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진하는 SPA 산업, 불황은 없다

[커버스토리 = '스파오'의 성공 스토리]
-급부상하는 토종 브랜드들…스파오 vs 자라 2위 놓고 ‘혈투’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한국 패션 시장이 역신장하고 있다. 의류업계가 장기 침체기에 빠지면서 2017년 시장 규모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9년 만이다. 그런데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세를 거듭하는 곳이 있다. 기획과 생산, 판매를 일체화한 ‘SPA’ 비즈니스다. SPA 브랜드들은 트렌디한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제안하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 토종 SPA 브랜드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이랜드 ‘스파오’는 글로벌 SPA 강자인 유니클로와 자라를 맹추격 중이다. 역부족으로만 여겨졌던 글로벌 대 토종의 싸움, SPA 시장을 둘러싼 경쟁의 제2막이 올랐다.

◆패션 시장 감소에도 SPA는 5.7% 성장

대한민국 관광의 심장부인 서울 중구 명동. 이곳 거리에는 대형 상점가를 중심으로 SPA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유니클로(일본)$H&M(스웨덴)$자라(스페인)$포에버21(미국)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과 스파오, 탑텐 등 한국의 토종 SPA 브랜드들이다. 넓은 매장 면적에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이 진열된 마네킹까지…. 이들 상점 모두 명동거리의 대표 건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시끌벅적하다. 매장 계산대는 4명의 점원이 숨 쉴 틈도 없이 바코드를 찍고 있지만 줄 선 고객들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명동은 세계에서도 임대료가 비싼 것으로 손꼽히는 금싸라기 땅이다. 임대료 급등에 문 닫는 상점들이 속출했지만 SPA 상점들은 10년째 핵심 노른자위를 지키고 있다.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패션 산업에는 불황이 닥쳤지만 SPA 브랜드들은 불황을 비켜 갔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올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패션 시장은 42조4704억원으로 전년 43조1807억원보다 1.6% 감소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9년 만이다.

반면 SPA 브랜드는 달랐다. 삼성패션연구소가 지난해 9월 펴낸 조사 보고서에서 남성복·스포츠·잡화·SPA 등 주요 복종별 규모를 분석한 결과 SPA 시장은 2017년 5.7% 성장을 예상했다. 남성복·스포츠·잡화·SPA 등 주요 복종 중 성장률이 5%를 넘은 것은 SPA가 유일하다.



◆글로벌 SPA 공룡들이 초기 시장 선점

SPA 시장이 패션업계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도 성장 가도를 달린 이유는 독특한 비즈니스 시스템 때문이다.

SPA란 패션 기획부터 디자인$생산$제조$유통$판매까지 비즈니스 밸류 체인의 전 과정을 한 회사가 맡는 패션 전문점 사업을 일컫는다. 쉽게 표현하면 ‘제조$판매 일체형 사업 모델’이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한 회사가 패션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모두 도맡아 생산과 유통거래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한 회사가 정책 결정을 주도하면서 1~2주 단위로 교체되는 빠른 상품 회전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이렇다 보니 불황에도 ‘저가’로 소비자들의 닫힌 지갑을 열고, ‘신속성’으로 패스트패션(저가 제품과 유행 제품으로 제품의 사용 기간이 짧아지는 것) 시대에 부응하면서 지속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업 모델이지만 국내에서 SPA형 모델이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1986년 미국의 청바지 제조업체인 ‘갭’이 SPA형 사업 모델을 처음 시도했지만 한국에는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2005년 일본의 ‘유니클로’가 처음 SPA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SPA 열풍이 분 것은 2008년 스페인 브랜드인 ‘자라’가 론칭하면서부터다. 자라를 시작으로 ‘포에버21’과 ‘망고’, ‘H&M’, ‘홀리스터’와 ‘아메리칸이글’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한국 진출이 계속 이어졌다.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몰려들어오면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한국의 패션 기업들도 ‘SPA’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를 시작으로 글로벌 SPA 브랜드의 성공 요소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SPA 브랜드들이 줄이어 쏟아졌다. 스파오를 주축으로 2011년 이랜드월드의 ‘미쏘’, 2012년 등장한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와 신성통상의 ‘탑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국제를 무대로 한 SPA 브랜드 유니클로$자라$H&M 앞에 토종 브랜드들은 속수무책으로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다. 2010년대 초반 SPA 시장을 열고 성장을 견인한 것은 이들 글로벌 기업이었다.



◆토종 기업의 반격, 스파오가 주도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약체’로 평가받던 토종 업체들이 SPA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며 약진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스파오다.

국내에 진출한 SPA 브랜드 중 2017년도 매출액 기준 1위는 1조2377억원을 기록한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2008년 빠르게 한국에 진출한 뒤 유명 배우 등을 모델로 기용하며 시장을 선점, 국내 SPA 시장의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주목할 것은 2위 경쟁이다. 지난 10여 년간 깨지지 않았던 해외 SPA 브랜드 간 선두 경쟁에 이랜드월드의 ‘스파오’가 명함을 내밀었다. 2~3위 간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좁히며 현재 2위인 자라는 물론 유니클로 자리까지 넘본다는 계획이다.

2017년 기준 자라와 스파오의 매출 규모 차이는 350억원이다. 2015년 505억원에서 2년 새 350억원까지 그 격차를 좁혔다. 성장률로 보면 스파오의 기세는 더욱 무섭다. 스파오는 2017년 6.7%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자라는 2.9%로 SPA 전체 시장의 평균 성장률인 5.7%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스파오의 성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짱구 파자마’다. 지난해 스파오가 만화 ‘짱구는 못말려’와 컬래버레이션 상품으로 선보인 짱구 파자마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출시 30분 만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많은 소비자들이 제품 구입을 위해 줄을 섰고 거리마다 ‘짝퉁’ 상품이 상점 판매대에 진열돼 있을 정도로 스파오 돌풍을 일으켰다.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템을 선정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킨 것이 주효했다. 스파오는 이 기세를 몰아 3년 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머지않아 선두인 유니클로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다.

유니클로 역시 선두를 빼앗길 생각은 없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지난 9월 14일 유니클로의 세컨드 브랜드인 지유(GU)를 국내에 론칭했다. 지유는 2013년 상하이에 해외 첫 매장을 연 후 중국·홍콩·대만 등에서 꾸준히 해외 사업을 확대해 오고 있다. ‘990엔 청바지’ 등이 대표 상품으로 유니클로의 동종 상품 대비 1만~2마원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스파오는 자신만만이다. 브랜드를 추가 신설해 지유에 대응하기보다 스파오의 강점인 가성비 제품을 보다 확대해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유보다 더 저가의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포부다.

전문가들도 토종 브랜드에 우호적인 반응이다. 강철구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최근 스파오 등의 국내 브랜드들이 큰 폭으로 성장해 SPA 시장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며 “국내 브랜드들은 △유통망 확장 △글로벌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 △한국인 체형과 감성에 부합하는 제품 등의 장점을 앞세워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소비자의 취향과 감성, 신체에 맞춘 상품 사이즈, 저가 라인 등으로 글로벌 SPA 브랜드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poof34@hankyung.com


[커버스토리 : '스파오'의 성공 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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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1호(2018.09.17 ~ 2018.09.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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