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홍국영에게 개혁을 맡긴 이유

[신현만의 기업 가치 100배 키우기]
-필요에 의해 영입한 임원은 과감히 퇴출도 할 수 있어야 회사가 성공한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Q. 우리 회사는 최근 시장 변화에 맞게 회사의 사업구조를 전환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할 전문가를 찾는 중입니다. 구조조정 책임자는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직원을 정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조조정 경험이 많고 추진력도 강해야 하는데 내부에는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회사는 구조조정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구조조정 책임자들은 구조조정이 끝나면 대체로 회사를 떠납니다. 구조조정 직무라는 게 특수할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직원들의 감정선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또 구조조정 이후를 의식하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유능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구조조정 이후에도 남기를 원합니다. 물론 성과에 따라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뽑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중간에 내보내야 하는 부담은 남아 있게 됩니다. 이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할까요. 아니면 부족하더라도 내부 인사를 기용해야 할까요.





A.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몹시 힘든 과정을 거쳐 왕이 됐습니다. 세손으로 책봉된 그는 열한 살 때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참담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가 죄인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평생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게 됩니다. 영조가 죽을 무렵 스물다섯 살의 젊은 정조는 온통 정적들에 의해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했습니다. 정조를 비방하는 투서를 올리고 그가 거처하던 곳을 염탐하고 심지어 그를 직접 해치려고도 했습니다.

정조는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지만 3~4년 만에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왕권을 확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때 주역을 맡은 사람이 홍국영입니다. 정조보다 네 살 많은 홍국영은 정조의 뜻이 자신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정조 역시 “홍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홍국영을 철저히 신임했습니다. 정조는 즉위한 지 며칠 만에 홍국영을 국왕의 명령을 출납하는 승지에 임명했고 몇 달 뒤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로 승진시켰습니다. 또 궁궐에 설치한 숙위소 대장을 맡게 했고 훈련대장과 금위대장도 겸직하게 했습니다. 갓 서른 살의 홍국영은 그렇게 순식간에 조선의 2인자가 됐습니다.

정조의 무한 신임을 기반으로 홍국영은 사도세자를 무시하고 정조의 즉위를 방해한 대신들을 줄줄이 숙청했습니다. 정조의 외척과 정순왕대비의 세력도 와해시켰습니다. 홍국영이 없었다면 정조는 국정 개혁은 고사하고 정적의 첩첩산중을 뚫고 왕권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웠을 겁니다. 정조가 “경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겠나”라는 말을 자주 한 것은 단순한 공치사가 아니었습니다.


◆사방에 적이 널려 있던 정조

기업에서 경영자들이 홍국영 같은 탁월한 임직원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고 신규 사업을 성공시킨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 때문에 경영자들은 항상 인재에 굶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헤드헌팅 회사에 인재 추천을 의뢰하는 기업들 중 상당수도 경영이나 사업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구원투수를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영입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인재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홍국영 같은 사람을 발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답답한 것은 적임자를 찾고도 영입하지 않는 경영자들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적임자를 발견했지만 역할을 마친 이후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부담스럽다며 영입을 포기합니다. 귀하의 회사가 찾고 있는 구조조정 전문가처럼 구조조정이 완료되면 회사를 떠나보내야 하는데 이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임무를 끝낸 뒤 헤어지는 과정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적임자를 영입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경영자가 적임자를 발견하고도 채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입니다. 적재적소라는 인재 관리 원칙을 외면하는 것이죠. 특히 기업이나 사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어떤 것을 감수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 투입해야 하는데 결정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을 보면 속이 답답해집니다. 적임자를 영입하지 않는 것은 홍국영이 정적 제거와 왕권 확립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나중에 탈선할 것이 두려워 그를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홍국영은 정조의 정적들을 제거한 뒤 초심을 잃고 세력화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냅니다. 이전의 수많은 권력자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아 간 것이죠. 그는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누이동생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자 이번에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아들을 죽은 누이동생의 양자로 들여 정조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홍국영은 특히 정조의 신임을 믿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 궁궐 안의 모든 세력들로 하여금 적대감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정조는 홍국영의 이런 행태를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 결국 그를 자진 사퇴 형식으로 추방시킵니다. 홍국영이 정조의 뜻에 따라 은퇴를 청하는 사직상소를 올리자 그에게 원로대신에게 주는 ‘봉조하’라는 명예 직함을 주면서 명예롭게 물러나게 합니다. 강릉 근처 바닷가로 거처를 옮긴 홍국영은 결국 3년의 짧은 기간 동안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권력을 누리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홍국영에 대한 정조의 조처를 토사구팽으로 여깁니다. 사냥꾼들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처럼 정조도 홍국영의 용도가 사라지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는 대부분 ‘적임자’를 알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정조는 홍국영에 대한 자신의 조처를 적재적소라고 설명합니다. 정조는 나중에 신하가 홍국영을 왜 중용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구덩이에 들어 있는데 흉적의 집안과 원한을 맺은 사람은 오직 그 한 사람이므로 그를 쓴 뒤에야 흉적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이 그를 발판으로 조정에 설 수 있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위기 상황에서 탈출구를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홍국영을 기용하는 것이었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정조도 나중에 홍국영의 이탈 때문에 큰 부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의 낭패를 내가 어찌 염려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기업들이 인재 관리에서 적재적소가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잘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적임자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적임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가 자신의 역할을 마친 뒤 떠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토사구팽이라는 비난이 두려워 적재적소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기업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경영학의 그루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피터 드러커는 “10년 뒤와 10분 뒤를 동시에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인재 관리도 기본적으로는 길게 봐야 하지만 짧게도 봐야 합니다. 기업 임원들의 임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것도 필요할 때 채용하고 상황이 변하면 바꾸려는 기업의 임원 관리 추세와 맞물려 있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피터 가펠리 교수는 2007년 경제 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7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CEO의 임기가 계속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950년대 CEO의 임기는 10년이었지만 당시 조사에서는 불과 3년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35년 이상 근무한 CEO가 2000년에는 전체의 22%를 차지했지만 2004년에는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또 2000년에는 CEO의 25%가 같은 직무에서 정년퇴직했지만 2004년에는 18%만이 같은 직무에서 정년을 마쳤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상당수는 이제 임원의 임기를 1년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임기를 길게 하지 않고 성과가 좋으면 연장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물론 기업에는 내부 사정에 따라 경영과 사업의 책임을 맡으면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 사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수요는 많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 필요한 과제를 수행한 뒤 떠나는 게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인재는 ‘적재적소’에 포진돼 있어야

그런 점에서 귀하의 회사도 구조조정을 추진할 임원이라면 역할이 끝난 뒤 물러나는 것을 전체로 영입을 추진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그가 구조조정 이후에도 조직을 잘 이끌고 성과를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내보낼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만약 그의 임기가 연장됐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잘 내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정조가 그렇게 애지중지 아꼈던 홍국영을 정리한 것처럼 내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을 내보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CEO 역할이 끝난 사람을 조직에 남겨두면 적재적소의 인재 관리 원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적재적소의 인재 관리 원칙에 둔감한 경영자가 오래 재직한 회사는 특별한 강점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습니다. 직무와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이거저것 모두 적당히 할 수 있어 장기 근무가 가능한 사람을 채용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필요에 따라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을 뽑고 그 직무 수행이 끝나면 떠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경영자는 단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위 간부를 자유롭게 영입하고 퇴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조처럼 수시로 필요한 인재를 영입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9호(2018.09.10 ~ 2018.09.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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