보다 병을 좋아하는 독일인
맥주병 공급은 사실 독일에서 처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일례로 2012년 여름 뮌헨의 유명한 호프브로이는 병이 부족해 빈 맥주병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만 맥주 한 병을 팔기도 했다.
병 공급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독일 맥주병들의 특성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시중에 약 40억 개 정도의 맥주병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 중 약 20억 개 정도가 재사용된다.
이 맥주병은 평균 36번 재사용되는데 이 놀라운 재사용 숫자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모든 양조장이 브랜드별로 특색 있는 병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맥주병들은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사이즈도 다 제각각이다. 병 모양 자체가 특징적인 것을 넘어 일부 양조장은 유리에 이름을 새겨 넣어 병 자체를 아예 브랜드 ‘맞춤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올라간다거나 재사용 횟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모리츠 피게만 해도 스윙 톱 클로저에 도자기 코르크 마개의 병을 사용한다.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맥주 애호가들에게 만족감을 주지만 이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병은 재사용하기 위한 유지비가 더 많이 들고 30번 정도만 재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조장들이 더 많은 ‘새 맥주병’을 제조회사들에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리병은 계절에 맞춰 생산되는데 다음 여름 날씨가 어떨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양조장들은 미리 1년 전에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조장이 작을수록 문제는 심각하다. 바슈타이너나 벡스 같은 대규모 기업 양조장은 병 부족 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양조장들은 빈 병 공급 부족이 고스란히 매출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양조장들은 재사용을 위한 시설을 갖추거나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빈 병에 보증금을 부과하지 않는 곳도 있다.
올해와 같은 더위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앞으로 양조장들이 겪을 빈 병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 주류 매거진 인사이드의 편집장은 “예전에는 양조장들이 다른 상표에도 불구하고 같은 병을 썼지만 지금은 병과 상자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캔 맥주로 해결책을 찾는 맥주 업체도 생겨났다. 캘리포니아 맥주 회사인 스톤 브루킹은 2년 전 베를린에 첫 유럽 양조장을 열면서 병이 아닌 캔을 선택했다. 이 회사의 대표인 토마스 티렐은 “캔이 맥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며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캔이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오해에 대해서도 “스톤 브루킹 캔에도 보증금이 있고 98% 재활용된다”며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인들은 ‘대안이 없을 때’만 캔으로 맥주를 마시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독일 맥주업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빈 병 문제는 각 업체를 넘어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장기적인 문제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박진영 객원기자] 독일은 맥주의 나라다. 독일에는 현재 550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가 있고 매주 새로운 맥주가 출시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체 맥주 생산량의 82% 이상이 내국에서 소비되는데 독일 내 맥주 판매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5월 독일 연방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독일의 맥주 판매량은 독일이 통일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5% 감소하면서 판매량이 총 93억5000만 리터에 머물렀다.
몇 년 전부터 맥주 소비량이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상반기 맥주 판매량이 이전 6개월 대비 0.6% 증가한 것에 이어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맥주 판매를 끌어올렸다.
◆“빈 병을 돌려주세요” 양조장들의 호소
맥주 소비 증가는 맥주병 부족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캔 맥주가 전체 맥주 시장의 7%에 불과할 정도로 병맥주 판매가 절대적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빈 병을 재활용한다는 이유도 병맥주 시장이 절대 우위인 이유 중 하나다.
재사용이 가능한 맥주병에는 8~15센트의 보증금이 들어 있지만 올여름 무더위 속에 맥주 소비량이 늘어나고 그만큼 빈 병들이 각 집에 쌓여 감에 따라 업계는 빈 병 품귀에 시달렸다.
일부 맥주 제조업자들은 빈 병을 돌려달라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시작은 독일 서부의 도시 보훔에 본사를 둔 모리츠 피게 맥주 양조장이었다.
모리츠 피게는 지난 7월 중순 회사 공식 페이스북에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빈 병을 새로 구입하지만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여름휴가를 가기 전 모리츠 피게 빈 병을 가져다 달라. 먼저 보증금을 챙기고 그다음 파티! 당신이 태양 아래 있는 동안 우리는 병을 가득 채워 놓겠다”고 썼다.
또한 모리츠 피게 측은 “모리츠 피게는 보통 하루에 10만 개에서 12만 개의 맥주병을 사들이는데 올여름엔 15만 개에서 16만 개 사이”라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독일 언론에 전하기도 했다.
이 게시물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고 900번 이상 ‘공유’되는가 하면 64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지지를 이끌어 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빈 병을 반납하러 가는 길”이라며 인증 사진을 올렸고 “다 마신 후 반드시 반납하겠다”는 서약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모리츠 피게 측은 지난 8월 초 다시 한 번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매우 감동적”이라며 “많은 빈 병들과 맥주 상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모리츠 피게 측의 사례는 굉장히 창의적인 ‘홍보 수단’이 되기는 했지만 모리츠 피게와 같은 독립적이고 지역적인 양조장들은 올여름 같은 문제에 시달렸다.
바이에른의 그리프 양조장 또한 “우리는 5월 중순부터 맥주병이 부족했다”며 “재사용 가능한 빈 병을 빨리 구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것을 주문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빈 병을 찾기 위해 배달원을 내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 공영방송에 호소하기도 했다.
◆캔보다 병을 좋아하는 독일인
맥주병 공급은 사실 독일에서 처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일례로 2012년 여름 뮌헨의 유명한 호프브로이는 병이 부족해 빈 맥주병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만 맥주 한 병을 팔기도 했다.
병 공급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독일 맥주병들의 특성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시중에 약 40억 개 정도의 맥주병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 중 약 20억 개 정도가 재사용된다.
이 맥주병은 평균 36번 재사용되는데 이 놀라운 재사용 숫자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모든 양조장이 브랜드별로 특색 있는 병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맥주병들은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사이즈도 다 제각각이다. 병 모양 자체가 특징적인 것을 넘어 일부 양조장은 유리에 이름을 새겨 넣어 병 자체를 아예 브랜드 ‘맞춤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올라간다거나 재사용 횟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모리츠 피게만 해도 스윙 톱 클로저에 도자기 코르크 마개의 병을 사용한다.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맥주 애호가들에게 만족감을 주지만 이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병은 재사용하기 위한 유지비가 더 많이 들고 30번 정도만 재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조장들이 더 많은 ‘새 맥주병’을 제조회사들에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리병은 계절에 맞춰 생산되는데 다음 여름 날씨가 어떨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양조장들은 미리 1년 전에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조장이 작을수록 문제는 심각하다. 바슈타이너나 벡스 같은 대규모 기업 양조장은 병 부족 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양조장들은 빈 병 공급 부족이 고스란히 매출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양조장들은 재사용을 위한 시설을 갖추거나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빈 병에 보증금을 부과하지 않는 곳도 있다.
올해와 같은 더위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앞으로 양조장들이 겪을 빈 병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 주류 매거진 인사이드의 편집장은 “예전에는 양조장들이 다른 상표에도 불구하고 같은 병을 썼지만 지금은 병과 상자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캔 맥주로 해결책을 찾는 맥주 업체도 생겨났다. 캘리포니아 맥주 회사인 스톤 브루킹은 2년 전 베를린에 첫 유럽 양조장을 열면서 병이 아닌 캔을 선택했다. 이 회사의 대표인 토마스 티렐은 “캔이 맥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며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캔이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오해에 대해서도 “스톤 브루킹 캔에도 보증금이 있고 98% 재활용된다”며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인들은 ‘대안이 없을 때’만 캔으로 맥주를 마시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독일 맥주업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빈 병 문제는 각 업체를 넘어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장기적인 문제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