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간 미래차 개발에 23조 투자
- ACM·오로라·딥글린트 등과 AI·자율주행 협업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현대차그룹이 택한 인공지능(AI) 전략은 유연한 시장 대응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좇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현대차의 유연함에는 경쟁자와 동업자의 영역도 없다.
AI 기술 개발과 관련해 현대차가 당장 추진하고 있는 1차 목표는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AI 기술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AI 플랫폼 기술의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움직임은 광범위하면서도 신속하다. 투자도 어마어마하다. 현대차는 5년간 미래차 개발에 23조를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차는 자율주행 분야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ACM·오로라, 중국 딥글린트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기술 순혈주의를 고수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술 순혈주의를 버리고 국내외 최고 AI 기업들의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흐름에 완전히 올라탄 모습이다.
‘협업을 통한 혁신’을 의미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강조하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공격적 투자, 인수·합병(M&A)에 더욱더 적극적이다.
현대차가 최근 1년 동안 투자를 하거나 기술 협업 계약을 체결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자동차를 단순히 조립하고 생산하는 기업에서 벗어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율주행과 차량 공유 등 자동차의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8월 현대차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상반기에만 해외 기술 업체 8곳에 투자했다. 각각 소규모 지분투자지만 차세대 전고체배터리, 차량용 통신 반도체 설계, 벤처캐피털(VC), 레이더 개발, 딥러닝 등 미래차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 올해 상반기만 8곳에 투자·제휴 맺어
현대차는 지난 2월 유럽 지역 VC ‘얼리버드’에 288만2538유로(약 37억4500만원)를 투자해 19.62% 지분을 보유했다.
3월에도 미국의 차세대 전고체배터리 생산·개발 업체 ‘아이오닉 머티리얼스’에 두 차례, 총 499만9995달러(약 56억2700만원)를 투자해 3.38% 지분을 확보했다.
5월엔 미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투자했다. 전고체배터리 생산·개발 업체 ‘솔리드 파워’에 299만9999달러(약33억5600만원)를 투자했다.
앞서 작년 12월 독일 BMW도 솔리드 파워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또 같은 달 호주의 차량 공유 업체 ‘CND’에 199만9946호주달러(약 16억2600만원)를 투자해 5.44% 지분을 확보했다.
6월에는 무려 4건의 투자로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했다. 미국 레이더 개발 스타트업 ‘메타 웨이브’에 74만9998달러(약 8억4400만원)를 투자한 데 이어, 이스라엘의 차량용 통신 반도체 설계 업체 ‘오토톡스’에도 투자했다.
커넥티드카의 두뇌 역할을 하는 통신 칩셋(반도체 집적회로)을 개발하는 오토톡스에 대한 투자 규모는 499만9998만 달러(약 56억원)다.
같은 달 이스라엘의 딥러닝 엔진 개발 업체 ‘시매틱스’에 99만9999달러(약 11억2000만원)를 투자하고, 퀄컴에서 분사한 열화상 센서 업체 ‘옵시디언’에도 199만1577달러(약 22억3000만원)를 투자했다.
이 밖에 시스코·바이두와도 △커넥티드카 서비스 △음성인식 서비스 △AI 로봇 개발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보유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나 협업은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 등 3개국에 구축돼 있으며, 올해 연말 내로 중국과 독일에도 설립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들 5개 나라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이유는 이들 국가에서 AI와 자율주행 등 기술의 R&D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5곳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움으로써 현지 스타트업과 협업 및 공동 R&D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운송체)를 선도할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 5개국에서 펼쳐지는 오픈 이노베이션
현대차 미국 이노베이션 센터의 존 서 소장은 ‘5대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 구축’에 대해 “현대차는 아시아·미국·유럽·중동 등 전 세계를 잇는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래 혁신을 주도할 스타트업 발굴의 최적 환경을 갖추게 됐다”며 “센터는 현지 대학과 전문 연구기관, 정부, 대기업 등과도 교류하며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말에 중국 베이징과 독일 베를린에 들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대차의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국 창업 열기를 주도하는 베이징은 중국 최대 인터넷 업체 바이두가 지난 2000년 스타트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베이징대·런민대 등 유명 대학들이 위치해 매년 뛰어난 인재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소비층이 다양해 신생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유리하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라고 불리는 베를린도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육성 도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5곳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강점에 따라 특화할 계획이다. 우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글로벌 시장의 AI와 자율주행 흐름을 파악하며 선제적인 전략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구축된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육성, 발굴할 계획이다. 한국 센터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에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아이템 발굴에서 사업 성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 활동에 나선다.
베이징 센터는 AI을 비롯한 중국의 앞선 기술 확보와 현지 대형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협력을 모색하는 혁신 거점으로 삼는다. 베를린은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솔루션 기반의 신사업 확보를 위한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 현대차의 ‘AI 시대’ 만드는 인재들
특히 현대차는 AI 전문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챙길 정도다. 정 수석부회장은 작년 AI와 ICT 개발의 전담부서인 전략기술연구소를 신설하고 자신의 직속 부서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R&D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양웅철 현대차 R&D 총괄부회장을 수장으로 배치시켰다. 양 부회장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대에서 기계설계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에서 기계설계학 박사를 받았다.
1987년 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포드자동차 R&D센터에 근무하다 2004년 10월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전자개발센터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실장·전자개발센터장 등을 거쳤으며 2011년 현대차 연구개발총괄본부 부회장으로 승진해 7년간 현대차의 R&D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현대차의 친환경차 개발을 주도해 온 양 부회장은 작년에는 글로벌 수소위원회 공동회장에 취임, 수소전기차를 비롯한 수소에너지로의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정 수석부회장은 전략기술연구소에 ‘신사업 전문가’로 꼽히는 지영조 박사도 전략기술연구소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 소장은 국내외 주요 업체를 거치며 다수의 신사업 발굴 및 개발, 전략기획 등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지 소장은 서울대와 미국 브라운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브라운대 응용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9년 미국 AT&T 벨연구소 근무를 시작으로 매킨지와 액센추어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전략·마케팅 등을 컨설팅한 경력도 갖고 있다.
지 소장은 지난 1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카헤일링) 서비스 업체인 그랩(Grab)에 전략적 투자를 담당했다.
이 투자를 통해 현대차는 그랩과 함께 싱가포르 및 동남아 지역 차량 호출 서비스에 현대차 공급을 늘리고 아이오닉 전기차(EV) 등 친환경차를 활용한 차별화된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해 차량, 이용자, 주행 여건 등 각종 정보를 취합, 향후 개선된 서비스와 사양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차는 작년 초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전담 조직인 지능형안전기술센터를 신설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알려진 이진우 자율주행차 개발 팀장(상무)을 영입했다.
당시 경쟁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주행차 개발 실무 책임자였던 이 팀장의 영입에 업계가 들썩이기도 했다. 이 팀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동역학 제어 분야를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미국 코넬대에서 연구교수로 자율주행과 로봇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대차는 이 팀장 영입을 통해 2020년까지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고 2030년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인재 영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동안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영입한 글로벌 전문가들은 무려 14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지난달에는 마틴 붸어레 전 BMW그룹코리아 R&D센터장을 미래기술전략실장(이사)으로 전격 영입했다.
붸어레 실장은 1991년 뮌헨공과대 전기·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한 뒤 줄곧 BMW에서 전문 기술 인력으로 근무해 온 전형적인 ‘BMW맨’이었다. 2015년부터는 한국에 부임해 R&D센터 기반을 닦는 데 역할을 했다.
경기도·한국전자통신연구원·SK텔레콤(5G 커넥티드카)과 기술 개발 협력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 현지 실정에 정통한 점도 강점이다.
그는 전략기술본부 산하에 새로 세워진 현대차 미래기술전략실 리더를 맡으며 자율주행·커넥티드카·전동화 등 미래차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AI와 자율주행차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현대차그룹 글로벌 톱 탤런트 포럼’을 개최하고 공식적인 채용회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 현대차는 이런 채용 방식을 통해 글로벌 감각이 있는 인재를 발굴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돋보기]
- 투자와 협업으로 만드는 ‘정의선의 미래차’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월 14일 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하게 된 정 부회장은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서의 현대 미래차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이끌어 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 1년간 해외 유망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인수·합병(M&A), 그룹 외 협업 등에 소극적이었던 기존의 현대차와는 다른 양상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차 개발에 5년간 23조원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협업을 맺으며 미래차 관련 분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부 연구·개발(R&D) 조직에서 나온 성과에 기대어 성장하는 것을 추구했던 과거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해 다양한 조직과 손을 잡는 데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전략 변화를 알리는 데도 거침이 없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8’에 참석해 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당시 “누가 먼저 변화하는지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 같다”며 “(현대차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보다 더 ICT를 잘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파트너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도 했다.
올 초 정 수석부회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부처와 가진 간담회에서 △차량전동화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AI △미래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 5대 신사업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른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고 로봇·AI 분야에 대한 현대차의 사업화 계획을 공식화한 첫 자리였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신기술 분야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며 “5대 신사업 분야에서 더 좋은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충원해서 활성화시켜 나가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려 나가고 있는 경영 전략은 미래차 분야에서의 기술력 선점과 영역 확장으로 풀이된다. 시장 참여자들의 반대에 한 차례 취소됐으나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2025년에 매출 44조원, 매출의 25%는 자율주행·커넥티비티 부문에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사업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향후 3~5년, 앞으로 10년 뒤 현대차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미국발 관세 부담 해소, 중국 시장 회복, 지배구조 개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등 현안은 산적해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cwy@hankyung.com
[커버스토리 : 4대 그룹 AI 혈전 기사 인덱스]
-젊어진 4대 그룹 리더들…“AI 투자에 사활” 한 목소리
-삼성, 글로벌 연구센터·플랫폼으로 AI ‘新초격차’ 이룬다
-현대차, 순혈주의 버리고 스타트업과 '오픈 이노베이션'
-최태원 SK 회장의 '딥 체인지', AI 기술로 '업그레이드'
-LG, 에어컨에서 청소기까지 AI 가전으로 '게임 체인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
- ACM·오로라·딥글린트 등과 AI·자율주행 협업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현대차그룹이 택한 인공지능(AI) 전략은 유연한 시장 대응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좇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현대차의 유연함에는 경쟁자와 동업자의 영역도 없다.
AI 기술 개발과 관련해 현대차가 당장 추진하고 있는 1차 목표는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AI 기술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AI 플랫폼 기술의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움직임은 광범위하면서도 신속하다. 투자도 어마어마하다. 현대차는 5년간 미래차 개발에 23조를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차는 자율주행 분야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ACM·오로라, 중국 딥글린트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기술 순혈주의를 고수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술 순혈주의를 버리고 국내외 최고 AI 기업들의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흐름에 완전히 올라탄 모습이다.
‘협업을 통한 혁신’을 의미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강조하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공격적 투자, 인수·합병(M&A)에 더욱더 적극적이다.
현대차가 최근 1년 동안 투자를 하거나 기술 협업 계약을 체결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자동차를 단순히 조립하고 생산하는 기업에서 벗어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율주행과 차량 공유 등 자동차의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8월 현대차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상반기에만 해외 기술 업체 8곳에 투자했다. 각각 소규모 지분투자지만 차세대 전고체배터리, 차량용 통신 반도체 설계, 벤처캐피털(VC), 레이더 개발, 딥러닝 등 미래차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 올해 상반기만 8곳에 투자·제휴 맺어
현대차는 지난 2월 유럽 지역 VC ‘얼리버드’에 288만2538유로(약 37억4500만원)를 투자해 19.62% 지분을 보유했다.
3월에도 미국의 차세대 전고체배터리 생산·개발 업체 ‘아이오닉 머티리얼스’에 두 차례, 총 499만9995달러(약 56억2700만원)를 투자해 3.38% 지분을 확보했다.
5월엔 미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투자했다. 전고체배터리 생산·개발 업체 ‘솔리드 파워’에 299만9999달러(약33억5600만원)를 투자했다.
앞서 작년 12월 독일 BMW도 솔리드 파워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또 같은 달 호주의 차량 공유 업체 ‘CND’에 199만9946호주달러(약 16억2600만원)를 투자해 5.44% 지분을 확보했다.
6월에는 무려 4건의 투자로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했다. 미국 레이더 개발 스타트업 ‘메타 웨이브’에 74만9998달러(약 8억4400만원)를 투자한 데 이어, 이스라엘의 차량용 통신 반도체 설계 업체 ‘오토톡스’에도 투자했다.
커넥티드카의 두뇌 역할을 하는 통신 칩셋(반도체 집적회로)을 개발하는 오토톡스에 대한 투자 규모는 499만9998만 달러(약 56억원)다.
같은 달 이스라엘의 딥러닝 엔진 개발 업체 ‘시매틱스’에 99만9999달러(약 11억2000만원)를 투자하고, 퀄컴에서 분사한 열화상 센서 업체 ‘옵시디언’에도 199만1577달러(약 22억3000만원)를 투자했다.
이 밖에 시스코·바이두와도 △커넥티드카 서비스 △음성인식 서비스 △AI 로봇 개발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보유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나 협업은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 등 3개국에 구축돼 있으며, 올해 연말 내로 중국과 독일에도 설립될 예정이다.
현대차가 이들 5개 나라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이유는 이들 국가에서 AI와 자율주행 등 기술의 R&D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5곳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움으로써 현지 스타트업과 협업 및 공동 R&D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운송체)를 선도할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 5개국에서 펼쳐지는 오픈 이노베이션
현대차 미국 이노베이션 센터의 존 서 소장은 ‘5대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 구축’에 대해 “현대차는 아시아·미국·유럽·중동 등 전 세계를 잇는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래 혁신을 주도할 스타트업 발굴의 최적 환경을 갖추게 됐다”며 “센터는 현지 대학과 전문 연구기관, 정부, 대기업 등과도 교류하며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말에 중국 베이징과 독일 베를린에 들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대차의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국 창업 열기를 주도하는 베이징은 중국 최대 인터넷 업체 바이두가 지난 2000년 스타트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베이징대·런민대 등 유명 대학들이 위치해 매년 뛰어난 인재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소비층이 다양해 신생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유리하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라고 불리는 베를린도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육성 도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5곳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강점에 따라 특화할 계획이다. 우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글로벌 시장의 AI와 자율주행 흐름을 파악하며 선제적인 전략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구축된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육성, 발굴할 계획이다. 한국 센터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에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아이템 발굴에서 사업 성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 활동에 나선다.
베이징 센터는 AI을 비롯한 중국의 앞선 기술 확보와 현지 대형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협력을 모색하는 혁신 거점으로 삼는다. 베를린은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솔루션 기반의 신사업 확보를 위한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 현대차의 ‘AI 시대’ 만드는 인재들
특히 현대차는 AI 전문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챙길 정도다. 정 수석부회장은 작년 AI와 ICT 개발의 전담부서인 전략기술연구소를 신설하고 자신의 직속 부서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R&D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양웅철 현대차 R&D 총괄부회장을 수장으로 배치시켰다. 양 부회장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대에서 기계설계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에서 기계설계학 박사를 받았다.
1987년 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포드자동차 R&D센터에 근무하다 2004년 10월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전자개발센터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실장·전자개발센터장 등을 거쳤으며 2011년 현대차 연구개발총괄본부 부회장으로 승진해 7년간 현대차의 R&D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현대차의 친환경차 개발을 주도해 온 양 부회장은 작년에는 글로벌 수소위원회 공동회장에 취임, 수소전기차를 비롯한 수소에너지로의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정 수석부회장은 전략기술연구소에 ‘신사업 전문가’로 꼽히는 지영조 박사도 전략기술연구소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 소장은 국내외 주요 업체를 거치며 다수의 신사업 발굴 및 개발, 전략기획 등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지 소장은 서울대와 미국 브라운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브라운대 응용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9년 미국 AT&T 벨연구소 근무를 시작으로 매킨지와 액센추어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전략·마케팅 등을 컨설팅한 경력도 갖고 있다.
지 소장은 지난 1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카헤일링) 서비스 업체인 그랩(Grab)에 전략적 투자를 담당했다.
이 투자를 통해 현대차는 그랩과 함께 싱가포르 및 동남아 지역 차량 호출 서비스에 현대차 공급을 늘리고 아이오닉 전기차(EV) 등 친환경차를 활용한 차별화된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해 차량, 이용자, 주행 여건 등 각종 정보를 취합, 향후 개선된 서비스와 사양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차는 작년 초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전담 조직인 지능형안전기술센터를 신설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알려진 이진우 자율주행차 개발 팀장(상무)을 영입했다.
당시 경쟁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주행차 개발 실무 책임자였던 이 팀장의 영입에 업계가 들썩이기도 했다. 이 팀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동역학 제어 분야를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미국 코넬대에서 연구교수로 자율주행과 로봇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대차는 이 팀장 영입을 통해 2020년까지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고 2030년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인재 영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동안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영입한 글로벌 전문가들은 무려 14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지난달에는 마틴 붸어레 전 BMW그룹코리아 R&D센터장을 미래기술전략실장(이사)으로 전격 영입했다.
붸어레 실장은 1991년 뮌헨공과대 전기·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한 뒤 줄곧 BMW에서 전문 기술 인력으로 근무해 온 전형적인 ‘BMW맨’이었다. 2015년부터는 한국에 부임해 R&D센터 기반을 닦는 데 역할을 했다.
경기도·한국전자통신연구원·SK텔레콤(5G 커넥티드카)과 기술 개발 협력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 현지 실정에 정통한 점도 강점이다.
그는 전략기술본부 산하에 새로 세워진 현대차 미래기술전략실 리더를 맡으며 자율주행·커넥티드카·전동화 등 미래차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AI와 자율주행차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현대차그룹 글로벌 톱 탤런트 포럼’을 개최하고 공식적인 채용회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 현대차는 이런 채용 방식을 통해 글로벌 감각이 있는 인재를 발굴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돋보기]
- 투자와 협업으로 만드는 ‘정의선의 미래차’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월 14일 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하게 된 정 부회장은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서의 현대 미래차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이끌어 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 1년간 해외 유망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인수·합병(M&A), 그룹 외 협업 등에 소극적이었던 기존의 현대차와는 다른 양상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차 개발에 5년간 23조원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협업을 맺으며 미래차 관련 분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부 연구·개발(R&D) 조직에서 나온 성과에 기대어 성장하는 것을 추구했던 과거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해 다양한 조직과 손을 잡는 데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전략 변화를 알리는 데도 거침이 없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8’에 참석해 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당시 “누가 먼저 변화하는지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 같다”며 “(현대차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보다 더 ICT를 잘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파트너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도 했다.
올 초 정 수석부회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부처와 가진 간담회에서 △차량전동화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 △로봇·AI △미래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 5대 신사업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른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고 로봇·AI 분야에 대한 현대차의 사업화 계획을 공식화한 첫 자리였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신기술 분야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며 “5대 신사업 분야에서 더 좋은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충원해서 활성화시켜 나가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려 나가고 있는 경영 전략은 미래차 분야에서의 기술력 선점과 영역 확장으로 풀이된다. 시장 참여자들의 반대에 한 차례 취소됐으나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2025년에 매출 44조원, 매출의 25%는 자율주행·커넥티비티 부문에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사업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향후 3~5년, 앞으로 10년 뒤 현대차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미국발 관세 부담 해소, 중국 시장 회복, 지배구조 개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등 현안은 산적해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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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