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표 백수’ 연암 박지원 다시 읽기

[서평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전 평론가 고미숙이 말하는 ‘자신의 리듬’ 따라 사는 백수 예찬론


[한경비즈니스=유능한 한경BP 편집자] 백수의 삶에는 롤모델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면 공자·부처·예수 등 사상가로부터 소설 속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자유의 삶을 희구했던 많은 이들이 바로 백수로 사는 삶을 제안했다.

특히 조선에는 ‘연암’이 있었다.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배경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청빈한 삶을 택했던 연암. 그에게는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고전 평론가 고미숙 씨는 기본적으로 남다른 자존감으로 무장했던 연암의 태도를 본받으라고 말한다. 돈이 없으면서도 호탕했고 제도·권력·부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될 줄 알았던 연암의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제도·권력·부에서 해방된 연암

첫째, 틀에 박힌 노동의 일과로부터 과감히 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백수는 경제활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것’이다. ‘미니 잡’을 예로 들 수 있다. 짧은 기간 일하는 비정규직을 수차례 옮기며 자신의 리듬에 맞는 노동을 꾸릴 수 있다.

쉬고 싶을 때 쉬어도 되고 운신의 폭이 넓으니 시간을 내 바이오리듬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규칙적이고 일관된 노동, 한마디로 ‘정규직’이란 진정한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다.

둘째, 행복은 기본적으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연암은 정말 ‘허물없이’ 사귀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출신 성분과 직업·성별을 뛰어넘어 나이조차 장애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길에서 만나는 이들, 여행에서 만나는 타국인들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건넸다.

특히 백탑청연으로 유명한 친구들은 모두 연암의 성정을 아꼈고 서로의 생각을 허물없이 나누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꿈을 나눴다. 많은 부를 획득한다고 인생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셋째,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갈구하는 삶은 결국 ‘자유인’의 삶이다.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는 정해진 절차를 밟아온 사람들이 결국에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다. 그렇게 가정을 이루고자 노력했으면서도 종국에는 그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삶을 원한다.

이제는 단지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단기적인 여행만 말할 것이 아니라 생애 자체가 ‘정주’에서 ‘이동’으로 그 가치관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생이 한 편의 여행인 것이다.

저자는 논의를 전개하며 ‘백수’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대체로 ‘백수’는 ‘쓸모없는’, ‘무가치한’의 의미가 더해져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먼저 이를 벗어나 백수는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디자인하는 프리랜서’로 다시 정의하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읽고·말하고·쓰며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생애 리듬을 알고 스스로 삶의 과제를 조정하며 세상을 자유로이 탐구하고 규칙적인 노동에서 벗어난 경제활동을 시도하라고 말한다. 화폐에 얽매인 삶을 살지 말고 관계가 바탕이 된 행복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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