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글로벌 플랫폼으로 AI ‘新초격차’ 이룬다

커버스토리 - 4대 그룹 AI 혈전

2020년까지 AI 인재 1000명 확보
연말 ‘AI 스피커’ 출시 예정

올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 후,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사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다소 후발 주자로 분류되는 삼성전자가 AI 산업에서도 또 한 번의 ‘신(新) 초격차’를 이뤄낼 수 있을까.

◆전 세계 아우르는 ‘AI 지도’ 그린다

AI는 반도체와 함께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자, 4차 산업혁명의 기본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투자와 채용 확대를 통해 AI·바이오·반도체 중심의 전장부품
등 신사업 분야에서 리더십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

우선 세계 각국의 AI 연구센터로 연구 역량을 강화한다. 지난 9월 7일, 삼성전자는 미국 뉴욕에 글로벌 AI 연구센터를 신설했다. 이 센터는 서울·실리콘밸리·케임브리지·토론토·모스크바에 이은 6번째 AI 연구센터다.

뉴욕 AI 연구센터에서는 로보틱스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또 센터 설립을 통해 명문 대학이 밀집한 미국 동부의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AI 연구 역량을 강화해 박차를 가한다. 6월 영입한 다니엘 리 부사장이 센터장을 맡으며, 뇌신경공학 기반 AI 분야 석학 세바스찬 승 부사장도 최고연구과학자(CRS)로 선임됐다.

글로벌 센터의 시작은 작년 11월 설립한 한국 AI 총괄센터다. 삼성전자는 AI 총괄센터를 중심으로 각 글로벌 AI 연구센터별 강점 연구 분야를 활용해 AI 역량을 강화한다. 뒤이어 세계 각국의 연구센터를 설치함과 동시에, 각 AI 연구센터의 지역별 강점을 살려 선행 연구를 진행한다.

케임브리지 AI 센터는 AI 선행 연구, 토론토 AI 센터는 AI 코어 기술 연구, 모스크바 AI 센터는 러시아의 수학·물리학 등 기초·원천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한 AI 연구를 수행한다.

센터의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인재 확보에도 나선다. 2020년까지 한국 AI 총괄센터를 중심으로 글로벌 연구 거점에 AI 선행 연구·개발(R&D) 인력을 국내 약 600명, 해외 약 400명으로 1000명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인재 확보는 기업 성장을 위한 승부처다. 삼성전자는 AI에서 이름난 석학들을 잇달아 영입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6월 합류한 세바스찬 승 교수는 뇌신경공학 기반 AI 분야의 석학이다. 미국 하버드대 이론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벨랩(Bell Labs) 연구원,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2008년에는 AI 컴퓨터를 구현하는 토대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 ‘호암상’ 공학상을 받았다.

다니엘 리 교수는 AI 로보틱스 분야의 권위자다. MIT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벨랩 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펜실베이니아대 전기공학과 교수로 근무했다. AI 분야 학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NIPS)과 인공지능발전협회(AAAI) 의장이자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의 팰로다.

특히 두 교수는 1999년 인간의 뇌신경 작용에 영감을 얻어 인간의 지적 활동을 그대로 모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했다. 부사장급으로 영입된 두 명의 교수는 삼성리서치(SR)에서 각각 AI 전략 수립 및 선행 연구 자문, 차세대 기계학습 알고리즘 로보틱스 관련 연구 등을 진행한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AI 연구센터에서는 영입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센터를 이끄는 앤드루 블레이크 박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케임브리지 연구소장을 지냈다. 모스크바 센터에는 AI 알고리즘 연구 전문가인 러시아 고등경제대학(HSE)의 드미트리 베트로프 교수가 책임자를 맡았다.

올 초 삼성전자 리서치센터에 합류한 머신러닝 전문가 래리 핵 전무는 미국 실리콘밸리 센터와 캐나다 토론토 센터장을 겸직한다. 래리 핵 전무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음성인식 개인비서 ‘코타나’ 개발에 관여했고, 구글에서는 ‘어시스턴트’의 개발을 주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최초로 인수한 국내 스타트업 역시 ‘AI’

인재 영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월 13일 열린 ‘삼성 AI 포럼 2018’에서 김현석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엔지니어 수준을 넘어 굉장히 유명한 분들을 영업할 것”이라며 “AI 분야가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석학 중심의 인재풀을 확보할 것”이라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2020년까지 AI 핵심 인력을 1000명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과거 삼성전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가 쓰고 있는 ‘반도체 신화’도 지난 1974년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출시 3주년 만에 전 세계 6대륙 24개 국가 및 시장에서 서비스를 확대한 후, 글로벌 결제 건수 13억 건을 돌파한 ‘삼성페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2015년 미국 스타트업 ‘루프 페이’를 인수하고,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삼성페이’를 내놨다. 여기에 2017년 3월 커넥티드카와 오디오 전문 기업 ‘하만’을 인수함으로써 자동차 전장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AI 분야에서도 활발한 M&A는 진행 중이다. 2016년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벨리 소재 AI 플랫폼 개발 기업 ‘비브랩스’를 인수했다. 비브랩스는 AI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외부 서비스 제공자들까지 자유롭게 참여해 인터페이스에 연결 가능한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비브랩스의 인수를 통해 향후 모든 기기와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되는 AI 기반 개방형 생태계 조성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후 4개월여 만에 삼성전자는 AI 플랫폼 ‘빅스비(Bixby)’를 갤럭시S8에 탑재해 출시했다.

2017년에는 최초로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해 눈길을 끌었다. 작년 11월, 삼성전자는 AI 역량 강화를 위해 챗봇(chatbot) 기술을 가진 국내 스타트업 ‘플런티’를 인수했다. 플런티는 기계학습(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등 대화형 AI 기술을 보유했으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 스퀘어’에 선발된 바 있다. 대화형 AI 챗봇 플랫폼인 ‘플런티.ai’를 개발한 바 있다.

AI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뿐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경쟁력도 향상시켰다는 평을 듣게 됐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AI 분야에서 또 다른 M&A를 타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AI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삼성전자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는 ‘빅스비’가 있다.


◆‘뉴 빅스비’로 구글·아마존 잡는다

글로벌 기업들은 ‘AI 플랫폼 전쟁’을 치열히 벌이고 있다. 구글의 ‘어시스턴트’,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는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빅스비’로 도전장을 냈다. 2017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빅스비는 최초로 갤럭시S8에 탑재됐으며, 가전제품을 포함한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제품에 설치됐다. 구글이나 아마존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로, 초창기에는 음성인식률이 낮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AI 플랫폼은 스피커를 포함, 다양한 하드웨어와 결합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력을 갖춘 삼성전자의 제품은 AI 플랫폼사들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외부 플랫폼을 택하는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사의 AI 플랫폼을 장착하는 방안을 택했다.

전 세계 AI 플랫폼 시장 점유율은 아마존의 알렉사와 구글의 어시스턴트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AI 스피커 시장 점유율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2분기 AI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는 아마존의 알렉사로 41%를 차지했다. 2위는 구글 홈으로 27.6%다.

나머지 AI 스피커들은 한 자릿수대의 점유율을 나타내 사실상 아마존의 ‘독주’와 구글의 ‘추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마존과 구글을 잡기 위해 삼성전자는 ‘빅스비’ 성능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9 출시와 동시에 ‘뉴 빅스비’ 서비스를 개시했다. ‘뉴 빅스비’는 우버·스타벅스·망고플레이 등 공식 파트너 서비스와의 연동을 강화했다.

또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문맥 이해 능력도 개선했다. 뉴 빅스비에는 ‘다이내믹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기술’이 적용됐다. 이는 협력사가 보유한 정보와 이용자 정보 데이터를 융합해 문맥의 이해력을 높이는 기술이다.

특히 빅스비를 통해 삼성전자의 가전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은 빅스비의 보급력을 넓히는 중요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홈사물인터넷(IoT) 기능 강화를 위해 2018년형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에 빅스비를 적용한다. 2020년까지 모든 IoT 제품에 AI를 적용한다.

◆‘갤럭시 홈’ 스피커 대전 참전

김현석 사장은 지난 8월 30일 유럽 최대 가전쇼 IFA 2018 개막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빅스비가 전 세계 전자 기기의 핵심 음성인식 비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 구글 등 다른 경쟁 기업과의 협력도 시사해 AI 가전 전략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사장은 “삼성은 모든 기기를 연결하는 ‘스마트싱스’라는 에코 시스템이 있고 이를 음성인식 비서 ‘빅스비’로 조정할 수 있다”며 “전 세계 65억 명 인구 중 매년 5억 명이 구매하는 삼성의 인프라가 (타 AI 플랫폼 기업과의) 협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를 내고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심에도 빅스비가 있다.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 2018’에서는 빅스비의 서비스 개발 도구(SDK)가 전면 공개된다. SDK가 공개될 시 외부 개발자들도 빅스비를 탑재한 다양한 가전 기기를 출시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AI 스피커는 AI 플랫폼을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도구다. AI 스피커의 보급률 또한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2017년 미국의 AI 스피커 보급률은 17%까지 올랐고, 2020년에는 75%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삼성전자도 곧 AI 스피커를 출시한다. 지난 8월, 삼성전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노트9 공개 행사에서 AI 스피커 ‘갤럭시홈’을 선보였다. 검은색 항아리와 유사한 외관을 가진 갤럭시홈은 하만의 AKG 스피커를 탑재해 차별화된 고품질의 음질을 자랑한다. 또 ‘빅스비’를 호출해 작동시킴으로써 삼성전자의 가전 및 스마트폰과의 연결성을 더한다. ‘갤럭시홈’은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시장에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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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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